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가 흑막이라고요-51화 (51/79)

〈 51화 〉 전면전?(2)

* * *

"슬슬 때가 되었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분노. 그것을 해소할 시기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모든 일의 원흉인 바타치스 공작가. 제국의 삼공작가로 불리며 고고한 위상을 자랑하던 가문이었지만, 최근 연이은 투자 실패와 인력 손실 등등으로 두터운 가문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해볼 만하지."

사실 해볼 만한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찍어누르는게 가능하다였다.

벨라레 가문이 바타치스와 같이 공멸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에 유다가 벨라레 가문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었다.

"바타치스…."

바타치스와의 전면전. 다만 유다의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면 유다는 학생 신분으로서 전면전을 바로바로 진두지휘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안전을 도모하기에는 이번에 바타치스가 너무 큰 허점을 보였는데.'

안전을 위해 몇 년간 더 기다리고 활동할 수는 있었지만, 이번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컸다.

'기회를 얻었을 때 실천하느냐…? 아니면 안전을 위해 나중을 도모하느냐….'

이번에 바타치스 가의 정기적인 가면무도회의 몰락이 귀족 여론의 약화와 위신적 손실 등을 불러왔다.

'정당하게 축출할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하지만 유다는 한 가문을 이끄는 가주였다. 가문에 소속된 이들을 위해서 혼자 독단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유다의 선택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었다.

가문을 위해 일해준 그들에게 주는 대가가 몰락이라면 매우 비극적인 일일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유다의 한숨 소리를 들은 제나가 유다의 침대에서 눈을 비비며 기어 나왔다.

"하암…. 유다 무슨 문제야?"

"음…. 그게 제나 너라면 큰 이득의 위험한 길과 변하지 않는 안전한 길 중 무엇을 선택할 거야?"

"당연히 위험한 길이지!"

제나의 일말의 고민도 없는 선택에 유다는 한숨부터 나왔다.

"제나…. 그렇게 가벼운 문제가 아니야. 나름 중요한 문제라고."

"나도 진지하게 대답한 건데? 유다. 인생이란 말이야. 안전한 길을 택할 수 있겠지만 그건 두고두고 후회될 만한 일일 거야."

제나는, 마치 아련하다는 듯이 말했다.

"비록 내가 흉성한테 밀린다고 해서 사령술까지 밀리는 건 아니었거든. 유다와 나랑 힘을 합쳐 쓰러트리기 전까지 나는 꽤 많이 흉성에게 도전했어."

"만약 내 도전이 흉성의 기분을 해쳤다면 나는 죽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변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목숨을 건 도전을 했고 결국 그녀와 동등한 사령술 실력을 얻게 되었지."

그때 그 상황에서 제나의 실력이 조금이라도 모자랐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유다는 상상만 해도 아찔한 감각을 느꼈다.

"유다. 그렇기에 나는 절대로 후회하는 결정은 내리지 않아. 설령 그게 비극적이고 파멸적인 결과를 불러와도 그 사실을 수긍할 뿐이지."

분위기가 어두워지자 유다는 제나를 향해 농담을 던졌다.

"그런 것 치고는 제나 너는 내가 저번에 뭐라 했을 때 바로 후회하던걸?"

유다가 업무문제로 제나를 방 밖으로 내쫓았을 때 매달리는 제나의 모습은 가학성을 자극했다.

유다의 말에 제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건 유다 네가 관련된 일일 때만 예외인 거야!"

하지만 제나의 말은 유다의 상황과는 알맞지 않았다.

"제나. 하지만 만약 내 선택에 따라 가문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할 건데."

유다의 말에도 제나의 굳은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바보 아니야? 유다 너는 가주라는 의미를 아직 제대로 모르고 있어."

제나는 막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가 산발이 되었지만 당당하게 일장 연설을 하는 것처럼 말했다.

"가주는 가문 그 자체이자 가문의 대리자야. 가주의 뜻이 가문의 생각이지. 가주가 없으면 가문도 없고. 가문이 없으면 가주도 없는 법이야. 유다 그러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그래…."

제나의 말이 유다의 선택을 바꾸게 만들었다.

'마치 딱딱 맞아떨어지는 기회를 망칠 수 없지.'

유다는 캐시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캐시. 영지 쪽에 연락 돌려줘."

"알겠습니다. 주인님."

유다가 옷을 반듯하게 하고 일어서는 순간 제나가 유다를 침대 쪽으로 끌어당겼다.

"유다 나는 후회하는 일 따위 안 한다고 했지?"

제나는 그렇게 말하며 유다의 입술을 훔쳤다.

"자…. 잠깐 제나 지금은 바쁜데."

유다는 당황하며 말렸지만, 제나의 완력은 비이상적인 힘을 발휘했기에 당해낼 수 없었다.

으득….

옆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지만, 제나의 손놀림은 매우 빨랐다.

"으득…. 그럼…. 주인님 좋은 하루 보내시길…."

"어어…. 그래…."

쾅­! 소리가 나며 문이 닫혔고 그 뒤로는 열락의 시간이 펼쳐졌다.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저 쓸모없는 년이 감히…. 주인님…. 저 자리에 내가 어울리지는 않지만…. 저년도…. 어울리지 않는데…."

문이 닫히고 캐시는 감히 안쪽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으드득…. 으드득….

그리고 그날 저녁 캐시는 이빨에서의 큰 통증을 느꼈다.

.

.

.

제국의 그림자 시크릿 클랜의 정기 회의장.

"이번에 새로운 부서장을 소개하지요."

회의장에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쓴 자가 나타났다.

"모두 환영해 주시기를."

아자젤은 원래 유다와 상의하여 시크릿 클랜의 대상을 영입했지만 최근 유다가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이번에는 자신의 독단으로 행동했다.

'유다가 불안하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것도 나의 역할이니….'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쓴 그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대륙의 그림자 여러분들. 이번에 음지부서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그는 성의 없는 박수를 받으며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렇게 새로운 인물을 맞으며 회의가 시작되었다.

아자젤은 이번에 진행하게 될 대형 사건에 관해 물어보았다.

"작전 몰락의 진행 상황은?"

"황실 쪽 여론은 바타치스 가를 축출해야 한다고 여론을 조성해놓았습니다."

특무부서장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질하면서 말했다.

본디 그는 말할 때 콧수염을 만지는 버릇이 있었지만 쓰고 있는 가면 덕택에 가만히 있지 않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바타치스가가 헤이스트 상단에 채무를 지게 했습니다."

관리부서장의 얼굴은 가면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 참고로 비밀 금고는 모조리 터는데 성공했어요. 비밀병기 달콤한 환상은 다시 가져왔고요."

암살부서장인 아델라도 손으로 단검을 돌리면서 말했다.

"모험가 길드 쪽은 잠시간 의뢰를 하지 못하게 막아두었습니다."

탐험부서장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허…. 청마탑에서 일부러 사건·사고를 일으켜 잠시간 마탑이랑 충돌하게 만들었지요."

마법부서장은 인자한 것 같았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수라도 사용했다.

"모든 무기가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아카데미보다 더 강한 결계와 봉인 무기들까지도요. 적들은 한 명도 살아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모두의 시선이 새로 들어온 음지를 관리하는 신입 쪽으로 쏟아졌다.

"저…. 저는 오늘 들어왔는데요?"

그런 시선에 못 이긴 새로 들어온 신입이 말을 절었다.

신입의 불안한 음성에 아자젤은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 마라. 너는 제일 중요한 역할을 맡을 테니."

아자젤의 따뜻한 목소리에 신입은 오히려 더 불안을 느꼈다.

"무슨 일이죠?"

"최후의 발악을 하는 바타치스 가에 건하게 사기를 한번 쳐보자고."

바로 암흑가 경매장에서의 사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암시장의 명성이…. 게다가 경매장은 신뢰가 생명인데…."

신입의 걱정되는 말에 회의장에 있던 이들이 모두 피식하고 웃었다.

그 웃음에 맞추어 아자젤도 친절한 어조로 그에게 설명했다.

"사기가 들켜도 괜찮아. 어차피 그 사실을 밖에 알릴 수는 없을 거야."

아자젤은 일부러 뒤에 모두 죽어서 알리지 못한다는 말은 빼먹었다.

왜냐하면, 암시장의 위까지 도달한 그는 추가적인 설명이 없어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입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하얗게 물들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시크릿 클랜에 오신 것을 진정으로 환영하지요.“

여기는 시크릿 클랜의 회의장. 제국의 거대한 그림자이자 세계를 먹어치우는 끝없는 어둠의 구렁텅이.

이곳을 본 자는 살아나갈 수 없고. 그 누구도 이곳의 진실을 알 수 없었다. 모두가 단편적인 진실만을 알고 있고 그것이 진실이라 믿는다.

이미 시크릿 클랜은 제국 깊숙이 박혀있었다.

"오로지 유다를 위해…. 최근에 많이 흔들린 유다지만…. 다시 우리의 철혈의 지도자가 되실 거야."

그렇게 세상은 유다의 의지로 개편될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허황된 망상이라 할 수 있었지만, 진심으로 아자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자젤은 새로운 세상의 신인 유다의 오른손에 들린 정의의 철퇴인 검이 되고 싶었다.

"나는 당신의 검이 되어 적을 베어나갈 것이니…."

유다가 잘못되어도 믿고 따르는 자를 위해 끝없이 정진하고 걸어갈 것이다.

"유다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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