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눈앞에 다가온 기회는 잡으려 노력해야 한다.
* * *
"... 엘라님."
"..."
"엘라님 제 얘기를.."
"나가세요 리에티."
문 앞에 서있는 리에티를 째려보며 엘라는 당장이라도 물건을 집어던질 기세였지만 리에티는 물러나지 않고 방안으로 발을 들였다.
"제 얘기를.. 부탁입니다.."
"나가요!!!"
쿵!
결국 엘라가 던진 장식품에 맞아 리에티의 몸이 휘청였고 그의 머리에서는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리에티님!"
"오지 말거라."
"하지만...!"
"내 몸을 건든다면 당장 목을 칠 것이다."
달려온 기사가 그의 머리를 지혈하려 했지만 리에티는 오히려 검자루를 쥐며 그를 노려봤다.
"죄.. 죄송합니다."
"물러나 있거라, 네가 함부로 들어올 방이 아니다."
"예!"
기사가 뒤로 물러나자 리에티는 조심스럽게 엘라의 근처까지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엘라님."
"...."
"저를 보십시요."
"싫어요."
엘라의 냉정한 태도에 리에티는 분한지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는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칠러웨이.. 그 자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
"말씀해 주십시요."
"칠러웨이 뿐만이 아니라 일루안 그분도 당신이 내보냈잖아요.. 저에게 얼마나 잘해주셨는데."
엘라가 다시 눈물을 흘리자 리에티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는 무릎을 꿇었다.
"엘라."
"...."
"친구로서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줘."
"... 싫어.. 리에티.. 너는.."
리에티는 엘라가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아.. 아파.."
"잘 들어 엘라.. 전에 얘기했듯 우리가 살아남아 이 칠라렌 성국을 다시 되돌리려면 어쩔 수 없어! 네가 이룬 것을 모두 다른 성녀들에게 넘겨줄 셈이야? 고작 그 남자 하나 때문에?"
"하지만.. 그는 나를.."
"그건 누구나 할 수 있었어! 기사들과 병사들은 그때 너를 찾는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있었고 아빌론도 너를 결국 발견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 정도 되는 남자는 어딜 가서든 찾을 수 있어 또! 그때랑 지금 우리는 달라! 우리는 다시 기회를 얻었고 숲을 점령하고 있던 키메라들은 모두 죽었어!"
리에티의 말에 엘라는 반박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고 리에티는 그것을 기회 삼아 그녀를 몰아붙였다.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이 좋은 순간을 놓치지 마 엘라, 너의 기사가 아닌 한 명의 성국 사람으로서.. 또 단짝 친구로서 이렇게 부탁할게.."
"아아.."
엘라는 탄식을 내뱉으며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빌론의 그림자를 바라봤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지켜온 아버지 같은 그와 단짝 친구인 리에티를 그녀는 버릴 수 없었다.
"내가.. 내가 어떻게 하면.. 좋아? 리에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나던 가만히 있어 엘라."
"가만히..?"
"그래.. 그리고 네가 성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그 뒤야 우리가 모든 것을 다져놓고 만들어 놓았을 때 그때 네가 나서서 모든 걸 이루면 돼."
".... 알..겠어."
리에티는 고맙다는 듯 엘라에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라, 내가 이 방을 나간 순간 앞으로 바빠질 거야.. 너는 두 눈과 귀를 모두 막고 기다리고 있어."
중얼거리며 돌아서는 그의 목소리는 엘라에게 모두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가슴은 불안감에 두근거리며 그녀의 숨을 옥죄어왔다.
"리에티.. 제발.. 나쁜 길은 가지 말아 줘.. 안 그러면.. 내가.. 내가 살지 못할 것 같아."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리에티는 방에서 빠져나와 방앞에 서있던 아빌론을 돌아봤다.
"괜찮나?"
"예.. 뭐."
아직까지 머리에 흐르고 있는 리에티의 피에 아빌론은 걱정이 되는지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이제 어떡할 건가?"
"무엇을 말입니까?"
"자네의 계획대로 일루안, 키메라가 모두 제거되었어 이제는 방해할 사람도 거의 남아있지 않아 마음에 걸리는 건.."
"교황.. 이겠죠."
"...."
그의 말에 아빌론은 입을 다물었고 리에티는 잠시 자신의 검을 지켜봤다.
"자네.. 정말... 할 건가?"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라티에니 교황.. 그 사람이니까요."
"정말.. 엘라님이 고생하신 것이 그분 때문이라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아빌론님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 하아."
"교황이 계속해서 숲으로 토벌대를 보내 힘을 어느 정도 잃은 지금 시점이 기회입니다."
아빌론은 조용히 리에티가 뒤돌아 가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자신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빌론, 다시 얘기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엘라님을 위해서입니다 그분의 위상을.. 그분의 모든 것을 돌릴 수 있다면 저는 악마에게 몸이라도 내어주겠습니다."
"키로스님이 용서하지 않는다 해도 말인가?"
"모든 죄는 제가 씁니다, 키로스님의 앞에 당장 내일 간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은 저의 잘못이니 당신들은 죄가 없습니다."
"자네의 생각이 그렇다면.."
리에티는 아빌론을 지나쳐 긴 복도를 걸으며 아마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생각을 했다.
"쯧.."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얼굴도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고 그중에는 생사조차 확인이 되지 않은 일루안의 미소 띤 얼굴도 보였다.
"모든 걸.."
검자루에 손을 올린 리에티가 방 앞에 도착하자 흰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는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그만."
그 순간 시퍼런 검날이 리에티의 목에 닿았고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검의 주인을 바라봤다.
"벡커."
"... 지금 그만하는 것이 어떤가 리에티?"
"이미 멈출 수 없게 됐습니다."
"멈추는 것은 자네가 그 손을 검에서 떼면 되는 것이네."
"... 그러니까 그걸 할 수 없게 됐다는 말입니다."
".... 나는 그렇다면 자네를 이 앞으로 보낼 수 없네."
"저를 막을 것입니까?"
"그래."
묘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에서 흐르며 리에티의 살기가 조용히 피어오르며 벡커를 감쌌고 벡커는 온몸을 긴장시키며 그의 행동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만하고 들여보내게 벡커."
".... 라티에니 교황님.. 이 자를 들여보내면 안 됩니다."
"이미 성기사들과 기사들은 일루안이 반역의 죄로 성국을 떠난 후 그를 따르고 있으며 귀족들 또한 이를 들어내며 자신의 속내를 저리 드러내고 있는데 우리가 이제 어찌할 수 있겠나?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둘뿐.."
".... 하지만.."
"그를 막으면 이 성국에 더 큰 화를 부를 뿐이야, 검을 내리고 들여보내게."
"하지만...!"
"벡커, 나는 더 이상의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네 키로스님도 마찬가지겠지."
"... 예."
벡커는 입술을 깨물며 분함을 드러냈지만 자신의 주인과도 같은 교황의 명령에 검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끼이이익...
거대한 문을 밀며 리에티는 조용히 예복을 차려입고 앉은 교황을 바라봤다.
"나는 키로스님의 종으로 살며 이 술이란 것을 입에 대본 적이 없네."
"....."
"하지만 이리도 좋은 것이 있었다니.. 빨리 알려주지 않은 키로스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겠군."
라티에니는 리에티가 왜 온 것인지 알면서도 여유롭게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리에티를 바라봤다.
"그래 나에게 온 이유는.. 그 검을 봐도 분명히 알겠군, 마지막으로 궁금증을 풀어주려 하는데 궁금한 것이 있나?"
"왜 그녀를 내버려 두셨습니까?"
"내버려 두다니?"
"엘라 말입니다! 그 안타까운 아이를!"
쾅!
책상이 부서질 듯 내려치며 리에티는 교황을 노려봤지만 교황은 그저 술을 한 모금 더 마실 뿐 리에티를 무서워하거나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를 내버려 둔 적이 없다."
".... 거짓말하실 생각입니까?"
"다시 얘기하지만.. 난 그 아이를 단 한 번도 그냥 내버려 둔 적이 없네, 다른 성녀들이 왔을 때도 마찬가지고.."
"엘라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안다면 그런 말은 당신의 입으로 꺼내지 않을 겁니다."
"모든 사람은 키로스님이 내리신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된다네."
"개소리.. 키로스 신이 엘라를 정말 성녀로써 내려보냈다면 토벌대로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분명히 그녀를 죽이려 보낸 것이겠지요."
"하하하! 그게 자네의 생각인가? 하나만 말해두지.. 그 숲에는 신의 뜻이 아닌 것이 있었어 다른 성녀들은 끌어낼 수 없는..."
"그 뜻이라는 것이 뭡니까!"
"앞으로 자네가 알아내야 할 걸세, 키로스님이 정한 운명과 다른 것이 이미 다른 성녀와 접촉했네 자네 또한 뒤바뀌는 운명에 계속 휘말리게 될 것이니 조심하게."
"....."
"궁금증은 풀렸나?"
라티에니의 자비로운 미소에 리에티는 역겨운 듯 미간을 찌푸리며 검을 뽑았다.
"마지막으로.. 성녀를 넷이나 더 뽑은 이유가 뭔지 알고 싶습니다."
"으음.."
라티에니는 술기운이 올라오는 듯 잠시 눈을 깜빡이며 리에티를 보더니 다시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그 아이들 모두 키로스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 또 거짓말을 하실 생각입니까..?"
"자네가 어찌 들을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은 진실이며 거짓이 아니네, 후에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가 오면 자네가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기도 하군."
"....."
"아마 자네와 몇몇 귀족들은 생각하겠지 교황 저자가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성녀들을 더 뽑아 어지럽히고 있다!라고.. 맞나?"
"대답은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성녀라는 길을 열어줬을 뿐 절대 내 힘을 키운 적 없네.. 자네도 알고 있지 않는가?"
"그건 당신이 사라진 후 알 수 있겠죠."
"하하하! 뭐 그렇겠지.. 아!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나?"
"... 말씀하십시요."
"내 호위를 맡고 있는 벡커를 이 칠라렌 성국에서 추방해 주게, 사지가 멀쩡한 상태로.. 가능하겠나?"
"그 부탁은 들어드릴 수가 없겠군요, 그를 내보낸다면 전력손실이 클 겁니다."
리에티의 말에 라티에니는 고개를 내저으며 리에티의 얼굴을 바라봤다.
"모든 건 키로스님이 정해주신 대로 흘러간다네.. 칠라렌과 엘라 그 아이를 위해 자네는 그를 내보내게 될 것이고 자네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 살아갈 거야.."
"...."
"아! 그렇지 단 하나만 빼고... 모든 게 키로스님의 뜻대로 흘러갈 거네 기억하게.. 그것이 모든 걸 바꿔 뒤틀어 놓을 수도 있네."
"남기실 말은 그게 끝입니까?"
"뭐 그렇지."
교황은 때가 됐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고 리에티는 덜덜 손을 떨며 검을 들어 올려 그의 목을 조준했다.
"잘 가십시요! 당신이 그렇게도 바라던 키로스의 곁으로! 무능력한 교황이여!"
깔끔하게 검이 휘둘러지며 교황의 목은 바닥으로 툭 떨어졌고 리에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났다.
"하아... 하아..."
카앙..
손에 힘이 빠졌는지 리에티는 바닥에 검을 떨어뜨렸고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바닥에 뒹구는 교황의 머리를 바라봤다.
"아.. 아아... 제기랄.."
후에 자신에게 다가올 일들에 대한 불안함과 공포, 모든 일을 끝마친 후 찾아오는 무기력함이 리에티에게 몰려왔고 그는 결국 다리에 힘이 빠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리에티님,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 기.. 기다리게.."
"모든 일을 끝마치면 찾아달라는 피론님의 말씀입니다."
"알겠네.."
밖에서 자신이 포섭했던 성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리에티는 피가 묻어 떨리는 손을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익..
"리에티님."
"축하드립니다."
"이 개자시이익!!!!! 너를 기르고 키워준 자비로운 교황님에게!!!!! 네놈은 키로스님의 천벌을 받을 것이다!!!"
이미 벡커를 포박해 바닥에 꿇린 기사들은 리에티에게 고개를 숙였지만 벡커는 방안에 뒹구는 교황의 모습에 처절하게 울부짖었고 리에티는 그제서야 미소를 지었다.
"방을 정리하고 교황의 사인은 급사라고 널리 퍼뜨리세요.. 엘라의 귀에는.. 조금 나중에 들어가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부탁드립니다."
"예!"
"그리고.."
리에티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벡커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이 자를 성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추방하세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반 죽음으로 만들어놓아도 됩니다."
"예."
"리에티... 네놈.. 정말 이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감히.."
벡커는 기사들에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눈을 부릅 뜨고 리에티의 얼굴을 바라봤다, 리에티는 그의 표정이 소름 끼치게 보였지만 절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돌아오겠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죽어서는 안된다 리에티! 네놈은 내 검에 죽어야만 한다!!"
"쯧."
리에티는 끌려가면서도 소리를 치는 벡커에게 혀를 찬 후 조용히 기사들에게 들려나가는 라티에니의 시신을 바라봤다.
"피론에게 전달하게."
"예."
"이제 때가 됐다고.. 돼지들을 한자리에 모으라고."
"알겠습니다 더 전달하실 말씀은..?"
"새로운 칠라렌 성국이 탄생할 기회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