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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정전이 될 때는 조심하자.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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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정전이 될 때는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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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익숙한 버튼 클릭 소리, 익숙한 쓰레기 냄새, 익숙하게 쌓여있는 꽁초들.

"...."

그런 환경과는 관련 없이 남자는 조용히 컴퓨터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개 같은 새끼들!"

쾅!

그는 결국 끝까지 참던 화가 터졌는지 가만히 놓여있는 본체를 걷어차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 위에 누웠다.

"맨날 이 짓거리도 못 해 먹겠네."

쓰레기가 가득 쌓인 방 안에서 그는 누군가에게 말하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게임도 못해, 공부도 못해, 취직도 못해 참.."

한숨을 푹 내쉰 남자는 얼룩진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 김민석."

깡마른 몸은 아니지만 군대에서 불린 근육들은 이미 축 늘어져 보기 싫은 살로 탈바꿈 돼있었고 덥수룩하게 난 수염은 그의 폐인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쯧."

집에서 공부한다고 나온 지 몇 년이나 지났을까, 책상 위에서 울리는 전화 소리에 그는 핸드폰을 잡았다.

"...."

탁.

어머니의 안부 전화도 받지 않은 채 그는 화면을 꺼버렸고 의자에 앉아 멍하니 움직이는 자신의 게임 캐릭터를 바라봤다.

"고생해도 좋으니까 너처럼 모험이나 하면서 자유롭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철창 속의 생활 같았던 어린 시절부터 느끼고 싶었던 자유로움이었고 오죽하면 김민석의 꿈은 모험가, 기사와 같은 동화 속 영웅들이었고 그 꿈은 김민석이 여기까지 오게 해준 버팀목이었다.

"키킥..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런 거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

학창 시절을 지나 갖은 풍파를 겪어온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꿈인지 깨달았다.

"망할.. 씻어야지."

멍한 얼굴로 조그만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침묵하던 김민석은 시계를 올려다봤다.

"먹고는 살아야지."

이른 저녁부터 시작되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김민석은 의자에서 일어났지만 갑작스럽게 게임 화면이 사라지고 무언가 화면에 뜨자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띵.

"응?"

갑작스럽게 뜬 화면은 검은 배경이었고 그 가운데에는 하얀 글씨로 무언가가 써져있었다.

"염병."

김민석은 조용히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화면을 끄려 했지만 X 버튼은 눌리지 않았고 본체의 전원을 눌러 꺼봤지만 화면은 사라지지 않았다.

"... 뭐야?"

몇 년간 문제없이 잘 사용했던 컴퓨터에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처음이었고 김민석은 화면 가운데 떠있는 예, 아니오 버튼을 바라봤다.

"...."

누르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김민석은 피식 웃으며 '예' 버튼을 클릭했다.

"될 대로 되라지 뭐."

우웅.

그 순간 방안의 모든 불과 화면이 꺼지며 방안은 어두워졌고 김민석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왕좌왕 버튼을 찾아 눌렀지만 등은 들어오지 않았다.

"뭔.. 개 같은.."

깡.

방안에 널브러진 깡통들을 헤쳐나가며 김민석은 집주인이 알려준 두꺼비집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어디.. 어디 보자.."

하지만 이상하게 만져져야 할 벽은 어디에도 없었고 김민석은 어두운 공간을 따라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했다.

"뭐.. 야...?"

어느새 발에 닿던 쓰레기들 마저 사라지고 부드러운 땅의 감촉이 발에 느껴졌고 그는 불안한 상황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턱.

"가지 말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중간에 멈춰 선 김민석은 앞으로 나아가느니 뒤로 돌아가는 게 낫다 판단이 들었고 뒤로 돌아 다시 왔던 길로 조심조심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하는..)

"워 씨! 뭐야!"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란 듯 김민석은 더 빠르게 움직였고 다시 발에 느껴지는 쓰레기들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하는 거냐고!)

"자다가 다시 일어나면 괜찮겠지."

귀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환청이라 생각한 김민석은 자신의 침대를 찾아 방을 헤집고 다녔다.

(안되겠는데?)

(그냥 떨어뜨려버리자.)

(그게 좋을 것 같아.)

(너무 위험해, 차라리 겁을 주는 게..)

"....?"

다시 방에 돌아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상한 목소리들과 함께 그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거대한 무언가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 워어...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웬 이상한 생명체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고 어두운 시야에서도 그 생명체의 괴기한 모습은 똑똑히 느껴졌다.

"제기랄!"

결국 어쩔 수 없이 뒤를 돌아 내달렸고 귓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생명체의 목소리에 김민석의 옷은 축축하게 젖어들어갔다.

"허억... 허억..."

얼마나 달렸을까,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본 김민석은 눈을 크게 떴다.

"... 뭔.. 시발."

욕 한마디와 함께 펼쳐진 세상은 핏빛이었다, 이리저리 살점들이 널려있었고 푸른 숲은 괴기한 색상으로 물들어 그의 심장을 옥죄고 있었다.

"지옥인가?"

그의 한마디와 함께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던 짐승들은 고개를 돌려 김민석을 바라봤다.

그르르..

".... 미안한데 하던 거마저 해."

그르르르...

괴상하게 뒤틀린 생명체들은 계속해서 김민석에게 한 걸음씩 다가왔다.

툭.

"어?"

다시 도망치려 했지만 무언가를 밟아버린 그는 자신의 아래 깔려있는 시신과 피에 젖은 축축한 옷의 촉감을 느끼고 이게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구엑.. 웨엑!"

짓이겨진 시체를 본 것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예전의 기억이 올라와 구토를 한 그는 시신의 옆에 놓인 검을 들어 올렸다.

"엄마 전화도 못 받았는데 죽으라고?"

그에에에에!

"어림도 없어!"

곰과 같이 거대한 팔이 휘둘러지며 김민석의 머리를 노렸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피해내고 생명체의 가운데 움직이는 무언가에 검을 찔러 넣었다.

"후우.. 후우..."

생명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김민석의 얼굴은 피로 물들었고 자신의 동료를 잃어 화가 난 생명체들은 순식간에 그에게 덤벼들었다.

카앙!

"크으윽!"

팔을 검으로 막아냈지만 손에 느껴지는 고통에 김민석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단 한 번 막았을 뿐인데 손아귀는 이미 터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고 몸은 날아가 나무에 처박혀 있었다.

"저거.. 저거만 노리면 돼."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의 끈을 빼내어 검과 손을 함께 묶은 김민석은 생명체들이 다가오기 전 한 놈의 품으로 달라붙었다.

그워어어어!

당황한 녀석은 민석을 때어내려 팔을 휘둘렀지만 민석은 다시 한번 눈을 번뜩이며 몸에 검을 꽂았다.

"둘."

이런 녀석들을 보면 놀라서 도망가야 했지만 김민석의 얼굴은 누구보다 침착했다.

"그래 어차피 꿈일 거 아니야..? 이건 내가 오줌 싼 거고.."

김민석은 자신의 상황이 꿈이라며 현실 부정을 하고 있었고 오히려 죽을 각오로 괴생명체들에게 달라붙고 있었다, 그는 지금 상황은 모두 진짜가 아니며 저 녀석들도 분명 가짜, 피도 자다가 지려버린 오줌.. 모든 걸 부정하며 거짓이라 생각했다.

"잠깐.. 그럼.. 죽으면 끝나려나?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꿈이라도 죽는 건 싫은데.. 아까 맞은 곳도 이렇게 아픈데 또 아프겠지?"

그에에엑!

"허억!"

멍하니 서있던 김민석은 달려오는 녀석의 팔을 회피해내고는 약점에 검을 휘둘렀다.

까앙!

불안한 소리와 함께 괴생명체가 쓰러졌고 김민석은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바라봤다.

"잠깐만."

반으로 두 동강난 검을 보던 민석의 몸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며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괴생명체는 잠시 움찔거리더니 뒷걸음질 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우와.. 씨.."

괴생명체가 도망가고 나서야 민석은 주위를 둘러보며 숨을 골랐다.

"내가.. 내가 한 거야?"

거대한 덩치의 생명체 세 마리를 아직까지 자신이 죽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지 김민석은 얼굴을 감싸고 숨을 헐떡였다.

"저기.. 요."

"...."

"저기요!"

"...."

피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들자 한 여자가 두려운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구...? 아니 잠깐만.."

이상한 말과 이상한 언어였지만 똑똑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김민석은 혼란스러웠다.

"...."

그런 김민석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앞에 앉아 말없이 여인은 조용히 기다리며 그의 상처를 조심스레 바라봤다.

"여기 어딥니까?"

".... 여긴.. 레아인 숲이에요."

"레아인.. 레아인..."

민석은 모든 지식을 동원해 이곳이 어딘지 찾아보려 했지만 적어도 레아인이라는 이름은 김민석의 머릿속에 없는 지형이었다.

"멍창한 놈! 집에 있었는데 어떻게 숲으로 오냐고!"

"꺅!"

김민석의 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뒤로 넘어진 여인은 눈물을 흘렸다.

".... 잠깐.. 잠깐만..."

"...."

머릿속에 떠오른 한 문구에 김민석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땅에 고개를 처박았다.

"제발.. 제발 꿈이길.. 꿈이여라.."

"괜찮.. 으세요?"

김민석의 미친 모습에 겁에 질렸지만 여인은 그의 옆으로 다가와 걱정되는 듯 등을 토닥여줬다.

"...."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현실과 타협한 김민석은 고개를 번쩍 들고 묻은 흙을 털며 여인을 쳐다봤다.

"정확히 여기는 어디인지 뭐 하는 동네인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알려주세요."

"... 저기.. 여기는 레아인.. 숲이고.. 칠라렌 성국의 영토예요.. 그리고.. 당신이 여기 왜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는데.."

".... 그거.. 클릭했다고 이곳으로 보낸 거야..? 아직 가족들이랑 친구들이랑 인사도 못했는데? 그리고.. 나보고 죽으라고 저것들 앞에 떨군 거고..? 진짜 인생 바뀔뻔했네..."

갑작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여인의 모습에 민석은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그 목소리 주인들 짓이야..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이 사람도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는 표정이니.'

"...."

민석이 자신을 계속 바라보자 여인은 고개를 돌리며 말을 꺼냈다.

"미.. 미안해요."

".... 미안하다니.. 뭐가요?"

"혹시.. 용사님.. 아니세요?"

"... 용.. 뭐요?"

"용사.."

"풉... 푸하하하!"

여인의 입에서 나오는 '용사'라는 단어에 민석은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 낄낄대며 웃어댔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민석에게 조금 기분이 나쁜지 얼굴을 찌푸렸다.

"... 아니면.. 아니라고 하시면 되지..."

"아.. 미안해요.. 알려준 사람한테 용사고 뭐고 저는 아닙니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용사라니.. 큭.. 풉..."

"웃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저는 진지하게 여쭤보는 건데.."

민석은 미안하다는 듯이 손을 들어 올리고는 다시 자신만의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용사..는 그렇다 치고..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건데.. 제길.. 목소리를 낸 년들을 찾아서 보내달라고 하는 방법 밖에는 없나?'

"저기.."

"아.. 예.."

"혹시 그럼 기사이신가요?"

"백수인데요?"

"톤 왕국의 백수...! 백수 기사단이신가요?"

".... 아.. 아니.. 무직이라는 소리입니다."

".... 네?"

무직이라는 민석의 말에 놀란 듯 여인은 그를 올려다봤고 민석은 뭘 보냐는 듯 당당하게 그녀를 내려다봤다.

"무슨.. 일을 하셨기에.. 저 강한 키메라들을..."

"강한 거였어요?"

"... 일반 기사들 열이 모여야 상대가 가능한 몬스터예요."

"....?"

그제서야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린 민석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흡.."

주변에 널린 시신들과 괴상한 키메라, 피로 물든 땅과 민석의 코를 찌르는 피 냄새에 구토가 다시 올라왔고 민석은 뒤로 돌아 구토를 반복했다.

"괜.. 찮으세요?"

'...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나?'

아까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침착했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는 민석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분명 민소매티를 입고 있었는데?'

역겨웠지만 피웅덩이로 달려가 민석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평범한 갈색 머리와 평범한 머리 어딜 내놔도 평범하다는 소리를 들을만한 외국인이 웅덩이에 비치고 있었다.

".... 미친."

갑작스럽게 바뀐 자신의 모습에 민석은 멍하니 자신의 옷을 바라봤다, 가죽을 이리저리 꿰어 만든 갑옷은 딱 봐도 조잡해 보였고 그의 목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패가 걸려있었다.

"그.. 패.. 혹시.. 용병이신가요?"

".... 하."

민석은 피로 물든 패를 닦아내며 그곳에 적힌 글씨를 바라봤다.

"자유 기사이셨군요...?"

왜인지 모르지만 여인의 얼굴이 실망감으로 물들었고 그녀는 더 이상 무언가 바라지 않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몇 년입니까?"

"제국 년 144년이에요."

민석은 영문도 모른 채 '칠러웨이'라는 이름을 가진 18살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원래 내 몸이랑 달랐구나.'

그에엑!

".... 일단.. 여기 길 대충 압니까?"

"네?"

"길 잘 아시냐고요."

"네.. 대충은.."

'일단 나머지 상황 파악은 살아서 하는 걸로 하자.. 자리를 피해야 해.'

온몸에 가득하게 느껴지는 살기에 민석.. 아니 칠러웨이는 여인을 일으켰고 떨어진 검을 주워들었다.

"저기.."

"얘기는 나중에 일단은 이곳에서 빠져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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