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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118화 (118/120)

〈 118화 〉 준비(1)

* * *

“네가 이 회의에 어째서 불려왔다고 생각해?”

“어……….”

애초에 내가 회의에 강제로 끌려 나오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자스민이라는 존재가 악역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부를 거면 진작에 불렀어야지. 내가 빙의를 한 것을 자각한 지도 벌써 몇 해나 지났는지 몰랐다.

하필이면 지금같이 중요한 시기에 나를 불러다 세우다니.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내가 머리를 싸매봤다. 하지만 그럴듯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내가 아무리 고민해 봤자 명쾌한 대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명쾌한 주역을 맞는 이는 내가 아닌 다른 이였기에.

“모르지…….”

내 말에 소니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딱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이후에 어떤 말들이 나에게 쏟아질지 몰라 조심하기는 했다.

“벨리타 자스민이 벌였던 일 때문에 그런 건가……?”

“그런 거였으면 진작에 불렀겠지. 회귀하고 한참이 지난 이 시점에 부르는 건 이상하잖아.”

“......그건 그렇지.”

내가 멍청한 건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럴듯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네가 카나리아 제도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부르는 걸 수도 있지.”

“그곳에서…?”

나는 그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엘리사가 칼에 찔리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잃고 나니 상황은 모두 정리되어 있었다. 즉,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때의 일을 물어보려고 해도 엘리사는 모호하게 대답을 피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엘리가 말해주지 않으면 내가 그것에 관해 알 수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엘리사가 나에게 숨긴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최대한 내 머릿속에서 밀어내려고 애썼었다.

…..그런데. 지금 소니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다시금 내 머릿속이 정신 사나워 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카나리아 제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죽기 직전이었던 엘리사는 어떤 수로 살아 돌아왔는지, 우리를 압박했던 그는 어째서 사라졌는지.

한번 생각의 문고리를 트니 절제되지도 않고 계속해서 의문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나는 수많은 의문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런 나를 보던 소니아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단순히 너 때문은 아니야.”

소니아는 뒷머리를 박박 긁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주된 이유는 나겠지.”

“너를?”

딱히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럴 정도라고?

“정확히 말하자면 너를 살려두기로 한 회귀자들이지.”

“....설마.”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소니아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장난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내뱉는 소니아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회귀 자들 사이에도 파벌이 있어.”

회귀자들 사이의 파벌.

그리고 다리아는 소니아의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것 까지. 나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소설에서 읽은 이야기는 나름대로 희망이 있는 소설이었는데, 내 앞에 보이는 것은 잔혹한 정치 게임이었다.

소니아를 비롯한 자스민을 살리기로 한 이들의 입지를 약화하는 것. 겨우 그것 때문에 나를, 회의에 참여 시킨 걸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설에서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했던 이들이었다. 다들 정의롭게 세상을 지켰다고 나올 뿐이었다.

어디를 가나 똑같은 인간들 뿐인 건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어서 벌어진 일들을 대며 이런 나를 살려두기로 한 이들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내가 뭐 행사상품도 아니고 그게 뭐야.

나는 겸사겸사 죽이면 좋고. 아니 어쩌면 내가 죽지를 않기를 바랄지도 모른다고 했다.

“네가 살아 있으면 나를 압박할 일들이 더더욱 많아질 테니까.”

“......내가 죽는 게 나을까?”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

소니아는 장난으로 치부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있어 이토록 약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내가 듣기로는 네가 이 세계를 몇 번이나 구했다고 들었어.”

“뭐, 열심히 살았지.”

담담한 그녀의 반응에 오히려 내가 화가 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미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였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서 너를 노릴 수가 있는 거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리아도, 화를 내지 않는 소니아도.

내가 소니아의 활약상에 들은 것은 엘리사의 입을 통해서였다.

소니아를 좋아하지 않는 그녀 입에서 나온 말들이기에 나는 그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활약상만 해도 소설책 수십 권 분량이었다.

당사자가 아닌 내가 보아도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인물을 나를 볼모로 담가버린다고?

“회귀했잖아.”

“......그게 무슨 상관인데.”

“내가 했던 일들은 없어진 거야. 그들 입장에서 나는 귀찮은 칭호를 가진 천민에 불과한 거지.”

너무하다.

옆으로 바라본 그녀의 표정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노인과 같았다. 살짝 웃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내뱉는 그녀의 표정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토록 노력했으면 보답받아야 했다. 노력하면 보답받고, 나쁜 짓을 하면 대가를 받아야 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한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왜 네가 그런 표정이야.”

옛날부터 히어로 영화를 좋아했다. 고전적이라 말하는 그런 히어로 영화 말이다.

누군가 열심히 일하면 보답받는 걸 좋아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단지 그뿐인 일이었다.

그토록 열심히 일한 이에게 그 정도의 보답은 주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보다 화를 내고 있어야 할 그녀는 이미 익숙해졌다는 듯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

차가운 실소가 공기를 타고 퍼져나갔다.

자각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자각하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어이가 없었을 뿐이다. 내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

“왜 그렇게 꿍해 있어.”

“...네가 너무 멀쩡해 보이는 게 싫어.”

소니아를 좋아하지 않는 엘리사가 그녀를 용사라 칭했다. 그녀의 적이었던 엘리사가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니아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녀를 견제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말이다.

“나 같으면 말도 안 된다고 화를 내고 다녔을 텐데….”

옆을 바라보니 소니아는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웃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진짜 너는 대화할 때마다 신기해.”

“...무슨 의미야?”

나는 그녀의 손길을 느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뭐랄까, 그녀의 말이 나쁜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의미로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소니아는 내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개의치 않고 웃어 보였다. 오히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속도가 빨라진 것을 보아 이런 말을 하는 나를 귀여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애완동물이 아닌데.

“물론 좋은 의미야. 내가 너를 안 좋게 말할 리가 없잖아.”

확신이 담긴 목소리. 어이가 없으면서도 안심이 되는 목소리. 나는 실실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내 나름대로 표정을 숨기려고 한 행동이었지만 소니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번 회의……. 아니 재판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번에 너에게 많은 질문이 오갈 거야. 내가 최대한 막아봐도 전부 막는 건 무리겠지.”

“하지만, 괜찮아. 실질적으로 너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할 테니까.”

씁쓸하게 웃는 소니아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다짐하듯이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필사적이었다.

자신의 안위도 아니고 내 신변에 문제에 그녀가 이렇게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멍하니 생각했다.

아직까지 자신의 안위를 신경을 쓰지 않는 그녀가 이제는 어이없음을 넘어 분노로 넘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아니 착각이 아닌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삐딱해진 입가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삐딱한 말이 나와 버리고 말았다.

“나 같은 건 상관없잖아.”

“어?”

“......아냐.”

급하게 말을 주워 담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소니아는 어이없는 미소를 짓더니 내 손을 잡았다.

방의 앞에 있는 작은 책상 앞에 마주 보고 있는 나와 소니아. 내 고개는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의 눈을 마주 보는 건 어째서인지 나에게 있어 큰 죄를 지었던 것 같았다.

이게 다 아까 내가 이상한 말을 해서 그렇다. 그냥 참으면 될 걸 이상한 말을 내뱉어서…………….

“상관있어.”

“너는 왠지 모르겠지만, 상관있어.”

내 이마에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면서 웃어 보였다.

“.....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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