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화 〉 하늘도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32/90)

〈 32화 〉 하늘도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 * *

"끄아아아악!"

"...."

칠러웨이는 피가 뚝뚝 흐르는 검을 한 손에 들고 멍하니 끔찍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아아아아악!!!"

그워어어어!

살기위해 올라오려는 구울들과 키메라들과 하나뿐인 목숨을 지키기 위해 낡은 검을 들고 온몸으로 그들을 막는 병사들과 기사들.. 그 광경은 처참했다.

"사.. 살려줘..."

자신의 부츠를 반밖에 남지 않는 몸으로 기어 와 붙잡는 병사를 보며 칠러웨이는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

"단장님!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제기랄! 제기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칠라렌 성국의 한 기사단의 단장으로서 콧대 높던 카일록 조차 헝클어진 머리로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은 리에티에 분노하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칠러웨이!!"

"..."

"어이!!! 칠러웨이!!"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한 사람에 의해 그는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봤다.

"뭐 하고 있어!"

"... 아.. 그게."

커다란 덩치의 게리는 부상자들을 계속해서 뒤편으로 옮기고 있었고 그의 옷은 이미 피로 흥건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그 검을 휘둘러!"

"씨발."

결국 욕지거리를 뱉어낸 칠러웨이는 앞으로 달려나가 키메라 하나를 베었지만 끝도 없이 몰려오는 키메라들을 보며 다시 정신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

"아아아악!"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고지에 울려 퍼지고 있었고 새하얀 돌들에 피가 흘러 그 밑에는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몇천이나 되는 병사들은 패닉에 빠져 아직까지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지휘관 역할인 일루안 조차 수많은 구울에 둘러싸여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치.. 칠러웨이님!"

"....!?"

"리.. 리타입니다!"

"무슨 일이야!"

"히.. 히익!"

"뒤에 가서 일루안님이나 도와!"

서툰 검술을 뽐내며 구울들을 베면서 칠러웨이에게 다가온 리타였지만 다가오는 적들에 의해 리타는 칠러웨이의 등 뒤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게! 일루안님께서는 바쁘다고! 가서 칠러웨이님이나 도우라고...!"

"제길 똥받이도 아니고! 살고 싶으면 아르웬의 기사단의 뒤에 있어 그들은 꽤 강하니까!"

"그... 그게."

하지만 칠러웨이의 말에도 리타가 움직이지 않자 그는 짜증 나는 표정으로 그의 멱살을 잡았다.

"도대체 뭐!"

"바.. 방법이 있어요!"

"...?"

칠러웨이의 험악한 표정에 리타는 조심스럽게 커다란 바위 하나를 가리켰다.

"저거?"

"예.. 저거.."

"...."

오랜 시간 동안 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동그란 모양의 거대한 바위는 고지의 정상에서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저걸 굴리자고?"

"예..."

"말이 되는..."

"몇 명이면 불가능하겠지만... 저희는 수천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육탄전을 하는 것보다는 바위를 계속해서 굴리는 게 더 좋을 겁니다."

"... 후우.. 바위만 굴리면 된다는 거지?"

"지금보다는 낫다는 겁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일루안님에게 말씀드려서 모두 대피 시킬 테니 빨리하신다면...."

".... 게리!!!!"

칠러웨이의 부름에 게리는 구울의 머리를 터뜨리고는 그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바위로 빨리 끌고 올 수 있는 사람 전부 다 데리고 와요!!! 아니! 모두 위쪽으로 대피시키세요!"

".... 왜 그러는지 말을...!"

"시간 없어! 당장!!"

".... 거기 너! 너! 너! 그리고 너! 올라오면서 전부 다 끌고 와!"

"예!"

그를 따라 올라간 게리는 굵은 통나무를 바위 틈새에 넣고 힘을 주고 있는 칠러웨이를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뭐 하십니까?"

"도와요! 얼른!"

"그걸 움직일 생각입니까?"

"이 방법 밖에는 없어요!"

"만약 굴린다 하더라도 아래 있는 사람들은?"

"리타가 일루안님께 말씀드려 모두 대피시킬 거라 합니다!"

높은 언덕을 지체 없이 뛰어올라가는 모습을 보던 게리는 고개를 내젓더니 적들을 막는 것을 포기하고 위쪽으로 뛰어올라오는 병사들을 보며 칠러웨이와 함께 통나무를 붙잡았다.

"제길..! 굴린다고 하더라도 적들이 뒤에서 저렇게 올라오는데...!"

"씨발.. 씨발!!"

칠러웨이는 통나무를 내리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자신이 이것을 굴리지 않는다면 키메라에게 모두 죽을 것이 분명했고 굴린다고 하더라도 분명 많은 사람이 키메라와 함께 깔릴 것이 분명했다.

[아들 사람이 나서야 할 때가 언젠지 알아?]

[아뇨?]

[네 가족이 위험할 때.]

[아니 뭐 그건 알죠..]

[그리고 혼자서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 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버지의 말에 칠러웨이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하늘을 바라보더니 눈을 감았다, 검은 먹구름이 낀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무거운 몸을 움직이고 있었고 공포에 질린 병사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가자 칠러웨이는 결정한 듯 눈을 떴다.

"게리 당신이 힘주고 있어요! 병사들 도착하면 모두 붙어서 굴릴 생각만 하고!"

힘을 주어 바위를 굴리려던 칠러웨이는 아래에 아직도 많은 사람이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자 검을 뽑고 달려나갔다.

"칠러웨이! 어디 가나!"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바위까지 구르면 살아남지 못할 거네!"

리타와 함께 돌 사이를 뛰어올라오던 일루안은 오히려 역으로 내려가는 칠러웨이의 팔을 붙잡았지만 칠러웨이는 신경 쓰지 않고 검을 뽑아들었다.

키에에에엑!

"죽어!"

콰직! 콰지직!

병사들을 따라오는 구울들의 사이로 뛰어든 칠러웨이는 순식간에 네 마리의 구울들을 베어버렸고 달려드는 키메라들의 머리 위에 올라타 반으로 갈라버렸다.

"개 같은! 새끼들!"

구울들의 손톱에 몸의 살이 다 뜯겨나가면서도 칠러웨이는 거대한 키메라들을 밀쳐내며 최대한 그들을 저지했다.

쿠구구구...

"... 왔나?"

쿠구구구구구!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며 거대한 바위는 자신의 몸집을 자랑하듯 천천히 움직였다.

키엑!?

"칠러웨이! 도망치게!"

"...."

결국 거대한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키메라들과 구울들의 시선이 바위로 쏠렸지만 칠러웨이의 시선은 도망치는 병사들에게 머물렀다.

"미친! 비키란 말이네! 칠러웨이!!!!!"

병사들의 처참한 모습에 결국 칠러웨이는 남는 것을 택하고 묵묵히 검을 휘둘렀고 일루안은 칠러웨이에게 계속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칠러웨이!!!!!"

아르웬마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칠러웨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그의 눈에는 쓰러진 채 혈투를 벌이고 있는 카일록이 보였다.

"너.. 너!"

"... 못 움직입니까?"

"....!"

상처투성이가 된 다리를 질질 끌며 살려고 발버둥 치는 카일록을 내려다보던 칠러웨이는 한숨을 쉬며 그의 뒷덜미를 잡았다.

"무슨...!"

"사세요."

"....?"

"살아남으시라는 겁니다, 아무리 범죄자더라도 저 사람들 중에는 불쌍한 사람들도 많은 것 알지 않습니까?"

"...."

"여태 지켜본 결과 카일록 당신, 병사들을 건들지 않았고 전투에도 가끔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나를 살려주는 이유가.. 그거인가?"

"저한테 앙심을 품으셨었죠."

"...."

"여기서 살려주는 걸로 퉁칩시다."

카일록을 바위 틈새로 던져 넣은 칠러웨이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올라오는 키메라들을 막아냈다.

쿠구구구구!

키에에엑!

끼에에엑!

결국 바위는 거대한 몸을 움직여 구울들과 키메라들을 터뜨리며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고 그제야 뒤를 돌아본 칠러웨이는 팔을 번쩍 들고 크게 웃었다.

"여기서 어떻게 도망칩니까? 하하하!"

"미친 건가!!! 피하게!"

"칠러웨이!!"

눈앞까지 다가온 바위를 보던 칠러웨이는 아르웬과 일루안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고 '퍽' 소리와 함께 그의 의식은 뚝 끊어졌다.

"...."

조용한 방 안에서 눈을 뜬 칠러웨이는 자신의 몸을 살폈다, 분명 피떡이 되어있어야 할 몸은 그대로였고 사지도 잘 붙어있었다.

"뭐야."

멍한 얼굴로 자신이 있는 방을 둘러보던 칠러웨이의 시선은 탁자 위의 가족사진에 머물렀다.

"낯익다 했더니."

자신의 원래 이름 김민석 석자가 적힌 액자에 들어있는 사진의 가족들은 자신을 반기듯 웃고 있었고 그 또한 그리웠던 듯 사진을 매만졌다.

"인사도 못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보니까 좋네."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아 천장을 조용히 바라보던 칠러웨이는 책상에 놓인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후후.."

검은 연기가 방안을 꽉 채우고 칠러웨이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니코틴이 신경을 흐르자 실소가 흘러나왔다.

[뭐해.]

"응?"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칠러웨이는 주변을 바라보고 아무것도 없자 다시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뭐 하냐고 김민석!]

"....?"

하지만 여유로움도 잠시 갑자기 머릿속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칠러웨이는 벌떡 일어나 주변을 바라봤다.

"뭐야..."

[일어나!]

"아.. 아버지?"

방문을 벌컥 열고 다가온 아버지를 멍하게 바라보던 칠러웨이는 담배를 뚝 방바닥에 떨어뜨렸지만 아버지는 칠러웨이를 팔을 잡고 일으키려 했다.

[뭐해! 일어나라고!]

"예?"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버지의 모습에 칠러웨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아버지는 지체 없이 다가와 칠러웨이의 뺨을 후려갈겼다.

[일어나라고 이 새끼야!]

"허억!"

숨을 크게 들이쉬며 일어난 칠러웨이는 주변을 바라봤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하늘과 횃불을 들고 시체를 처리하는 병사들은 자신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뭐야.."

"일어났습니다!"

"일어났어?!"

한 기사의 외침에 한 남자가 키메라의 시체를 치우는 것을 돕다가 머리를 번쩍 들고 칠러웨이에게 다가왔다.

"어어..?"

"어어는 무슨!"

짜악!

"뭐.. 뭡니까 이게?"

"뭐긴!"

다가온 남자, 일루안은 칠러웨이를 품 안에 안고는 눈물을 흘렸고 칠러웨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의 등을 토닥여줬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게."

"아.. 예."

"특이한 능력이 있다는 걸 왜 말 안 했나? 그리고 죽어도 내가 죽을 테니 자네는 절대 나서지 말게."

칠러웨이는 일루안의 말을 듣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고 멀쩡하게 붙어있는 사지에 놀라운 듯 눈을 크게 떴다.

"칠러.... 웨이?"

"아 아르웬님?"

저 멀리서 검까지 내팽개친 채로 달려오는 아르웬을 보던 칠러웨이는 상당히 험악한 그녀의 표정에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 죽고.. 싶으면 내가.. 죽여줄게.."

"히익!"

"죽어..!"

"그.. 그만..!"

순식간에 아르웬이 눈앞까지 다가왔지만 칠러웨이는 그녀의 주먹을 간신히 막아냈다.

"죽.. 어.. 흑.. 흑..."

"아르웬님.."

"...."

칠러웨이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아르웬의 모습에 그녀의 손을 놓아주고 조심히 안아주었다.

"죄송합니다."

"... 흑.. 흑."

조용히 귓속에 사과를 하는 칠러웨이의 품속에 파고든 아르웬은 그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품속에 파고들었다.

"다시는.. 그러지 마.."

속삭이는 아르웬의 머리를 소중하게 쓰다듬어준 칠러웨이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절대 안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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