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 하늘도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27/90)

〈 27화 〉 하늘도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 * *

"....."

"두 분 말씀 안 하실 겁니까?"

불편한 얼굴을 한 채 마주 보고 있는 두 남자의 기류를 못 참은 한 기사가 먼저 말을 꺼냈지만 두 사람 중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 리에티, 자네가 나에게 한 짓은 참을 수 없지만 교황님께서 내리신 일이니 내가 꾹 참고 함께하지."

"죄를 저지른 분이 말이 많군요."

"..."

리에티의 말에 일루안의 이성에 금이 갔지만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 그에게 검을 휘두르지 않도록 꾹 참아넘겼다.

"죄수들에게 무기 창고에 처박혀 있던 낡은 검을 줬다고 하던데.. 맞는가?"

"예, 그들에게 좋은 검을 줄만큼의 여유는 없어서 그리했습니다."

"아무리 고기 방패라 하더라도 선봉대인데 너무한 것 아닌가?"

"중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그것도 과분합니다."

"후후.. 차라리 나무 막대기를 주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그럴 껄 그랬군요."

일루안의 말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반박하는 리에티에 일루안 존경하는 기사들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지만 본인은 오히려 차분했다.

"중범죄자들 중에는 큰 죄를 짓지 않은 이도 있어, 겨우 1브론도 안되는 빵을 훔치다가 가혹한 경비대에게 걸려 과한 처벌을 받은 사람도 있네."

"범죄는 범죄입니다."

"그렇다면 누명을 쓴 이들은 아무런 잘못도 안 했는데 왜 죽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나?"

"..... 큭.."

일루안의 말에 침묵하던 리에티는 뭐가 웃긴지 참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뭐지 그 웃음의 의미는?"

"일루안님 착각하고 계시군요."

"....?"

"그들은 범죄자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죄가 없이는 감옥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 자네.."

"그들은 유죄를 받았고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증거가 없어 그곳에 들어갔던 겁니다, 그런데 일루안님은 같은 범죄자답게 그들의 무죄를 주장하시는군요?"

"자네 여기까지 온 건가..? 겨우 이런 사람이었어?"

"저야말로!"

콰앙!

일루안이 어이가 없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자 리에티는 탁자를 내려치며 그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저야말로 일루안님에게 실망입니다!"

"뭐...?"

"처음부터 저를 믿고 완전히 맡기셨다면..!"

"난 처음부터 자네를 믿었어!"

"아뇨! 믿지 못하셨습니다! 군 지휘 전권을 위임한다고 하셔놓고 사사건건 참견하셨죠!"

"허어.."

일루안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그는 항상 리에티를 믿고 군사들을 넘겨줬고 그가 어떠한 말을 하던 고개만 끄덕거려주었었다.

"..... 자네 그 얘기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물론입니다."

일루안은 심각한 얼굴로 리에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당당한 표정과 전에 있었던 전투에 대한 일 또한 일루안의 잘못이라 말하고 있는 듯한 그의 얼굴은 일루안에게 두통을 안겨주었다.

"전형적인 허언증인가?"

그 순간 일루안의 뒤에 낡은 검을 허리춤에 맨 채 조용히 앉아있던 칠러웨이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뭐..?"

"허언증이지, 자신의 잘못까지 일루안님에게 모두 떠넘기고 있잖아."

"개소리를.."

"내가 아는 병 중에는 자신이 했던 일을 거짓으로 포장하고 그게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어, 딱 그런 투로 이야기하니 듣는 사람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지."

"..."

칠러웨이의 말에 리에티의 표정이 썩어들어가자 일루안은 그만하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지, 더 이상의 대화는 통할 것 같지 않아."

"누구 맘대로...! 두 번째 토벌대의 지휘관은 교황님에게도 인정받은 접니다!"

"알고 있네, 자네의 지휘에 딴죽 걸지 않을 테니 열심히 지휘해서 토벌에 성공하게."

"일루안!!"

일루안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리에티는 분노한 듯 박차고 일어나 그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댔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일루안!!"

"...."

"죄인이면 자리에 앉아라!"

"하아.."

자신이 결국 선을 넘어버렸다는 것을 모른 채 리에티는 감정에 지배된 채로 일루안에게 행동했고 칠러웨이는 그의 행동에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리에티, 다시 한번 이야기하겠네 자네의 지휘에 절대 태클 걸 생각 없어 그저 이번에는 자네 말대로 '온전히' 명령에 따르도록 하겠네."

"...."

"이제 나가봐도 되겠나? 내 병사들은 완전히 오합지졸이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서 내가 이렇게 부탁하겠네 여기까지만 하지, 이런 모습은 모두에게 보기 좋지 않아."

일루안의 말에 리에티 또한 기사들의 좋지 않은 시선을 느끼고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고맙네 칠러웨이, 나서주어서 덕분에 나도 정신을 차렸어."

"뭘 고마울 것까지야.."

"아니야, 만약에 계속 얘기했다면 리에티가 아니라 내가 검을 뽑았겠지."

"제가 일루안님을 오래 보지는 않았지만 유심하게 살펴본 결과로 그러지 않을 분이라는 거 잘 압니다."

"...."

칠러웨이가 어깨를 토닥거려주자 일루안은 위로가 되는지 그제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리에티의 막사에서 나와 토벌대의 진영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한숨을 쉬며 눈앞의 광경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 개새끼가!"

"뭐?"

"네가 내 밥 뺏어 먹었잖아!"

"봤어!? 봤냐고!"

"어이! 내가 봤어!"

"네 녀석이 똥 싸러 갔을 때 분명 저 새끼가 훔쳐먹었어!"

패를 나눈 채 죽일 듯 노려보며 낡은 검을 치켜올리는 중범죄자들은 당장이라도 피를 볼 것만 같았다.

"그만해라."

"너는 뭔데...!"

"그만하라고 얘기했다."

서로 부딪히려는 그 순간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한 남자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너... 너는.. 뭔데.. 저.. 저 녀석이 내 밥을 가져갔다고..!"

말을 더듬으면서도 할 말을 다하는 죄수를 남자는 조용히 바라봤다.

"오우... 일루안님... 너무 무서운데요?"

"뭐.. 그.. 그런가?"

"아빌론.. 보다 더 큰 것 같죠?"

"그런 것 같구만.."

일루안과 칠러웨이는 일어난 남자의 덩치를 보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는데 덩치가 크다고 생각한 아빌론 보다 그는 1.5배가량 더 커 보였다.

"먹어."

".... 뭐.. 뭐?"

"먹으라고."

하지만 긴장되는 순간도 잠시 남자는 자신의 품속에서 나뭇잎으로 묶어놨던 자신의 빵조각을 건넸다.

"고.. 고맙다."

"대신, 이곳에서는 싸우지 말도록 해."

"그.. 그래."

남자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움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범죄자들 또한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흘깃흘깃 남자를 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칠러웨이."

"예."

"일단.. 녀석들을 통제할 방법이 대충 생각나기는 했어."

"아.. 뭐.. 저도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무언가 느낌이 온 듯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일루안은 빵 몇 조각을 챙겨 남자에게 다가갔다.

"반갑네."

"...."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가?"

"꺼지쇼."

일루안의 친화성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며 그를 노려봤다.

"뭐..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면 미안하네만 부탁할 것이 있는데?"

"귀족 새끼들은 상대 안 해."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귀족이 아니라서 말이야."

일루안은 조용히 그의 옆에 빵을 놓았고 남자는 말없이 빵을 집어 입에 넣기 시작했다.

"부탁이 있네만, 얘기 좀 할까?"

".... 싫은데."

순식간에 세 개의 빵을 먹은 남자는 일루안의 정중한 부탁에도 고개를 내저었고 그의 옆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범죄자들은 무시당하는 일루안을 보며 비웃었다.

"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며 역시 일루안은 쉽지 않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굴렸다.

"살아돌아가고 싶지 않나?"

"...."

"자네 가족도 있을 텐데?"

".... 개소리할 거면 꺼지쇼, 진짜 화나기 전에.. 가족 이야기 한 번 더 꺼내면 바로 죽을 줄 아쇼."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남자의 이마에 핏줄이 섰고 그의 진한 살기에 일루안 조차 식은땀을 한 방울 흘렸다.

"내가 자네에게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어."

"그딴 거 필요 없고, 귀족은 싫으니까 꺼지라고!"

결국 알짱대는 일루안에게 화가 터진 듯 남자는 먹던 빵을 멀리 집어던지며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진정하지? 너는 내가 귀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그러니까 죽기 전에 꺼지라는 것 아니요!"

"나는 대화를 원하네."

"나는 하기 싫다고!"

"만약 손에 든 그 검을 나에게 휘두른다면 온전하게 가족에게 살아돌아가기는 힘들 거야."

남자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일루안은 협박 아닌 협박으로 그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가족 이야기는 그를 더 화나게 만들 뿐이었다.

"가족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고 했을 텐데!"

결국 남자의 검이 휘둘러지자 일루안은 검을 뽑으려 했지만 그의 엄청난 힘에 검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신에게 다가왔다.

'너무 만만하게 봤군.'

일루안은 결국 검자루까지 통째로 들어 올렸지만 그의 검을 막지 못했고 스쳐가는 주마등을 보며 눈을 감아야만 했다.

쩡!

"....?"

이미 죽었어야 할 자신이었지만 커다란 소리가 들리고 몸은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자 일루안은 조심스레 눈을 떴다.

"대화하고 싶다는데 왜 이렇게 흥분해?"

"...."

"뭐야 이제는 말까지 못 하는 거야?"

"고.. 고맙네 칠러웨이."

"물러서 계십쇼 일루안님."

"후우.."

자신의 검을 막아낸 칠러웨이를 보며 남자는 짜증이 난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칠러웨이는 빙글빙글 웃으며 재밌다는 얼굴로 그의 앞에 서있었다.

"네 말대로 흥분했군, 나는 싸우고 싶지 않으니 네 지휘관을 데리고 꺼져."

"말본새봐라? 어이, 말했잖아 이 사람은 지휘관이라고."

일루안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칠러웨이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사실 칠러웨이 손은 그의 막강한 힘에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 어억... 아르웬이 휘두른 검보다 더 아픈데?'

아픈 손을 꾹 참고 칠러웨이는 남자의 앞을 막아섰고 자신의 앞에서 꼬리를 내리지 않는 칠러웨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는 다시 한번 검을 들었다.

"그만!"

"...."

"두 사람 다 그만하게."

일루안이 앞으로 나서자 두 사람은 한 발짝 물러났고 칠러웨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이름은?"

".... 게리."

"그래 게리, 후우..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다른 귀족들처럼 자네를 위협하거나 겁박하려 온 게 아니야."

"...."

게리라 부른 남자는 일루안의 진심 어린 표정에 검을 내리고 그에게 계속 이야기해보라는 듯 턱을 들어 올렸다.

"내 이름은 아까 얘기했듯 일루안, 여기 있는 제1 토벌대를 지휘하게 된 지휘관일세."

"대충은 알고 있소."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겠군."

일루안은 남자가 다시 부드러운 태도로 나오자 안심한 표정으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 토벌대는 오합지졸이다.]

"알고 있소."

[그렇다면 자네에게 짧게 얘기하지, 이대로 숲에 들어가면 이 토벌대는 전멸이야.]

"...."

[아까 얘기했듯이 자네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내 말을 듣고 나를 따라와야 하네.]

말을 듣고 일루안의 얼굴을 본 게리는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을 할 시간은 주겠네, 만약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있다면 나를 찾아오게."

".... 알겠소."

모닥불 근처에 조용히 앉는 게리를 보며 칠러웨이는 아직까지 울리는 손을 바라봤다.

"올까요?"

"올걸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자신의 물음에 확신에 차 대답하는 일루안을 보며 칠러웨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띠어져 있었다.

"꼭 올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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