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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화 〉 하늘도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29/90)

〈 29화 〉 하늘도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 * *

"리에티."

"...."

말없이 병사들을 지켜보고 있던 리에티의 곁에 덩치가 큰 남자가 천천히 걸어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아빌론님, 오셨습니까?"

"그래."

"엘라님은 어떠십니까?"

"그냥 계시지."

"...."

리에티는 얼마 전 일루안을 몰아넣었다는 소식과 함께 감옥에 들어간 자유기사의 이름이 칠러웨이라는 사실이 엘라의 귀로 들어가자 자신을 보며 소리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 죄송하게 됐군요 엘라님에게는.."

"자네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아빌론은 스트레스를 받은 듯 이마에 핏줄을 세웠지만 엘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칠러웨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엘라님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계신지요?"

"... 아마도."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하지만 나처럼 칠러웨이에 대한 죄책감은 없어지지 않으셨더군."

"...."

"그가 제1 토벌대에 배치됐다는 것을 들으시고는 이제는 막사 안에서 나오지 않으시네."

"그렇군요."

"아마 쉽사리 풀리지는 않을 거야,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성국 내에서 성녀의 자리를 되찾아 주겠다는 말까지 한 사람이니.."

리에티가 일루안의 군권을 물려받고 성국 내에서도 이제는 건드릴 사람이 없어졌지만 엘라는 리에티에게 잘했다는 말은커녕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소식은 들었나?"

"어떤 소식 말입니까?"

"라티에니 교황께서 두 번째 성녀와 다섯 번째 성녀를 투입했네."

".... 라티엘과 아르웬 말입니까?"

"그래."

".... 후우.."

리에티는 두 성녀의 합류에 골치가 아파진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지휘관으로 다시 임명된 자신이 그녀들을 부리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골치는 조금 아프겠지만.. 두 사람은 쓸모가 있습니다, 병사들을 최대한 살리려면 그 두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네."

"게다가 첫 번째 성녀인 엘라님까지 이곳에 계시니 미네르 숲 토벌은 따놓은 일이구요."

"음."

아빌론은 리에티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저 멀리 패싸움을 벌이고 있는 제1 토벌대를 조용히 바라봤다.

"저 토벌대는 분명 일루안이 지휘한다고 했었지."

"예."

"쉽사리 전멸당하지는 않겠군 게다가 칠러웨이 그 남자까지 저곳에 있으니 분명 꽤 버텨줄 거야."

칠러웨이와 일루안이 혹사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아빌론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성녀들을 몰아내고 엘라를 완전한 성녀로 세우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는 그곳에서 눈을 돌렸다.

"곧 있으면 출전입니다, 저들의 걱정은 하지 마시고 라티에니 교황님이 주신 기회를 제대로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그럼 기사단장들과 얘기를..."

"키... 키메라다!!"

"끄아아아악!"

다시 기사들과 회의를 하러 발걸음을 돌리던 두 사람의 귀에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파고들었다.

"먼저 공격을 한다고?"

"이런."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는지 아빌론은 성기사들을 지휘하러 달려갔지만 리에티는 손톱을 깨물며 다가오는 거대한 키메라들을 바라봤다.

'이럴 수가.. 미네르 숲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공격을... 하다니?'

리에티는 온갖 머리를 굴리며 확실하게 막아낼 방법을 생각했지만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졌다.

"생각을..."

"게리!!!"

"알겠습니다!"

그 순간 제1 토벌대의 진영에서 한 남자가 막사에서 뛰어나오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칠러웨이 자네는 시간을 벌어주게!"

"예!"

아빌론 보다 덩치가 큰 남자와 검은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키메라들에게 뛰어나가는 것을 보고는 리에티는 눈을 크게 떴다.

"아직 준비가 덜 되긴 했지만.."

일루안은 고개를 내젓고는 낡은 검을 들어 올렸다.

"당겨!"

"당겨!!"

일루안의 명령에 1 토벌대에 속한 범죄자들이 달려 나와 새벽에 파 두었던 구덩이의 덮개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워어어어!

생각지도 못한 구덩이에 키메라들은 팔을 허우적거리며 안으로 빠졌고 일루안은 잠시 구덩이 안을 바라보더니 횃불을 가져와 던져 넣었다.

끼에에에에에!

"창을 던져서 조용히 시켜!"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검은 액체에 절여진 키메라들은 순식간에 불이 붙었고 일루안의 명령에 나무를 깎아 만든 창들이 키메라의 몸에 꽂히기 시작했다.

"... 으득."

일루안이 이미 제1 토벌대의 지휘를 능숙하게 하고 있자 리에티는 주먹을 꽉 쥐며 이를 갈았다, 또한 20마리가 넘어가는 키메라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다는 듯 아무런 피해 없이 그들을 처리한 일루안에 대해서도 마음속 열등감이 천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빨 부러져."

"...."

하지만 솟구치는 열등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옆에 등장한 여인 때문에 그의 머리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라티엘."

"반가워 리에티."

"...."

"어머 나만 보고 있을 거야? 네가 그렇게 원하던 지휘해야지 지휘."

"알아서 합니다, 모두 제1 토벌대를 뚫고 넘어오는 키메라들에 대비해서 진형을 펼쳐라!"

"명!"

리에티의 명령에 순식간에 기사들과 병사들은 방패를 가지고 모여들었지만 제1 토벌대를 도와주기는커녕 그들의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도와주지는 않는 거야?"

"... 범죄자들을 도울 병력은 없습니다."

"흐응."

리에티의 말에 라티엘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뒤에 서있는 아르웬을 바라봤다.

"아르웬?"

"...."

자신의 부름에도 대답하지 않는 아르웬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라티엘은 고운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르웬의 눈을 따라간 곳에서 싸우고 있는 남자는 라티엘의 눈에도 흥미롭게 보였다.

"아르웬 저 남자를 보고 있는 거야?"

".... 먼저.. 가볼게."

"어머?"

"마리아는 곧 올 거야."

"흐응.. 그래 네 마음대로 하렴."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남자 칠러웨이는 그 옆에서 투박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며 싸우고 있는 게리와는 다르게 적들의 약점을 잘 노려서 베어내고 있었고 1 토벌대의 병사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바로 달려가 그들을 살려내는데 힘을 쓰고 있었다.

"갈게."

검을 뽑아들고 안절부절못하는 아르웬은 라티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순식간에 달려나가 1 토벌대가 겨우겨우 막아내고 있는 키메라들을 반 토막 내버렸다.

"여전히 무서운 분이군요."

"음~ 그래도 착한 아이야."

리에티의 말에 라티엘은 어느 정도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력으로는 자신이 한수 위일지 모르지만 아르웬의 검에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라티엘 자신 또한 죽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1 토벌대를 방패막이로만 세운다면 전 토벌대와 달라진 게 없잖아?"

"...."

라티엘의 말에 리에티는 답하지 않았다, 칠라렌 성국이 미네르 숲을 토벌할 때 항상 쓰는 방법인 상대의 힘을 빼고 공격한다는 항상 먹혀왔고 리에티는 그 방법이 지금도 통할 거라 생각했다.

"전에는 자잘한 실수가 많았을 뿐입니다."

"흐응."

[난 사에트.]

두 사람의 대화도 잠시 키메라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자 그들은 몸을 긴장시키고 검을 뽑아들었다.

[너희들에게 경고를 하러 왔다.]

"... 이곳이 어디라고.. 뿌드득..."

라티엘은 자신이 돌보던 기사들과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남자가 나타나자 화가 난 듯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지만 리에티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지켜보시죠."

"... 뭐?"

"1 토벌대가 있습니다, 저들이 쓰러지고 나서 나서도 늦지 않습니다."

".... 미쳤어?"

"전에는 자잘한 실수가 많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실수하기 싫습니다."

"허.."

1 토벌대가 전멸하던 말던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리에티의 말에 라티엘은 헛웃음을 지었지만 저 멀리 사에트가 팔을 들어 올리자 숲에서 수많은 구울들이 뛰어나왔다.

"칠러웨이!"

"아르웬? 여긴 어떻게!?"

"물러나!"

"안 됩니다! 물러나면 모두 죽어요!"

멀리 자신의 동생과도 같은 아르웬이 구울들에 둘러싸일 위기에 처하자 라티엘은 리에티를 째려보고는 그의 손을 뿌려쳤다.

"지켜보고 있는다고 해서 일이 쉬워지지는 않아 리에티."

"...."

"그리고 언제부터 네가 나를 걱정했지? 내가 죽으면 네가 자유로워지는 것 아닌가?"

"마음대로 하세요."

리에티는 그녀의 말에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라티엘은 아르웬과 맞먹는 속도로 달려나갔다.

"일루안님!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

"세워!!!"

구울들이 달려오는 그 순간 저 멀리 일루안의 음성이 들려왔고 1 토벌대의 병사들이 달려 나와 나뭇잎 밑에 숨겨놓았던 바리케이트를 세웠다.

끄에에엑!

끼에에엑!

"죽여!!"

"못 들어오게 막아!!"

나무로 만들어진 창으로 엮여 있던 바리케이트에 달려오던 구울들이 부딪히자 1 토벌대의 병사들은 낡은 검과 창으로 그들의 머리를 침착하게 베어냈다.

[.... 또 만났군.]

"얼굴 보니까 신수가 훤해졌다!?"

[흥.]

칠러웨이와 아르웬의 앞에 나타난 사에트는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손을 움직여 더 많은 구울들을 불러들였고 칠러웨이는 아르웬의 곁을 지키며 달려오는 구울들을 베어냈다.

[다시 얘기하지만 나는 경고를 하러 왔다, 이제 우리의 사도들이 곧 이곳에 도착한다.. 죽고 싶지 않으면 라티에니 교황에게 달려가 칠라렌 성국을 비우고 떠나라고 전해.]

"미친놈."

[....]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하겠냐?"

[죽고 싶은 건가?]

"전에도 못 죽였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기는."

[이놈이..!]

사에트가 분노에 차서 무언가 얘기하려 했지만 칠러웨이는 그 틈을 타 키메라와 구울들을 뚫고 그에게로 달려나갔다.

"칠러웨이...!"

아르웬이 그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칠러웨이의 움직임은 빨랐고 어느세 그는 사에트의 코앞까지 도착했다.

[막아라!]

"같이 죽자!"

[마.. 막아!!]

생각지도 못한 칠러웨이의 돌진에 사에트는 당황했는지 구울들을 벽 삼아 자신의 몸을 숨기려 했지만 칠러웨이는 어느새 그의 어깨에 검을 꽂아 넣었다.

[끄아아아아악!]

쇠를 긁는 듯한 사에트의 비명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고 결국 자리에서 쓰러진 그는 천천히 다가오는 칠러웨이에게 손을 뻗었다.

[죽어라!]

"누구 맘대로!"

구울이 들고 있던 검을 뺏어든 칠러웨이는 능숙하게 사에트의 손에서 무언가 뿜어 나오기 전에 손목을 베어버렸고 사에트의 손은 하늘 높이 떠올랐다.

[아아아아악!]

"이제 끝이야."

[흐으으... 크크크크...]

고통에 몸부림치던 사에트는 갑자기 미소를 짓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고 칠러웨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사에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칠러웨이 조심해!"

[다음에 보도록 하지.]

쩌엉!

사에트가 품에서 꺼낸 종이를 찢자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칠러웨이와 아르웬은 뒤로 날아갔고 주위에 몰려있던 구울들과 키메라들 또한 온몸이 부서져 사방에 흩어졌다.

"끄으윽... 아르웬님.."

"나는.. 괜찮아.."

"괜찮나 두 사람!?"

조금의 충격이 있었지만 아르웬의 빠른 판단 덕분에 아무 상처 없이 일어날 수 있었고 그들이 걱정되었던 일루안이 헐레벌떡 뛰어와 그들의 몸 상태를 살폈다.

"예예..."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칠러웨이, 아르웬님도 마찬가지로.."

"저건 뭡니까..?"

"스크롤이지 이 세상에 몇백 장 안 남아 있다던.. 그걸 가지고 있을 줄이야.. 탈출용이었나 보군 후우..."

일루안은 사에트의 치밀함에 한숨을 쉬고는 칠러웨이와 아르웬을 자리에서 일으켰다.

"대충 정리는 된 모양이니 두 사람은 들어가서 쉬게."

"감사합니다."

"게리!"

"예 일루안님."

"두 사람을 막사로."

"예."

일루안은 게리와 함께 막사로 걸어가는 두 사람을 지켜보고는 바닥에 떨어진 사에트의 스크롤 조각을 주워들었다.

"허어..."

"일루안."

"아! 라티엘님."

무언가 적힌 스크롤 조각을 살피며 일루안은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매만졌지만 이내 자신의 옆으로 나타난 라티엘을 보고는 스크롤 조각을 뒤로 숨겼다.

"... 뭔가?"

"아 이거 말입니까? 저 칠러웨이란 자유기사의 물건입니다."

"...."

능청스럽게 질문을 넘긴 일루안은 살아남은 키메라를 순식간에 베어넘기는 라티엘을 보며 식은땀이 났지만 그녀는 조용히 발을 돌렸고 그는 주변에 죽은 구울들을 살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점점 복잡하게 돼가고 있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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