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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화 〉 자유를 갈망하는 새는 날지 못한다 (49/90)

〈 49화 〉 자유를 갈망하는 새는 날지 못한다

* * *

"거의 다 왔습니다."

아르웬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던 칠러웨이는 페르온의 말에 앞을 바라봤다.

".... 놀랍네요."

"그렇죠?"

눈앞에 펼쳐진 것은 톤 왕국이 과거 헬하임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두꺼운 목책과 곳곳에 보이는 전쟁의 흔적이었다.

"이곳은 대륙에서도 가장 많은 전투가 치러진 곳입니다 죽음의 협곡이라고 불리죠."

"... 그럴 만하네요."

"대략 만 번에 가까운 크고 작은 전투와 습격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렇게나 많이?"

"예 워낙에 중요한 곳이다 보니 평화로운 때에 주인도 그동안 몇백 번은 바뀌었구요, 뭐 지금이야 성국이 나서 중재 역할을 자처하면서 전투가 잦아들긴 했지만요."

"칠라렌이 말입니까?"

"예, 과거에 칠라렌의 순례자들이 찾아왔다가 전투에 휘말린 적이 있어서요.. 지금 이곳은 공식적으로 중립구역입니다."

"공동구역 같은 느낌이군요.."

"그렇죠, 이 협곡은 실력 좋은 기사 열 명만 있어도 천 명은 막는 곳이니까요.. 실제로도 톤 왕국이 백 명의 기사로 만 명이 넘는 헬하임의 병사들을 막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지금은 누가 있습니까?"

"지금 말입니까..? 보시면 알 겁니다."

페르온은 칠러웨이의 말에 씩 웃은 뒤 목책의 아래 걸려있는 작은 뿔피리를 불었다.

"누구냐!"

"자유 기사 페르온!"

"페르온...?"

"쫓기고 있어 지름길로 톤 왕국에 가려 합니다!"

".... 귀찮은 것들을 끌고 온 건 아니겠지?"

"아직은!"

끼이이익...

큰 목책이 열리자 허름한 복장을 한 남자가 틈새에서 나와 페르온의 앞에 나왔다.

"... 뭐야."

칠러웨이는 남자의 거대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칠러웨이의 몸보다 두 배는 큰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잘 있었습니까! 체체로!"

"오랜만에 찾아왔구나 꼬맹이 데브라 그 영감은 잘 지내나?"

체체로라 불린 남자는 누런 치아를 드러내며 페르온에게 손을 내밀었고 페르온은 아무렇지 않은지 그의 손가락을 맞잡았다.

"영감님은 여전하십니다, 이번에도 도와주시지 않아 저와 후트만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오, 후트도 왔나?"

"반가워 체체로."

체체로가 칠러웨이의 옆에 붙어있던 자신에게 다가오자 엘로나는 그가 싫은지 칠러웨이의 뒤로 숨어버렸다.

"왜 그러십니까 엘로나?"

"싫지는 않지만 저들은 냄새가 나서 싫거든."

"너무하는군 후트!"

체체로는 칠러웨이의 뒤로 숨어버린 엘로나에게 서운한 듯 울듯한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앞에 서있던 칠러웨이를 잠시 바라보더니 표정을 바꾸고는 페르온을 바라봤다.

"이자는 누가 데려왔지 페르온?"

"우리가."

".... 저 자의 어깨에 걸린 성녀는 받을 수 있지만 이 남자는 받지 못한다."

"체체로? 갑자기 왜..."

페르온은 당황했는지 체체로를 올려다봤지만 체체로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 남자가 누군지 모르나?"

"칠러웨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긴 했지만 자유기사로..."

"틀렸다."

체체로는 페르온의 말에 목책에 기대어 있던 거대한 검을 들어 올렸다.

"나는 이 치센 협곡의 관리자로서 저 목책 안으로 절대 이자를 들여보낼 수 없다."

"내가 누군지 압니까?"

칠러웨이는 잠시 상황을 지켜보더니 체체로를 올려다보며 물었고 체체로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내려다봤다.

"잘 알고 말고, 몇 년 전 혼자 찾아온 너를 받아준 게 우리였는데."

"... 혼자 와?"

"그래 혼자."

체체로의 물음에 칠러웨이는 생각에 빠졌지만 원래는 자신이 주인이 아니었던 칠러웨이의 생각을 알 수는 없었다.

"그러니 꺼져라, 두 번 다시 네 녀석을 받지 않으니."

"잠시만.. 체체로님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체체로가 분위기를 더욱 험악하게 만들며 검을 들자 페르온은 중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 그들의 사이로 들어왔다.

"미안하지만 체체로, 이분은 자신에 대한 기억이 날아간 것 같습니다."

"...."

"자신의 능력과 강함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하고 대륙의 기본적인 지식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음... 확실히."

체체로는 칠러웨이를 다시 들여다보았고 전과 다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내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있습니까?"

".... 정말 모르는 건가?"

체체로는 칠러웨이를 경계하며 검을 내려놓고는 목책에 기대었다.

"네 녀석이 처음 등장한 건 지금의 모습보다 더 어린 모습이었다, 솜털도 다 빠지지 않은 그런 모습이었지."

"...."

"우리는 중재자라고 불리는 집단, 일반 인간보다 우월한 힘과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어 이곳 협곡에 헬하임 제국과 톤 왕국이 타협하여 이 협곡을 우리에게 주었다."

"정확히는 두란트라고 불리는 거인족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체체로의 부족한 설명에 페르온은 미소를 지으며 대신 보충해 주었고 칠러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우리는 네가 꺼림직해도 받아주었지 하지만 너를 받은 그 밤은 재앙이었어 백 명이 넘는 우리 동족 중 열이 죽어버렸고 그중에는 어린 두란트도 몇 있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체체로?"

페르온이 조용히 물어왔지만 체체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칠러웨이를 가리켰다.

"우리도 가능할 줄 몰랐지 저 녀석의 신체 능력은 우리를 한참이나 뛰어넘었었어, 그 후에 저 녀석은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고 지금 와서야 헬하임이 숲에서 발견한 다른 두란트들을 충원해 줄 때까지 우리는 저놈이 다시 돌아오진 않을까 하는 공포에 떨었지."

"백이 넘는 두란트가 한 꼬마를 막지도 못했다는 얘기군요."

"그래 칠라렌의 그 두 번째 성녀 다음으로 처음 생겼던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말이라도 통했지... 저 녀석은 말도 통하지 않고 그 포악함이 하늘을 찔렀어."

체체로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당장이라도 칠러웨이를 죽이고 싶었지만 생각에 빠진 칠러웨이를 보며 살의를 거두었다.

"어쨌든 저 녀석은 못 들어 오네 페르온, 아직까지 무서움에 떠는 녀석들이 있어서 말이야.. 데브라에게서는 네가 온다고는 대충 전해 들었지만.."

"..."

체체로가 고개를 내젓자 칠러웨이는 조용히 기절한 아르웬을 바라보더니 그녀를 엘로나에게 넘겼다.

"톤 왕국으로 가면 브라이언에게 바로 가세요."

"너는?"

"어쩔 수 없죠.. 페르온 호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칠러웨이.."

페르온과 엘로나는 칠러웨이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전 몸의 주인이었던 녀석의 업보였으니 그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엘로나!"

"알겠어."

두 사람은 체체로가 열어둔 목책 안으로 들어갔고 조용해진 협곡에는 체체로와 칠러웨이가 묘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

"예."

"진짜 기억이 안 나는 건가?"

".... 정확히는 없는 기억입니다."

"없는 기억?"

"예.. 기억이 안 난다기 보단... 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라 이 말이죠."

칠러웨이의 말에 체체로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 데브라와 마주친 적이 있었나?"

"예.. 뭐 잠깐?"

"그런데 그 녀석은 아무 말도 안 했던 거냐?"

"... 무슨 말을?"

".... 그럼 됐다."

체체로는 더 이상 생각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는 칠러웨이에게 품속에 있던 양피지를 하나 던져주었다.

"이건..?"

"어차피 톤 왕국으로 가려면 길은 세 가지야, 이 협곡으로 지나가거나 벡작의 성으로 다시 가거나 아니면 칠라렌 성국에서 기어 나온 괴물들로 가득한 숲으로 지나가거나."

"...."

"너희들의 꼴을 보아하니 분명 누군가한테 도망쳐 나오는 길이겠지.. 마음 같아서는 보내주고 싶지만 네가 이곳에 들어오면 발작할 두란트들이 여럿 있다, 그러니 백작의 성에서 데브라를 만난 후에 요청해 안전하게 가든지 해야겠지."

"뭐.. 그렇겠죠."

"마지막 상황을 대비해서 그 지도를 준거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니 그 숲에 들어가면 그거라도 가져가서 목숨을 부지해라 길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니."

"고맙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들은 안전합니까?"

칠러웨이가 방금 두란트의 목책으로 들어간 일행을 가리키자 체체로는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통행할 수 있는 건 두 집단뿐이야 두란트와 자유 기사."

"아.."

"이곳은 중요한 거점이지만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중립지역으로 만든 곳이다, 만약 톤이나 헬하임의 병사나 기사들이 들어온다면 그건 아마 선전포고가 되겠지."

"음."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라 저들은 안전히 톤 왕국으로 도착할 거다."

"뭐.. 감사합니다, 맡기고 가도록 하죠"

그의 말을 듣고 안심한 듯 칠러웨이가 뒤를 돌아 협곡을 따라 다시 걷자 체체로는 말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데브라 녀석.. 두란트는 자기의 친구라고 꼭 복수를 위해 죽여준다더니 또 어리다는 핑계를 대면서 내버려 뒀나 보구만.."

하지만 그의 말은 칠러웨이에게 들릴 리 없었고 체체로는 혀를 찼다.

"그나저나.. 그럴 줄 알기는 했지만 이 녀석이나 저 녀석이나.. 믿을만한 게 못 되는구만.. 다음부터는 협력을 안 하던가 해야지..."

체체로는 한숨을 쉬며 목책 안으로 들어갔고 거대한 목책은 천천히 닫혔다.

"음..."

뒤에서 목책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협곡에 홀로 남은 칠러웨이는 조용히 주변을 바라봤다.

"오랜만이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혼자 남았지만 그때와는 달리 무언가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어왔고 칠러웨이는 데브라가 건넸던 금패를 살폈다.

"도대체.."

조용히 중얼거리던 칠러웨이는 자신의 몸을 살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낡은 검과 낡은 옷을 입고 있었던 자신은 칠라렌 성국에 왜인지 모르게 홀로 남겨져 있었고 이 괴이한 힘은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이었다.

"뭐..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칠러웨이 홀로 남은 협곡은 조용한 바람 소리와 복잡한 마음이 가득한 그의 욕지거리가 울려 퍼졌다.

"아아 제기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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