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 기회가 있을 때 도망쳐라. (9/90)

〈 9화 〉 기회가 있을 때 도망쳐라.

* * *

"쿨럭!"

한 남자가 피를 토하며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무언가를 찾듯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

굉장히 화가 난 듯한 표정의 그는 자신이 왜 맞고 있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얼굴이었고 그는 그저 주먹을 꽉 쥘 뿐이었다.

"화가 나?"

".... 예."

"그럼 죽여보던가."

"뿌득.."

이가 부서지듯 갈렸지만 여인은 그가 무섭지도 않은지 그의 앞에서 약올리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왜 못일어나?"

".... 어째서 저를 원하는 겁니까...?"

"그거야 내 변덕?"

".... 조심하세요."

"쿡쿡... 그럼 죽여."

"...."

"날 죽여봐."

여인은 그에게 목을 내밀었지만 남자는 검을 들어올릴 힘조차 없어 바닥에 누워 헐떡이고 있었다.

"죽여 보라니깐?"

앙칼진 목소리가 그의 귓속을 후벼파며 자꾸만 신경을 건드렸지만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여인에게 쉽사리 덤벼들 수 없었다.

"못하면 하지도 말라.. 못배운거야?"

"...."

"반항조차 하지 못하면서 나에게 계속 덤빌려했구나..?"

"당신을 꼭 죽이겠습니다."

"후후.."

자신의 말에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로 여인이 다시 한번 다가오자 남자는 검을 다시 쥐고 힘껏 휘둘렀다.

캉!

"...."

"소용없다니깐?"

"큭.."

"어째서 이렇게 멍청하고 아둔할까..? 나에게로 오면 그저 편한 것을..."

"그건 죽는다고 해도 싫습니다."

"흥."

기분이 나빴는지 그녀는 남자의 머리를 한번 꾹 밞았지만 남자는 자주 있는 일인듯 그저 숨만을 고를 뿐이었다.

"당신.... 은 정말 인간인가? 도대체... 그런 힘이 어디서.."

".... 맞아, 인간."

남자의 물음에 잠시 행동을 멈춘 여인은 섬찟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잡았다.

"내 밑에서 일해."

"... 불가능합니다."

"엘라 그 여자가 지금 너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 그것도 불가능하겠지요."

"그렇다면 내 밑에서 일해, 목숨만은 살려주지."

"싫습니다."

"...."

쩡!

"컥.. 커헉.."

"쯧."

남자의 갑옷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그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여인은 그런 그를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혀를 찰뿐 더 이상 그를 죽이려 들지 않았다.

"기간을 충분히 주지.. 생각해 봐."

"....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짜증 나는 녀석."

피 냄새로 가득한 방 안에서 여인이 나가자 남자의 몸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든지 무너져 내렸다.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내쉬며 그는 어둠을 뚫고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봤다.

"엘라님 언제 돌아오십니까.."

"리에티님!"

"...."

회상하는 것도 잠시 여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기쁜 소식... 리에티님! 도대체 무슨 일이...!"

"쉿, 다른 이들이 들으면 일이 커진다 조용히 하고 있거라."

"하.. 하지만.."

"이렇게 부탁하지."

리에티가 부탁하는 것도 잠시 여러 발소리가 저택 안에 울려 퍼지며 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에티!"

"이 목소리는.. 엘라님이 돌아오신 건가....!"

"그게... 네.. 엘라님께서 막 도착하셨습니다."

".... 하아.."

리에티는 그녀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몰골을 보고는 황급하게 낡은 헝겊을 머리에 둘러썼다.

"리에티!"

"엘라님, 오셨습니까?"

"네! 그런데 그 모습은...?"

"아, 잠시 밭일을 돕느라.. 지금 바로 돌아오실 줄은 예상 못 했습니다."

애써 상처를 가리면서도 리에티는 엘라가 자신의 모습을 의심하지 않도록 고개를 숙였다.

".... 그런가요..?"

"네."

"... 정말.. 아무 일도 없던 거죠?"

"그렇습니다."

"알겠어요, 리에티를 믿을게요."

"감사합니다."

리에티는 자신의 피 냄새가 새어 나오는 방의 문을 살짝 닫고는 상기된 엘라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좋은 일이 있으셨군.'

엘라는 항상 자신이 원하던 것을 발견하거나 누군가를 도울 때마다 기쁜 얼굴로 자신을 부르고는 했는데 지금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우리를 도와줄 사람을 찾았어요."

"저희를 도와줄 사람 말입니까?"

"네, 키메라들을 처리하고 우리의 일을 도와줄 사람이 이 칠라렌 성국에 있어요."

리에티는 엘라의 뒤에 그림자처럼 서서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사엘라의 눈을 바라봤다.

"사엘라."

"예."

"믿을 만한 사람인가?"

"아빌론님 또한 믿음을 가지셨습니다."

"... 아빌론님 또한..?"

리에티는 조금 놀라운 일이라는 얼굴로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땠다.

"어떤 도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전투에 참여한 세 사람의 인망을 얻을 만큼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알아줘서 고마워요 리에티."

"네, 엘라님 하인들에게 목욕물을 준비하라 일러둘 터이니 일단 편히 쉴 준비를 하시길.."

"네!"

엘라가 총총걸음으로 자신의 방을 향하자 리에티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라 사엘라에게 손짓했다.

".... 리에티님."

"쉿."

"... 또 두 번째 성녀가.."

"그래, 찾아왔었네."

"그래서 그런 모습으로 계셨던 거군요."

"...."

사엘라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걱정하지 말라는 듯 리에티는 터진 입술로 애써 웃어 보였다.

"그 자의 실력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

"그자와의 전투를 통해 저는 패배했습니다."

"너와 검을 섞다니..? 백금패를 가진 자유 기사들도 버거워하는 너를 상대로 우위를 점했단 말인가?"

"그자가 자신의 실력을 너무 믿은 부분이 3할, 방심이 5할이었습니다분명 실력 면으로는 그자가 저보다 완전히 우위는 아니였지만.. 처음 제 검에 당황하지 않았다면실력차는 2할 정도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간당간당 했을 겁니다.."

"또 다른 특이사항은?"

"저를 적으로 오해한 성녀님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허어.. 아무리 성녀님의 도움이 있더라도 너를 상대로 이길 사람은 칠라렌 내에서도 세 사람밖에 없을 텐데."

"그자와의 전투를 통해 알아낸 바로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사엘라는 자신이 봤던 그대로를 리에티에게 설명했다, 잘라도 금방 회복되어 버리는 몸과 성녀의 치료력을 두 배, 아니 그 이상으로 흡수에 버리는 괴물 같은 능력은 리에티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건 분명 심상치 않은 인간이다."

"예 또한 신체 능력, 실력 모든 게 상위급이었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커다란 보석 덩어리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정도라면 필시 리에티님 보다 더 뛰어난 검사가 될 겁니다.. 제대로 실력만 갖춘다면 두 번째 성녀 또한 상대가 되지 않겠죠."

"그 정도란 말인가? 그자의 정체는? 알아봤는가?"

"나무패의 자유 기사입니다."

"나무패?"

리에티는 자유 기사라는 말에 얼굴을 찌푸렸지만 개나 소나 전부 딴다는 나무패를 가졌다는 사엘라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네가 시험 삼아 자유 기사가 되었을 때 무슨 패를 받았지?"

"쌓은 공적이 부족해 백금패 대신 금패를 받았습니다."

"적어도 그자도 금패라는 소리군.."

"네."

"그래서 그 남자는 지금 어디 있지?"

리에티의 눈이 반짝이며 사엘라를 향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이곳에는 없습니다."

"하아.. 아쉽군.. 그런 실력자가.."

"하지만, 저희를 돕겠다며 공적을 쌓으러 토벌대에 합류한 것 같습니다."

"토벌대에..?"

"네."

".... 그자와 함께 했던 숲이 어디라고 했지?"

"미네르 숲입니다."

"나는... 날이 밝는 대로 나는 그 남자를 찾으러 출발하지."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리에티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엘라는 당황한 듯 질문해왔지만 리에티는 자신의 짐을 챙길 뿐이었다.

"리에티님!"

".... 엘라님이 갔던 곳은 미네르 숲의 경계 부분이다, 내 부탁에 두 번째 성녀가 특별히 지정해 준 곳이지.. 경계선은 숲 깊숙한 곳과 달리 하급의 키메라들이 나타나지만 숲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상황은 달라져."

"네?"

"상급 그 이상들이 바글바글 한 곳이 미네르 숲 안쪽이다.. 상위급 키메라들이 매년 나오는 것을 방지해 보낸 첫 토벌대는 그 녀석들의 '먹이'와도 같아.. 그저 그들은 오합지졸로만 이루어진 군대란 말이다... 진짜 최고들만 모아둔 토벌대는 그 후에 출발해."

"설마.. 성녀님이 안쪽으로 못 들어가게 협박한 사람이.."

"나다."

"..... 그럼 그 모든 걸 알고.."

"나는 네가 숲으로 출발한 이후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이 저택의 모두와 성녀님의 뒤를 따랐던 이들은 성녀님이 돌아가신다면 아무런 목표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실력이 뛰어난 너를 협박한 후 성녀님이 안쪽으로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한 거다."

"....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만약 안쪽으로 더 들어가셨다면 성녀들의 수하들이 엘라님의 목숨을 눈에 불을 켜고 노렸겠지."

"이해합니다.

사엘라는 그제서야 갑작스레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들이 왜 생겼는지 알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분명 토벌대에 합류한다고 얘기했던 칠러웨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아빌론님 혼자서 두 번째 성녀를 상대하긴 벅차다, 네가 여기 있어야 엘라님을 그녀로부터 지킬 수 있어 그곳에는 나 혼자 가도록 하마."

"리에티님.."

"나무패를 가진 자유 기사라고 했지.. 이름은?"

"칠러웨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성녀님을 잘 지키거라 네가 그리 말할 정도의 보석이라면 분명 내 목숨을 바쳐 구할 가치가 있겠지."

"...."

사엘라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리에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찌그러진 갑옷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갑옷으로 갈아입었다.

"아빌론님에게 나는 미네르 숲으로 갔다고 전하거라."

"네 조심하세요 리에티님."

"그래 금방 돌아오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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