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마왕 강림!
* * *
"이단자들을 심판해라!"
루스 교단의 대신전은 아침같이 환히 불타고 있었다.
안쪽에는 성직자들의 끝없는 비명소리가 맴돌았고 선혈이 낭자했다.
"성물을 찾아라!"
물론 습격은 한순간이었고 대신전의 사도가 나서서 진리구제회를 막아내고 있었다.
아무리 대신전의 본 병력이 차출되었다고 해도 아자젤에 의해 전력이 크게 깎인 진리구제회가 루스 교단과 전면전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사도는 흰색 보호막으로 급박하게 사람들을 보호했고 대신전의 수호자들이 나서서 막고 있기에 루스 교단이 파멸에 도달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루스 교단은 한순간에 괴멸적인 피해를 받았다. 여전히 심각한 상황은 덤이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루시는 지켜보고 있었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도와주지 말라는 말이 이걸 예측하였을 줄이야."
루시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극이 안타까웠지만, 굳이 움직여서 유다의 말을 어기고 싶지 않았다.
루시는 만약 움직인다면 유다의 계획을 망치게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타까워라…."
적들이 기습해서 대신전은 큰 피해를 받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곧 루시가 나서야 하는 순간이 오는 시간이었다.
"성물을 찾았다!"
"옮겨! 그리고 귀환해라!"
루시는 놀라웠다. 모든 것이 유다의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진리구제회가 성물을 운반하는 순간이 루시가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애초에 루시의 목적은 유다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
적들이 조심스럽게 성물이라 불리는 책을 운반하는 순간에 환상 마법을 걸고 자신에게 여러 중첩인 투명 마법을 걸었다.
그러고 나서 성물에게 접근했다.
"이게 성물?"
루시는 곧바로 유다의 명령을 떠올렸다.
유다가 루시에게 이런 부탁을 한 이유는 원작에서 마왕 소한의 방법이 자세히 나왔기 때문이었다.
진리구제회의 마왕 소한은 꽤 복잡한 절차를 거쳐 수행되었다.
우선 다른 세계에 문을 만들어 마왕을 강림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만 명의 피와 영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고 마왕을 이곳에 강림시키기 위해 제물이 또 필요했다.
참고로 마왕소환은 서로 간에 거래이기 때문에 마왕이 응하지 않으면 소환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희귀한 성물로 마왕에게 계약금을 지급하고 제물로 나머지 대가를 치러나가는 셈이었다.
만약 죽음 쪽과 관련된 성물이라면 죽음과 관련된 마왕이 응할 가능성이 컸다. 특정 마왕을 소환하고 싶으면 계약금인 성물을 마왕의 취향에 맞춰놓고 소환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계약금인 성물이 쓰레기라면? 마왕들은 거들다도 보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쓰레기라도 마왕이 응답하지 않더라도 디른 마족이 아닌 존재가 응할 수는 있었다.
물론 그들도 계약의 대가를 보기에 강한 존재가 응하지는 않겠지만….
만약 보석류나 희귀한 물품일 경우 꽤 강한 존재가 소환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유다는 아주 하찮은 물품으로 복제품을 만들어서 바꿔치기하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아주 하찮은 물품이라…."
루시는 자신의 아공간을 살펴보았다. 당연히 마법으로 무에서 유로 창조는 불가능했으므로 어떤 물건을 변환시켜 복제품을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역시 중앙 마탑의 아공간은 보물들로 넘쳐났고 루시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고대 마도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보물 여러 마도구 등등….
한참을 뒤적거리던 루시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딱 하나 발견했다.
"예전에 먹다 남긴…. 사탕이 담긴 통…."
루시는 기쁜 마음에 빠르게 사탕을 성물로 변화시켰고 설탕으로 만들어진 가짜 성물이 되었다.
"됐다. 임무 완료야."
적들은 이제 설탕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책을 보고 자신들이 찾는 성물이라 믿을 것이다.
'그나저나 환상 마법의 지속시간이 1일 정도는 될 텐데….'
가짜 성물의 섬세함을 살려주는 환상 마법의 지속시간은 1일 정도였지만 환상 마법이 풀리면 진리구제회 측에서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뭐…. 알아채도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그 또한 예측하고 있을 테니….
굳이 뒷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 루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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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욺겨!"
처음 습격했을 때는 기세등등한 진리구제회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뒤바뀌었다.
진리구제회는 성물을 들고 도망쳤고 그 뒤를 쫓는 것은 루스 교단의 사도와 이단 심판관들이었다.
"봉인한 성물을 탈취당했다! 쫓아라!"
루스 교단의 사도는 분노한 기색으로 미친 듯이 추격하기 시작했다.
진리구제회원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성물만…. 본교에 보내!"
루스 교단에 사도가 가까이 다가오자 결국 진리구제회측에서는 시선을 끌기로 했다.
단단히 밀봉된 상자를 열고 성물을 꺼냈다.
"이걸 들고 본교까지 도망치도록. 우리는 시선을 끈다!"
결국, 혼자 남은 진리구제회의 신도는 그들의 희생에 눈물을 흘리며 성물의 끈적함을 느끼며 홀로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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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파 당한 루스 교단의 대신전이었지만 그런 혼란 속에서도 고요함을 지키는 장소가 있었다.
신탁의 방.
그곳에서 성녀는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반짝!
그러기를 수십 분. 성녀는 어느 순간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다시금 침공이 시작되는군요."
성녀의 의무를 수행할 시간이었다. 그녀는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마왕이 강림할 것입니다."
성녀의 몸은 환하게 빛났다.
"그리고 용사는……. 은발의 머리색을 지닌…. 안드레아 달카스…."
신탁과 함께 용사가 선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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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 드디어…. 성물을 다시…."
"준비되었습니다. 교주님."
수백 명의 피로 이루어진 마법진 위에서 수천 명이 시체를 제단처럼 쌓아놓고 수만 명의 영혼을 바쳐 위대한 존재를 소환할 차례였다.
교주는 성물이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성물임이 확실하군."
루스 교단에 강탈당한 성물은 성물 중에서 최상위에 있는 성물이었다.
여기서 진리구제회의 성물은 불사자의 성서 마왕들 중에 상위권에 해당하는 권능을 가진 마왕을 소환할 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급하게 진행해도 되는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그리고 제물의 상태는 지금하나 나중에 하나 똑같을 뿐이야."
그렇게 말하며 교주는 급하게 손을 놀렸다.
"자…. 이제 계약에 시간이다."
거대한 핏빛 제단이 공명하며 거대한 구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교주의 손놀림에 따라 구체는 모양을 이리저리 바뀌며 결국 문의 형태를 띠었다.
교주는 차원의 문을 뚫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문을 연다고 끝이 아니었다.
차원의 문을 연 순간 교주에게는 엄청난 압박이 들어왔다.
'시선….'
무언가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그 시선들은 제단에 놓인 성물을 보고 사라졌다.
교주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때쯤이었다.
엄청난 기운을 가진 시선들이 제단에 놓인 성물만 보면 마치 김빠졌다는 듯이 사라졌다.
'???'
교주가 준비한 것은 불사자의 성서. 마왕소환의 기록 중에서도 상위권에 있는 성물이었지만 시선들은 그 성물에 눈길 하나도 주지 않고 사라졌다.
'무언가가 잘못됐다.'
하지만 이상함을 느끼지만, 그 이상함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교주였다.
결국, 의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남은 시선 중 하나가 제단에 놓인 물건에 관심을 보였다.
'됐다!'
"저와 계약을 맺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시선의 존재는 승낙했고 어두운 안개가 뿜어져 나오며 강림했다.
소환된 존재는 차원의 법칙에 따라 약해지지만, 제물들로 다시금 힘을 되찾게 할 수 있기에 머릿속에 계획을 그리던 교주였지만 안개가 걷히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뭘 봐?"
교주의 눈앞에는 교주의 허리춤에 오지 않은 키에 말랑말랑한 볼따구를 가지고 있는 어두칙칙한 소녀가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교주는 그런 모습에 속지 않으며 침착하게 그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어…. 혹시 불사자들의 왕이십니까?"
"아닌데."
"그럼…. 불멸의 배회자?"
"아니야."
"죽음의 군주라도…."
"아니라고!"
소녀는 빼액 소리쳤다.
그럼에도 아직 교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불리는 명칭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 건 없는데."
교주의 말에 소녀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결국, 교주는 해서는 안 될 질문까지 하게 되었다.
"혹시…. 마왕입니까?"
만약 마왕에게 질문했다면 굉장히 무례한 질문이었겠지만 교주는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
"마왕은 아니고 마왕이 될 예정이지."
소녀의 답은 교주의 억하심정을 무너트렸다. 그런 교주의 마음을 이해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소녀는 제물이 된 성서를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할짝….
"달콤해…. 여기 오기를 잘했어…."
성서를 빨아먹는 모습을 보고 교주는 머리가 아파졌다.
"혹시…. 잘하는 일이 있으십니까?"
교주의 말에 설탕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소녀는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달콤한 걸 잘 먹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