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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을 갖고 있다. (13/90)

〈 13화 〉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을 갖고 있다.

* * *

조용한 전장 한가운데 불이 켜진 막사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해."

툴툴거리며 불만을 표하던 남자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

자신을 노려보는 기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남자는 그들을 물어뜯는 대신 육포를 꺼내어 잘근잘근 씹어 넘겼다.

"칠러웨이."

"아 클라인."

그렇게 긴장감이 고조되던 중 칠러웨이는 수프를 건네는 클라인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계속 파커 도련님을 기다리고 있었나?"

"예, 뭐.. 아는 사람도 없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칠러웨이는 먹던 육포를 수프에 찍어 먹었다.

"그렇겠지."

"예."

"아까 했던 말에 대해서 뭐 좀 물어봐도 되겠나?"

"예."

클라인은 목소리를 조용히 낮추며 칠러웨이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우리가 받은 계약서네."

"음."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의 내용을 보고는 칠러웨이는 아무 말도 없이 클라인과 눈을 마주쳤다.

"이게 평범한 용병들의 계약서입니까?"

"뭐, 그렇지."

"기사라는 작위가 그렇게 당신들에게 중요합니까?"

계약서의 내용은 칠러웨이에게는 충격적이었다, 기사 작위를 원한다면 토벌이 끝나는 날까지 피론을 주인으로써 섬기고 그를 지켜야 했으며 그뿐만 아니라 주요 전력인 기사들 또한 지켜내야만 했다.

"용병들이나 자유기사들이나 목숨 거는 일임에는 틀림없네요."

"뭐 그렇지."

"그래도 기사 작위를 원하지 않으면 포기한다는 사항도 있으니.."

"하지만 귀족가에 속한 기사들은 그만큼 부와 명예를 누리네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일반 사람들은 당연히 받아들일 사항이지."

클라인의 말에 칠러웨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용병들은 상급 키메라들이 튀어나오는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으며 자신들이 살아남아 기사들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클라인님은 욕심 있으십니까?"

"... 나는 없네, 그저 내 부하들이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커."

"그렇다면 제가 말한 대로 하십시요."

"도망.. 쳐라 그건가?"

"예, 계약서에는 목숨의 위협을 받았을 때 받은 돈을 뱉어내고 도망치는 것에 대해서는 안된다고 쓰여있지 않습니다 그저 돈을 받았으니 목숨을 다해 지킬 수 있는 한 기사들을 지키면 기사 작위를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니... 클라인님은 욕심이 없다면 상급 키메라들을 만났을 때 바로 뒤돌아 숨으세요."

"... 가능하다면."

"예 꼭 도망치세요."

클라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칠러웨이는 걱정스러웠는데 자신의 생각보다 우직한 그가 자신을 부하를 버리고 도망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려웠다.

"칠러웨이."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막사 입구의 천이 걷혀지며 에일렌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밖에 나왔다.

"나왔습니까 파커?"

에일렌의 정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아 칠러웨이는 그녀를 아직까지 '파커'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네, 얘기는 전부 끝났어요.."

"표정을 보아하니 대충 무슨 일인지는 알겠네요."

칠러웨이는 피식 웃으며 에일렌의 어깨를 툭 치고는 자신의 짐을 챙겨들었다.

"파커 도련님,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클라인이라고 했나요?"

에일렌은 클라인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가지고 나온 지도의 한 가운데를 가리켰다.

"본진이 이곳에 도착하면 숲 한가운데까지 밀고 나갈 겁니다.."

"역시나."

클라인은 예상했던 일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급 키메라들이 득실댄다는 것을 파악하고 나서도 아무런 전략 없이 밀고 나가는 모습이 참.."

"너, 방금 뭐라 했지?"

칠러웨이가 소신껏 발언하자 한 기사가 기다렸다는 듯 검을 들고 그에게 다가왔다.

"아무 말도."

"방금 피론 도련님을 모욕하지 않았나?"

"뭐.. 그렇게 들렸으면 사과."

몰아붙이는 기사의 말에 칠러웨이가 손을 들어 까딱 인사하자 몇몇 기사들이 화난 얼굴로 천천히 다가왔다.

"이 자식이 건방지게.."

"그만하세요."

공작가에서 꽤나 높은 지위처럼 보이는 남자가 칠러웨이의 어깨를 툭 밀치자 에일렌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남자는 그의 정체를 아는지 당황하더니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하지만 에일.. 아니.. 파커 도련님! 피론님을 모욕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군요."

처음 본 에일렌의 살벌한 표정에 쫄아 뒤로 물러나는 기사를 보며 칠러웨이는 '쿡.'하고 웃음소리를 내며 뒤를 돌았다.

"나중에 보자 건방진 나무패 자유기사."

"아 예."

끝까지 칠러웨이를 도발하는 모습에 파커는 열받은 듯 검을 뽑아들려 했으나 칠러웨이는 그를 막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을 무시했어요 칠러웨이."

"그쯤 하면 됐습니다, 나무패 자유기사는 이 정도 취급이 다니까."

".... 하지만."

"애초에 당신은 제 주인도 아닙니다, 이렇게 열 낼 필요 없어요."

"...."

칠러웨이의 말에 에일렌은 안타까운 듯 그를 바라봤지만 칠러웨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그워어어..

"주인이 사라지니까 날뛸 때가 됐나 보네요."

주변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와 느껴지는 살기에 클라인과 칠러웨이는 검을 뽑아들었다, 기사들 또한 실력이 없지는 않은지 일사불란하게 짐을 챙겨들고 키메라들을 대비했다.

"제 말을 까먹지 마세요 클라인."

"알겠네."

역시나 키메라들은 곧 모습을 드러냈고 칠러웨이는 검을 붕붕 돌리며 가장 먼저 앞으로 뛰어나갔다.

"칠러웨이!"

"대강 막을 테니 모두 전투준비를 갖추라고 전하세요!"

날아오는 키메라의 팔을 손쉽게 날려버리고 칠러웨이는 날렵하게 움직이며 중급 키메라의 목을 따냈다.

"저거 나무패 기사 맞아?"

용병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지만 칠러웨이는 여유롭게 그 소리들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제길, 몇 마리야?"

빨간 눈들이 수십, 수백 개가 나타나자 칠러웨이는 감당하기 힘든 듯 뒤로 물러났지만 어느새 준비가 끝난 기사들이 뛰어나와 칠러웨이에게 달려드는 몇몇 키메라들을 처리해냈다.

"실력이 있군 나무패."

"쯧."

아까 전 자신을 무시했던 기사가 눈을 찡긋거리자 칠러웨이는 더러운 것을 봤다는 듯 눈을 비비고는 다시 검을 들었다.

"호위 대는 피론 도련님과 파커 도련님의 주위를 보호해라! 나머지 기사들은 창병들과 함께 전진하지 못하게 막는다!"

"예!"

몇몇 병사들이 키메라의 공격과 함께 하늘 위로 날아갔지만 훈련이 잘 되었는지 그들은 눈도 꿈쩍하지 않고 방패와 창을 들고 기사들의 앞에서 키메라들을 막아섰다.

"이야.."

그들의 모습을 보며 칠러웨이는 그들의 정신이 '기사'라는 작위에서 나온 힘인 것을 알았기에 다른 의미의 감탄을 내뱉었다.

"기사들을 보호해!"

병사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명령하자 칠러웨이는 그 모습에서 오히려 문제를 느꼈다.

"이상한데.. 분명 여기가 본대라고 하지 않았나? 저러면 움직이기 불편하잖아."

병사들이 자신을 에워싸는 통에 몇몇 기사들은 자신을 실력을 뽐내지도 못한 채 공격에 맞아 싸늘한 시체가 되어 쓰러졌고 그들을 지키지 못해 당황한 병사들은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병사들 빼고는 모두 죽은 파커의 부대보다도 못하잖아..? 본대라더니 완전히 오합지졸이네."

하급 키메라의 머리를 손쉽게 날리며 칠러웨이는 파커와 함께했던 기사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신참 병사들을 지휘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노련함을 이용해 방해를 받지 않으며 중급 키메라들을 손쉽게 처리했고 상급 키메라가 넘쳐나는 숲 가운데 부근까지 갈 수 있었다.

"파커."

"네 칠러웨이."

"병사들에게 기사들의 진로를 막지 말라고 명령하세요, 위험할 때만 돕는 게 맞습니다."

"아.. 네!"

에일렌이 자신을 보호하는 몇몇 기사에게 명령을 내린 후 일은 손쉽게 풀리기 시작했다.

"모두 죽여!"

기사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신참 병사들과 달리 노련함을 가진 병사들은 그들을 뒤에서 서포트하며 키메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해나갔다.

"... 다행이네."

더 이상 죽음을 보지 않아서일까? 마음이 편해진 칠러웨이는 열 마리가 넘는 키메라에 둘러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었다.

"에일렌."

"네."

"저자는 네 기사인가?"

피론이 눈빛을 빛내며 다가오자 에일렌은 고개를 내저으며 피론을 바라봤다.

"아뇨, 제 기사가 아니에요."

"저런 기사를 잡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

".... 오라버니는 신경 쓰지 마세요."

"하하하!"

칠러웨이를 대할 때와는 다른 싸늘한 목소리였지만 피론은 익숙한 듯 크게 웃으며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일렌 네가 형님의 기사들을 처리해 주어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구나."

"...."

"그 자들이 아직까지 남아있었다면 분명 '우리'에게는 큰 후환이 됐겠지."

귓속말로 자신에게 말하는 피론이 짜증이 나는 듯 그녀는 귀를 후벼팠지만 피론은 기분 나쁘게 웃었다.

"조용히 하세요 들리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저는 저자를 얻고 싶습니다."

".... 저자를 네가 얻는다면 우리는 큰 힘을 얻게 된다."

"약속하셨지요, 첫째 오라버니의 노기사들을 모두 처리한다면 저에게 공작가의 인사 지위를 주겠다고."

"그렇지, 나는 아버지의 자리만 얻으면 된다."

"...."

에일렌은 피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칠러웨이를 바라봤다.

"저자는 제 것이 될 겁니다."

"당연하다."

"이곳까지 무사히 저를 지킨 사람입니다.. 게다가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키메라들의 원흉까지 발견해 손쉽게 처리하고 나왔어요."

에일렌은 어떻게 된 일인지 동굴에 들어서기 전의 일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네 것이 아니라도 우리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남자다."

"저 남자를 공작가 기사단장의 자리에 앉힐 겁니다, 그리고 오라버니를 무시한 그 노망난 영감과 첫째 오라버니를 몰아낼 겁니다.. 꼭."

"널 위해 죽었다는 게링턴이 지금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구나."

"... 후후.."

피론의 비꼬는 듯한 말에 에일렌의 얼굴에서 잠시 슬픔이 스쳐갔지만 그녀는 키메라 사이에서도 날뛰고 있는 칠러웨이를 보며 주먹을 꾹 쥐었다.

"기다리세요 아버지, 당신은 우리에게 목숨을 구걸하게 될 겁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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