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 엮이면 몸만 아프다. (4/90)

〈 4화 〉 엮이면 몸만 아프다.

* * *

"... 그래서?"

"중간에... 성녀님과 일행을 놓치게 됐고 하루를 꼬박 돌아다녔다."

"아빌론은 죄가 없어요.. 길을 잘못 든 제가.."

"끙..."

상황이 진정된 후 엘라와 아빌론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던 칠러웨이는 자신이 이상한 일에 휘말렸다는 것을 느낌적으로 깨달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기사들이 성녀님을 찾고 있을 거다."

아빌론에 말에 의하면 성국에서는 갑작스럽게 나라 안 곳곳에 갑자기 등장한 키메라들과 몬스터들을 처리하러 기사들을 보냈지만 보내는 족족 깨지는 경우가 허다했고 결국에는 치료가 가능한 사제들과 성녀들까지 투입했다는 것이었다.

"결국에 나는 칠라렌 성국이 보낸 토벌대와 마주쳤고.. 때마침 성녀는 키메라에게 공격을 받아 기사들을 모두 잃고 죽을 위기에 처해있었는데 운 좋게 그 길을 지나가던 나를 만났다?"

"네.."

일그러진 칠러웨이의 표정에 엘라는 무서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 후우.."

"너를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한 것은 미안하군, 하지만 성녀님은 돌려받아야겠다."

"...."

아빌론의 말에도 칠러웨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자 아빌론과 엘라는 불안한 듯 그를 바라봤다.

'왜.. 엮이지 않으려 했는데.. 또 엮였지? 아니야.. 오히려 성국이면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 수도 있어.. 잘하면 돌아갈 방법까지..'

"저기.."

"아.. 미안해요, 두 사람한테 화낸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요."

".... 네.."

칠러웨이의 말에 엘라는 안심이 된 듯 울먹거리는 듯한 표정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칠러웨이라고 했나?"

"... 그런데?"

"너 도대체 뭐 하는 녀석이지?"

"... 뭐 하는 녀석이라니 칠러웨이라고 했잖아."

"그 말이 아니다."

"...?"

아빌론의 물음에 칠러웨이는 무슨 개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진지했다.

"네 실력, 분명 제대로 된 검술은 아니었지만 일반 기사들이라면 상대도 안 될 힘이었다."

"그 정도야?"

"그래."

"아빌론은 성국의 기사들 중 최상위급의 기사에요."

아빌론의 말에 엘라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자 칠러웨이는 조금 어깨가 으쓱했다.

"어린 나이인데도 그 정도라면 분명 너는 왕국.. 아니 제국의 기사단장 자리까지도 갈 수 있는 실력이겠지.. 시간이 지난다면 톤 왕국의 브라이언과 맞먹을지도.."

"브라이언?"

"아빌론이 말하는 사람은 아마 톤의 기둥이라 불리는 사람일 거예요, 현존하는 기사 중에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들었어요."

'지금 내가 그 정도야...? 원래도 몸이 날렵하긴 했지만 분명.. 이 정도는 아니었어.. 그래 전혀 아니었지.. 아마 키메라 녀석들을 만났을 때 머리가 날아갔을거다..'

"분명 칠러웨이는 자유 기사가 아닐 거예요 그렇죠? 용사는 아니라고 했지만.. 혹시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숨은 고수..?"

칠러웨이가 생각에 빠져 입을 다물자 엘라는 궁금한 듯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 일단 저도 저를 잘 몰라요 아는 것이라고는 칠러웨이라는 이름, 나이, 자유 기사라는 것뿐."

"자유 기사..? 네 녀석 자유 기사였나?"

"...?"

갑작스레 흥분하듯 물어오는 아빌론을 보며 칠러웨이는 목에 걸린 나무패를 보여주었다.

"맞는데?"

"... 역시 비겁자 녀.."

"아니라고 했잖아?"

"큼.. 큼."

칠러웨이가 검자루를 쥐자 아빌론은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을 깨달은 듯 기침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전에 엘라도 내가 자유 기사라는 말에 실망하던데..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싫어하는 거야?"

"...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

"모르니까 묻겠지?"

"...."

아빌론이 자리에 털썩 앉자 칠러웨이는 그의 흰 갑옷이 더러워질까 봐 순간 걱정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네 녀석은 자신의 정의를 지키고 있지?"

"뭐.. 아마도..?"

"너는 내가 본 자유 기사들과 느낌이 많이 다르지만 일반 자유기사들은 달라."

"그들도 기사 아니야?"

"자유 기사는 따지자면 기사가 맞다, 기사의 신분을 갖고 자신이 원하는 주인을 찾고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라고 만든 헬하임 제국의 제도 중 하나지."

"그럼 좋은 거 아니야?"

"절대 아니다."

"....?"

"실상은 달라, 그들의 정체는 헬하임 제국의 스파이, 똘마니들이거나 돈에 미친 녀석들, 정의감 하나 없이 대륙을 돌아다니며 민폐를 끼치는 이 대륙의 벌레 중 하나다."

"... 버.. 벌레?"

"그래, 어딜 가서도 자유 기사들은 환영받지 못하지만 기사라는 신분 덕분에 패악 질이란 패악 질은 대륙을 모두 돌아다니며 다 하고 다니지."

"그.. 그 정도야?"

칠러웨이는 자신의 나무패를 내려다보며 진지하게 이걸 버리는 것이 나을지 고민했다.

"게다가 그 자유 기사들 중에서도 또 신분이 나누어져 있다, 금으로 만들어진 금패는 귀족 신분을 가지고 자유 기사를 택한 이들, 은으로 만들어진 것은 기사 출신, 동으로 만들어진 것은 용병이나 실력 있는 평민들이 찰 수 있는 패다."

"그... 럼 이 패는..?"

"놀랍게도 노예 신분이나 자유 기사들 중에서도 최하급의 실력에 속하는 이들이 차고 다니는 거지, 돈 몇 푼만 쥐여주면 받을 수 있는 그런 패 중 하나다."

"...."

"키메라 또한 나무패 수십 명이 달라붙어 처리할 때가 있지, 아마 나라에 속한 병사들 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게 나무패를 가진 자유 기사들일 거다."

칠러웨이는 엘라가 처음에 왜 자신의 패를 보고 실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최하급 중에 최하급의 자유 기사에다가 찾아다니던 용사도 아니었으며 어린 나이에 자신을 구해줄 수 있을 거라 분명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버릴까?"

"그건 추천하지 않아, 나무패를 가져도 자유 기사는 자유 기사 모든 나라를 통과할 수 있는 통행증이나 마찬가지니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거야."

"...."

"그.. 그래도 칠러웨이님은 강하잖아요 그렇죠?"

시무룩해진 칠러웨이의 표정을 보며 엘라는 그를 위로해 주듯 힘을 북돋아 줬지만 칠러웨이의 표정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그건 엘라님의 말이 맞다, 너 정도의 실력이면 금패를 받더라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거다."

"... 진짜?"

"그래, 실력으로 금패를 받은 녀석들을 몇 번이나 때려눕혀봐서 안다."

"고마워 위로해 줘서."

"위로가 아니라 진심이다."

칠러웨이의 얼굴 표정이 풀리자 엘라는 다행이라는 듯 아빌론에게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저건 네가 죽인 건가?"

"뭐.. 그렇지."

아빌론은 칠러웨이의 뒤에 쓰러져 있는 괴물을 바라봤다.

'물속에 살아 몇 년간 잡지 못한 골치 아픈 녀석을 잡다니..'

하지만 아빌론은 칠러웨이에게 녀석의 정체를 얘기해 주지 않았다, 만약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얘기해 준다면 분명 자만할 것이 뻔했다.

'잡아야 한다.'

"아, 생각해 보니 하나 더 물어볼 게 있었는데."

"물어봐라 답해줄 테니."

갑작스러운 칠러웨이의 말에 정신을 차린 아빌론은 그를 바라봤다.

"성녀는 원래 그런 취급을 받는 존재야?"

"...."

"..."

자신의 질문에 두 사람의 표정이 미묘해지며 분위기가 조용해지자 칠러웨이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 건드린 것을 알았는지 손을 내저었다.

"얘기하기 힘들면 얘기하지 않아도 돼."

"... 그런 취급이라.. 원래 엘라님은 이 칠라렌 성국 내에서도 떠받들어지던 성녀였다."

"그런데 지금은 왜..?"

"새로운 성녀들이 나타나면서부터 이 성국은 엘라님을 완전히 버린 거지."

"... 버려?"

"성녀는 전쟁, 토벌 그 무엇도 참여하지 않아 아니 절대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아빌론."

화가 난 아빌론의 표정에 엘라는 그의 손을 잡아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설명할게요."

"... 죄송합니다."

"칠러웨이 저는 아빌론의 말대로 성녀에요, 원래는 이 대륙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계속해서 성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놀라운 힘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치료'라는 능력밖에 없었던 저는 맨 뒤 순위로 밀려 저의 호위 기사였던 아빌론과 함께 전투와 토벌에 계속해서 참가하게 됐죠... 이번 토벌에서는 운 없게도 아빌론과 떨어져 위험에 처했었지만 다행히 칠러웨이가 저를 구해주어 이 보잘것없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요."

"...."

자신 없는 목소리로 얘기를 하는 엘라의 모습에 칠러웨이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머리카락을 헤집어 놓았다.

"아.."

"그만 얘기해요, 뭐 어차피 보잘것없는 건 나무패를 가진 저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 칠러웨이님은.. 강한 사람이잖아요.."

"강한 사람이면 뭐 합니까? 딱 봐도 여기도 글러먹은 세상이라 위까지는 못 올라가겠구만."

"...."

"아 아빌론."

"그래 얘기해라."

"너 네 주인이 그런 취급을 받는데 아직까지 그곳에 있고 싶어?"

"... 분명 싫다 나의 주인이 그런 취급을 받는 건."

"그럼 털자."

"...?"

"전부 다 털어낸 후에 네 주인 데리고 같이 가자고."

칠러웨이의 말에 아빌론의 표정이 심각해지며 고민하는 듯 두피까지 빨개져 왔다.

"아니에요."

"...."

하지만 갑작스러운 엘라의 말에 아빌론과 칠러웨이는 그녀를 돌아봤다.

"엘라님 분명히 같이 가신다고.."

"네.. 그랬었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죽어가는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요.."

"..."

'착해..'

칠러웨이는 그녀의 모습에 감동이 밀려왔다,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 모르겠지만 최정상의 자리에서 최하위의 자리에 내려와 자신을 모시던 기사들에게 무시를 당하면서도 사람들을 놓지 못하는 그녀는 성녀 중의 성녀 같았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아빌론, 버텨볼게요."

"만약에 키메라들이 다 사라진다면?"

".... 예?"

엘라의 축 처진 어깨에 칠러웨이는 물음을 던졌다, 생각도 해보지 않은 질문에 엘라는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지만 칠러웨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분명 키메라들이 갑자기 성국 내에서 갑자기 나타났고.. 날뛰지 않던 몬스터들도 갑자기 날뛰고.. 게다가 저 녀석들을 처음 본 내가 봐도 이상하게 생겼는데 이거 그럼 뭔가 있는 거 아닌가? 누가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거나.. 그것만 해결한다면.."

'물론 난 도와줄 생각은 없지만.'

칠러웨이는 두 사람과 같이 가고 싶긴 했지만 항상 엮이는 귀찮은 일에서는 빠지고 싶었다.

"생각도 못 해봤어요.. 종종 등장하는 녀석들이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보들인가?'

멍한 표정의 두 사람은 예전부터 의문조차 가지지 않았었다, 몇 십 년 동안 매일 같이 키메라는 성국에서 어디선가 조금씩 등장했고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 이유를 찾지 못해 성국 자체에서도 상당히 애를 먹었던 것으로 기억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저 괴상하게 생긴 몬스터 중 하나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분명 무언가로 합친 녀석들처럼 생겼는데 의심하지 않았던 거야?"

"... 그게.."

"몇 십 년 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다."

"그럼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맞고만 있게?"

"...."

"하지만 저희 둘로는..."

엘라가 울듯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칠러웨이는 또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지만 그녀의 시선은 계속해서 그에게 향해있었다.

'또! 무슨 정신머리로 얘기한 거야 김민석!!!!! 절대 하지 마!'

"흑... 흑... 누군가.. 누군가 도와주면 좋을 텐데."

자신을 탓하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들려오는 엘라의 울음소리에 칠러웨이는 점점 마음이 녹아내렸다.

"... 흑.. 우리 둘로는.."

(여자의 눈물은...)

"아 할게! 한다고!"

갑자기 떠오르는 아버지의 말에 칠러웨이가 소리치자 엘라와 아빌론의 얼굴에는 기쁜 미소가 걸렸다.

"정말이에요?"

"고마워! 칠러웨이!"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며 칠러웨이는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약속을 하고 엮인 이 상황에서 칠러웨이는 발을 뺄 수 없었다.

".... 제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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