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아카데미 서바이벌(3)
* * *
안드레아에게 페이탈 트리거에 대해 짧게 설명해준 뒤에 안드레아와 유다는 서로 갈라졌다.
"역시 주인공은 주인공인가…."
유다가 페이탈 트리거에 대해 설명했을 때 안드레아의 반응은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자 했다.
유다가 페이탈 트리거를 입에 담은 것은 그저 자신의 안위를 위함이었지만 안드레아는 다르게 받아드린 것이다.
차마 그런 안드레아의 생각을 부정할 수 없었지만, 안드레아가 너무나 고결했기에 약간의 찝찝함이 들었다.
"안드레아는 이미 완성되어 있어."
원작에서는 여러 사건 사고로 성장하지만, 안드레아는 이미 정신적으로 성장한듯했다.
"이것도 나비효과이려나…."
유다는 수상한 위치를 탐색하던 도중 금색 상자를 발견했다.
"엇!"
물론 당연히 그것은 유다가 기대하던 페이탈 트리거는 아니었다. 상자 안에 들어있던 물건은 서바이벌에 점수를 주는 아이템이었다.
"역시 아닌가…."
서바이벌의 일환으로 점수를 주는 아이템까지 숨겨져 있으니 페이탈 트리거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원작에는 있었지만 없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야 하는 이유는 그 방법밖에 없기에 찾는 것이었다.
유다가 한참을 집중하고 있을 무렵 흑색 창이 유다에게 날아왔다.
팅!
유다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작동하며 푸른색 방벽으로 막아내 아무런 피해조차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안이 벙벙했다.
스륵스륵….
곧이어 수풀이 흔들리면서 검은색 갑주를 입은 기사가 등장했다.
"확실히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서바이벌 시험에 몬스터라도 되나?"
유다는 단검을 꺼내 들었다. 마치 지금 이 시간을 위해서 아티펙트를 보내준 것 같았다.
오랜만에 쓰는 단검의 감촉을 느끼며 몸을 가속했다.
'장갑은 두껍고…. 골렘 종류? 무기물? 생명체?'
여기는 가상세계인 만큼 저런 것이 유기물일 수도 있었다.
'일단 기동력부터 끊는다.'
검은 갑주를 입은 기사의 무릎 부분에 이음새가 보였고 유다는 그것을 노렸다.
이윽고 유다의 단검과 기사의 창이 부딪혔다.
.
.
.
"돌려줘! 유다를 돌려주란 말이야!"
마성이 보기에 보라색 머리의 꼬맹이인 제나 테낙스가 바락바락 소리 지르고 있었다.
그런 무례한 상황에서도 마성은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책임이기 때문이었다.
제나 뿐만이 아니었다. 서바이벌의 시간이 오래 지속되자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은 항의하기 시작했다.
서바이벌에 참여한 사람 수가 많은 만큼 시선이 몰렸고 얼마 되지 않아 황실에서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마성은 모든 진상을 공개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큰 폭동이 일어날 게 뻔했다.
"큰일 났어…."
마성은 손가락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었다.
본래 8시간 안으로 끝났어야 할 서바이벌이 끝나지 않고 있었다. 참여 인원들은 모두가 모여 잠들어 있고 단 한 명도 깨어나지 못했다.
"이로써 권위실추는 확정이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제국 7성의 권한 박탈은 물론 마탑의 존재에 의구심을 품겠지."
그리고 마성은 아직도 세계에 대한 권한을 탈취하지 못했다.
본래 공격보다 수비가 유리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도 권한을 빼앗지 못한 것은 큰 충격이었다.
"후우…. 아무리 공간계열이 내 전문이 아니라도 나는 중앙마탑 수장인데…."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적은 공간에 대해 최소 자신과 동급이었다.
"잃을 것이 많아지니 나도 소극적으로 되었구나."
대륙 최고의 마법사로 인정받으며 자신은 점점 소극적으로 되었다. 잃을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이 터진 후로 그녀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상황이 터지면서 책임을 막중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냥 나는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고 편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이제는 모든 게 지겨웠다. 사람들의 평판도 시선도 불편할 뿐이다.
아마 이번 일이 끝나면 되지도 않는 변명을 중얼거리겠지.
마성의 자리에 앉기까지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평민 출신 마법사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해야 했다.
그렇기에 시커먼 꼬맹이의 말에 잠깐 혹했다. 그가 만들 세상을 조금이나마 기대하기에 방관을 택했다.
"하아…. 이번 아카데미 일에 나서지 말 걸 그랬나."
후회가 막심했다. 하다못해 자만에 가득 차 틈을 내어주었다.
고작 자신이 만든 공간 마법조차 해제하지 못하기에 철저한 무력감을 느꼈다.
"늙은이들의 고리타분함과 오만함을 싫어했는데…."
어느새 그들과 같은 모습이 되어있는 자신을 느꼈다.
변화하는 세상을 기다리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바뀌기를 원하지만, 또 바뀌지 않기를 원했다. 어느새 그녀는 기득권자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냥 은퇴할 거야."
그녀가 은퇴하기로 한 이유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나아가보자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하네…. 하지만 그전에 마지막 책임을 져야겠지."
마성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거의 다 됐어…."
그녀의 눈은 가상세계로 침투했고 이윽고 유다가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건…."
마성 본인이 부르는 새까만 꼬맹이.
"지원이 가능할지도."
하지만 마성에게도 유다에게도 시간이 부족했다.
유다는 피칠갑을 한 채로 싸웠고 당당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벌어줘."
벌써 가상세계의 많은 사람이 흑기사들의 창에 꽂힌 채로 죽지도 못한 채로 고통만을 느끼고 있다. 이는 현실에 크나큰 트라우마나 쇼크를 일으킬 것이 뻔했다.
"모두 조금만 버텨줘…."
루시는 재미 삼아 만들어 놓았던 페이탈 트리거를 활성화시켰다.
"제일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거야."
비록 자신보다 어렸지만 거대한 세력을 이끌고 있고 새로운 세상의 비전을 약속한 그에게 자신의 믿음을 보냈다.
이것조차 실패한다면 가상세계를 해체하는 대에는 1일 이상이 걸릴 것이 뻔했다.
그러니 그녀는 평생 믿지도 않은 신한테 제발 성공해 달라고 빌었다.
.
.
.
베고 또 베었다.
아무리 최고급 아티펙트인 단검이어도 날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적들은 사거리가 단검보다 훨씬 우위이기 때문에 유다의 옷 곳곳에는 작은 상처들이 무수히 나 있었다. 그나마 치명상인 상처가 없는 덕분은 유다의 몸에 걸린 치유 아티펙트들 덕분이었다.
"헉…. 헉…. 점점 많아지고 있어…."
페이탈 트리거를 찾는다는 보장도 없고 적은 끊임없이 증원되었다.
다행인 점이라면 흑기사들과 다르게 백기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바이러스를 잡는 것처럼 같이 흑기사들에게 대항했다.
물론 그조차도 흑기사들에 비해 수가 압도적으로 모자랐지만 말이다.
손아귀는 이미 찢어진 지 오래였다. 유다는 쓰러진 흑기사의 옆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움직였다.
"이래도 바뀌는 게 있을까…."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마치 안개 속을 유영하는 무력감은 매우 불쾌했다.
그 불쾌감은 자신이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유다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도 모르겠네."
유다 자신도 왜 자신이 이렇게 노력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전생이라면 냉소를 짓고는 체력이라도 보존하는 게 어때라는 말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멍청해 보여도…. 도전하고 싶을지도."
어쩌면 주인공인 안드레아에게 휩쓸린 영웅심일 수도 있었다.
유다는 단검에 검은색 피를 털고 일어났다.
다시 페이탈 트리거의 흔적을 찾기 위해 움직이려던 찰나인 그 순간.
통!
유다의 눈앞에 맑은 소리를 내며 창이 떨어졌다.
"흰색 창…. 페이탈 트리거!?"
유다는 이것이 본능적으로 자신이 찾고 있던 물건임을 확신했다.
"그래…. 이거지…."
유다는 큰 성취감을 느꼈다. 무력감에서 성취감으로 바뀌었을 때는 일반적으로 목표를 달성했을 때보다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찾았어…. 찾았다고…."
흰색 창을 휘둘러보았다.
"깔끔해…."
하얀 궤적을 일으키는 창은 현실에 있다면 엄청난 가치를 가질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매력적이었다.
페이탈 트리거는 편하게 생각하면 강제종료 버튼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적용되는 원리는 훨씬 복잡했지만, 그냥 최종적인 강제종료라고 설명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죽으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겠지."
유다는 창을 역수로 들어 자신의 복부에 가져다대었다.
이 지긋지긋한 나무와 숲만 있는 세계를 탈출할 수 있는 기회였다.
숙소에는 자신의 메이드인 캐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편안한 숙소도 있었다.
제나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전생의 유다라면…. 3년 전의 유다만 했더라도 망설임 없이 자신의 배에 페이탈 트리거를 꼽고 탈출했을 것이다.
지금의 유다는 그러지 못했다.
"주인공과 어울리니까…. 냉철함을 잃은 거지."
안타까움에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일단 최대한 구할 때까지 구해보자고."
여전히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곤란한 상황이라면 당장이라도 탈출할 것이다.
하지만 구할 수 있는 것을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안드레아도 구해봐야지."
정말 좋은 핑곗거리였다. 안드레아를 구하는 김에 겸사겸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