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해충박멸(3)
* * *
높고도 높이 솟은 산. 산의 봉우리는 삐죽삐죽 가시처럼 날카로웠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루덴. 빛의 신의 제단이 산꼭대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절벽 같은 산을 아자젤은 타고 있었다.
"끄으으으…."
날카로운 바람이 벌꿀 같은 머리카락과 뺨을 자꾸 찰싹찰싹 때렸다. 실제로 아자젤이 마나로 보호하지 않았다면 뺨에는 검에 베인 자상이 남았음이 확실했다.
"여기만 올라가면…."
루스 교단에 사도가 될 수 있었다.
12 사도의 유래는 최초의 루스 교단의 개척자 12명을 12사도라 불렀다. 12명은 세상을 정화하기도 하고 세상을 바로 고치기도 하였다. 12명의 사도는 죽어서 각자의 성유물을 남겼는데 성유물은 자신의 주인을 직접 자신이 선택했다.
그렇기에 12사도라는 지위가 현재 2명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남은 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이유였다. 아자젤이 선택받은 성유물은 7 사도의 성유물.
하지만 선택받았다고 바로 사도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성유물의 선택을 받으면 사도 후보가 되고 시련을 수행해야만 그제야 사도가 될 수 있었다. 아자젤을 포함한 사도 후보는 총 5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련이 두렵기에 목숨을 잃을 수 있기에 시련에 함부로 도전하지 않았다.
시련은 루덴의 산의 꼭대기에 있는 제단에 고인 성수에 성유물을 담그고 회수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련이 왜 시련이겠는가. 시련의 진행되는 장소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루덴이다. 중턱까지는 어떻게든 일반인들이 갈 수 있었지만, 그 뒤로는 불사의 제단 수호자들. 움직이는 거석상들 그리고 침입자들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 비이상적인 자연환경까지.
이것이 시련이었다. 그리고 아자젤은 톡톡히 느끼고 있었다.
본래 아자젤은 자신의 실력이 더 쌓이고 난 뒤에야 최소 10년은 여유를 두고 시련을 받을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사도의 권한이 급하게 필요했다.
'사도의 권한을 써서 블러드문 클랜을 제거하면…. 유다님의 화도 가라앉겠지….'
그렇기 때문에 아자젤에게는 시간제한까지 있었다. 아자젤은 부디 유다가 마지막 선을 넘지 않기를 바랠 뿐이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나도 같이 책임질 테니까.'
절벽을 오르던 아자젤의 손은 부르텄다. 옷에는 구멍이 숭숭 뚫렸다. 등에는 스친 흔적이 가득했다.
'거슬리는 머리카락…. 유다가 칭찬해준 머리카락인데….'
벌꿀 같다고 그리고 비단 같다고 긴 머리가 어울린다는 유다의 칭찬이 있어 머리카락을 열심히 관리했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 아자젤은 결단을 내려 검으로 자신의 금발 머리를 잘라버렸다. 순식간에 단발이 돼서 마음은 쓰렸지만, 몸만은 편안했다.
'어차피 다시 기르면 되니까.'
다시 기르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테지만 지금 아자젤이 하는 것에 비교될 수는 없었다.
아자젤은 만신창이가 된 손으로 암벽을 붙잡고 붙잡아 계속 올랐다.
어느새 절벽지대가 끝났고 평평한 땅이 아자젤을 반겨주었다. 평평한 땅 위에 또다시 올라갈 작은 산이 있었지만 제일 크게 위험함이 느껴지는 것은 거대한 석상이었다.
그리고 석상은 고개를 돌려 아자젤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드득….
석상이 먼지와 바위 조각을 뿌리면서 거체를 움직였다. 아자젤은 질세라 검을 뽑아 들고 황금빛 검기로 된 참격을 날렸다.
그그극….
하지만 거석상의 내구성은 엄청난지 잘리지 않고 아자젤의 검은 석상의 겉면만 긁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거석상이 팔을 들어 거대한 손을 펼쳤다. 빠르게 움직인 아자젤은 거석상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길 수는 없어.'
깔끔하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아자젤은 도주를 택했다.
다행히 아자젤보다 거석상의 이동속도가 한참 낮기에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거의 다 왔어….
아자젤은 자신이 꼭대기에 거의 다다랐음을 느꼈다.
철컥. 철컥. 철컥.
그런데 그런 아자젤의 앞을 인간의 형상을 한 하얀 갑주를 입은 것들이 막아섰다.
"끄응…. 저게 불사의 수호자들인가…."
그들이 전투태세를 취하자 아자젤도 말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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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왜 그래 제나."
자신의 소꿉친구 제나는 유다를 보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유다."
"네가 미안해할 필요 없어."
제나와 유다는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 침묵 속에서 들리는 것은 찻잔의 소리뿐이었다.
한참의 침묵 후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유다였다.
"나는 가족을 지킬 거야. 이 장소를 가장 안전한 장소로 만들 거야."
"그래? 내가 도와줄까?"
"어떻게?"
"우리 집은 아빠가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 엄청나게 뭔가 보안을 많이 걸어놓았거든…."
제나의 집은 아마 테낙스 공작의 성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테낙스 공작부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
그렇게 따지면 테낙스 공작도 얼굴 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우리 아빠가 집을 부르는 말은 새장이야. 엄마를 가장 안전하게 지켜주는 장소래."
"그래?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인데?"
"내가 우리 집에 설계도를 가지고 있거든. 보여 주면 만드는 데 참고가 될까 싶어서…."
제나는 자신의 아티펙트인 보석을 쓱쓱 문지르더니 아공간에서 낡은 두루마리 한 장을 꺼냈다.
"아빠가 모든 설계도를 파기할 때 몰래 챙겨놓은 거긴 하지만…. 유다라면 괜찮아!"
유다는 제나가 심히 걱정스러웠다. 집의 보안에 관한 내용은 절대로 남에게 보여 주어서는 안 되는 내용이었다. 유다의 눈에는 제나가 칠칠맞아 보였다.
"이런 거 안 받아도 상관없어. 그리고 제나 너 이거 있다는 사실을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 알았어?"
유다가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제나는 몸을 비비 꼬며 대답했다.
"응…."
제나와 유다의 티타임이 끝난 후 제나는 돌아갔다. 하지만 제나는 유다의 완곡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성에 대한 설계도를 챙기지 않은 채로 떠났다.
"제나. 이 멍청이."
이런 걸 주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거는 1급 기밀중에 특급 수준인 정보인데. 이런 걸 타인에게 넘겨주었다? 그런 사실이 공작에게 알려지면 아무리 제나여도 두 다리가 무사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다는 제나한테 돌려주고 싶었지만, 제나가 하도 거절해서 엉겨 주춤 받게 된 설계도를 고민하다가 결국 펼쳐보았다.
설계도에 빼곡히 적힌 방벽과 마법이 적용되었고 겹겹이 둘러싼 장벽은 마법에 대해 겉핥기만 아는 유다에게도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요새 그 자체인데? 어쩌면 황궁조차 뛰어넘는 보안 수준일 수도…."
역시 자기 아내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테낙스 공작다웠다.
유다는 그런 엄청난 정보에 매료되었다.
"데인!"
유다는 곧바로 집사를 호출하였고, 자신의 저택을 완벽한 요새로 개조하기를 원했기에 인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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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아자젤의 주변에는 흰색 피를 흩뿌려 쓰러진 수호자들이 즐비했다. 물론 그들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죽일 수 없기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살아날 테지만 어쨌든 그들을 제압하는 데에는 성공했다는 이야기였다.
왈칵!
아자젤이 발걸음을 옮기자 순간적으로 지혈했던 옆구리의 상처가 터졌다.
"이런…."
아자젤은 다시 상처 부위를 꽉 쥐며 산의 정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터덜터덜….
아자젤의 힘없는 걸음이 결국 산의 정상까지 도착하게 했다. 아자젤은 곧장 앞에 보이는 제단에 담긴 성수에 자신의 품에서 꺼낸 성유물을 집어넣었다.
"끝났다…."
드디어 험난한 여정의 결과가 눈앞에 보였다.
성유물을 집어넣으니 제단에서부터 끝없이 환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순간적으로 빛의 신에 대한 존경심이 들뻔했지만. 아자젤이 믿는 것은 단 하나. 유다였다.
아자젤은 빛의 신 루스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아자젤은 어떻게 신성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정확한 것은 아자젤도 몰랐다. 단지 유다를 믿었는데 신성력을 얻었고 유다를 더욱더 믿었을 뿐. 그리고 유다를 돕기 위해 루스 교단에 위장으로 성기사 서임을 받은 것뿐이었다.
산의 꼭대기에 올라온 아자젤은 확신할 수 있었다.
'빛의 신 루스는 없는 게 틀림없어.'
예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자젤은 완벽히 해방된 성유물을 성수 안에서 건져 올렸다.
성유물은 반들반들하게 빛나고 있었고 아자젤의 손이 닿자마자 아자젤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아자젤은 산에 올라오면서 수호자들을 상대하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성유물을 얻어 새로운 힘까지 얻었다. 산에 올라오기 전에 자신보다 최소 5배는 강해진 상태였다.
"좋아…. 이제 사도가 되었으니. 빨리 교단에 알려야겠어."
교단에 알리고 사도의 권한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정당하게 블러드문 클랜이라는 싹을 잘라버린다라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하면 유다의 성격상 남은 뱀파이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의 행동 원리는 모두 유다를 위해서였다.
아자젤의 발걸음에 빛에 날개가 문양으로 강화되면서 엄청나게 빠르게 산 밑으로 내려갈 수 있게 된 아자젤이었다. 그리고 산에 있는 거석상을 내려가면서 벨 수 있게 된 아자젤이었다.
“베었다.”
거석상은 깔끔하게 베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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