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 누군가는 언제나 나의 적이 된다. (25/90)

〈 25화 〉 누군가는 언제나 나의 적이 된다.

* * *

"이봐요!"

쾅쾅!

철창에 갇혀 어이가 없는 듯 소리치고 있는 남자, 칠러웨이는 계속해서 앉아있는 간수를 불러댔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제길!"

칠러웨이는 결국 손에 쥐고 있던 나무패를 벽에 던지고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후우..."

한숨을 내뱉으며 그는 이 세계로 와 당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되는 일이 하나 없었네."

계속해서 엮이는 일들에 칠러웨이는 지금까지 쌓여있던 감정들이 폭발할 것 같았지만 더 이상의 문제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왜 나만.."

반으로 부서진 나무패를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계속 떠올려 봤지만 자신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비켜라."

"아르웬님 안됩니다!"

"죄인을 만나는 건.."

"비키라고 얘기했어."

힘없이 앉아있던 칠러웨이는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감옥에 눈을 돌려 창살 밖을 보았다.

"안됩니다! 가시려면 저희를 베어내고..."

"정말 베이고... 싶으면 그렇게 해."

단호한 그녀의 말에 결국 성기사들은 길을 틀 수밖에 없었고 아르웬의 걸음이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자 칠러웨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칠러웨이."

"아르웬님 괜찮으십니까?"

칠러웨이는 자신이 잡히기 전 성국의 병사들과 기사들에게 둘러싸였던 그녀를 떠올리고 몸을 살폈다.

"나는.. 괜찮아."

"하.. 다행입니다."

"너는?"

철창 안에 갇혀있는 칠러웨이의 몸보다 먼저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에 아르웬은 그가 안쓰러워졌지만 칠러웨이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는 보시다시피 괜찮습니다."

"...."

하지만 아르웬은 한 쪽 벽에 부서져있는 나무패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이야?"

"아.. 예, 물론이죠 하하."

"꺼내줄게."

아르웬은 당장이라도 철창을 베어낼 듯 검을 뽑아들었지만 칠러웨이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왜...?"

"아르웬님이 절 억지로 꺼내면 함께 피해를 입습니다, 그냥 일단은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르웬님 때문은 아니니까요."

"...."

아르웬은 칠러웨이의 말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숙였다.

"너는... 나를 많이 도왔는데.."

"아르웬님도 제 목숨을 구해주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어떻게든 꺼내줄게."

아르웬의 말에 칠러웨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 주세요."

"...."

"제가 잘못이 있건 없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이곳에서 강제로 나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때가 되면 제가 잘못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내보내주겠죠."

"너는 정말..."

바보 같은 칠러웨이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아르웬은 품속에 챙겨두었던 종이 한 장을 칠러웨이에게 건넸다.

"여기."

"이건.."

"칠러웨이.. 너에 대한 수배서야.. 토벌대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

칠러웨이는 그 순간 토벌대 내에서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감옥에 가뒀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의심했다.

"도대체.. 누가?"

"일루안 후작은 아니야."

".... 그건 압니다.. 일루안님과 함께 죄를 지었다고 쓰여있으니.."

일루안까지 함께 체포되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칠러웨이는 관자놀이를 꾹꾹 매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잠깐."

"...?"

칠러웨이는 그제야 리에티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이를 뿌드득 갈았다.

"리에티..."

"...."

"리에티 그자입니다.. 분명 지휘를 망치고 일루안님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빠져나가려고 한 것 같은데..."

손톱을 물어뜯으며 칠러웨이는 감정을 삭히려 노력했지만 리에티에 대한 역겨움이 목 끝까지 차올라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진정해 칠러웨이."

".... 진정할 수 없습니다... 지휘를 못해 수많은 사람들을 사지로 몰았으면서.... 오히려 사람들을 살려낸 일루안님을 가둬버리다니... 그 정도로 역겨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

흘러나오는 칠러웨이의 살기에 아르웬은 그의 손에 살며시 자신의 손을 올렸다.

"괜찮아 칠러웨이, 내가 꺼내줄게."

"...."

그제서야 조금 진정이 된 듯 칠러웨이는 아르웬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고 맑은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 듯 그녀의 파란 눈은 그에게 괜찮다는 듯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칠러웨이?"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칠러웨이는 고개를 돌려 눈을 가렸고 그런 칠러웨이를 아르웬은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끄흡.."

"괜찮아.."

".... 크응.."

한참을 눈물을 흘리던 칠러웨이는 퉁퉁 부은 눈으로 코를 먹으며 말했다.

"아르웬님."

"응."

"다시 얘기하지만.. 꺼내주실 필요 없어요."

".... 어째서.."

"죄가 없으면 나중에라도 꼭 밝혀질 테니까.. 게다가 저 혼자 잡힌 게 아니라 일루안님도 함께 잡힌 거잖아요?"

"응.. 그렇지..."

"일루안님이라면 주변에 그분을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이 꽤 많을 겁니다, 나가게 된다면 분명 저를 데리고 나가주실 거고요."

"하지만.. 그를 믿어?"

"예.. 뭐.. 지금 상황으로는 믿는 수밖에 없죠 하하... 아르웬님은 제가 죽기 전까지 나서지 마세요."

"...."

"농담입니다 하하하.."

죽는다는 얘기가 나오자 아르웬의 얼굴이 심각해졌고 칠러웨이는 농담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우울해지는 분위기에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르웬님."

"...."

"가셔야 합니다."

두 사람의 침묵을 깬 것은 한 성기사였는데 마치 자신을 벌레 보는 듯한 성기사의 눈에 칠러웨이는 발끈했지만 순간적으로 뽑혀져 나오는 아르웬의 검은 성기사의 목을 노렸다.

"얘기 중."

"... 하... 하지만... 교황님께서 빨리 모셔오라고..."

"... 나에게 명령하지 마."

"가.. 가셔야 합니다.. 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르웬에게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나서야 성기사는 그녀에게 굽신댔다.

"아르웬님 가보세요."

"...."

"아르웬님은 아르웬님의 일이 있으시잖아요."

"알겠어."

"위험하니까 다음부터는 먼저 나서지 마시구요."

"응."

"그럼 나중에 봬요."

"꼭 다시 보러올게."

아르웬은 그와 떨어지기 아쉬운 듯 자꾸만 뒤를 바라봤지만 칠러웨이는 그저 웃으며 그녀를 보내주었다.

"하아.."

그녀가 감옥에서 나간 후 칠러웨이는 바닥에 철퍼덕 엎어져 멍하니 벌레가 기어 다니는 천장을 바라봤다.

"칠러웨이."

"...."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 무렵 남성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잘 있었나?"

"... 클라인님."

"미안하네 구해주지 못해서."

토벌대에서 봤던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수척해진 그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많이 고생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습니까?"

"... 용병들이 있으니 자네가 잡혔다는 소식을 금방 들었네 내 동료가 이곳에 잡혀있기도 하니 면회는 쉽지."

"그래도 시간이 좀 걸리셨을 텐데.."

"일루안님께서도 자네가 그 낭떠러지에서 떨어졌으니 살았다면 분명 톤 왕국을 통해 이곳 영지로 올 것이라 말씀도 하셨으니 대기하고 있었네."

클라인을 보며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동선을 예측한 일루안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루안님은 무사하십니까?"

"... 왕궁에 있는 감옥에 갇히셨네.. 지금은 무사하시지만 아무래도 감옥의 환경이 그리 익숙하지 않아서 금방 지치실 거라 생각하네."

"큰일이네요.."

"자네에게는 일루안님의 말을 전달하러 왔지만 아무래도 이곳은 중범죄자들이 갇히는 곳이라 오래 있지는 못해."

"예."

클라인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창살에 가까이 다가왔다.

"잘 듣고 기억해두게, 자네는 다른 중범죄자들과 함께 토벌대에 참가하게 될 거야."

".... 또 말입니까? 게다가 중범죄자들과 함께한다는 거면..."

"화살받이랑 똑같지."

"하아..."

칠러웨이는 1차 토벌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숲의 한 가운데 들어가 잠도 자지 못하고 몬스터들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해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한편으로는 기회라고 생각하게."

"무슨 기회 말입니까?"

"그 토벌대는 자네 말대로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인 토벌대야 다르게 생각하면 누가 죽었는지 성국에서는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거지."

"..."

"그 토벌대의 대장은 일루안님이고."

"그렇다면.."

"일루안님은 말씀하셨네, 화살받이 토벌대가 완성되면 자네가 바로 도망가도 신경 쓰지 않겠다고."

".... 하지만 제가 도망가면 일루안님은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 나도 모르네."

"모른다뇨?"

"그런 토벌대의 대장을 맡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

"...."

"죽으러 가라는 거나 마찬가지네, 교황께서는 성국에 많은 도움을 준 일루안님을 처형하시는 것보다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셨겠지."

"어떻게 공적을 가진 사람에게..."

"그 공적으로 토벌대에 참가하는 대신 자네에게도 기회를 준 것이네."

"감사해야 할지... 원망해야 할지..."

"자네라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셨으니까."

"그곳은 불가능합니다."

클라인의 말에 칠러웨이는 고개를 내저었지만 클라인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또 일루안님이 하신 말씀이 있네."

"..."

"무슨 수를 쓰던 살아남게, 살아남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 그게 쉽다면.."

"쉽지 않겠지 하지만 자네는 기회를 받았어 그 기회를 활용해야 할 것 아닌가?"

"예.."

"살아남을 수 있네."

"살 확률은 적지만..."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벅벅 긁는 칠러웨이를 보며 클라인은 문양이 그려진 배지를 하나 건넸다.

"살아남는다면 꼭 나를 다시 찾아오게."

"... 이건."

독수리 문양이 그려진 용병단의 징표는 꽤나 낡아 녹슬어 있었지만 계속해서 그 배지를 품고 다닌 클라인이 얼마나 자신의 용병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운영하는 용병단의 징표네."

".... 알겠습니다."

"토벌대 조직은 일주일 뒤 출전은 이주 뒤야, 중범죄자들 중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골라내고 이송해야 하니까."

"그동안 뭘 하면 되는 겁니까?"

"죽지 않게 몸을 만들게, 또 살아남을 방법만 생각하고."

"...."

"그리고 절대 굶지 말게."

"알겠습니다."

"꼭 살아남는 걸세."

"예예..."

"약속하게."

"네.."

칠러웨이의 말을 다 듣고 나서야 클라인은 안심이 된 듯 자신을 데리러 온 간수가 계단을 내려오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가시죠."

"알겠네."

"아 그리고 기억하게!"

멍하니 배지를 바라보던 칠러웨이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소리치는 클라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는 언제나 나의 적이 된다는걸! 살아남는다면 아무도 믿지 말게! 아무도!"

무언가 뜻이 담겨있는 듯한 클라인의 말에 칠러웨이는 중얼거리며 주먹을 꾹 쥐었다.

"아무도.."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