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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 하늘도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31/90)

〈 31화 〉 하늘도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 * *

"제기랄."

"그러게 왜 굳이 벌집을 건드려서.."

"조용히 하게, 칠러웨이 나도 홧김에 저지른 일이니까."

일루안과 칠러웨이는 헉헉대며 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뒤에는 1 토벌대가 씻지도 못한 채 따라오고 있었다.

"지휘관이라는 사람이.. 여길 먼저 점령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아니, 그리고 아르웬님이 1 토벌대에 들어오면 분명 지휘권이.."

"지금 내 상관은 리에티야, 1 토벌대의 지휘는 내가 맡지만 큰 틀은 그가 짜는 거지.. 결국 까라면 까야 되는 구조이긴 해."

"...."

칠러웨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들을 이 산으로 보낸 리에티 일당에게 이를 갈았다.

"아무리 그래도.."

"칠러웨이.. 화를 내봤자 뭐 하나? 우리는 힘이 없는 범죄자들인데."

"후우."

한숨을 내뱉은 칠러웨이는 곳곳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오는 구울들을 처리한 뒤 숲이 한눈에 보이는 바위 위로 올라가 주변을 바라봤다.

"아직도 타고 있군요."

"흠."

"너무 무리하신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클클, 어쩌겠나? 어차피 우리가 살려면 했어야 하는 일인데."

일루안은 칠러웨이의 말을 듣고 웃으며 자신의 짐을 바닥에 내려놨다.

"휴식."

"휴식!"

그의 뒤에 있던 게리는 일루안의 명령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체력이 약해 낙오된 이들을 데리러 산을 내려갔다.

"잘 뽑은 것 같구만."

"예, 뭐 알아서 잘 하니까요 게리는.."

"그나저나.."

일루안은 칠러웨이에게서 눈을 돌려 아르웬의 기사단을 봤다, 그들은 무거운 갑옷을 입고 산을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히 아르웬의 곁에 서있었는데 힐끔힐끔 1 토벌대의 병사들이 아르웬을 쳐다볼 때마다 검자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범죄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나 보군."

"전투 도중에 도망간 이들만 오백 가까이 됩니다, 전사자들까지 합쳐 남은 건 오천 중 삼천 남짓.."

"음..."

부족한 기사들의 수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릴 이들이 부족해 일루안은 머리가 아파졌는데 저 멀리 카일록의 기사단이 보였다.

"아직까지 감정이 좋지 않나?"

"예.. 안 좋죠?"

"으음..."

"저들의 대장을 포섭하는 건 좋지 않을 겁니다 일루안님, 분명 뒤통수를 칠 게 뻔히 보여요."

"쯧."

칠러웨이의 말에 일루안은 그들을 잠시 지켜보더니 혀를 차고는 헥헥 대고 있는 종기사에게 다가갔다.

"힘드냐?"

"아.. 예! 아닙니다!"

"먹거라."

일루안이 건네준 주머니에는 아직 시원한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종기사는 카일록의 기사들을 돌아보며 잠시 눈치를 보더니 꿀꺽꿀꺽 물을 마셨다.

"하아.. 가.. 감사합니다."

"아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물 정도는 꼬박꼬박 마셔줘야지."

"하.. 하하.."

농담 아닌 농담에 종기사는 땀을 삐질 흘리며 웃어 보였지만 일루안은 굳은살이 박인 그의 손을 유심히 바라봤다.

"종기사인가?"

"예.."

"이름은?"

"리타..라고 합니다."

"음.. 자네 기사 학교는 다녔었나?"

"아.. 예!"

"종기사로써는 몇 년이나 있었지?"

"3년.. 아니 5년인가..? 그 정도 됐을 겁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일루안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카일록의 기사들이 듣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기사가 되었어도 될 기간인데 어째서 종기사로 있는가?"

"... 아 그게.."

"저들에게는 말하지 않을 테니 얘기해보게."

"으.. 음.. 그게... 저는 농노 출신입니다.."

"농노?"

"예.."

"그래서 올라가지 못했던 거군.. 내가 알기로는 종기사까지 오르기도 버겁다고 하던데 실력은 꽤 있나 보지?"

"그게.. 저.. 부.. 부끄럽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일루안은 잠시 생각하더니 산의 정상을 가리켰다.

"하나 물어보지, 지휘관이 저 산을 점령하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자네 같으면 어떻게 하겠나?"

".... 그.."

"어려워하지 말고 대답하게."

잠시 머뭇거리던 리타는 침착하게 일루안의 말에 대답했다.

"일단.. 명령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몬스터를 상대로 이곳에 있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 될 겁니다... 게다가 상대가 전처럼 명령을 받고 행동하는 녀석들이라면 분명 포위될 가능 성도 있으니 아주 위험한 행동일 수도 있겠죠... 생각이 좁은 저로서는 어떤 의도로 산을 오르라고 했는지는 모든 걸 헤아릴 수 없지만..."

"오호... 계속해보게."

"일단 제 1 토벌대는 범죄자로 이루어져 보급도 제대로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제가 일루안님이라면 체력 회복을 위해 하루 이틀 정도만 휴식하며 머무르고 산을 내려가겠습니다, 성녀님께서도 합류하셨으니 성녀님께 잘 설명드려 일루안님이 아닌 성녀님의 명령으로 내려간다 얘기하면 분명 어쩌지 못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약 저들이 이곳에 대한 이탈 때문에 문제 삼는다면?"

"그건.. 지휘관의 명령을 듣긴 해야겠지만 이곳에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으신 게 없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일루안님의 재량대로 하시는 게... 정 안된다면..."

"안된다면?"

리타는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조심스럽게 일루안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모시고 있는 기사분들이나 성녀님의 기사분들의 불편함을 극대화해서 그들이 직접 지휘관에게 따져서 내려가도록 불만을 이끌어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루안은 리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어깨를 탕탕 쳤다.

"좋아 마음에 들었어."

"예?"

"이봐! 카일록 단장!"

"....?"

"이 종기사 나 좀 주게."

"...."

일루안의 말에 카일록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리타는 무서운 듯 고개를 숙였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게 일손이 부족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토벌대에서 한 명을 뽑아 옆에 두심이.."

"에이 그럼 내 체면이 살지 않지, 아무리 죄인이 된 몸이라고 하더라도 자네 정도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나?"

일루안의 말에 카일록은 잠시 찌푸리더니 주변 기사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가십시요, 어차피 쓸모없던 녀석이었으니."

"고맙네 이 은혜 꼭 기억하지."

"예."

"아! 칠러웨이!"

"갑니다."

일루안의 부름에 칠러웨이는 양피지 하나를 꺼내어 카일록에게 펼쳤다.

"뭐냐?"

"쓰세요 카.일.록.님."

"... 이런 것까지 해야겠습니까?"

"아니 뭐.. 확실하게 하는 게 좋지 안 그런가 칠러웨이?"

"예, 그럼요 천하의 카일록님이 겨우 종기사 하나 때문에 나중에 일을 크게 벌이지는 않겠지만 확인차 하는 겁니다."

"쯧."

결국 카일록은 기사들의 시선에 못 이겨 리타를 자신들에게 넘긴다는 양피지에 자신의 인장을 찍었고 가보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저 좀팽이 녀석이 하는 걸 보니 일루안님이 기사들에게 얼마나 존경받는지 다시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나한테 잘하게 칠러웨이."

"저.. 저는 이제 어찌 되는 겁니까?"

칠러웨이가 일루안을 띄워주는 모습을 불안하게 지켜보던 리타는 일루안에게 덜덜 떨며 물었지만 그는 인자한 미소로 리타의 등을 팡! 소리가 나게 쳤다.

"걱정하지 마! 자네한테는 더 막중한 임무를 줄 테니까."

"예?"

"칠러웨이."

"예 알겠습니다."

칠러웨이는 낙오자들을 이끌고 올라온 게리에게 다가갔고 게리는 무서운 표정으로 칠러웨이를 따라온 리타를 째려보았다.

"뭡니까?"

"새로 우리와 함께할 리타라고 해."

"....."

"병사들에게 소개를 시켜줬으면 하는데?"

".... 이 사람을 말입니까?"

게리의 반응대로 리타는 상당히 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덩치가 큰 게리 앞에 서자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래,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거니까."

"... 일단 알겠습니다."

"고맙네."

게리가 리타를 끌고 가자 칠러웨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괜찮겠습니까?"

"뭘?"

"저 리타라는 종기사 상당히 무서워하던데.. 적응이나 할 수 있으련지."

"적응? 그깟 거는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그리고 충분히 저 리타라는 친구는 우리에게 쓸모가 있을 거고."

"일루안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칠러웨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동의하고는 지쳐 앉아있는 아르웬에게 다가갔다.

"아르웬."

"칠러... 웨이."

"괜찮으십니까?"

"나는... 아마 괜찮아.."

"아마..?"

"응.. 아마."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의 아르웬은 더 새하얗게 질려있었고 칠러웨이는 그런 그녀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 내가 돌아가면 이 토벌대는.."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 싫어."

자신이 걱정이 됐는지 고개를 내젓는 아르웬을 보며 칠러웨이는 그녀의 고집을 못 꺾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입을 다물었다.

"불이야!"

"....!"

"불입니다!"

"제길."

두 사람의 정적도 잠시 갑자기 들려오는 한 병사의 외침에 그들은 절벽으로 가 아래를 바라보았다.

"미쳤군."

어느새 검을 가지고 다가온 일루안은 활활 불타고 있는 숲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리에티...."

일루안은 리에티의 이름을 부르며 이를 바득 갈았지만 칠러웨이는 무슨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해 그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지 아시겠습니까?"

"한 번 불태운 숲은 다시 불태워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 그러면.."

"아마 키메라가 구울이 존재하는 이상 숲을 거의 다 태울 때까지... 계속할 녀석이다.. 어차피 먼저 숲을 건드린 건 나이니 죄는 모두 뒤집어 씌우면 되는 거니까."

"그럼 큰일 아닙니까?"

"더 큰일이 있지."

일루안은 불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병사들과 짐을 풀고 있는 카일록의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전투 준비해!!"

"....?"

"아무것도 못 올라오게 장애물을 설치하고 돌을 굴릴 준비를 해! 당장!!! 명령이다!"

갑작스러운 명령에 모두가 굼뜨게 움직였지만 일루안이 왜 다급하게 외치는지 그들은 잠시 후 나타난 것들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제길.."

"...."

그워어어어어!

키에에에엑!

거대한 몸을 흔들며 키메라들과 구울들은 몸이 그을린 채 산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고 미쳐 준비하지 못한 병사들은 그들에게 찢겨나가야만 했다.

"... 이 정도로 끝까지 간 줄은 몰랐군...!"

리에티를 떠올리며 일루안은 검을 들었지만 지금은 그에게 분노할 시간이 없었다.

"죽어도 못 올라오게 해야 한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허억.. 허억.."

칠러웨이가 달려와 일루안의 어깨를 잡았고 일루안은 달려오는 구울의 피를 뒤집어쓴 채 거친 숨을 내뿜었다.

"숲은 활활 타고 있어.. 이 뜻이 뭔지 아나?"

"....?"

"우리는 이곳에서 내려갈 수 없다는 뜻이야.. 하지만 숲 안에 있던 구울과 키메라들, 몬스터들은 어떻겠나?"

".... 설마."

"죽지 않으려 불이 올라오지 못하는 높은 곳으로 계속 올라올 거네 저렇게 생겼더라도 생물이란 그런 거니까.. 이곳뿐만이 아니라 다른 고지들도 마찬가지겠지..."

일루안은 생각지도 못한 리에티의 뒤통수에 화가 난 듯 했지만 피를 흘리는 병사의 뒷덜미를 잡고 끝까지 끌어올리며 칠러웨이를 바라봤다.

"칠러웨이."

"...."

"살아내려가자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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