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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화 〉 눈앞에 다가온 기회는 잡으려 노력해야 한다. (38/90)

〈 38화 〉 눈앞에 다가온 기회는 잡으려 노력해야 한다.

* * *

[어쩔 수 없었어.]

"...."

[내 계획을 일루안과 네가 망쳤다.]

여러 목소리가 검은 공간에 울려 퍼지자 눈을 감고 있던 남자는 머리가 아픈지 눈을 떴다.

[너희가...]

"닥쳐!"

계속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목소리에 남자는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고 자신의 손끝에는 한 여인이 슬픈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괜.. 찮아?"

"죄.. 죄송합니다.. 이상한 꿈을 꿔서."

"난 괜찮아."

"몸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목을 졸리면서도 안타까운 표정을 한 여인은 그의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었고 멍하니 그녀를 보던 남자는 당황한 얼굴로 손에 힘을 풀었다.

"여긴..? 어딥니까.. 아르웬..?"

"톤 왕국... 브라이언 공작의 성이야.."

"하.."

"다행이야 칠러웨이.."

품에 칠러웨이를 꼭 끌어안은 아르웬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고 칠러웨이 또한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어주었다.

"토벌대는... 토벌대는 어떻게 됐습니까?"

"...."

아르웬은 자리에서 일어나 칠러웨이의 손을 잡고 그를 조심스레 이끌었고 슬픈 그녀의 표정에 칠러웨이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산 건 절반 정도.. 기사들도 병사들을 지키느라 얼마 안 남았어... 그리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몸은 어떤가 칠러웨이?"

"아.. 괜찮습니다.. 게리도 무사했군요."

"... 뭐.. 나는 무사하지만.."

게리는 조용히 자신이 서있던 방문을 바라봤고 칠러웨이는 입술을 꽉 깨물고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일어났나?"

칠러웨이가 온 것을 알아챈 클라인은 그를 따듯하게 반겨주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간 방에는 흰 천으로 덮인 채 한 남자가 누워있었고 엄숙한 분위기를 보여주듯 주위에는 리타와 카일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앉아 칠러웨이를 슬픈 눈으로 바라봤다.

"... 누굽니까..?"

".... 이곳에 없는 토벌대의 일원이 누군지 잘 보게."

카일록은 칠러웨이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아직까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리타와 함께 방을 빠져나왔고 칠러웨이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흰 천을 걷어냈다.

"...."

조용히 눈을 감은 채 평온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남자, 일루안을 보며 칠러웨이는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화살을 피하지 못했어.. 정확히 급소에 맞아서..."

"....."

"톤 왕국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넘어왔을 때.. 그때 숨이 끊겼어."

아르웬은 칠러웨이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 주었지만 그의 등에서 느껴지는 짙은 살기에 손을 멈췄다.

"칠러웨이..?"

"리에티의 명령으로 사살되신 겁니까?"

"...."

"맞군요."

"어디.. 가는 거야?"

칠러웨이가 조용히 옆에 서있던 기사의 검을 빼앗아 들고나가려 하자 아르웬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안되네 칠러웨이."

"지금 자네 혼자 가봤자 리에티의 목은커녕 잘게 찢어져 자네의 몸은 성국 여기저기로 퍼질 걸세 살고 싶지 않은 건가?"

클라인과 카일록은 나아가려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칠러웨이의 힘이 상당히 강한지 점점 뒤로 밀려났다.

"칠러웨이 진정하십시요."

"...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우리 지휘관이 저기 누워있습니다."

"우리도 알고 있고 자네와 똑같이 분하네 하지만 지금 나서는 것만큼 부질없는 건 없어!"

"... 그래도 갈 겁니다."

"정말 말을 안 들으시면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리와 묘한 신경전이 펼쳐지며 두 사람의 눈에서는 불꽃이 튈 것 같았지만 감정을 진정시키고 나타난 리타가 두 사람의 사이로 들어왔다.

"그만하세요."

"리타."

"가시면 안 됩니다."

"죽더라도 갈 겁니다, 그 녀석의 목을... 일루안님 대신 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리타는 칠러웨이의 살벌한 표정에 뒤로 주춤 물러났지만 고개를 내젓고는 양팔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절대 안 됩니다, 지휘관인 일루안님이 자신의 상황도 몰랐을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

"만약 일루안님이 마음만 먹었다면 키메라 토벌은커녕 바로 이 톤 왕국으로 넘어와 리에티를 칠 준비 먼저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일루안님은 자신의 목숨과 명예 그 밖에도 모든 걸 감수하고 당신을 포함해 최대한 많은 병력을 살리려 이곳에 남으셨어요! 당신이 가서 죽기를 자청한다면 일루안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겁니다!"

"...."

"제발 정신 차리세요, 그렇게 감정만 내세운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칠러웨이님."

"제기랄!"

칠러웨이가 벽에 주먹을 휘두르자 벽에는 쩍! 하며 금이 갔고 그의 주먹에서는 뚝뚝 피가 흘러내렸다.

"복수던 뭐든 천천히.. 천천히 하면 됩니다... 게다가 키메라를 만든 녀석 또한 도망갔으니 칠라렌 성국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봐야 해요.. 분명 키메라들과 구울들은 다시 나타날 겁니다."

"후우..."

"성국의 기사들은 강합니다, 그들은 신앙심으로 똘똘 뭉쳐있어 강하기로 소문난 톤 왕국의 기사들 또한 이기기 힘들어요."

"리타의 말이 맞아, 병사들 또한 헬하임 제국을 몇 번이나 막아내는데 큰 역할을 했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카일록, 그러니까 칠러웨이님도 일단 얘기를 들어보세요."

리타가 어깨를 두들겨 주자 그제서야 진정이 됐는지 칠러웨이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계획은..? 계획은 있는 겁니까?"

"예 클라인, 얘기해 주세요."

"알겠네."

클라인은 리타가 건네는 양피지를 받아들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몸을 긴장시키고 있던 카일록과 게리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은 한숨을 내쉬고 일루안을 조심스레 관 안으로 집어넣었다.

"대충 진정된 것 같으니 천천히 얘기하겠네, 들을 준비됐나?"

"예 말씀 하세요."

"칠라렌 성국의 실질적인 지휘관은 일루안님 단 한 분뿐이었네 교황이나 기사단장들 또한 그분의 능력을 인정하고 모든 성기사와 기사, 성국 내 움직일 수 있는 귀족들의 모든 군권을 위임한 상태였지 이게 무슨 소리인 줄 아나?"

"일루안님의 힘이 강했다는 것 아닙니까?"

"맞아, 하지만 평소에 일루안님은 성국의 안위에 대해 걱정할 뿐 자신의 힘을 키우거나 늘릴 생각은 하지 않으셨지 그래서 나중에 문제가 생겼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방파제 역할이 리에티였네."

"..."

"리에티의 능력은 꽤나 뛰어났는지 거의 모든 귀족들을 휘어잡았고 그의 친구였던 성녀 엘라의 힘을 빌려 거의 모든 것을 잡을 뻔했지."

칠러웨이는 클라인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아르웬을 바라봤다.

"그 후에 교황이 성녀 셋을 더 들인 거군요."

"그래 거기서부터 뭔가 문제가 발생했지, 아르웬님을 포함한 세 성녀님이 등장했고 세 성녀님들은 자신도 모르게 힘을 확장시켜갔어 일루안님은 힘이 몰리는 것에 대해 걱정했던 분이라서 긍정적이셨지만 리에티는 불만을 가졌고 점점 작아지는 엘라님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으려 사방팔방 뛰어다녔어."

클라인은 칠라렌 성국을 떠올리며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고 그 얘기를 듣던 아르웬 또한 한숨을 내쉬었다.

"일루안님 또한 엘라님에게 위해가 가해지지 않도록 최대한 막으려고 했지 교황님 또한 엘라님을 내쳐야 한다는 귀족들을 포섭하며 최대한 천천히 모든 성녀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 하지만 그 뜻을 다 못 이룬 채로 이번 토벌대에서 일루안님이 추락하신거야."

"그 모든 군권은 결국 리에티에게 일임됐고 기사들과 성기사들.. 병사들까지 모두 넘어간 거군요."

"뿐만 아니라 젊은 귀족들도 이미 리에티에게 매료되어 있는 상황이어서 아마 지금쯤 거의 모든 귀족들이 리에티를 떠받들고 있겠지 하지만 그들에게 걸림돌이 있어."

"교황."

"잘 아는군, 하지만 일루안님이 사라지고 모든 게 그에게 넘어간 상황에서 교황님은 빠른 시간 안에 돌아가시겠지."

"...."

칠러웨이는 화가 나는 듯 얼굴이 붉어졌지만 아르웬이 다가와 자신의 손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자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녀를 바라봤다.

"두 번째, 세 번째 성녀님들은 아마 리에티의 편에 설 것이 뻔해 엘라님 또한 마찬가지이고... 성기사들의 지주라 불리는 아빌론 또한 엘라님의 편이니 칠라렌 성국의 다음 교황 자리는 리에티가 이어받을 것이 뻔하겠지... 리에티가 전장에서 이따금 보여준 신앙심 또한 한몫할 것이고... 이제 칠라렌 성국의 모든 건 그에게 넘어갔고 일루안님 또한 돌아가셨으니 우리가 돌아가 봤자 할 일은 없어."

"결국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답답한 듯 칠러웨이가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자 클라인은 문에 기대어 서있는 브라이언 공작을 가리켰다.

"우리는 톤 왕국에 들어갈 거네."

"....?"

"성녀님 또한 톤 왕국으로 넘어왔어.. 이 대륙의 거의 모든 사람이 키로스 신을 믿는 이상 성녀의 존재는 아주 중요하네."

"아르웬이.. 말입니까?"

"그래 톤 왕국은 어찌 됐던 신이 인정한 성녀님을 내치고 일루안님과 교황님을 잃은 칠라렌을 공격할 명분을 얻었고 다른 왕국과 강대한 헬하임 제국도 아무 말 하지 못할 그런 힘을 얻는 거나 다름없네."

"그렇다면 당장...!"

"당장은 안돼."

칠러웨이가 일어서 무어라 말하려 하자 브라이언 공작은 그를 조용히 자리에 다시 앉히며 고개를 내저었다.

"전쟁이란 게 그렇게 쉽게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니야 교황이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고 해도 교황은 그저 키로스의 뜻에 따라 성녀를 찾아내고 다른 나라로부터 성국을 지켜낼 뿐인 사람이니 우리가 직접 관여할 수는 없어."

"... 그럼.. 도대체 뭐를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까?"

"다음 교황이 리에티가 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

"...?"

"그 녀석은 성국 하나로만 만족하고 넘어갈 녀석이 아니야."

브라이언이 씨익 웃으며 얘기했지만 그의 표정 안에는 리에티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보였다.

"우리에게 넘어온 일루안님의 천오백 가량의 병사와 삼백 남짓 남은 기사들을 잘 활용해야지.. 어이 리타라고 했나?"

"예."

"자네에게 칠라렌 성국에서 넘어온 이들의 지휘를 맡기지, 성국이던 제국이던 어떤 녀석들이 오던지 전쟁을 할 수 있도록 녀석들을 최대한 만들어놔 알겠나?"

"알겠습니다."

"또한 클라인, 자네 용병들을 끌어모으면 얼마나 되나?"

"대륙에 퍼져있는 이들을 모으면 천 명이 좀 넘습니다."

"당장 출발해서 모두 모으게 내가 고용하도록 하겠네.. 물론 자네 용병들 중 실력 좋은 이들까지 전부.. 무슨 얘기인지 아나?"

"헬하임에 있는 이들까지 데려오라는 말이군요."

"맞네."

"그럼 시간이 촉박하니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브라이언은 클라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클라인은 칠러웨이의 등을 두들겨주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칠러웨이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

"톤 왕국의 기사가 되겠나?"

브라이언이 손을 내밀자 칠러웨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 좋은 기회인데 왜?"

"병력이 더 필요하신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자유기사들을 모두 모으면 얼마나 됩니까?"

"자유기사들을..?"

"예."

"몇 천은 되겠지 용병보다는 모두 이름있는 자유기사를 하려고 하니까.. 적어도 이천은 될 거네."

"그들을 이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이끌어? 하하하하하!"

브라이언은 칠러웨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달은 듯 크게 웃었고 칠러웨이는 그런 그를 째릿 노려보았다.

"하하하! 미안하지만 그들은 이끌지 못해."

".... 왜죠?"

"그들은 얍삽하고 두려움도 많네, 게다가 일반 기사들 보다 약하지 자신이 엮이거나 돈이 걸려있지 않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녀석들이야 그런데 그런 녀석들을 하나로 포섭하는 건 용병들보다 더 힘들고 정말 어려운 일이지."

"...."

"키로스님의 뜻이라며 중립국을 선언한 채 절대 전면전을 펼치지 않았던 성국은 분명히 강할 거네.. 게다가 헬하임 제국 또한 어떻게 나올지 모르고.. 강자들이 나서는 전장에 자유 기사들은 절대 나서지 않아, 아니면 강자의 편으로 서던가.."

브라이언은 자신이 봐왔던 자유 기사들을 떠올렸지만 칠러웨이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이끌어줄 사람이 없어서 일 겁니다."

"....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헬하임의 스파이라 불리는 그들이 정말 이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나? 또한 그들이 만약 똘똘 뭉쳐 우리를 돕는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해.. 성국은 모든 게 정리되면 분명 기지개를 펼 거야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네."

"그럼 빨리 움직여야겠군요."

"...."

"아르웬을 데려가겠습니다."

"성녀를?"

"예."

"헬하임 제국으로 성녀를 데려가는 건 위험할 텐데.."

브라이언은 당장이라도 반대를 하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아르웬은 칠러웨이의 상처를 붕대로 묶어 마무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게.."

"아르웬.."

"칠러웨이가 가는 곳이면.. 어디던.. 칠러웨이도.. 생각이 있을 거야.."

".... 후우.."

칠러웨이와 아르웬의 굳은 표정에 브라이언은 무언가 가능성을 봤는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게."

"감사합니다."

"자네가 왜 아르웬님을 데려가는지 잘 알겠지만 아르웬님은 톤 왕국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분이네 절대 헬하임 제국에게 뺏겨서는 안되네 알겠나?"

"예."

브라이언은 칠러웨이의 이 빠진 검을 보더니 자신의 검을 던져주며 손짓을 했고 칠러웨이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아르웬을 바라봤다.

"고마워요."

"어디든 갈게.. 칠러웨이가.. 간다면.."

"칠러웨이."

"예 카일록."

"게리도 데려가게 아르웬님을 보호해야 하지 않나? 이곳에 있는 병사들은 리타와 내가 돌볼 테니 최대한 빨리 올 수 있도록 해, 자유기사들이 안 온다고 뻗대기면 그냥 오고."

"알겠습니다 카일록님도 몸조심하세요."

"난 걱정 하지 말게."

"가요 게리, 아르웬."

세 사람이 짐을 챙겨 방을 빠져나가자 카일록은 잠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더니 일루안의 관 앞에 앉아 중얼거렸다.

"일루안님 듣고 있으면 키로스님에게 부탁해 주십시요, 더 이상 죽는 이가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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