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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을 갖고 있다. (17/90)

〈 17화 〉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을 갖고 있다.

* * *

"공격!"

"공격!!"

말위에 검을 들고 서있는 리에티가 소리치자 그에 맞춰 병사들은 창을 들고 뛰어나가 다가오는 키메라에게 달려들었다.

"끄아악!"

몇몇 미흡한 병사가 키메라의 발에 밟혀 죽었지만 그들은 능숙하게 긴 창으로 키메라의 움직임을 막아냈다.

"기사들은 키메라의 목을 베어내라!"

다시 한번 내려지는 리에티의 명령에 기사들은 뛰어나가 키메라의 목을 베어내려 했지만 생각보다 단단한 몸체와 키메라의 움직임을 막고 있던 긴 창 때문에 몇몇 기사들이 한 번에 검을 휘두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안되겠어..."

"칠러웨이, 이건 기사들의.."

"비키세요."

에일렌이 앞으로 나서는 칠러웨이를 막아서려 했지만 칠러웨이는 그녀를 살짝 밀쳤다.

"그만 죽어!"

키에에엑!

"후우.. 후우... 제기랄!"

결국 참다못한 칠러웨이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오고 그가 직접 나서서 검을 휘두르고 나서야 상황은 정리됐다.

".... 고기 방패로 병사들을 바치고 나서야 나서는 '본진'이 결국 이 정도 밖에 안되다니.. 이래서는 토벌은 무슨 전멸이야."

칠러웨이의 혼잣말처럼 상급 키메라 한 마리에 그들은 열 명의 병사의 희생은 기본이었고 기사들 또한 키메라의 공격에 무사하지 못하고 싸늘한 시체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칠러웨이 누가 나서라 했지?"

"아무도 나서라고 하지 않았지."

리에티의 신경질적인 말투에 칠러웨이는 몸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그의 앞으로 다가가 위협적인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리에티 당신 이런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다간 토벌은커녕 여기 있는 모두가 죽어."

"신경 쓰지 말고 자리로 돌아가라, 너는 모르겠지만 이게 칠라렌 성국 토벌대의 방식이다."

"...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리에티 네가 진정 지휘관이라면 그 방식을 바꿔."

"네가 뭘 안다고...!"

"그만하게."

두 사람의 감정이 극한까지 치달을 무렵 일루안이 직접 나서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리에티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이건 칠러웨이의 말이 맞네,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모두 전멸할 거네."

"....."

"릴 왕국의 전장에 참여해본 자네도 알지 않는가? 지금 '그 남자'가 이 숲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에 대해 대비해둘 필요가 있어."

"예 일루안 알겠습니다.."

"그리고 욱하는 성질 좀 버리게, 여기 와서 자네를 봤을 때 그 버릇이 고쳐진 줄 알았더니 전혀 나아지지 않았구만 토벌대의 부사령관이라면 그에 맞는 인품을 갖춰야지."

"예."

"허울뿐인 사령관이지만 이곳에서는 내가 명령을 내리겠네 동의하나?"

마치 아버지처럼 훈수하는 일루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리에티를 보며 칠러웨이는 속이 뻥 뚫린 듯 마음이 편해졌다.

"일단 이곳에서 야영을 하고 내일 새벽에 다시 전진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리에티가 스트레스를 받은 얼굴로 조용히 사라지자 그제서야 일루안은 굳은 얼굴 표정을 풀고는 말에서 내려와 칠러웨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맙네."

"아닙니다."

"리에티 저 녀석은 이 칠라렌 성국의 군 지휘관의 다음 후계로 내가 점찍어 두고 있는 녀석이지만 자네보다 판단이 서질 않으니 아직도 한참 멀었군."

"..."

"하하하!"

굳이 문제 될 말에 대답하지 않고 미소로 답하는 칠러웨이가 마음에 드는 듯 일루안은 크게 웃고 그의 등을 팡팡 때렸다.

"자네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 뭘 말입니까?"

"이 상황."

일루안의 질문에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이어졌지만 칠러웨이는 그저 그의 얼굴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애태워 죽일 생각인가? 얼른 말해보게."

"... 대답하기 전 일루안님에게 질문하겠습니다."

"그래."

"저희는 '토벌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사냥하는 입장입니까? 사냥당하는 입장입니까?"

"...."

일루안은 칠러웨이의 질문에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빠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답이 나왔다.

"토벌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사냥하는 입장이 맞지."

"예, 하지만 아시다시피 저희는 사냥 당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부정하지 않겠네."

"일단 저는 이런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왜 병력을 나누어 이곳에 왔는지 지휘관의 생각이 이해도 안 될뿐더러 굳이 희생을 치르려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맞네."

"또 저는 병사들 대신 기사들이 먼저 앞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확실한 건 먼저 키메라의 발을 잡아두는 역할을 하는 병사들의 긴 창이 공격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음."

일루안은 칠러웨이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칠러웨이는 이어서 그의 생각을 일루안에게 밝혔다.

"또한 병사들 보다 기사들이 먼저 앞으로 나가 키메라를 쳐야 합니다, 그들은 일반 병사들 보다 실력도 좋은 데다가 젊어 움직임도 좋고 키메라의 움직임을 잡아두는데 저 긴 창보다도 더 뛰어납니다."

"동의하네."

"그 후에 병사들이 갈고리를 연결한 밧줄로 키메라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기사 단장들이나 저 굵은 목을 가진 키메라들의 목을 한 번에 딸 수 있는 이들이 나서서 마무리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면 한 마리당 열 명이라는 큰 피해가 없이 끝나거나 소수의 희생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좋아 의견을 반영하지 이봐! 너희 저기 가서 상자 좀 가져오고! 기사들은 자기가 속한 기사단의 단장들을 데려와!"

칠러웨이의 말에 일루안은 흡족한 표정으로 몇몇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그들은 각 영지의 기사 단장들을 일루안이 명령을 내려 가져온 상자들 앞으로 데리고 왔다.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나?"

"예.. 그런데 왜 저희가..."

일루안이 칠러웨이가 제시한 의견을 기사 단장들에게 얘기했지만 이미 높은 작위를 가진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작위의 편안함에 익숙해져 앞으로 나서기 싫어했다.

"하기 싫나?"

"예?"

"하기 싫냐고."

하지만 일루안의 표정이 갑자기 무섭게 바뀌며 그들을 압박하자 기사 단장들은 당황했는지 서로가 눈치만 볼 뿐이었다.

"하기 싫으면 네 녀석들의 주인에게 찾아가서 얘기해라 '저희가 사령관인 일루안님의 명령이 불합리하게 생각되어 거부했고 일루안님이 자신의 말이 듣기 싫으면 당장 여기서 꺼지라고 했다.'라고 전해, 그리고 돌아가서 키로스님이 정해주신 신성한 교황님의 지령을 받고 전장에 나온 지휘관의 명령을 반대한 죄로 참수당하던 말던 알아서 하라고 하고."

"이.. 일루안님."

"꺼져 더 이상 네 녀석들은 꼴도 보기 싫으니까."

"저희가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왜 해?"

"그.. 그게..."

"일단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니 봐주긴 하겠지만 단 한 마리의 키메라의 목도 베어내지 않으면 명령 불복종으로 그대로 돌려보내겠다."

"예! 알겠습니다!"

능숙하게 나이가 많은 기사단장들을 다루는 일루안을 보며 칠러웨이는 감탄했고 일루안은 뒤를 돌아 그에게 윙크한 후 기사 단장들을 다시 너그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공을 많이 세우면 세울수록 상을 줘야겠지, 가장 많이 키메라의 목을 따오는 녀석에게 남작의 자리를 주겠다 또 네 녀석들이 원한다면 너희의 주인들도 귀족 계급을 올려주도록 하겠어 넘쳐도 상관없으니까 꽉 채워오도록."

"예!"

그들은 순식간에 커다란 상자를 들고 자신의 기사단으로 돌아가 바쁘게 명령을 내렸고 일루안은 기사 단장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거 정말 남작 작위를 줍니까?"

"그래 전장에서 작위를 내리는 건 교황님이 주신 내 특권이지, 아 물론 자네는 예외야."

".... 좀 해주시면 안 됩니까?"

"저기 두 사람이 자네를 눈 시뻘겋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내 욕심으로 작위를 내리면 아마 암살당하지 않을까? 나는 오래 살고 싶어서 말이야."

"에휴."

일루안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허허 웃으며 칠러웨이의 어깨를 두드렸지만 칠러웨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쨌든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아마 나 혼자 결정을 내렸다면 분명 머뭇거렸겠지."

"어차피 하시려고 한 일 아닙니까?"

"뭐 그렇긴 하지만.. 나는 꽤나 우유부단해서 말이야."

일리안의 말에 칠러웨이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느껴지는 살기에 다시 얼굴을 굳혔다.

'한 번 비슷한 살기를 느껴봤는데.'

얼음장같이 숲의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외부인의 침입에 깍깍거리며 울던 까마귀들도 조용해졌다.

".... 리에티!"

"압니다."

몸이 굳는 듯한 살기에 일루안은 정신을 차리고 리에티를 불렀지만 리에티 또한 살기의 원인을 찾으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으흥~."

이윽고 한 여인이 웃으며 나타나자 리에티는 얼굴을 찌푸리며 검을 뽑아들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성녀님."

"으응?"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이런 숲에서도 고급 천으로 만들어진 검은 원피스를 입은 채 양산을 들고 있었다.

"리에티~?"

기사들의 등에 가려진 여인을 칠러웨이는 까치발을 들고 조용히 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악녀의 모습을 한 여인은 아름다운 큰 눈을 가졌지만 검은 화장 때문에 악독해 보였다.

"예, 리에티입니다."

"호오.. 어쩐지 네가 귀족들은 모았나?"

"제가 모았습니다."

"일루안~? 오랜만인걸?"

"예."

일루안은 조용히 리에티의 검이 더 나가지 않도록 그의 검에 손을 가져다 댔고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인 후 그녀에게 인사했다.

"일루안님."

"가만히 있게 리에티."

"네가 나설 줄은 상상도 못했어~."

"언제나 아름다우십니다."

"흐응~ 고마워~."

인사를 받는 여인의 얼굴은 일루안의 말대로 짙은 화장과 갑자기 부는 바람에 내려온 검은 면사포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가려져 있음에도 아름다움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이런 위험한 숲에서도 왜인지 모르게 그녀의 입에서는 여유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일루안이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이 환영을 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넷째 성녀님."

"음~ 그래 그러지 뭐~."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숲의 어두운 분위가 사라지며 얼음장 같던 분위기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별거 아니야~ 일루안 당신이라면 당연히 들어줘야지."

"저 사람 누굽니까 클라인?"

클라인에게 슬며시 다가온 칠러웨이가 툭툭 치며 묻자 그는 긴장된 표정으로 조용히 얘기했다.

"네 번째 성녀인 마리아님이네."

"네 번째 성녀?"

'엘라 말고는 다들 위험하다고 하더니..'

엘라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풍기는 네 번째 성녀 마리아의 모습에 칠러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

"으응~?"

"내가 멋대로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 했을 텐데."

"아르웬.. 나를 구박하는거야? 너무해.."

".....!"

잠시 후 그녀의 옆으로 조용히 나타난 한 여인을 보고 칠러웨이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분명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였던 여인의 모습이었고 달라진 점이라면 전과 달리 키메라의 피에 새하얀 원피스가 제 색을 잃고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응?"

"허억."

그녀와 눈을 마주친 칠러웨이는 숨을 삼키며 뒤로 숨었지만 짧은 순간에도 그를 똑똑히 본 그녀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기사들을 밀치고 칠러웨이를 찾으려 했다.

"아르웬님."

".... 비켜라 리에티."

"이들은 교황님의 명령을 받은 토벌대입니다."

"리에티 비키라 얘기했는데?"

"교황님의 명령을 무시하겠다는 겁니까?"

칠러웨이가 봤었던 아르웬의 졸린 눈이 무섭게 바뀌며 그녀는 피가 뚝뚝 흐르는 검을 들어 올렸고 리에티도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 검자루를 꽉 쥐었다.

"하아.. 그만그만."

결국 그녀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칠러웨이는 그녀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르웬.. 이 당신이었습니까?"

".... 그래."

아르웬은 칠러웨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시 졸린 눈을 하고 그의 앞에 섰다.

"피나 좀 닦읍시다."

"...."

"피 냄새나니까 닦아요."

아르웬은 자신의 몸을 살펴보고는 칠러웨이가 건네준 헝겊을 받아 얼굴에 묻은 피를 이리저리 닦아냈다.

"왜 저를 찾으시는 겁니까?"

"얘기..."

"... 예?"

말없이 칠러웨이를 지켜보던 아르웬은 그의 소매를 잡았다.

"얘기.. 하고 싶은데?"

"아 예.."

하지만 칠러웨이는 마리아가 신경 쓰이는 듯 그녀의 눈치를 봤지만 마리아는 어깨를 으쓱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리에티."

"..."

"어쩔 겁니까?"

리에티는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에일렌을 바라봤다,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였지만칠러웨이를 데려가는 아르웬을 지켜보는눈은 어떤 사람보다 차분했다.

"상관없습니다.. 에일렌 만약 일이 틀어졌다거나 아르웬에게 간다면..."

"..."

"저 남자를 죽일 거니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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