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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화 〉 소란스러움은 언제나 적을 불러온다 (50/90)

〈 50화 〉 소란스러움은 언제나 적을 불러온다

* * *

"...."

조용한 숲에 한 남자가 양피지를 든 채 멍하니 서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아무것도 모르잖아."

칠러웨이는 지도를 들고 봤지만 성의 그림만 대충 알고 있을 뿐 이들이 사용하는 그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허허."

그렇다고 아르티네의 성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일황자면 곧 황제가 될 몸 이니.. 아닐 수도 있지만."

백작령에서 영지민들이 학살당하고 아르티네마저 죽을 뻔한 그 상황을 떠올리며 칠러웨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안되겠지."

아무리 도움을 받고 싶어도 더 이상 그녀에게 무언가를 바라기에는 너무 많은 걸 뺏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칠러웨이는 멀리 보이는 영지의 성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고 다시 발을 옮겼다.

"성녀는 잘 보냈나?"

"...!"

하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가벼운 차림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데브라가 서있었다.

"어..?"

"잘 다녀왔구만."

"예.. 뭐.."

"두란트들에게 흠씬 맞고 올 줄 알았는데 아쉽군 하하하!"

데브라는 그의 등을 탕탕 치며 호쾌하게 웃었고 칠러웨이는 무슨 일인지 몰라 멍하니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여긴 어떻게?"

"잘."

"...."

"내 아들은 자유기사답지 않게 흔적을 많이 남기지, 자네는 내 아들보다 더 미숙하니 찾기가 엄청나게 쉬워서."

"예?"

"페르온 말 일세."

".... 아들이었습니까?"

"그렇지! 나는 아들을 낳으면 안 되나?"

데브라는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페르온이 걱정 되는 듯 저 멀리 보이는 협곡을 조용히 바라봤다.

"되게 남처럼 대하길래..."

"그럴 수밖에 없지, 우리는 꽤나 위험한 상황이니까."

데브라는 칠러웨이의 말에 씁쓸해 하면서도 주변을 살피며 위협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저는 왜 쫓아오신 겁니까?"

"음."

칠러웨이의 말에 데브라는 나무 뒤를 가리켰고 그곳에는 한 여인이 서있었다.

"나오거라 피렌디."

"...."

"저분은?"

칠러웨이는 처음에 데브라에게 도착했을 때 페르온에게 화냈던 여인을 떠올렸고 피렌디는 칠러웨이를 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반가워요 저는 피렌디, 페르온의 아내에요."

"예?"

"그 자식.. 하지 말라니까 당신들을 끝까지 쫓아가서 걱정이나 하게 만들고."

".... 죄송합니다."

칠러웨이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피렌디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어차피 항상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녀석이니.. 그리고 데브라님이 드디어 움직이라는 명령을 받아서 같이 가는 것뿐이에요."

"아.. 일 말입니까?"

"뭐.. 자네 덕분이지, 위에서 계속 관망하시던 분이 드디어 움직이셨거든.. 일단 톤 왕국으로 가야 하니 자네와 합류한걸세."

칠러웨이는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고 데브라는 칠러웨이가 들고 있는 양피지를 보고 손을 내밀었다.

"아까부터 한참 동안 헤매는 것 같던데 나한테 주겠나?"

"아 예.."

"고맙네."

"근데 데브라님은 그냥 가까운 협곡 쪽으로 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 아 그게 사정이 생겨서 말이지.."

"사정.. 이요?"

"그래, 뭐 그 사정도 자네 때문에 생긴 거지만."

"아.."

칠러웨이는 두란트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고는 대강 데브라가 과거 자신과 엮여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 빨리 가도록 하지."

데브라는 지도를 보며 앞장섰고 피렌디는 긴장된 얼굴로 숲에 발을 디뎠다.

"그래도 어느 정도 잘 찾기는 했구만."

"잘 찾은 겁니까?"

"그래, 여기는 톤 왕국과 헬하임 사이에 있는 조용한 숲이라는 곳이네."

"조용한 숲이요?"

"그래... 뭐 들어가 보면 자네도 알겠지 왜 이름이 조용한 숲인지."

데브라는 망설임 없이 숲 안으로 걸어들어갔고 피렌디는 그의 뒤를 빠르게 따라 들어갔다.

사박.

".... 뭐야."

수풀을 헤치며 그들을 따라 들어선 숲은 한 마디로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

"... 예."

"주변이 협곡으로 둘러싸여 바람도 불지 않는 지형에다가 나무들은 저 햇빛을 받겠다고 서로 몸을 키워 하늘을 완전히 가려버렸지."

"...."

"그리고 이곳에는 '특별한' 녀석이 살아."

"무서운 소리 그만하세요."

"하하하!"

피렌디가 옆에서 데브라의 가슴을 툭 쳤지만 데브라는 웃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뭘 보든 못 보던 걸 볼 수 있을 걸세, 새 한 마리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있으니."

"옵니다."

눈을 감고 땅의 울림을 느끼던 피렌디는 데브라의 말을 끊고 얇은 단검 두 개를 들어 올렸다.

그... 워....

느린 울음소리와는 달리 순식간에 선두에 있던 데브라를 습격한 괴상한 물체는 그의 검을 물어뜯었다.

"어제 산 검인데!"

얼굴에 생채기가 났지만 데브라가 다른 것에 화가 난 듯 괴생물체를 발로 차 떨어뜨린 후 능숙하게 검을 머리에 꽂아 넣었다.

그워...

짧은 울음소리를 내며 숨이 끊어진 물체를 칠러웨이는 자세히 살폈다.

"우욱."

"조심하게 냄새가 좀 심하니."

역한 냄새가 칠러웨이의 코를 파고 들어왔고 생명체의 검은 털은 정체를 숨기듯 길게 나있었다.

"우리는 그 녀석을 코루라고 부르네, 맛도 없어 먹지도 못하는 데다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생명체지 그 녀석들은 오직 먹는 것 밖에는 관심이 없는 놈들이야 몸을 숨기기 위해 이 숲의 그늘에 맞춰 검은 털로 진화했고.. 칠라렌 성국의 키메라 녀석들보다 더 짜증 나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데브라는 조용히 주변을 살피더니 강하게 단검을 어디론가 던졌다.

그... 워어...

"최강의 검사라고 불릴만하네요."

칠러웨이는 정확하게 머리를 맞춘 데브라를 감탄하며 바라봤지만 그의 옆에 있던 피렌디도 피를 뒤집어쓴 채 어디선가 등장했다.

"피렌디나 내 아들이나 나를 따라잡을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네, 태어날 녀석은 얼마나 강할지... 하하하하!"

"조용히 하세요 데브라."

피렌디는 크게 웃는 데브라를 툭툭 치며 입을 다물게 했지만 조용한 숲에 난 소리는 이미 그들의 위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워...

"호오.. 많이도 나왔구만."

"그러게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요! 숲을 빠져나가서 이야기해도 되는 것을.. 그 녀석이 나타나면 귀찮아진다구요."

"하하하!"

두 사람은 최악의 상황안에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하고 있었고 칠러웨이는 빠르게 달려드는 녀석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만 얘기하고 도와 좀 주세요!"

"오 미안하군!"

데브라는 칠러웨이에게 달라붙은 코루들을 하나하나 떼어내며 칠러웨이의 몸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때 봤던 것과 같군."

"예?"

"아! 미안하군 아무것도 아닐세 빨리 이 숲을 넘어갈 테니 잘 따라오게."

데브라와 피렌디는 순식간에 앞으로 치고 나갔고 칠러웨이는 신체능력을 최대로 활용해 그들의 뒤를 쫓았다.

"이 길이 맞는 건가요!?"

"아마!"

"아마?!"

"그래 아마!"

숲의 풍경이 휙휙 지나가며 세 사람은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지만 피렌디는 무언가 불안한 듯 데브라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기다려요!"

"날 못 믿는 거냐?"

"네!"

"...."

데브라는 쫓아오는 코루들을 막아내며 피렌디에게 양피지를 건넸다.

"잘 봐 맞는 길이잖아!"

"지도를 거꾸로 드시면 어떡해요!"

"아.."

피렌디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데브라의 복부를 주먹으로 쳤고 데브라는 꽤 충격이 컸는지 컥컥대며 무릎을 꿇었다.

"아.. 아가야.. 아무리 그래도... 장인을.."

"이 숲에서 페르온도 못 보고 죽으면 책임져요!"

"... 내.. 아들인데.."

"누가 됐던 빨리 길 좀 찾아봐요!! 우욱...!"

하지만 두 사람이 옥신 각신하고 있을 때 칠러웨이는 코루들의 몸을 터뜨리며 역한 냄새를 온몸으로 받아야만 했다.

"피렌디 네가 앞장 서거라, 일단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겠군."

칠러웨이가 물어뜯기며 위험한 상황에 빠지자 데브라는 멀쩡하게 일어서더니 무언가를 느낀 듯 짧은 검을 집어넣고 장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귀찮게 됐구만."

"... 녀석이에요?"

조용히 지도를 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녀석이 도대체 뭐길래.."

칠러웨이가 궁금한 듯 물어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정체를 알 수 있었고 이가 다 빠진 검을 옆으로 던지고는 일황자의 기사들에게서 챙겨온 검을 뽑아들었다.

"저 녀석은 이 숲의 왕이지."

"...."

"그리고 피렌디가 제일 싫어하는 생물이기도 하고."

"바퀴벌레.."

칠러웨이가 본 것은 바퀴벌레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그 징그러운 모습을 보며 칠러웨이의 몸에 소름이 돋았고 코루들은 그 물체가 두려운지 숲속으로 빠르게 도망가고 있었다.

"조용히 움직이고 잡식성에다가 엄청나게 빨라서 제대로 잡지 못하네 과거에 피렌디가 동료들과 함께 이곳에 들어왔다가 피렌디만 살아나왔지."

"...."

끼긱!

괴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더듬이가 움직였고 빠른 속도로 일행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피렌디!"

"알고 있어요!"

피렌디는 주변에 무언가를 뿌렸고 데브라는 놈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쫓았다.

"저게 뭡니까?!"

"독을 고체로 만들어 갈아둔 걸세!"

"칠러웨이 녀석을 잡을 수 있겠나!?"

"해보겠습니다!"

칠러웨이는 데브라의 말에 따라 녀석을 쫓아 빠르게 뛰어갔지만 빠른 속도에 칠러웨이는 녀석을 잡지 못했다.

"헉... 허억... 이 개같은!"

숨을 헉헉대며 녀석을 계속 뒤쫓은 칠러웨이는 녀석이 방향을 틀 때 다리 하나를 잡아챘다.

"우욱!"

역한 냄새가 다시 칠러웨이의 속을 후벼팠지만 그는 다리를 꽉 잡았고 녀석은 생각보다 강한 힘에 저항했지만 상황을 지켜보던 데브라가 달려와 녀석의 등으로 올라갔다.

"드디어 잡았군 재빠른 녀석."

끼에에에에엑!

데브라는 능숙하게 녀석의 머리와 등 사이에 검을 집어넣었고 바퀴벌레는 온몸을 흔들며 그를 떨궈내려 노력했다.

"이미 올라온 이상 못 내려가 주지!"

계속해서 검을 찔러 넣기를 반복하자 몸 부림 치던 녀석의 힘이 빠졌고 데브라는 피렌디가 뿌린 가루를 한줌 쥐어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죽어라 더럽게 질긴 놈."

끼엑! 끼에에엑!

아직까지 신경이 살아있는지 가루를 잔뜩 머금은 녀석은 발버둥을 쳤지만 이내 축 늘어졌다.

"끝난 겁니까?"

"아직 모르지."

"이렇게 큰 놈이 여기 있을 줄이야."

"꽤 오랜 시간동안 찾고 있었는데 쫓을 때는 꼭 안 보이더군, 사람이 적을 때만 나타나는 녀석이야."

'말 그대로 바퀴벌레구만.. 근데 저 녀석이 왜 여기에..'

칠러웨이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나오던 녀석과 똑같은 그 모습에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녀석을 토막내고 있는 데브라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역하십니까?"

"어쩔 수 없지,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이 녀석 살아날 수도 있네, 예전에 이 녀석의 새끼를 죽인 적이 있었는데 머리가 없이 삼일을 살아있더구만."

"아..."

칠러웨이는 과거 자신이 잡았던 바퀴벌레가 휴지를 뚫고 나왔던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피렌디는 겨우 끝난 상황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그나저나.."

잠시 주변을 살피던 칠러웨이는 뭔가 이상한지 주변을 바라봤고 녀석이 죽고 다시 공격해야 할 코루들이 조용히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브라."

"왜 그러나?"

"빨리 가야 합니다."

"갑자기? 이 녀석은 죽었네 겁먹을 필요 없어."

"제가 알기로는 그 녀석... 독한 녀석입니다."

"근데 죽었지 않나?"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새끼가 있었다고 했죠?"

"그래."

"다 잡았습니까?"

"아니..."

"피렌디 일어나세요!"

칠러웨이가 다리가 풀린 피렌디를 일으키려 했지만 그녀는 다리가 풀려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그녀를 들처업은 칠러웨이는 빠르게 숲의 밖을 향해 뛰어갔고 데브라는 그의 모습을 보며 무언가 알아챈 듯 녀석을 토막 내는 것을 중지하고 벗어두었던 짐을 챙겼다.

끼엑.. 끼에에엑!

"제기랄! 잊고 있었어!"

"뭘 말인가!"

"저 녀석 한번 알 까면 계속 나오는 놈입니다!"

"그걸 왜 이제 얘기하나!"

"기억하고 있었으면 벌써 도망갔을 겁니다!"

숲 여기저기에서 바퀴벌레들이 튀어나오자 칠러웨이는 빠르게 피해냈고 늦게 뛰어온 데브라 또한 유연하게 움직이며 녀석들의 머리를 베어냈다.

"... 워.."

"예? 뭐라고요 피렌디님?"

"징그러워!!!!"

피렌디가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자 칠러웨이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녀의 비명소리뿐이었다.

"너무 징그러워.. 너무 징그러워... 너무 징그러워... 너무 징그러워..."

"미안하네.. 당장 버리고 싶어도 그 아이 놓지 말게.. 여길 빠져나갈 때까지만 맡겨두지.."

"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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