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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화 〉 자유를 갈망하는 새는 날지 못한다 (43/90)

〈 43화 〉 자유를 갈망하는 새는 날지 못한다

* * *

"아르티네 백작님!"

"응~?"

한 기사의 다급한 부름에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고개를 돌린 여인은 기사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시죠~?"

"케미안님이 성녀를 잡았습니다."

"흐응."

자신의 기사단장 케미안이 성녀를 잡았다는 대소식에도 그저 반만 뜬 눈을 크게 키울 뿐 아르티네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성녀를..?"

"아르티네 백작님이 저렇게 놀란 건 처음 봐."

하지만 하인들은 그녀의 그런 모습이 처음인 듯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었고 잠시 차를 한 잔 마신 아르티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르티네 백작님, 빨리 가시는 것이.."

"제가 느긋하게 간다고~ 성녀가 도망갈까요~?"

"그건 아니지만..."

"그럼 조금의 여유는 괜찮아요~."

아르티네의 모습에 기사는 답답한 듯 보였지만 기사의 재촉에도 아르티네는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천천히 복도를 걸어갔다.

"으음~."

연무장까지 걸어 도착한 아르티네는 밧줄에 묶인 채 평범한 옷을 입고 자리에 앉은 흰머리색을 가진 여인을 보았다.

"역시.. 성녀님들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계시네요~."

"...."

"성함은~?"

아르티네의 조용하고 달래는 목소리에도 성녀 아르웬은 그저 고개를 획 돌릴 뿐 그녀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흐으으음~."

아르웬의 반응에 아르티네는 고민이 된다는 듯 턱을 괴고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성녀~."

"...."

"당신은~ 헬하임 제국의 아르티네 백작에게 잡혔습니다~."

"알고.. 있어..."

"기사들에게~ 들어보니~ 분명 일행과 같이 왔다고~ 들었는데~."

"...."

"만약~ 제대로 대답을 하시지 않는다면~ 그쪽 일행이 위험해요오~."

"... 너.."

아르티네가 웃으며 아르웬에게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분명 '당신이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일행은 죽는다.'라는 뜻과 똑같았다.

"... 궁금한 게.. 뭐야."

"궁금한 거라~."

잠시 멍하니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하던 아르티네는 무언가 기억났다는 듯 아르웬을 바라봤다.

"차.. 드실래요~?"

"....?"

"풀어주세요~."

"아르티네님!"

"풀어주세요 기사분들~."

"안 됩니다."

"...."

아르티네의 말에 잠시 뒤에 물러나 있던 케미안이 앞으로 나와 고개를 내저었고 아르티네는 그를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봤다.

"왜죠~?"

"두 번째 성녀와 다섯 번째 성녀는 성녀들 중에서도 강하니 특히 위험합니다 어떻게 빠져나갈지 모르는데 풀어줄 수 없습니다."

"흥~."

케미안의 말에도 아르티네는 콧방귀를 뀌고 한 기사의 검을 뽑아들었다.

"안됩니다!"

"아르티네님!"

몇몇 기사들이 달려들어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아르티네는 잠시 멈칫하더니 조용히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봤다.

"당신들의 주인은.. 누구죠?"

여유롭게 말하던 그녀의 말투가 갑자기 딱딱하게 변하자 기사들은 잡은 그녀의 팔을 놓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주제넘었습니다."

"...."

"아르티네님."

"케미안, 당신이 오랜 저의 기사라고 해도 선은 넘지 마세요.. 아버지 같은 당신이지만 이러한 무례는 참지 못합니다."

".... 알겠습니다."

"휴우.."

케미안이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나자 아르티네는 숨을 고르더니 다시 미소를 짓고 아르웬에게 다가갔다.

"놀라셨죠~."

"...."

"제가 원래~ 화를 내지 않지만.. 이렇게 성녀님을 내버려 두는 것도 무례이고~ 이해해 주세요~."

"... 내 일이 아니니 상관없어.."

아르웬의 말에 아르티네는 "후훗." 하고 웃으며 기사의 검으로 아르웬의 몸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었다.

"일어나세요~."

"...."

"이 영지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황제께는 연락을 드렸으니~ 금방 답을 주실 겁니다~."

"나는 헬하임 제국에.. 남지 않아..."

"...."

아르웬의 말에 아르티네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칠라렌의 사람이니~ 당연한 거지만~ 당신의 처우를 결정하는 건~ 제일이 아니라서요~."

"...."

"그저 저는~ 황제의 답이 올 때까지~ 당신을 편안하게 두는 것뿐~."

웃고 있었지만 아르티네 또한 무언가 두려운 듯 미세하게 손을 떨고 있었고 아르웬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 그래.. 일단.. 너희의 말을 듣도록 할게."

"그럼 성녀님을 모셔주렴~."

아르티네의 명령을 받은 하인들은 아르웬에게 길을 안내했고 아르웬은 더 이상의 반항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케미안 빼고~ 모두 물러나 주겠어요~?"

"명."

아르티네의 말에 기사들은 순식간에 연무장에서 빠져나갔고 케미안은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를..."

"오히려 제가 사과해야 하는걸요~ 케미안에게 너무 화를 냈어요~."

"...."

아까와는 다른 아르티네의 모습이었지만 케미안은 그녀의 진심이 무엇인지 아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사들과 기사들은...? 죽은 자들은 있나요~?"

"성녀와 그녀의 기사가 손에 사정을 두고 싸웠기 때문에 저희 쪽에 다친 사람들은 없습니다."

"... 그거 고맙네요~."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르티네를 보며 케미안은 아빠와 같은 미소로 그녀를 바라봤고 한 기사가 가져다 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필.. 저희 영지로 오다니~ 머리가 아프네요~."

"톤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으로 제일 가까우니 이곳으로 온 걸 겁니다."

"보고는 어디까지 됐나요~?"

아르티네의 말에 케미안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직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자유기사들이 있으니 맨 위에 계신 분에게까지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일겁니다."

"... 데브라님은.. 아직도 토라져 계신가요~?"

"예.. 보통 일이 아니었기에.."

"...."

아르티네는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지만 케미안이 그녀의 손목을 잡자 아르티네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내렸다.

"... 케미안님에게는 항상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전 백작님이 저에게 맡기신 일이니 당연히 아르티네님의 곁에 있을 겁니다."

"... 데브라님이 그립지는 않으신가요오~?"

"자유기사들과의 그 생활은 잊지 못하겠지만... 아르티네님을 모시는 지금 후회는 없습니다."

"항상 고마워요 케미안~."

"예."

아르티네는 케미안을 잠시 바라보더니 아르웬이 하인들을 따라간 곳을 잠시 지켜봤다.

"일단 성녀는 저희 쪽에서 보호하는 것으로 합니다.. 아셨죠~? 물론 보고는 절대 올리지 않구요~ 큰일 날 수 있으니까~ 자유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황제가 직접 올 수도 있으니.. 음... 그렇게 되면 영지가 난리가 나겠죠~?"

"예."

"최대한 빠른 말과~ 좋은 기사를 보내 2황자님에게 알리세요~."

"이미 준비시켜놨습니다."

"고마워요."

"케미안님은 영지의 방비를 철저히 해두세요 실수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명."

"부탁드릴게요~ 케미안~."

케미안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까와 같은 진지한 모습을 다시 내려두고 돌아온 아르티네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장을 지나쳐 아르웬이 들어간 방의 문을 두들겼다.

"계시나요~?"

"... 응."

방안으로 들어선 아르티네는 다시 한번 눈이 내린 것 같은 아르웬의 백발과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지만 남자 하인들은 아르웬에게 뒤처지지 않을 금발의 아르티엔까지 방안에 들어오자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반가워요~."

"... 나에게는.. 여유 부리지 않아도.. 돼."

"... 저는 여유를 부리는 게~."

"그 말투.. 마리아 같아서 싫어."

"... 저는.. 성녀가..."

"... 싫어."

아르티네는 그녀의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하인들을 내보내고 케미안에게 얘기했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흠흠.. 그래요~ 그럼.. 아르웬님은 이곳에 왜 오신 거죠?"

"... 도망."

"도망..? 혹시 이단이라는 것이.."

"나는 키로스님의 종... 키로스님을 배신하지 않아.."

".... 이단은 아니라는 거군요~?"

"응."

"그렇다면 이번에 일루안 후작과 같이 왔다고 하셨는데..? 그는 전사한 것이 분명한가요~?"

"응, 리에티에게.. 죽었어..."

아르웬의 말에 아르티네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아르웬은 갑자기 말이 없어진 그녀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조용한 분위기를 싫어하지 않기에 그녀 또한 조용히 아르티네를 바라봤다.

"결국 소문이 맞았군요~? 리에티가 성국의 힘을 얻었고.. 당신은 한 자유기사와 도망 나왔다는.."

"맞아."

"그럼 그 자유기사는.. 어디 있는 거죠~?"

"칠러웨이.."

아르티네의 물음에 아르웬은 칠러웨이가 생각나는지 표정이 안 좋아졌고 아르티네는 그녀에게 손사래를 쳤다.

"죄송해요~ 제가 괜한 얘기를..."

"이 영지에.. 있어."

"... 네?"

"아까.. 기사들이.. 나를 잡을 때.. 떨어졌어."

"... 저희 기사들이.. 험하게 했나요..? 말씀해 주시면..."

"... 그건.."

"... 일단은 이 일은 제 선에서 해결해드릴게요~ 아셨죠?"

".. 감사."

그래도 조금 풀어진 분위기에 아르티네는 아르웬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고 아르웬 또한 그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배.. 백작님!"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기사가 다급하게 들어와 아르티네의 앞에 무릎을 꿇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르티네와 아르웬은 서로를 바라봤다.

"스.. 습격입니다!"

".... 습격이요?"

"예!"

"습격을 한 사람들의 정체는 알아냈나요?"

"그..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단 세명으로 벌써 성안에 잠입했습니다!"

"... 네?"

"위험한 자들입니다! 당장 자리를 피하셔야..!"

"끄아악!"

그 순간 갑자기 문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렸고 아르티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긴장된 얼굴로 벽에 걸린 장신용 검을 뽑아들었고 아르웬 또한 자신의 몸을 지키려 방안에 있던 기사들의 연습용 목검을 손에 쥐었다.

"아르웬님은 다른 곳으로.."

"나도.. 여기 있어."

".... 알겠습니다.. 소문대로라면 혼자 몸을 지키실 수 있겠죠."

아르티네는 영지를 습격한 이들의 정체를 파악하려 노력했지만 다른 귀족들에게도 척을 지지 않은 자신의 가문이 이렇게 갑자기 습격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지만 아르웬이 이미 이곳으로 넘어온 시점부터 자신의 영지는 위험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기에..."

"크윽!"

기사 둘이 문을 부수고 날아오자 아르티네는 몸을 긴장시켰고 이윽고 나타난 검은 복면을 쓴 이들은 그녀의 뒤에 있는 아르웬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성녀를 데리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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