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 엮이면 몸만 아프다. (2/90)

〈 2화 〉 엮이면 몸만 아프다.

* * *

"제길! 제길!"

"잠깐만.. 허억.. 허억.. 쉬었다 가면.. 안될까요?"

"뒤를 봐요! 쉬게 생겼나!"

피로 물든 흰옷을 입고 있는 여인과 평범하게 생긴 남자는 숲을 가로지르며 무언가에게 쫓기듯 뛰어가고 있었다.

"여기 맞아요?"

"네..! 네..! 몇 번이나 말해요! 맞다구요!"

"왜.. 화를...!"

티격태격하는 것도 잠시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키메라에 놀란 듯 남자와 여자는 넘어지듯 거대한 나무의 뿌리로 숨었다.

"....!"

"쉿.. 쉿 조용히 해요."

"...."

갑작스럽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어디론가 떨어져 버린 남자, 민석은 칠러웨이라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의 몸을 빌려 이 여인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날쌔단 말이지.'

마치 군에 있을 시절처럼 날쌘 몸이 민석은 꽤나 마음에 들고 있었다, 원래 자신의 몸이었다면 분명 세 마리의 키메라와 상대할 때 머리가 날아갔겠지만 이 몸은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움직일 때마다 새로워.. 도대체 뭐 하는 녀석이야?'

잠시 피 묻은 손을 바라보던 칠러웨이는 가까이 다가온 키메라의 다리를 보며 자신의 품에 안겨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인의 입을 조심스럽게 막았다.

(조금만 입을 막고 있을게요 알았죠? 조금만 참아요.)

칠러웨이의 말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인 여인은 무서운지 결국 눈을 감아버렸다.

그르르르...

끈적한 침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녀석은 자신이 찾는 먹잇감이 사라져 화가 나는지 나무에 분풀이를 하고는 어디론가 천천히 사라졌다.

"괜찮아요?"

"네.. 네.. 대충은.."

"일어나요, 이 숲에서 벗어나야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으니까."

"...."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여인은 두려운 듯 주변을두리번거리며 칠러웨이의 팔을 꽉 잡았다.

"..."

지금은 칠러웨이가 된민석은 과거몇 번 여자친구를 사귀어 봤지만 옆에 있는 여인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이런 상황에 무슨...'

조용히 숲을 걷던칠러웨이가 자꾸만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자 여인은왜 그러냐는 듯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갑자기 딱딱해진 칠러웨이의 말투에 여인은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이쁘긴 해..'

왼쪽 눈에는 검은색, 오른쪽 눈은흰색의 오드아이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무언가 신비로워보였고 그에 더불어염색을 해야 나오는 흰 백발은 그녀의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음?"

"무슨 일.. 있어요?"

"잠시만 저기 들어가 있으세요."

"무슨.."

"묻지 말고 들어가요."

얼굴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갑작스럽게 들리는 소리에 칠러웨이는 그녀를 나무뿌리 밑으로 밀어 넣고 이가 빠진 검을 들어 올렸다.

'엄청 감이 좋아졌네.'

빙글빙글 검을 돌리던 칠러웨이는 서서히 보이는 은백색의 갑옷들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오.. 기사들인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걸?"

"단장님!"

"음."

기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다가올수록 느껴지는 짙은 살기에 칠러웨이는 내려놓으려던 검자루를 쥐고 몸을 긴장시켜야만 했다.

'... 날 죽일 거다.'

머릿속에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날아오는 단검을 유연하게 피해낸 칠러웨이가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여인이 뛰쳐나와 앞을 가로막았다.

"그만!"

"... 엘라님?"

"그만하세요!"

'이름이 엘라였나?'

이름까지 예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칠러웨이는 검을 바닥에 꽂아 넣고 그녀가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저 녀석은 엘라님이 데려간 기사단이 아닐 텐데요?"

엘라를 존대하면서도 무시하는 듯 그녀를 내려다보던 기사단장은 옆의 기사들에게 눈치를 주었다.

"제가 데려간 기사단은 모두 키메라에게 죽었어요."

".... 죽었다?"

"네."

"... 어떤 녀석들이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기사단장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칠러웨이를 바라봤다.

"...."

'나를 의심하는 건가?'

"그 녀석들은 기사단 중 가장 실력이 좋은 기사들입니다, 그런데 고작 키메라에게 죽었다..?"

".... 저분을 의심하는 건가요..?"

엘라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기사단장은 피식 웃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 정도 실력을 갖고 있다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의심이 아니야..'

칠러웨이는 조심스레 검자루에 손을 가져다 대고 기사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양옆에서 거리를 벌리며 다가오는 그들은 분명 자신을 죽일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만! 그만하세요! 그를 죽이면 안 돼요!"

"...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신의 얼굴을 본 이들이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까?"

".... 저 사람은 절 살렸어요 차라리 저를 죽이세요!"

"끌고 가라."

"명."

"잠깐..! 잠깐만요!"

엘라는 기사들이 다가오자 다급하게 몸을 틀어 칠러웨이에게 오려 했다.

"안돼!"

"...."

몸부림치던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기사들에게 우악스럽게 끌려가자 칠러웨이는 좋지 않은 표정으로 단장을 말없이 바라봤다.

"... 이름은?"

"몰라도 돼."

"건방지군.."

"어쩌라고."

칠러웨이가 가운뎃손가락을 들며 기사단장에게 들어 올리자 기사단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내가 너에게 좋은 행동을 했나?"

"...?"

"왜 나에게 행운을 빌어주는지 모르겠군."

"욕이 아니야..?"

"죽여라!"

기사단장이 어이없어하는 칠러웨이를 가리키자 그 수신호에 맞추어기사들은 검을 빼들고 일제히 달려 나왔다.

"하나, 둘, 셋, 넷... 제길.. 적어도 스물은 될 것 같은데?"

자세를 잡고 달려오는 기사들을 보며 뒷걸음치던 칠러웨이는 순간 저 훈련이 잘 된 기사들을 이길 수 없다고 느꼈다.

'이 몸의 주인이 어떤 사람이었던 나는 검을 잡은 게 처음이다..."

"그렇다면.."

까앙!

"....?"

까앙! 까앙! 까앙!

떨어져 있던 투구를 주워들고 칠러웨이는 무언가를 부르듯 검 등으로 계속해서 내리쳤다.

"뭐 하는 짓이지?"

까앙! 까앙! 까앙!

"뭐 하는 짓이냐 물었다!"

그의 어이없는 행동에 기사들은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지만 칠러웨이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너희들을 쓸어버릴 방법이지."

"....!!!!"

칠러웨이의 입이 떨어지는 순간 사방에서 거대한 키메라들이 몰려들었고 기사들은 칠러웨이에게서 떨어져 기사단장이 있는 곳으로 다시 모여들었다.

"진형을 유지해!"

기사단장은 칠러웨이를 노려봤지만 그는 키메라들이 달려오는 것에 맞추어 검을 들고 기사들에게 달려왔다.

"단장님!"

"엘라를 보호하는데 힘써라! 진형을 유지하고 지키면 아무 문제 없어!"

하지만 그의 외침과는 다르게 거대한 키메라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자 몸을 덜덜 떨던 기사들은 진형에서 이탈해 달아났다.

"제길!"

이런 상황이 처음인 듯 기사단장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칠러웨이는 기사들이 엘라를 데려간 곳으로 민첩하게 달려갔다.

그워어어!

"흡!"

고개를 숙여 키메라의 팔을 피해낸 그는꽁꽁 묶은 엘라를말에 올린 후도망갈 준비를 하고있는 기사에게 검을 던졌다.

"커어억.."

심장이 꿰뚫렸는지 피를 토해내며 바닥을 뒹구는 기사를 뒤로하고 말에 올라탄 칠러웨이는 고삐를 당겼다.

"칠러웨이님...!? 잠깐만...!"

"혹시라도 저기에 놓고 온 물건 있어요?"

"아.. 아뇨 그건 아닌데.."

"갑시다 그럼."

칠러웨이는 자신이 말을 탈 줄 안다는 것에 깜짝 놀랐지만지금은 더 이상 자신의 몸에 놀랄 시간이 없었다.

키에에엑!

"꺄아악!"

"머리를 숙여요!"

엘라의 머리를 가슴에 기댄 칠러웨이는 자신의 코를 찌르는 좋은 향기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질뻔했지만 순식간에 눈앞에 다가온 키메라를 먼저 처리해야 했다.

"박혀라!"

퍼억!

칠러웨이가 말에 매달린 메이스를 힘껏 던지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키메라의 급소가 터져나갔다.

"저.. 정말.. 당신은 자유 기사인가요...?"

"...."

엘라가 품 안에서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자 칠러웨이는 그 외모에심장이 쿵 내려앉았지만 심호흡을 하고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움직이지 말고 그냥 가만히 계세요."

"...."

"나중에 친해지면 얘기해 드릴 테니까."

"... 아.."

칠러웨이의 말에 엘라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그는 다가오는 키메라들 때문에 그녀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무섭습니까?"

"... 아.. 네.."

"저도 무서우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세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거대한 평원이 보였지만 그곳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쌓여있었고 까마귀들은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 이건 뭔..."

"역시...."

엘라는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이 그 광경을 지켜봤지만 칠러웨이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아졌다.

"엘라라고 했나요?"

"... 제 이름은 어떻게..."

"아까 그 기사단장이라는 놈이 얘기했잖아요."

"아.."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어요?"

"... 무엇을.."

"사연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저랑 같이갈래요?"

"... 가.. 같이요?"

두려운 듯 엘라의몸이 떨려왔지만 칠러웨이는 좀 더 부드러운얼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떠나기 힘든 것 알겠지만그런 취급받으면서 이곳에 남아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

"나도 이곳이 처음이에요."

".... 처음.. 이라구요?"

엘라는 능숙하게 기사단을 따돌리고 키메라를 따돌리던 칠러웨이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분명 처음 봤을 때부터 그는 키메라와 기사들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쪽이 원하면 안전한 곳까지는 데려다줄게요."

"...."

엘라는 그의 품 안에서 생각에 빠졌지만 칠러웨이는 그녀를 재촉하지 않고 시체를 요리조리 피해 빠져나가며 대답을 조용히 기다렸다.

"... 갈게요."

"네?"

"당신을 따라갈게요."

칠러웨이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떨림을 느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나저나 귀한 사람 같은데왜 혼자 남은 건지 모르겠네.'

그제서야 엘라의 정체를 의심하는 칠러웨이였지만 그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를 죽일 거면 기사들과진작에 죽였겠지.'

"잘 생각했어요, 그럼 일단 이 시체 밭에서 탈출하고 얘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네."

두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가는 사이 숲에는남은 기사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기랄!!!"

까앙!

기사단장은 버티려 했지만 자신들이 과거 상대했던 키메라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이었다.

"더.. 더는 못 버팁니다!"

"점점 더 몰려들고 있습니다!"

기사들이 소리를 치며 기사단장의 명령을 기다렸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거친 숨을 내뿜었다.

"그 미친 새끼 때문에!"

순식간에 자신들을 따돌리고 빠져나간 칠러웨이를 생각하며 기사단장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두 명의 기사의 머리가 날아가자 그는 일단 살 궁리부터 해야만 했다.

"명령을!"

"단장님!"

"끝까지 싸워라!"

키메라들과 싸우고 있는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그는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기회를 엿보다 다시 기사 몇 명이 처참하게 쓰러지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에 올라탔다.

"카일록 단장 무슨...!"

"너희들은 여기서 내가 도망칠 때까지 막아라! 명령이다!"

"개 같은 소리를...! 끄아아악!"

"배신자!!"

기사들의 외침이 숲에 맴돌았지만 기사단장 카일록은 신경 쓰지 않았다.

"너희들이 여기서 죽어야 내가 산다! 너희의 가족은 내가 책임지마! 그냥 이곳에서 죽어!"

"도망치지 마라 카일록단장!"

배신감이 기사들의 얼굴에 떠올랐지만 카일록은 이미 등을 보이며 멀어진 후였고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땅에 누워 키메라들에게 온몸을 먹이로내주어야만 했다.

"죽여주마.. 너는 내 손으로 죽여주마... 망할 꼬마..."

앳된 얼굴의 칠러웨이의 얼굴을 떠올리며카일록은 분노에 몸을 떨며 자신의 주군에게로 말머리를 돌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찾아낼 거다 기다리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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