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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 〉 쓸모없는 도련님과 견습 기사 (55/90)

〈 55화 〉 쓸모없는 도련님과 견습 기사

"...."

데브라와 칠러웨이는 말없이 한 남자를 보고 있었는데 그는 얼마나 살이 쪘는지 온몸에 비를 맞은 듯 옷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

"문제가 많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칠라렌 성국에 살고 있는 귀족의 귀한 아들인 라틴을 데리고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핀이 옆에서 그를 잘 보필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불만을 얘기할 수 없었다.

"이봐 견습 기사."

"헉... 헉.. 예!"

"그 도련님 버리고 오는 게 어때?"

"...."

데브라의 말에 핀은 자신이 잡고 있는 라틴을 바라봤고 라틴은 두세 개로 접힌 목살을 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 그러지 말거라 핀."

".... 세 분이 버리고 가신다고 하더라도 저는 라틴님의 곁에 남겠습니다."

"... 고.. 고맙다 핀."

"그 성질을 견뎌내고도 저렇게 충직하다니... 피렌디 저 아이 탐나지 않나?"

데브라는 시간이 늦어져 뚱한 얼굴을 하고 있는 피렌디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고 피렌디는 그를 째릿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근성은 나쁘지 않아요."

"좋은 기사가 될 것 같은데 저런 놈한테 잡혀있다니... 안타깝구만."

데브라는 기사의 세 가지 미덕인 충성심을 잘 지키고 있는 핀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저 도련님 어디 가문의 도련님인지 알고 있습니까?"

칠러웨이가 궁금한 듯 물어오자 데브라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모르네, 저 핀이라는 아이한테 물어봤지만 혹여나 자신들을 버리고 갈까 제대로 얘기해 주지도 않고 라틴이라는 저 도련님은 저렇게 힘들어하니 뭘 물어볼 수가 있나?"

".... 그렇긴 하죠."

칠러웨이는 몇 걸음 밖에 떼지 않았지만 힘들어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라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봐."

"허억.... 허억...."

"이봐 너."

"..... 허억... 허억..."

"라틴이라고 했나? 대답 좀 해보지?"

".... 허억... 허억.. 우욱!"

칠러웨이가 그를 불렀지만 라틴은 손을 내저으며 구역질까지 했고 핀은 그의 등을 조심스레 두들겨 주었다.

"에휴... 잠시 쉬어요.. 데브라."

"좋은 생각이야 피렌디."

도저히 안되겠다는 듯 피렌디가 바위 위에 걸터앉아 직접 만든 말린 과일을 꺼내자 데브라도 여정이 고됐는지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라틴이라고 했나?"

".... 허억... 그.. 그렇습니다."

"운동 좀 하는 게 어때?"

"우... 운동?"

칠러웨이의 말에 라틴은 끔찍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지만 전에 일어났었던 일 때문에 그는 금방 표정을 풀었다.

".... 그... 우.. 운동이 쉬워야 말이지요."

"...."

칠러웨이는 조용히 라틴의 옆에 다가가 뱃살을 잡았고 손 한가득 잡히는 뱃살에 칠러웨이는 무언가 결심한 듯 핀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 하.. 하지만.."

"네 주인을 위해서다."

"....."

"알았지?"

"예.."

칠러웨이의 말에 핀이 데브라에게 가자 라틴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칠러웨이를 올려다봤다.

"핀은... 왜?"

"네 썩은 근성은 내가 고쳐주마."

".... 왜... 왜 시.. 싫습니다."

"거부는 거부한다."

"시... 싫다구요!"

라틴은 칠러웨이를 극도로 거부했지만 칠러웨이는 그를 억지로 자리에서 일으켰고 그는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싫은 듯 허우적댔지만 칠러웨이의 힘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어나!"

"가.. 감히 노.. 놓거라!"

"놓거라?"

칠러웨이는 반항하는 라틴을 잠시 노려보더니 주먹을 들어 올렸고 라틴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어나 그의 옆에 섰다.

"전에도 그렇게 괴롭히더니.."

피렌디는 라틴의 등을 계속 떠미는 칠러웨이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라틴이 칠러웨이의 등에서 깨어난 후 그는 칠러웨이의 뺨을 내려치며 자신을 칠라렌 성국으로 돌려보내달라 난리를 피웠지만 돌아온 건 칠러웨이의 자비 없는 주먹이었고 그는 핀이 말릴 때까지 이틀 동안 그의 주먹을 받아내야만 했다.

".... 계속 옆에서 봤잖느냐 피렌디.. 칠러웨이 저 남자는 권력도, 힘도 신경 쓰지 않는 워낙에 무식한 사람이니 분명 저 도련님에게는 도움이 될 거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요."

"... 도련님.."

피렌디와 데브라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핀은 라틴이 걱정이 되는 듯 그를 바라봤고 데브라는 그를 잠시 지켜보더니 그의 등을 툭 쳤다.

"어이 핀."

"예... 예!"

"핀, 자네 견습 기사라고 했지?"

"예 맞습니다."

"톤 왕국까지는 꽤나 남았으니 시간이 좀 있을 거야, 나에게 싸우는 방법을 좀 배워보지 않겠나?"

".... 데.. 데브라님에게 직접 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할 것도 없고 나중에 저런 도련님 밑에서 일하다가 싫증 났을 때 우리 자유기사에게로 찾아오면 되니까, 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보험이랄까? 어떤가?"

"..... 떠나지는 않겠지만 그저 가르쳐주시는 것이라면..."

"좋아 일어서봐."

"예."

"자세 잡아."

"예?"

"자세."

데브라의 말에 핀은 머뭇거렸지만 그는 장난이 아닌 듯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들어 올리고 핀에게 겨눴다.

"자, 덤비게."

"예?"

"내가 갈까?"

"어떻게 나이 드신 분을..."

"...."

핀의 말에 미소를 짓던 데브라의 표정이 굳었고 피렌디는 큰일 났다는 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란 얼굴을 했다.

"방금 뭐라고..?"

"저희 아버지께서 노인은 공경..."

따악!

"아악!"

순식간에 핀의 앞으로 다가온 데브라는 그의 머리를 후려쳤고 핀은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지 주저앉아 머리를 감쌌다.

"일어나."

".... 자.. 잠시만... 주... 준비가.."

"진작에 했어야지."

따악!

"아아악! 자.. 잠깐만요!"

"아직도 검을 안 뽑았어?"

따악!

"아.. 자.. 잠시만..."

"어어? 안 일어나?"

따악!

"이... 일어날게요!"

핀이 계속 일어나려 할 때마다 데브라는 그의 몸 이곳저곳을 구타했고 그 모습을 보며 피렌디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변태스럽기는.."

자신의 남편인 페르온과 대련을 할 때도 저런 식으로 했지만 그에게 보다 더욱 혹독하게 하는 모습을 보며 피렌디는 핀이 안타까웠지만 확실한 실전 경험을 키우려면 어쩔 수 없었다.

"어쭈!"

"... 그.. 그만!"

"뭐?"

"그... 그만 하... 하세요!"

데브라가 핀을 가리키는 것을 보며 칠러웨이는 라틴을 더욱 혹독하게 운동시켜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저기 봐 네 견습 기사도 열심히잖아."

"그.. 그는 기사지만..."

"움직이면서 얘기해!"

그를 더욱 빡세게 굴렸지만 라틴은 몸이 따라주지 않는지 자꾸만 벗겨지는 바지를 잡으며 울듯한 표정으로 칠러웨이를 바라봤지만 이미 자극을 받은 칠러웨이에게 자비는 없었다.

"너."

".... 예.. 예!"

"움직여."

칠러웨이의 재촉에도 불과하고 라틴은 울상을 한 채 뭉그적거리며 칠러웨이를 따라왔다.

".... 아직도 심각성을 모르겠어?"

".... 무슨.."

"지금 너 살아야 돼 이 숲에서 죽고 싶어?"

"사.. 살아 있지 않습니까?"

"말이 안 통하네."

라틴이 말대꾸를 하자 칠러웨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라틴의 몸에 들고 있던 묵직한 검 두 개를 묶었다.

"무... 무겁습니다!"

"말대꾸한 벌이다."

"...."

칠러웨이의 말에 라틴은 짐이 더 추가될까 입을 다물었고 칠러웨이는 그의 멱살을 잡고 강제로 걷게 했다.

"쉬지 마라."

".... 허억... 허억.. 크흡..."

"계속 그렇게 질질 짜다가는 칠라렌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운 좋게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전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굴러다닐 거야."

".... 크흡.. 크흥!"

"살고 싶지 않아?"

".... 지.. 지금 죽을 것 같아요."

라틴은 귀족가의 아들로서 당당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며 칠러웨이를 보고 있었고 칠러웨이는 한심하다는 듯 그를 노려봤다.

"지금도 목숨을 그렇게 부지하고 싶어 하는데 앞으로 금방 죽을 거라고."

"..... 다.. 당신이 무슨 상관...!"

"네 기사."

"..... 피.. 핀이 저한테 운동을 시키라고 부탁한 겁니까?"

라틴은 핀을 째릿 노려보며 그를 원망했지만 칠러웨이는 고개를 내저으며 라틴이 괴씸했는지 짐 몇 개를 라틴의 몸에 더 묶었다.

"네 기사 녀석이 불쌍해서 그렇다."

"저.. 저 녀석은 내가 부리는 기사입니다! 당신이 신경 쓸 일은...!"

".... 신경 쓰이지."

라틴은 칠러웨이의 말에 화가 난 듯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흘러내리는 살들을 떨며 그를 바라봤지만 칠러웨이는 꿈쩍하지 않았다.

"야 라틴이라고 했나?"

".... 예."

"저 녀석 실력 좀 늘리겠다고 저렇게 처맞는 거 안 보여?"

".... 그.. 그건 기사들의 덕목.."

"틀렸어 인마, 이곳에 올 때까지 네가 누구 덕에 살았는지 기억 못 해?"

라틴은 자신이 힘들 때마다 그의 육중한 몸을 업으며 이곳까지 온 핀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건방진 짓도 적당히 해라.. 적어도 목숨 구해준 은인한테는 보답해야지."

"피.. 핀은.."

"너 살리겠다고 저러는 거잖아, 여기서 저 녀석 없으면 어쩔 건데! 우리가 너 도와줄 것 같아?"

"그.. 그럼 요.. 용병을.."

"아니 이런... 씨..."

칠러웨이가 다시 주먹을 들어 올리자 라틴은 움찔했지만 그는 금방 주먹을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하아... 저 녀석이 한 번은 지켜주겠지.. 하지만 그것도 한 번뿐이야, 키메라 녀석에게 저 녀석을 먹이로 준 다음은?"

".... 모르겠습니다."

"이런 숲에는 용병도 영지도 없어, 길 잃어버리면 한 달은 기본으로 돌아다녀야 된다고."

"...."

"근데 저 녀석이 목숨이라도 바쳐주면 네가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할 거아냐.."

"저.. 저를 지켜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보답은..."

"쯧... 필요 없어."

"예? 어떻게.. 안되겠..."

"안돼."

돈으로 움직일 것 같던 칠러웨이가 혀를 차며 거절하자 라틴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신의 배를 바라봤다.

"우리한테 보호받는 방법은 따로 있어."

"그... 그게 어떤...!"

"네가 우리를 계속 잘 따라오는 것."

"....."

"우리는 딱 봐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야, 톤 왕국의 옆이 칠라렌 성국이라 너희들을 어느 정도까지는 데려다주겠지만 그 뒤부터는 너희가 알아서 해야 해 알아들어?."

라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칠러웨이는 자신의 말을 이해한 그의 어깨를 잡았다.

"저 녀석한테 안 고마워?"

"... 고맙.. 죠.."

"네가 그렇게 천대해도 너한테 붙어있었고 우리가 버리라고 꼬셔도 절대 너 안 버리는 녀석이야.. 애초에 너를 데려오자고 한 것도 저 녀석이고.."

".... 예."

"뭐 감동한 건 아니지만 남자 중의 남자잖아? 나는 그런 거 좋아해, 그래서 내가 도와주는 거고."

칠러웨이의 말에 설득이 된 듯 라틴은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바위 위를 걷기 시작했다.

"톤 왕국에 갈 때까지만 내가 살 빼게 해줄 테니까 잘하자 체력도 좀 기르고."

"예.."

라틴은 은근히 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지 아니면 진짜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더 이상 찡찡거리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해 걸었다.

"자, 우리도 그만하고 가자 피렌디."

".... 견습 기사는요?"

"알아서 올 거다."

"... 예.. 알아서 갈 겁니다.."

여기저기 멍이든 핀은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데브라의 뒤를 따라갔고 피렌디는 미친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둘 다 오지랖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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