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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 하늘도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33/90)

〈 33화 〉 하늘도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 * *

폭풍이 불고 난 후에는 잠잠하듯이 일루안의 1 토벌대가 있는 고지는 조용했다.

"해야 합니다!"

"안돼."

"하지 않는다면 오래 있지 못합니다."

"어차피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어 카일록 자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나?"

"...."

시체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작은 언덕을 보며 칠러웨이는 아무 말 없이 서있었는데, 갑작스레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아 칠러웨이 왔나?"

칠러웨이의 등장에 카일록은 입을 다물었고 일루안 또한 그를 경외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놀랐겠지.'

바위에 자신이 깔리는 순간 죽음을 예견했던 그들은 분명 처음 보는 광경에 놀랐을 것이 분명했다.

'분명 '재생'했다고 했었고...'

칠러웨이가 아버지의 일갈에 깨어났을 때 일루안이 봤던 광경은 이러했는데, 거대한 바위에 깔려 머리와 몸이 터져나가 내장이 밖으로 튀어나왔지만 단 몇 분 만에 흩어졌던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왔고 그 후 칠러웨이가 깼다는 것이었다.

"자네도 왔으니 얘기해야겠군."

"예.. 뭐 제 의견이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신들을 태우는 것에 대해서 자네의 의견은 어떤가?"

일루안의 물음에 칠러웨이의 시선은 시체 더미로 갔다, 몬스터와 인간이 뒤엉켜 있는 작은 언덕은 지옥의 일부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상당히 불쾌해졌다.

"...."

잠시 흐르는 침묵에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지만 카일록과 일루안 두 사람의 귀는 칠러웨이의 입을 주목하고 있었다.

"리타는 어떻게 얘기합니까?"

"그 종기사가 뭘 안다고...!"

"...."

카일록이 화를 내자 칠러웨이는 그를 슥 쳐다봤고 칠러웨이에게 목숨을 빚져서 인지 그는 "칫."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리타가 몬스터들을 막은 겁니다, 그리고 불은 연소될 기미가 안 보이니... 제 생각에는 저대로 내버려 둔다면 모두 썩을 테고 역병이 돌 것 같습니다."

"음.."

태우지 말자는 의견을 내놓았던 일루안은 칠러웨이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지만 자신과 함께했던 이들을 불로 태운다는 것이 끔찍했는지 고개를 내저었다.

"리타!"

"아! 예!"

천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 병사들을 도와 시체들을 옮기고 있던 리타는 일루안의 부름에 단번에 달려와 차렷 자세를 취했다.

"편히 있어 안 잡아먹을 테니까."

"아.. 예!"

"물어볼게 하나 있으니 잘 대답해."

"예."

일루안은 자신과 칠러웨이, 카일록의 의견을 얘기했고 리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쌓여있는 시체들을 보았다.

"태우셔야 합니다."

"...."

리타의 말에 일루안은 얼굴 표정을 일그러뜨렸지만 그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칠러웨이님의 말대로 시신을 태우지 않는다면 분명 역병이 돌 것이고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이 위험해집니다, 게다가 이곳은 높은 바위지대라 저들을 이대로 둬봤자 까마귀들의 먹이밖에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태워 저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후..."

리타의 말에 일루안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였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에도 답은 있었다, 그저 함께한 '정' 때문에 그들을 보내지 못하는 것뿐..

"이미 일루안님도 저희가 얘기한 것 다 아시지 않습니까.. 카일록 단장이 얘기했던 것처럼 저 불이 꺼질 때까지 버티려면 시체를 모두 태워야 합니다."

"쯧..."

칠러웨이의 설득에 일루안은 결국 혀를 찬 뒤 직접 시신들에 불을 지폈다.

"잘 타는군."

"구울들은 거의 마른 장작이나 마찬가지니까요."

"...."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진 뒤 일루안은 술을 가져와 꿀꺽 꿀꺽 마시더니 술이 반 정도 남은 병을 불안으로 휙 던졌고 카일록 또한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정신은 좀 차렸습니까?"

"..."

칠러웨이의 질문에도 카일록은 기도에 집중한 듯 말을 하지 않았고 잠시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칠러웨이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 날 놀리는 거면 저리 갔으면 하는데?"

"이 상황에서 누굴 놀립니까?"

".... 나를 살린 이유가 함께 전투에 참여해서라고 했지?"

"... 예, 뭐 저한테 너무 감정을 쏟으시는 것도 있고."

"첫 번째 성녀 엘라님을 기억하지?"

"...."

칠러웨이는 어느새인가 좋지 않은 표정으로 리에티의 토벌대에 합류해 있던 엘라를 떠올리고는 기억을 끄덕였다.

"예... 뭐 기억합니다."

"자네와 처음 마주쳤을 때 엘라님은 내 손안에 있었지 아무리 힘을 잃고 추락하는 성녀라 해도 성녀는 성녀 교황조차 건드리기 힘든 인물임은 분명하다."

".... 그 정도 입니까?"

"그래."

칠러웨이는 엘라와 아빌론이 다른 성녀들을 원망하듯 얘기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기도를 마치고 칠러웨이는 자신의 옆에 자연스럽게 주저앉는 카일록을 봤다.

"사람에게는 여러 욕구가 있어, 나는 모든 걸 다 가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하나 못 가진 게 있었지."

"재수 없네요."

"끝까지 듣게."

"아.. 예."

"그건 바로 권력일세,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싶었어 엘라님은 당시 힘을 잃고 다른 성녀보다 아래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리에티 그 남자가 엘라님의 옆에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입니까?"

"어느 의미로는."

카일록의 말을 들은 칠러웨이는 리에티의 명령에 충성하며 따르던 귀족들과 피론을 떠올렸다.

"분명 다시 힘을 얻고 올라갈 거라 생각했네.. 지금 보니 내 예측이 맞았고."

"그럼.. 제가 그 엘라님을 구할 기회를 뺏어서 굉장히 화가 나있던 거네요?"

"...."

칠러웨이의 말에 카일록은 부정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죽이려고 했네."

"...."

"리에티에게 직접 자원해서 이 1 토벌대를 감시한다는 말을 했어."

카일록이 직접 자신을 죽이러 이 토벌대에 자원했다는 얘기를 들은 칠러웨이는 그의 원망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미안해지는 마음이 들어 칠러웨이는 머리만 긁적였다.

"그리고 이 토벌대에 참여하고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지."

"뭐.. 지옥으로 걸어들어온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래, 나는 감시관 역할로서 이 토벌대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지 결국 우리까지 사지로 몰아넣어졌고 살려면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전투에 계속해서 참여한 이유이기도 하고.. 다른 이유라고 하면 일루안님의 말 때문이지."

"무슨 말을 하셨길래.."

"어느 날 새벽에 나를 직접 찾아오셨고 술을 한잔 주시며 얘기했지 '죽지 않으려면 싸워라 관망하다가 그 알량한 목숨 날아가는 건 한순간이다.' 라고."

"...."

"리에티에게 다시 돌아가 이야기해봤지만 직접 자원한 것은 철회가 안된다고만 들을 수밖에 없었고 자네를 죽이는 것 또한 뒤로 미뤘지... 죽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카일록은 피식 웃으며 칠러웨이에게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가죽으로 만들어진 술통을 건넸다.

"아, 고맙습니다."

"목숨을 살려줬는데 술 정도야.. 뭐... 그래서 나는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고 상황을 겪다가 죽음을 코앞에 둬서야 깨달았지 자네가 일부로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지금 우리를 저들이 죽이려 낭떠러지로 밀고 있다는 것도... 모든 걸 깨닫게 됐어."

"그래서 오늘 일루안님에게 직접적으로 의견을 내신 거군요."

"그래.. 그리고 자네와 일루안님을 따르려고 마음을 먹었지 뭐.. 마지막 성녀님이 자네에게 호의가 있다는 것도 판단이 됐고... 이 줄도 나쁘지 않은 줄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이 토벌대, 자살 특공대인 건 아시는 거죠?"

"알지."

카일록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자신의 짐에 있던 검 한 자루를 꺼내어 칠러웨이에게 건넸다.

"자네가 나한테 사과를 했으니 나도 나름대로 자네에게 건네는 사과의 의미일세."

"이건?"

"우리 기사단에서만 사용하는 검일세 자네 낡은 검이 자꾸 신경 쓰여서 말이야."

날이 부러져 이제는 쓸 수 없을 것 같은 칠러웨이의 낡은 검을 가리키며 카일록은 피식 웃었고 칠러웨이도 흔쾌히 검을 받아들었다.

"잘 부탁하네."

"아닙니다, 화 풀어주셔서 다행입니다."

"아직 모두 풀린 건 아니야."

"하하하.."

카일록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사라지자 칠러웨이는 등줄기에 살짝 식은땀이 맺혔지만 이내 카일록이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자 칠러웨이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네를 처음 만났을 때 내 기사들에게 지은 죄가 있어서 말이지.."

"... 제가 카일록 당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건데요.."

"아닐세, 그들을 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목숨만 살겠다고 나는 도망쳤어 그저 욕심에 눈이 멀었던 거지..."

".... 하지만 마지막에는 끝까지 남지 않으셨습니까?"

".... 남아보니 알겠더군 얼마나 비참하고 이곳에 날 몰아넣은 사람이 원망스러운지..."

카일록이 기사들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남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칠러웨이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나는 '배신자 카일록'이라고 기사들 사이에서 은연중에 불리는 모양이더군.."

"배신자라.. 상관없습니다."

"...."

"어차피 서로 빚을 졌으니 지금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0인 상태고.. 지금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니까요."

"고맙네."

"어이!"

두 사람의 얘기가 끝나갈 때쯤 일루안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시체들이 타고 있는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 가려고 했습니다."

"금방 내려가야 하니 회의가 필요할 것 같은데? 카일록 자네도 오겠나?"

"물론입니다."

"바위가 원래 있던 자리로 다들 와주게."

"그럼 나는 일루안님과 먼저 가도록 하지."

"아.. 예예 먼저 올라가세요."

"얼른 오게 칠러웨이, 또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카일록과 일루안이 올라가자 칠러웨이는 조용히 눈앞에 일렁거리는 불을 바라봤다.

"잘 돼야 할 텐데.."

"안 올라가고 뭐 합니까?"

"아 게리."

덩치가 큰 게리가 다가오자 칠러웨이는 흠칫하고 놀랐지만 키메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자 한숨을 쉬며 그를 올려다봤다.

"그냥 걱정이 돼서."

"뭐가 말입니까?"

"그냥.. 이 사람들이 다 살아남을 수 있으련지.."

"음.."

칠러웨이의 말에 게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사람 중 한 명이 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요?"

"....?"

"모든 것들이 예상한 대로 절대 굴러가지 않습니다."

"알죠."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아두라고 하더군요."

"무엇을..?"

칠러웨이의 멍한 표정에 게리는 피식 웃으며 그의 등을 툭 쳐주었다.

"아무도 칠러웨이님이 살아날 걸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우리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하늘도 모든 걸 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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