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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화 〉 자유를 갈망하는 새는 날지 못한다
* * *
"물러나세요 칠러웨이."
"그쪽 상당히 위험하지 않습니까?"
"...."
"그리고 저기 기사들한테 볼일이 있어서요."
"안됩니다 이분은.."
아르티네의 만류에도 칠러웨이는 방안에 흩뿌려진 피와 시신들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죄입니까?"
"...."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노에 차 붉으락 한 칠러웨이의 표정에 아르티네는 그를 살짝 문쪽으로 밀치며 속삭였다.
"제발.. 나가세요."
"미안하지만 안되겠는데요."
칠러웨이는 의자에 앉아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파울로를 당장이라도 죽일 듯 바라봤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 아르티네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비키세요."
".... 칠러웨이."
"후후후.. 아마 네놈이 그 성녀의 기사겠지?"
"네 알 바 아냐."
칠러웨이의 말에 아르티네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갑작스러운 일에 잠시 생각하던 파울로는 그가 자신을 조롱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감히!"
헬하임의 황제가 정체불명의 병으로 인해 침대에 누운 뒤 파울로는 헬하임의 최고 권력자이자 모든 귀족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
"네놈이 감히!!!"
하지만 앞에 서있는 남자는 자신의 기사들을 모두 발밑에 때려눕힌 채 모두가 두려워하는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용서를 구할 생각은 하지 말거라!"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안된 모양인데.."
칠러웨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자 파울로의 기사들이 검을 뽑아들고 그의 앞을 보호하듯 섰다.
"잠깐! 칠러웨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아르티네는 칠러웨이의 앞을 막아섰지만 칠러웨이는 아르티네의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풀어진 옷매무새를 보며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좀 비켜주실래요? 이럴수록 더 열받는데.."
"저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그러나요!?"
"모르는데요."
"....!"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헬하임 제국에서 적을 만든다면 당신은..."
"어차피 저 사람 아르웬을 노리고 있지 않습니까?"
"...."
"다 알고 온 모양인데.. 아르티네 지금 영지가 상당히 위험한 상황 아닙니까?"
"...."
그의 말에 아르티네는 입술을 꽉 깨물었고 거보라는 듯 칠러웨이는 파울로의 앞으로 한 발자국씩 움직였다.
"안돼요."
"..."
결국 아르티네가 칠러웨이 앞을 막아서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파울로는 그 모습을 분노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해!!! 내 기사들이 모두 쓰러졌는데 당장 죽여버려!"
파울로의 외침에 방안에 넓게 퍼져있던 제국의 기사들은 검을 뽑아들고 칠러웨이에게 덤벼들었다.
"거보세요, 이미 늦었습니다."
쩌억!
아르티네를 보호하듯 뒤로 끌어당긴 칠러웨이는 순식간에 두 기사의 턱을 올려치자 제국의 기사들은 휘청거렸지만 황제를 보호하는 최정예 기사들이라 그런지 금세 자세를 다시 잡고 칠러웨이에게 덤벼들었다.
"칠러웨이!!"
아르티네가 여러 번 칠러웨이를 불렀지만 칠러웨이의 마음은 이미 어떠한 분노로 가득 차있었다.
"주먹 한 방에 안 쓰러지면.."
"끄아아악!"
칠러웨이의 팔에 힘줄이 터질 듯 올라오며 그의 주먹에 기사들이 쓰고 있던 헬름은 깡통 찌그러지듯 찌그러졌다.
"끄윽.."
방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파울로를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뒤엉켜 칠러웨이를 공격하는 게 아닌 막아서는 것처럼 되어버렸고 그 기세를 몰아 칠러웨이는 그들의 품을 파고들며 하나 둘 쓰러뜨렸다.
"네놈이...!"
결국 파울로의 앞까지 당도한 칠러웨이는 그에게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고 아르티네는 이마를 짚고 고개를 내저었다.
"황자라고 했지?"
".... 이이익....!"
"여기서 죽을래 아니면 너네 집으로 돌아갈래?"
"나는 헬하임의 황제가 될 몸...! 감히 이런 짓을 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뭐.. 그건 하늘에 맡기고... 곱게는 안 물러나겠다 이거지?"
".....!"
그의 이어지는 건방진 태도에 칠러웨이는 팔을 들어 올렸고 파울로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만!"
"...."
"그만하세요 칠러웨이."
칠러웨이가 주먹을 휘두르려는 것도 잠시 아르티네가 온몸을 던져 그의 팔을 잡았고 칠러웨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부탁드립니다.. 이곳의 영지민을 위해 제발.."
".... 후우.."
아르티네의 부탁에 결국 칠러웨이는 주먹을 내렸고 파울로를 한번 째려보았다.
"저들이 들어온 성문 앞에 이미 경비병들과 영지민의 시체가 즐비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돌아온 것이고 아르웬은 이곳을 빠져나갔어요."
"...."
"저딴 사람이 황제가 되느니 이곳에서 죽여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칠러웨이는 자신이 아르웬과 성문을 빠져나갈 때 봤던 광경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듯 주먹을 꽉 쥐었지만 아르티네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에게 속삭였다.
"톤 왕국으로 돌아가세요.."
"...."
"당신은 정의의 사도가 아닙니다, 저 인간에게는 그저 '한낱' 벌레일 뿐.. 그리고... 당신은 아르웬을 지키면 될 뿐 아닌가요?"
"하지만...!"
"당신이 이 영지의 일에 관여할 필요는 없어요."
아르티네의 짧은 말에 칠러웨이는 그녀의 흔들리는 동공을 바라봤다, 그 속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는 듯했지만 칠러웨이는 그 뜻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제길...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이해했군요."
"이해는 안 되지만 이해해야 할 것 같아 이해하는 겁니다."
"...."
아르티네의 미소에 칠러웨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에서 나가자 그녀는 칠러웨이의 살기에 주저앉아 있는 파울로를 바라봤다.
"황자님."
"...."
"그는 갔습니다."
"이이익....!"
자신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손을 내미는 아르티네에게 분노한 듯 파울로는 당장 검을 휘두를 분위기로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
"감히.. 반기를 들어?"
"저는 반기를 든 적이 없습니다."
뻔뻔한 그녀의 태도에 파울로는 분노한 듯 그녀의 목을 졸랐지만 오히려 아르티네는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파울로님.. 저는.. 반기를 들지 않았습니다."
"네년이..! 감히...!!"
파울로는 그녀를 바닥에던지듯 팽개치고는 한 기사가 떨어뜨린 검을 주워들고 아르티네의 목에 가져다 댔다.
"어째서 저에게 화를 내시는 거죠?"
"... 뭐?"
"저에게 왜 화를 내시는 것인가 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 이 년이..."
"저는 황자님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보시지 않았습니까."
"거짓말 치지 마라! 저놈과 한패였으면서...!"
"그건 황자님의 생각이 아닙니까..?"
".... 끝까지 거짓말을 하는구나!"
"오히려 지금 이곳에 와 제 얘기도 듣지 않은 채 영지민들과 경비병들을 학살하고 이 성안까지 들어와 난리를 치신 것은 파울로님일 텐데요??"
"감히 내게 대드는 것이냐?"
"대드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제가 헬하임 제국의 하늘인 당신을 건들겠습니까?"
"....."
"성녀를 찾으러 왔다고 하셨습니까?"
"그래! 성녀! 네년이 성녀를 숨기고 있다고 들었다!"
"성녀는 이미 이곳을 지나 톤 왕국으로 갔을 겁니다, 최대한 잡아두려 했지만 톤 왕국과 인접한 저의 영지는 시간을 끌었다가는 분명 위협을 받을 것이고 전쟁으로 이어지겠죠."
"그게 뭐 어쨌단 거냐! 성녀를 얻는다면...!"
"아직 황제의 자리에 못 앉으시지 않았습니까?"
"...."
"황제의 자리가 안전해질 때 성녀를 취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네년이 입만 살았구나...!"
"제 말이 틀렸다면 손에 든 그 검으로 제 목을 베십시요.. 틀리지 않았으니 검을 휘두르지 않으시는 것 아닙니까?"
"...."
"확실한 것은 저는 저 남자가 황자님을 죽이지 못하게 막았고 황자님은 그런 저의 영지를 멋대로 유린했다는 것이죠."
아르티네의 말에 파울로는 검을 휘두르지 못하고 그녀를 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호의로 당신을 맞았으나 적의로 저를 대하신 것을 안다면 다른 황자님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실 터.. 만약 제가 당신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그냥 저 남자를 내버려 뒀을 겁니다."
"...."
"저는 항상 헬하임 제국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을 알아주시길.."
"네년을 볼 때마다 무슨 일을 꾸미는지.. 생각을 알 수 없다."
"...."
"이 나를 배신할 작정이라면 헬하임 전체를 적으로 돌려야 할 거야."
이글거리는 파울로의 눈빛에 아르티네는 지지 않겠다는 듯 그를 뚫어져라 바라봤고 파울로는 그녀의 턱을 잡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오늘.. 이 치욕을 받은 이상 너를 죽여도 상관은 없지만.. 내 아비가 죽기 전까지는 네년을 취해야 하기에 살려두는 거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저는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너는 매일 그렇게 얘기했지.. 나는 그 앙칼진 너의 태도가 마음에 들어."
"당신이 저를 강제로 취하더라도 저는 계속 이렇게 할 겁니다.. 그렇게 될 일도 없겠지만..."
"아니 그렇게 될 거다."
아르티네의 눈을 보던 파울로는 결국 검을 집어넣었고 쓰러져 신음소리를 내는 기사들을 발로 툭툭 차 일으켰다.
"돌아간다."
파울로는 패잔병과 같은 기사들이 일어나자 문 앞에서 멈춰 서더니 아르티네를 돌아봤다.
"이번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 놀음에 놀아준 거라고 생각해라.. 하지만 다음은 없다, 거부한다면 수십 명이 아니라 수천.. 아니 수만 명을 죽여주지."
쾅!
"하아..."
"아르티네님!"
"정신 차리세요!"
파울로가 방 안에서 나가자 아르티네는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았고 덜덜 떨며 상황을 지켜보던 하인들은 뛰어와 그녀를 일으켰다.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아.. 너희들은 어서 뛰어가 성문 앞의 시신들을 수습하라고 기사들에게 얘기해."
"하지만...!"
"어서.. 그 차가운 곳에 그들을 내버려 둘 수 없어."
"네."
아르티네의 말에 하인들은 흩어져 뛰어갔고 아르티네는 비틀거리며 책상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폭풍이 지나간 듯 엉망이 된 방안은 아르티네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했고 머리가 아픈 듯 그녀는 이마를 짚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 전부 개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