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엮이면 몸만 아프다.
* * *
"...."
칠러웨이는 자신의 인생 중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칠러웨이?"
"... 쉿."
이미 새하얀 갑옷이 더러워져 회색빛으로 변한 아빌론이 칠러웨이를 불렀지만 그는 조용히 검을 뽑을 뿐이었다.
"엘라님을 지켜요."
"자네는?"
"걱정 마세요."
"칠러웨이님.."
칠러웨이는 조용히 발을 옮겨 나무뿌리 사이에서 나와 주변을 살폈다.
'역시.'
주변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어디서 찾아왔는지 키메라들이 세 사람이 숨은 나무뿌리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지만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나오지 마세요, 똑똑한 녀석들입니다."
"저들이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겠나?"
"... 당신 정도면 저 녀석들을 이 좁은 곳에서 상대할 수 있잖아?"
"... 그렇군."
좁은 나무뿌리 안은 큰 덩치를 가진 키메라들이 들어올 수 없었고 3마리 이상을 홀로 상대 가능한 아빌론이 충분히 엘라를 지키며 막아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정말 괜찮겠나?"
"나도 모르지.."
걱정 어린 아빌론의 말이 이어졌지만 칠러웨이는 중얼거리며 나무뿌리 밖으로 조심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자.. 어디 보자...'
느껴지는 녀석들만 해도 다섯 이상, 칠러웨이는 숨 막히는 긴장감에 근육을 긴장시켰다.
"흡!"
캉!
기다렸다는 듯 자신을 덮쳐오는 키메라에 칠러웨이는 공격을 막아내고 뒤로 한 바퀴 굴러야만 했다.
'숲 안으로 들어갈수록 살기가 짙어지고 키메라 또한 수가 늘어났어.'
"그렇다면 이 근처에 니들 대장이 있다는 거지 그치?"
칠러웨이는 웃고 있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대장 격의 녀석을 만난다 해도 어떤 녀석인지 단 한 번도 상대해보지 않았고 점점 짙어지는 살기에 분명 크게 다치거나 죽을 것이라는 걸 그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잘나신 면상이나 한 번 보자고."
키에에엑!
전투를 겪으며 이제는 어느 정도 검과 새로운 몸에 능숙해진 칠러웨이가 키메라 하나를 베어넘기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상해.'
분명 이런 상황에서는 무섭거나 두려움이 커야 했지만 새로운 신체의 능력인지 칠러웨이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변태 녀석이었나?'
칠러웨이라는 몸을 가졌던 이 남자의 정체에 의문을 느끼며 그는 몇 번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해냈다.
쿵..
두 마리의 키메라가 쓰러지고 칠러웨이는 검에 묻은 피를 아무렇지 않게 툭 털어냈다.
그그그그..
"인간의 적응력이란.."
이미 자신의 몸처럼 이 몸에 적응해버린 칠러웨이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녀석을 바라봤다.
"중간 보스냐?"
끼기기기기긱!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팔이 길쭉하게 늘어지며 날아오자 칠러웨이는 검을 들어 막아냈지만 강한 그 힘에 뒤로 넘어져야만 했다.
"개 같은 새...!"
쩌억!
"쿨럭!"
충격이 고스란히 몸에 전해진 듯 단전에서부터 피가 울컥 쏟아져 나오며 칠러웨이는 무릎을 꿇었다.
'... 졸라 쌔.'
자신감 넘치던 칠러웨이의 모습은 어디 갔는지 그의 표정은 굳어버렸고 녀석은 거대한 몸을 끌고 천천히 다가왔다.
끼기기기!
"오우.."
충격을 이겨내고 칠러웨이가 앞을 보자 녀석은 거대한 이빨을 드러내며 자신의 앞에 서있었다.
쩌적!
"죽을 수야 없지!"
텅!
촉수 같은 팔의 힘에 거대한 나무가 부러졌지만 칠러웨이는 구르듯 공격을 피해낸 후 순식간에 녀석의 앞으로 다가갔다.
"여기!"
쩡!
인간의 심장처럼 두근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녀석의 거대한 무언가에 검을 내리찍었지만 녀석은 다른 키메라들과는 달리 약점을 보완한 듯 단단한 표피를 가지고 있었다.
"열려라!"
쩡!
"참깨!"
쩌억!
하지만 칠러웨이는 포기하지 않고 죽어라 검을 휘둘렀고 녀석의 공격이 다시 오기 전 단단한 표피를 벗겨낼 수 있었다.
"후우.. 후우.."
공격을 들어가야 했지만 칠러웨이의 입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몸 상태는 곧 죽을 듯 휘청거리고 있었다.
"칠러웨이!!"
"엘라님 안됩니다!"
그 순간 엘라가 뛰쳐나오며 칠러웨이의 이름을 불렀고 아빌론이 그 모습을 보며 말리려 했지만 엘라의 몸에서는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나오지 말라니깐..!"
그녀를 노려보는 것도 잠시 자신의 몸으로 엘라의 빛이 쏟아져 들어오자 언제 아팠냐는 듯 몸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어?"
"힘내요!"
게임에서 나오는 힐러들도 최대 체력을 30%밖에 채우지 못했는데 엘라의 치유력은 대단했다, 아니 기적과도 같았다 터져나갈 것 같던 몸의 고통과 긁혔던 상처들까지 모두 사라진 것을 느낀 칠러웨이는 엘라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원상복구다 새끼야!"
칠러웨이는 다시 한번 땅을 박차고 나가 녀석의 앞에 다가왔다, 처음과는 다른 빠른 속도에 키메라는 당황한 듯 뒷걸음질 쳤지만 칠러웨이는 틈을 노려 약점에 검을 꽂아 넣었다.
끼게게게게게!
"죽어라!"
크게 몸을 돌려 칠러웨이를 떨어뜨리려 했지만 이미 몸이 모두 회복된 칠러웨이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온 힘을 다해 공격했다.
"후.."
쿠웅..
거대한 키메라가 쓰러지고 칠러웨이는 날이 무뎌진 검을 잠시 살펴보더니 옆에 휙 던진 후 엘라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한겁니까?"
"네..?"
"아니.. 뭐냐 그.. 덕분에 살아서 감사한데.. 어떻게 한거예요?"
"아! 제 능력이에요!"
칠러웨이의 말에 엘라는 기쁜 듯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이런 능력자인데도.. 겨우 이 녀석들을 토벌한다고 이 위험한 사지로 보냈다고...? 분명 녀석들이 강하긴 하지만 아빌론 같은 사람 몇 명이면 해결될 문제였다.'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 네."
"다른 성녀들도 다 이럽니까?"
"어떤.."
"능력이 말입니다, 이 능력처럼 놀라 뒤집어질 만큼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냐는 말입니다."
"엘라님의 능력은 특별하네."
"..."
칠러웨이는 엘라의 능력이 특별하다는 아빌론의 말에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늪처럼 점점 더 엮이는 기분인데.. 차라리 물어보질 말자.'
칠러웨이는 죽어있는 기사의 시체에서 검을 주운 후 두 사람에게서 등을 돌렸다.
"칠러웨이님..?"
"말 안 해도 됩니다, 일단.. 좀 혼란스러우니까 그냥 같이 가기나 합시다.."
"아.. 네!"
칠러웨이의 머리는 지끈지끈 아파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계속해서 드러나는 두 사람의 정체가 점점 두려워지긴 했지만 이미 자신이 같이 가자고 한 이상 말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이봐.]
"...."
생각하는 것도 잠시 칠러웨이는 조용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 자리에 멈춰.]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칠러웨이의 어깨를 강하게 누르듯 긴장감을 주었다, 무섭게도 공격적이고 주변을 압도하는 그 모습에 칠러웨이는 죽을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너는?"
[내가 먼저 물었을 텐데?]
"묻는다고 먼저 대답해 줘?"
[건방지군.]
"뭐.. 내가 좀...!?"
칠러웨이가 말하는 그 순간 검은 갑옷을 입고 있는 존재가 휘두른 검에 왼쪽 팔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가버렸다.
"어윽!?"
"칠러웨이!"
피가 쏟아져 나오며 고통이 느껴졌지만 엘라의 힘에 의해 팔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개 아프잖아?'
치유되었지만 그대로 느껴지는 고통에 칠러웨이는 자신의 팔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하는데 급급했다.
[... 무슨 힘인지 모르겠지만.]
"악!"
다시 느껴지는 고통과 함께 오른쪽 다리가 떨어져 나가며 칠러웨이의 몸이 휘청거렸지만 엘라의 힘이 다시 한번 칠러웨이를 회복시켰다.
"뭐.. 야.."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 때문인지 칠러웨이는 전의를 상실해버렸고 얼굴은 얼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정신 차려 칠러웨이!"
아빌론이 다가와 그를 북돋아줬지만 칠러웨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걸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검이라도 휘둘러보게!"
아빌론의 독려에 칠러웨이는 검을 휘두르며 검은 갑옷에게 다가갔지만 다시 날아오는 공격에 검과 함께 손목이 날아갔다.
[이길 수 없는 걸 알 텐데?]
"아윽.."
칠러웨이는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지만 엘라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고 몸은 다시 복구됐다.
"힘내요! 아직 제가 있어요 칠러웨이!"
"끄으윽... 회복.. 안 하면 안 될까요?"
"무슨..! 그럼 죽는다구요!"
칠러웨이는 이미 사지가 잘려나가는 고통을 느껴버렸고 엘라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려 노력했다.
"그냥 좀 한 대만 맞아라!"
[끈질기군 다음에는 목이다.]
투툭..
간발의 차로 피해내며 공격을 막았지만 칠러웨이는 왼손의 손가락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당장이라도 죽고 싶어졌다.
[호오.. 목을 노렸는데 막고 피해내다니 그 순간에 성장한 건가?]
'제발 그냥 죽여!'
까앙!
[... 이번에는 아예 막아낸 건가?]
네 번의 공격을 맛보고 이번에는 제대로 공격을 막아낸 칠러웨이는 자신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검은 갑옷에게 분노를 느꼈다.
"...."
[나랑 일해보지 않겠나?]
"죽이려고 해놓고.. 이제서야 그딴 소리를.."
[사과하지, 어떤가 나랑 일해보는 건?]
"..."
이미 팔, 다리가 다 잘려나가 본 칠러웨이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그저 검을 들고 검은 갑옷에게 다가갈 뿐 그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도 않았다.
[거절이라면.. 어쩔 수 없지.]
텅!
[.....!]
검이 아까 전보다도 더 빠르게 칠러웨이의 머리를 노렸지만 칠러웨이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놔...!]
검은 갑옷은 칠러웨이가 잡은 팔을 빼내려 힘을 줬지만 분노에 눈이 돌아가버린 칠러웨이는 그를 놔주지 않았다.
"일단.. 좀 맞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