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화 〉 기회가 있을 때 도망쳐라. (10/90)

〈 10화 〉 기회가 있을 때 도망쳐라.

* * *

'죽는다.. 죽는다.. 이건 백퍼 죽는다.'

칠러웨이는 눈앞의 상황을 보며 생각했다,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을까? 학창 시절? 아니 그는 이렇게 큰 두려움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키르르르르..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키메라들은 입에 인간의 신체를 넣고 맛있게 씹어먹고 있었다.

".... 도망가게.."

"...."

"어서!"

자신을 믿고 따라왔던 파커의 병사들과 기사들은 모두 죽었고 게링턴은 왼팔을 잃은 채 키메라들의 앞을 가로막은 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당신을 두고 가면 파커는...!"

"허허허.. 괜찮아.. 도련님은.. 괜찮을 거야."

칠러웨이의 말에 게링턴은 허탈하게 웃으며 왼팔이 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것보게."

"....?"

"피가 이렇게 흐르는데 우리를 치료하던 치료사마저 죽었어.. 그리고 여길 자네가 뚫고 다시 칠라렌 성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봤자 가는 길에 시체가 될 거네 차라리 시간을 끄는 게 나아."

"...."

"고민 말고 파커님을 데리고 가게, 쯧.. 안타깝게도 이런 곳에 오셔서 많은 고생을 하셨어.. 도련님을 잘 부탁하네."

과거가 떠오르는지 그는 하늘을 보며 잠시 멍하니 서있더니 기절해 있는 파커를 안쓰럽게 내려다봤지만 게링턴은 다시 자신을 먹어치우려 다가오는 키메라들에게 집중했다.

"꼭 파커를 살리겠습니다 게링턴."

"그래.. 그래야지."

게링턴의 완강한 태도에 결심한 듯 칠러웨이가 파커를 들쳐 업고 뛰어가자 게링턴은 그제서야 안심한 얼굴로 비틀 비틀 거리면서도 검을 들었다.

"자.. 도련님을 위해서라도 너희들이 몇 초만 이곳에 머물러주면 좋겠구만."

게링턴이 키메라들을 막아세우고 있는 사이 칠러웨이는 엘라 때 그랬던 것처럼 거대한 나무뿌리 밑으로 숨어들었다.

"...."

"하아.. 하아.."

"제길..! 제길..!"

파커의 숨이 아직 붙어있는 걸 확인한 칠러웨이는 일행 모두가 자신의 앞에서 죽어가던 모습을 떠올렸다.

'살려주세요!'

'끄아아악!'

'파커님을..!'

'파커님을 보호해!'

'파커님만 살려라! 모두 목숨을 버리게 되더라도...!'

그들의 목소리가 아직까지 자신의 귓가에 맴돌고 있었고 게링턴마저 죽을 것이라는 생각해 칠러웨이는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굳지만 않았어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어.."

중급과는 차원이 다른 상급 키메라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던 그때 칠러웨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저 그 광경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제길! 제길!"

나무가 부서져라 내리친 칠러웨이는 멍하니 뿌리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을 바라봤다.

"아니야.. 아니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은 이곳에서 벗어나야 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칠러웨이는 그들 모두가 죽어가면서 공통적으로 지켜낸 한 사람을 바라봤다.

"당신을 살리려고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었어 그렇다면 나는.. 그들이 살려낸 한 사람만이라도 지켜야지."

조용히 자고 있는 파커를 업고 자신의 몸에 꽉 묶은 채 칠러웨이는 주변을 살피며 조용히 움직였다.

키이익...

".... 하나.. 둘? 셋인가?"

사엘라를 만날 당시에도 느껴보지 못한 살기가 느껴지자 칠러웨이는 파커를 뿌리 깊숙한 곳에 내려두고 몸을 숨긴 채 살기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인간?'

분명 저 멀리 보이는 모습은 괴상한 키메라들과는 달리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팔랑이며 조용하고 민첩한 발 놀림으로 키메라에게 다가간 그 존재는 순식간에 두 마리를 두 동강 냈다.

'저게 가능해?'

"...."

그렇게 멍하니 모습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그 존재가 자신을 바라보자 칠러웨이는 몸을 숨긴 채 숨을 들이켜고 입을 막았다.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제발 오지 마라..'

쿵!

쿵!

키에에에엑!

점점 가까워지는 키메라들의 비명소리에 칠러웨이는 눈마저 감고 몸을 더 움츠렸다.

"착각... 인가?"

조용한 여인의 목소리가 바로 자신의 위에서 들려오자 칠러웨이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소리가 들릴세라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 나도 많이 무뎌... 졌어."

스스스...

"헉... 헉..."

멍한 얼굴의 여인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칠러웨이는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

쩌억!

"히이이익!"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뿌리를 파고 들어오는 새하얀 검날에 칠러웨이는 깜짝 놀랐지만 공격을 빠르게 회피한 후 검을 뽑아들었다.

".... 인간이... 었나?"

"당연히 인간이다!"

".... 그렇군."

조용히 그를 지켜보던 여인은 졸린 눈으로 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칠러웨이를 놀리듯 걸어왔다.

"미안... 하지만 날... 이곳에서 본... 이상 죽어야겠어."

쩌엉!

"누구... 맘대로!"

키메라들을 순식간에 처리했던 검이 자신의 머리를 노리자 칠러웨이는 살기를 느끼고 검을 들어 올렸지만 그 충격에 손아귀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 막아?"

카앙!

"크으... 제길!"

쩌엉! 쩌엉!

자신의 검을 막은 게 신기한 듯 여인은 계속해서 거대한 검을 휘두르며 칠러웨이를 시험하듯 가볍게 공격해왔고 칠러웨이는 그 공격들을 힘겹게 막아냈다.

'사엘라보다 더 강해..! 그때처럼 방심했다면 손목이 아니라 모가지가 날아갔을거다..!'

"너.. 성국... 에서는 본 적이 없는 인물... 인데?"

"... 성국에 안 사니까 못 봤겠지!"

".... 그렇군."

그녀의 졸린 눈은 칠러웨이에 대한 궁금증으로 커져있었고 그녀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렸지만 저 멀리부터 다가오는 키메라들을 느끼고 칠러웨이에게서 몸을 돌렸다.

".... 가."

"....?"

".... 칠라렌 성국으로 가."

"뭔데 명령질을..."

"그리고 '아르웬'... 이라는 이름을 찾아와..."

"아르웬..?"

"그래, 이 숲에서... 네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여인이 키메라들과 싸우러 발걸음을 옮기자 칠러웨이는 뿌리 밑에 숨겨뒀던 파커를 다시 들쳐 업고 뛰기 시작했다.

"아르웬이고 나발이고 뭔지는 모르겠는데.. 손아귀만 터진 거면 다행이지!"

칠러웨이는 숲 깊숙이 들어온 지금 상황에서 홀로 남은 그녀의 말을 생각할 겨를이 아예 없었다, 많은 키메라들이 칠러웨이에게 다가오고 있었고 그는 파커를 더 안전하게 숨길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 제길.."

결국 가파른 바위로 만들어진 산 앞까지 몰린 칠러웨이는 결국 파커의 옷을 입에 물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끄응.."

이빨이 빠질 것 같이 고통스러웠지만 파커는 남자치고는 꽤나 가벼운 몸무게를 가지고 있어 그의 이빨은 안전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키메라들이 산을 기어올라오려 노력했지만 그들의 큰 몸집은 칠러웨이를 잡는데 무리가 있었다.

"제길..! 이빨 다 뽑힐 뻔했네..!"

결국 정신없이 바위 산 중턱까지 올라온 칠러웨이는 파커를 옆으로 내려놓고 자신이 올라온 아찔한 절벽을 내려봤다.

"아직도 안 가고 있네.."

키메라들이 아직까지 자신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자 칠러웨이는 지겹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 주저앉았다.

"이봐요."

"...."

자신의 옆에 누워있는 파커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칠러웨이는 그를 흔들어 깨웠지만 꽤 충격이 컸는 듯 미동도 하지 않고 기절해 있었다.

".... 어쩔 수 없지."

잠시 키메라들이 기어올라오는지 빼꼼 머리를 절벽 밑으로 내밀어 확인한 칠러웨이는 키메라들이 못 올라오고 계속 미끄러지는 것을 보자 벌러덩 뒤로 누웠다.

"참 이상한 여자였어."

아까 전 만난 졸린 눈의 여인을 떠올린 칠러웨이는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들을 떠올렸다, 자신을 죽이려 검을 휘둘렀지만 뭐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을 보내주고 홀로 키메라 사이로 뛰어든 그 여인은 그가 생각하기에 미친 여자인 것이 틀림없었다.

"쯧...강한 몸인 줄 알았더니.. 이 세계에서는 이게 평균이었나?"

현재 자신의 몸이 된 칠러웨이의 몸은 분명 강했으며 가벼웠고 그만큼 민첩했으며 힘 또한 전의 몸에 비하면 괴물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엘라, 의문의 여인, 아빌론은 분명 자신을 찍어누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빌론의 경우에는 내가 약한 줄 알고 덤벼서 이기긴 했지만 다시 붙는다면 분명 질 거야."

멍하니 생각을 하던 칠러웨이는 하늘이 어두워지며 밤이 다가오자 주변에 자라있던 마른 풀들을 뜯어 부싯돌로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절벽 중턱에 이런 공간도 있고 뭐 하는 곳이야...? 뭐가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우연히 발견한 절벽의 공간은 파커와 자신 말고도 몇 명이 더 누울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었는데 칠러웨이는 부자연스러운 그 공간에 이질감을 느꼈다.

"당최 뭐 때문에 생긴 곳인지.. 음..."

툭.. 툭.. 턱..

어떻게 날아왔는지 모를 나뭇가지로 벽을 툭툭 치던 칠러웨이는 뭔가 다른 소리에 벽을 만졌다.

"잠깐만.. 기다려봐.."

계속해서 이상하게 엮이는 일들에 지쳐있던 칠러웨이는 만약 이상한 것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고생할 길이 뻔히 보여 손을 벽에서 땠다.

"에휴.. 조용히 사는 게 제일 좋지 않겠어?"

드륵..

".... 어.. 어어?"

하지만 앞으로 내디딘 발밑이 푹 꺼지자 칠러웨이는 자신이 실수한 걸 깨닫고 이마를 탁 짚었다.

"하아.. 진짜.. 허구언날.."

쿠구구구..

"제기랄.. 이러면.. 어쩔 수 없잖아... 진짜로.."

갑자기 나타난 공간으로 쓰러져있던 파커가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자 칠러웨이는 욕지거리를 내뱉고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제발 나 좀 내버려 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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