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달콤한 평화(1)
* * *
평화…. 유다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최근에 제국의 북부가 뚫리면서 막대한 피해를 줬다. 그것만 해도 폭풍 전 고요함의 느낌이었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마왕 강림이 확인되었고 용사가 선택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계획대로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원래 안드레아는 용사 선택을 받고 아카데미는 습격당하고 용사 수행을 떠나야 했었지만….
'평화로워….'
원작에서 존재하지도 않았던 부분이었다. 애초에 유다의 계획은 안드레아의 용사 수행 여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계획은 완벽히 틀어졌다. 마음은 복잡했다. 계획이 틀어지기 전 마성에게 성물을 바꿔치기해달라는 부탁을 왜 하였겠는가?
그건 바로 유다는 계획대로 진행되기를 결정과 평화로웠으면 하는 결정 중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왕 강림이 성공해서 용사가 선택되기를 바랐다면 아무런 변수 없이 진리구제회를 내버려 두면 되었다. 하지만 유다는 그러지 않았다.
만약 마성에게 부탁해서 성물을 바꿔치기 말고 빼돌렸다면 그들은 다른 성물을 찾느라 마왕소환의 기간이 길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유다는 그러지 않았다. 원작대로 안드레아가 용사 선택이 되기를 바라면서 또한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낳았다.
용사는 선택되었고 분명 마왕은 소환되었을 터….
'마왕이 강림한 게 맞나?'
세상이 너무나 평화로웠다.
톡…. 톡…. 톡….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겨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평화로웠다.
유다의 책상 앞에 놓인 서류에는 세계에 정보들이 쌓여있었지만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별다른 이상이라 하면 설탕의 수요 증가지.'
설탕의 수요가 증가해 설탕 가격이 30% 정도 올랐다는 것을 빼면 다를 게 없었다.
"모르겠네…."
유다는 어쩌면 이 상황이 자신에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던 것은…. 안드레아의 용사 선택…. 그리고 내가 겪고 있는 평화가 유지되는 것."
따지고 보면 전부 유다가 바란 대로 된 셈이었다.
"그래…. 이것도 나쁘지 않겠지."
유다는 그렇게 결정한 순간 미소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 앞에 놓인 성적통지서를 보고 한숨 쉴 수밖에 없었다.
"하아…."
원래 원작대로라면 마왕 강림 후에 용사가 다니던 아카데미가 개박살이 나는 것이 정상이었다.
유다도 그를 알기에 학교에서 성적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불량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었다.
아무리 유다가 벨라레 가문의 가주일지라도 성적 부족으로 유급은 하기 싫었다.
"이대로라면 유급이라…."
필기는 어느 정도 점수를 챙겼지만, 문제는 실기였다. 유다는 실기를 전부 포기했기에 단 1점의 점수도 얻지 못했다.
게다가 동아리 평가 점수 항목에는 동아리에 아예 참가 자체를 하지 않았기에 이것도 0점이었다.
막상 평화의 시기가 다가오니 여태 아무런 생각 없이 무시해온 문제가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만약 2학기 때에…. 전부 만점을 받는다고 치면…."
당연히 유급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유다가 전부 만점을 받을 수 있냐는 사실이었다.
뒤적…. 뒤적….
한참을 아카데미 정보에 대해 뒤적거리는 도중 유다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학생회 모집 포스터였다. 비록 1학기 때 발부된 포스터였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학생회에 업무를 수행하면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유다는 빠르게 목표를 정했다. 비록 2학기에 동아리를 바꾸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지만, 유다에게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어떨 때는 합법적으로 때로는 불법적으로 목표를 수행하는 것이 유다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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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학생회에 지원하시고 싶다는 소리죠? 원래 있던 동아리는 포기하시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유다는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학생회장에게 서글서글하게 웃어 보였다.
유다의 입장에서의 서글서글이지만 학생회장의 입장에서는 영문모를 기이하게 수상한 미소였다.
게다가 최근 학생회 인원들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리면서 급하게 학생회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갑자기 새로운 인력이 필요할 때 지원자가 나타난 게 매우 수상했다.
'아무리…. 영웅이라 불리는 유다라 할지라도…. 너무 수상해.'
애초에 얼굴 자체가 수상했다. 눈꼬리는 여우같이 쭉 가느다랗고 실눈은 그 수상함을 증폭시켰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데…. 하지만 인력이 부족해!'
그렇게 유다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학생회장이었다.
유다가 자신의 반으로 향하는 도중 복도에서 유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다! 그 일 들었어?"
"응? 무슨 일?"
최근 마음의 여유를 얻은 유다는 반 아이들에게 매우 친절했다. 굳이 친해지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지만 밀어내지도 않았다.
'굳이 거부해서 적개심을 심어줄 필요는 없지.'
유다는 명망 높은 가문의 주인이자, 마성의 홍보로 영웅이라는 감투까지 쓰게 되었다. 물론 제국에서 영웅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지 모두가 알음알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유다에게 현재 말을 거는 이는 유다에게 이성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유다는 그런 여학생에게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이미 자신에게는 연인이 있을뿐더러 저 여학생의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학생이 손이 유다에게 다가왔고 유다는 지켜보았다. 유다는 실눈으로 여학생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지만, 그냥 그녀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학생의 손이 유다의 약간 삐뚤어진 넥타이를 고쳤다.
순식간에 접촉에 유다의 눈썹이 약간 움찔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시간 낭비일 것임을 직감한 유다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어…. 우리 반에 전학생이 온대!"
전학생…. 아마 이 시기에 오는 이는 유다가 예상하는 건데 단 한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그 밖에도 여학생이 무언가 말했지만 전부 쓸모없는 내용이었다.
'정보에 영양가가 없어.'
"얘기 고마워. 리샤."
유다는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고서는 반으로 들어갔다. 리샤라는 학생이 볼을 붉힌 것은 덤이었다.
반 안에는 자신이 아직도 용사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 안드레아와 그를 둘러싼 학생 무리 그리고 방금 대화한 여학생을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제나가 있었다.
"안녕 제나."
유다의 몇 안 되는 진심을 보이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유다…. 너무 위험해…. 내가 전부 다 할 테니까…. 유다는 집 안에만 있어야 해…."
제나는 가끔 위험한 소리가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그것은 작은 농담일 뿐이었다.
"어? 유다!"
제나와 잠시 대화를 하던 도중 아이들 무리에서 탈출한 안드레아는 유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도와줘!"
저번 사건 이후 반 안에서 인싸가 된 유다는 반 아이들을 말렸다.
"모두 진정 좀 해주면 안 될까?"
유다의 말이 반 안에 울려 퍼졌고 한순간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모두가 진정되었다.
루나(루시의 아카데미생 위장명)는 이 모습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드높은 격이 알아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어.'
루시가 생각하기에 격이 높아질수록 세계에 존재감이 뚜렷해졌다. 그리고 그 부수적인 효과로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든가 강력한 설득력을 뽑을 수 있었다.
아마 유다는 거의 일반인들에게 언령에 가까운 힘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들 세계가 기대되는 루시였지만 이제는 저 남자의 끝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유다라면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기에 참으로 뒷맛이 오묘했다.
루시는 유다를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바로 고쳤다.
'그나저나…. 이제 격에 따른 효과들을 연구해봐야겠어.'
격은 곧 존재감. 존재감은 위압감.
루시는 유다의 격이 너무 높아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이대로면…. 일반인에게 같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으니……. 봉인구를 제안해봐야겠지.'
그러는 것이 유다의 입장에서도 사람들의 처지에서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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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르륵….
5번이나 넘게 본 장면이었지만 언제나 새로웠다.
적어도 안드레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안드레아의 반을 책임지고 있는 교관, 처음에는 목숨을 걸어도 이기기 힘든 상대였지만 이제는 전혀 긴장되지도 않았다.
그만큼 안드레아의 실력이 발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안드레아가 느끼기에 유다에게는 거대한 존재감을 제외하면 아주 작은 마나만 감지할 수 있었다.
'아직 유다에게 부족해…. 뭐가 용사란 말이냐….'
그것이 안드레아를 들끓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그밖에도 신경 쓰이는 이는 몇 명이 더 있었다.
마력은 작은데 질 자체가 자신보다 우수하다고 느껴지는 제나 테낙스나 기묘하게 불길한 느낌을 주는 유다의 메이드.
'별 것 아닐 거야. 그리고 이제 나는 용사라고…. 유다를 반드시 뛰어넘을 수 있어.'
안드레아는 다짐했고 마침 교관이 전학생을 데리고 들어왔다.
전학생은 눈부실 정도로 하얬다.
"예쁘다…."
무심코 목소리가 밖으로 나왔다. 순식간에 시선이 쏠리고 전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용사님. 루스 교단에 37대 성녀 레아에요."
성녀가 안드레아에게 손을 내밀었고 안드레아가 느낀 감촉은 부드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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