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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 자유를 갈망하는 새는 날지 못한다 (41/90)

〈 41화 〉 자유를 갈망하는 새는 날지 못한다

* * *

"뭐 하나? 나가지 않고?"

얼마나 독한 술이 들었을지 모를 유리잔을 든 백발의 노인 데브라는 칠러웨이와 아르웬을 바라봤고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페르온을 바라봤다.

"저 사람이 데브라입니까?"

"그렇네만.."

페르온은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런 그를 지나쳐 칠러웨이는 데브라에게 다가갔다.

"그만."

하지만 주위에 서있던 사람들은 칠러웨이가 더 이상 가지 못하게 검을 들어 올렸고 칠러웨이는 앞으로 더 가지 못하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당신이 데브라 맞습니까?"

"입을 멈추고 데브라님의 말씀대로 당장 이곳에서 나가, 안 그러면 죽일 수밖에 없어."

페르온의 옆에 서서 두 사람을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피렌디 또한 칠러웨이의 앞으로 다가와 가로막자 그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아르웬은 손을 검자루 위에 얹었다.

"칠러웨이.. 무슨 계획인지... 모르겠지만... 나가는 게.. 낫겠어.."

"아르웬 잠시만 얘기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 그래."

아르웬 또한 처음 받아보는 대우가 짜증이 나는 듯했지만 칠러웨이가 손을 들며 그녀에게 말하자 아르웬은 검자루에서 손을 떼고 의자 위에 앉았다.

"잠깐 얘기 정도는 들어보시죠."

"페르온 너는 나서지 마."

"피렌디.."

"그만하거라."

페르온까지 두 사람의 옆에서 거들자 피렌디는 째릿 그를 바라봤지만 데브라는 휘휘 손을 저으며 자신의 앞에 의자를 끌어왔다.

"앉게."

"감사합니다."

"짧게 이야기했으면 좋겠군 피해 받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정보통이 있으니.. 저희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아시겠네요."

"그렇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도와줘?"

"네."

"못 도와주네!"

"...."

데브라의 말에 칠러웨이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지만 미소 띄어진 그의 얼굴은 '절대 못 도와준다.'라고 쓰여있는 듯했다.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겠습니까?"

"자네들이 톤 왕국으로 넘어가서 브라이언과 접촉 후 그들에게 붙기로 했다고는 전해 들었지.. 그 유명한 용병 클라인과 무패 지휘관 일루안 또한 마찬가지고.."

"...."

"범죄자들로 이루어진 토벌대를 이끄는 일루안 후작은 어느 정도 그들을 살리긴 했지만 톤 왕국으로 넘어가면서 전사했고... 저쪽에 있는 성녀님은 딱 보아하니 자네를 따라 톤 왕국으로 넘어간 모양이군 맞나?"

"예."

"그 이유는 뭐.. 여럿 있겠지만 성국의 꼬맹이 리에티가 스승인 일루안과 교황을 밀어낸 후 자신의 성녀를 위해 정권을 잡았고... 성국에서 토벌대와 함께 범죄자로 낙인찍힌 자네들은 뒤통수까지 맞아 돌아가지 못한 대다가..."

"... 다 아시는군요."

"내가 정보통이 좀 넓어서 말이지.. 내가 도와주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줄까?"

"예."

"자네가 원한다면."

"말해주십시요."

"톤 왕국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저 성녀가 굴러들어와 힘을 키울 명분이 됐지만.. 이번에 숲에서 나타난 그 미친 녀석과 적 또한 이단을 심판한다는 명분으로 성국은 비축하고 있던 힘을 방출할 수 있네.. 전쟁이 난다면 이 탐욕스럽고 욕심 많은 큰 헬하임 제국이 과연 누구 편을 들 것 같나?"

"...."

"키로스를 믿는 이들은 대륙에 차고 넘치네 명분 상으로도 성국의 편을 들고 싸우는 게 좋겠지 게다가 더 큰 걸 얻을 수도 있어.. 게다가 성녀도, 교황의 자리에 오를 이들도 보유하고 있는 성국은 대륙 전체에서 대규모로 군대를 일으킬 수 있어 그들과 척을 진다면 아무리 대제국이라도 분명 위협적이겠지."

"그렇네요.. 모든 걸 거의 대부분 다 알고 계시니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배신을 당하고 쫓기는 중입니다 아르웬도 죄가 없지만 그저 등을 돌렸다는 이유로 '성녀'라는 직위에서 박탈당하기 직전이구요.. 도와주시겠습니까?"

"다시 얘기하지만 불가능하네! 그것 말고도 우리는 사정이 있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우리는 소문에 들리는 것처럼 낭만과 감정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말이야."

데브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칠러웨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감정.. 명예... 뭐 그런 것 좋지! 하지만 우리는 목숨이 중요해! 하루 먹고살기 힘든데 누굴 돕고 누구를 위해 일하나 하하하하! 게다가 저 성녀와 자네가 진짜 뒤통수를 당했는지 안 당했는지도 모르고 그저 '도와달라'라고 해서 도와준다면 우리도 곤란해지는 건 마찬가지 아니겠나? 진짜 자네들이 범죄자면 어쩌려고! 하하하하!"

데브라의 통쾌한 웃음소리였지만 칠러웨이에게는 그것만큼 얄미운 것도 없었다.

"얘기 감사합니다."

"칠러웨이... 자유 기사들의... 회유는.. 불가능... 다른 방법.. 찾아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곳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가기는 안타깝지 않습니까?"

"칠러웨이.. 마음... 이해."

아르웬과 칠러웨이의 축 처진 모습에 페르온은 그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지만 데브라는 고개를 돌리고 술잔만 들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데브라님."

"...."

"도와주시지 않을 작정이십니까?"

"그래."

"어째 섭니까?"

"...."

"저희는 자유 기사가 아닙니까?"

"자유 기사라면 모든 걸 도와야 하나?"

"데브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고로 자유 기사라면 명예만을 따라 직진해야 전설이 될 수 있다고."

"...."

"그런데 이게 뭡니까? 대충 사정까지 전해 들으셔 놓고는 도와줄 수 없다, 뭐 한다, 사정이 있다고 말하며 정작 이유는 돈이 되지 않아서.. 나 몰라 한다니."

"닥쳐 페르온!"

피렌디가 다가와 페르온의 가슴을 밀치며 그를 말리려 했지만 페르온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데브라에게 다가갔다.

"이게 당신이 말하던 자유 기사입니까?"

"...."

"대륙에 퍼진 자유 기사에 대한 험담은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명예란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지 오래고 고기 방패, 돈만 따라가는 기사라는 오명을... 저들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약자를 지킴으로써 왜 조금이라도 씻으시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그만하거라 페르온.. 참는 데 한계가 있다."

페르온의 말에 데브라의 이마에 핏줄이 서며 술잔에 금이 갔지만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돈만 따라다니고 권력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자유 기사 생활이 지치지 않으십니까..? 전설이라 불리던 기사는 도대체 어디 갔습니까?"

"그만!"

결국 데브라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멱살을 잡았지만 페르온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있지는 못하겠습니다, 저희에게도 말 못 한 '사정'이 어떤 건지는 제대로 모르겠지만 이건 아닙니다."

".... 저들은 범죄자다 잘못하면 우리의 명예 또한 실추돼!"

"이미 더 떨어질 명예가 있습니까?"

"...."

"떨어질 데로 떨어진 명예 저라도 혼자 복구시켜 보겠습니다."

"어떤 일이 엮여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서겠다는 거냐?"

"예."

"...."

"스승님께 예전부터 그리하라고 배웠으니까요.. 자유 기사는 곤란한 사람이 있다면 일단 도와주는 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 쯧."

페르온의 멱살을 놓은 데브라는 짜증 난다는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술병을 통째로 들고 마시며 그에게 손짓했다.

"나가라."

"...."

"저 녀석들 따라가서 마음대로 해보거라.. 어떤 일에 휘말려도 다른 자유 기사들은 너희들을 돕지 않을 거야."

"허락 감사합니다, 성녀님 나가시죠."

"괜찮겠습니까?"

"핫하! 괜찮습니다! 이곳이 꽤나 지긋지긋하던 참이었거든요."

페르온의 미소에 칠러웨이는 무언가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지만 페르온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술을 마시고 있는 데브라를 조용히 바라봤다.

"페르온!"

"아 피렌디."

"정말.. 너 미쳤어?"

"핫하! 피렌디 너도 나를 잘 알지 않아? 무려 '성녀'님이 오셨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이 길드에 처박혀 있을 수는 없잖아."

"너란 놈은..."

분한 듯 아르웬을 째려보며 이를 갈고 있는 피렌디와 무언가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는 페르온을 보며 칠러웨이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 페르온님 출발하기 전 잠깐 아르웬님을 모시고 나가계셔 주시겠습니까?"

"... 아 예.. 뭐 영지의 기사들이 오기 전에 이동해야 하니 얼른 나와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페르온은 혼자 남으려는 칠러웨이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아르웬과 함께 먼저 길드 밖으로 나갔다.

"도와주지 않으시려는 이유는 잘 알겠습니다."

"...."

"뭐.. 한 말씀 드리자면.. 저분을 아끼시는 것 같으니 최대한 보호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쯧!"

칠러웨이의 말에 데브라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아래 위로 훑어봤다.

"저 성녀를 성국부터 이곳까지 잘 지켰다는 건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단 거겠지..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의 자유기사들에게 소문을 들었네."

"아.. 예 뭐..."

"자네 전장에서 대단했다고 들었는데.. 덕분에 우리 쪽 인원이 많이 생존해서 돌아왔어.. 뭐... 고맙다는 말은 안 하겠네."

"저도 안 받겠습니다."

"흥!"

칠러웨이의 말에 데브라는 고개를 픽 돌리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품 속을 뒤졌다.

"이건...?"

"자네 이름은 수배서와 정보를 통해서 알고 있었네... 뭐 이쪽으로 올 줄도 알고 있었고."

".... 그런데 안 도와주시는 겁니까?"

"다시 얘기하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의 자유 기사는 낭만과 명예만 따라가는 바보들이 아니야 실리를 추구해야지."

"...."

"이건 원래 실력있다고 벌써 명성이 자자한 자네를 성녀에게서 뺏어 우리 쪽으로 포섭할 때까지 주지 않으려 했지만... 내 제자가 계획을 틀어놨으니 일단 주는 걸세."

"받아도 되는 겁니까?"

"자네 말만 지키게."

"... 예."

"그게 나를 찾아온 자네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이야.."

"...."

"그리고..."

덥석 자신의 팔을 데브라가 잡자 칠러웨이는 이상한 듯 얼굴을 찌푸렸지만 전에도 페르온 또한 똑같이 행동했기에 가만히 있었다.

"페르온의 말대로.. 자네가 그 금패를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주는 것도 있고.. 원래는 백금패를 줘야 하지만 그걸로 만족하게."

칠러웨이는 데브라가 건네는 금패를 받아들고 끄덕였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데브라님!"

".... 왔군."

"페르온이 막고 있지만 수가 많습니다!"

"우리랑은 관련 없는 일이니 조용히 앉아 있거라."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자 데브라는 자유 기사들을 진정시키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술을 마셨고 칠러웨이는 발을 돌렸다.

"나간 후 페르온과 죽어라 도망가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잡히지 마.. 한 명이라도 잡히는 그 순간... 모두 죽는 걸세."

"예."

"...."

창밖으로검을 막아내며 끝까지 아르웬을 지키려는 페르온의 뒷모습을 보며 데브라는 과거의 자신을 스치듯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죽지 마라 페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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