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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115화 (115/120)

〈 115화 〉 쪽

* * *

“괜찮겠지?”

자스민의 옆방으로 옮긴 소니아와 노엘. 노엘은 소니아의 방에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괜찮겠지.”

주어가 없음에도 그들의 대화가 끊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걱정하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까 엘리사랑 사이 서먹한 거 봤어? 둘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서먹해질 일이 별로 없을 텐데 말이야.”

“..........”

소니아는 책을 읽던 것을 멈추고 아까의 일을 되돌려 보았다.

노엘이 백허그를 해서 엘리사를 불렀을 때, 자스민과 엘리사 간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러 넘칠 정도로 흐르고 있었다.

소니아는 바로 알아차렸지만, 굳이 그들 앞에서 말하지는 않았다. 그 둘의 사이에 자신이 끼어드는 것은 참견이었다.

“알아서 해결하겠지.”

그녀는 쓸데없는 말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사이에 깊게 참견하는 것은 그녀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자스민이 먼저 말을 건 것을 보면 그들에게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소니아 자신이 끼어드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흐응. 사실 둘 사이가 서먹해져서 좋은 거 아니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겼으니까.”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던 노엘은 대뜸 질문을 던졌다.

“뭐?”

“자스민과 엘리사 사이가 어색해졌으니까 그 사이에 네가 들어갈 수 있잖아. 둘이 서로 보는 눈빛이 얼마나 찐득했는데.”

“지랄한다.”

소니아는 짜증을 내고 책을 다시 읽어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책들을 읽어왔지만, 갈수록 그녀는 책에 흥미를 붙여가고 있었다.

평민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에게 힘이 된 것은 책이었다. 그녀가 이 위치까지 온 데에는 책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안 읽혀.’

그런데 지금 그녀의 눈에는 책의 글자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앞으로 있을 회의에 대한 짜증일까, 방금 노엘이 내뱉었던 말 때문일까.

그녀는 책을 신경질적으로 덮고 고개를 확 젖혔다. 그녀의 행동에 노엘은 웃으며 말했다.

“신경이 쓰이기는 한가 봐?”

“신경 쓰이는 건 너겠지. 아까 네가 안았을 때 눈빛. 그게 네가 말하는 ‘찐득함’이겠지.”

“......”

소니아의 말에 노엘은 의미심장하게 웃을 뿐이었다.

‘잘 해결하겠지.’

그녀는 짜증이 났던 노엘에게 책을 던지면서 자스민의 행복을 빌었다.

정적이 일었다.

엘리사의 질문에 나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죽고 싶냐고? 당연히 죽고 싶었다. 나는 편히 쉬고 싶은 사람이었다. 지금처럼 여러 음모가 얽힌 일들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수없이 자살시도를 했음에도 죽지 못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시간을 끌고 끌어서 결국에는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내 의도는 나뿐만 아니라 그녀도 알고 있었다. 내가 벨리타 가문에서 저지른 짓을 기억한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죽고 싶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다만 나라는 인간은 너무나 이기적이라서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냥 그뿐이었다. 내 목숨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나’라는 인간은 죽어도 된다. 그냥 그냥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고 나는 그것이 상품이 된다.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실제로 ‘나’는 죽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엘리사의 눈빛이 그랬다. 그녀는 자신의 물음이 틀리기를 바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제발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는 어째서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엘리사…….”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녀에게는 도저히 말하고 싶은 사실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다.

‘나’는 삶에 대한 집착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나를 이렇게나 위하는 사람에게 '나는 죽든 말든 상관없다'라고 말하기에는 내 마음의 양심이 찔러오고 있었다.

“그냥…… 조금 힘들 뿐이야.”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마주치지 못했던 눈은 자꾸만 내려가는 것 같았다.

힘들었다. 지금 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나는 그저 편히 쉬고 싶어질 뿐이었다. 내가 평범한 귀족 영애로 태어났으면 별 상관없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벨리타 가문의 외동딸로 태어나 버렸다. 회귀를 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에게 나는 빙의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노력한들 주변의 시선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나를 바라보는 회귀자들의 시선이 바뀌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제 나는 나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들어가야 했다. 회의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흐를 것 같지는 않았다.

“.......”

엘리사는 손을 뻗어 내 손을 맞잡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온기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생각했던 것이지만, 나와는 어울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저는 당신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엘리사의 고개가 서서히 내려갔다. 고개뿐만 아니라 그녀의 몸 자체가 내려앉고 있었다.

“.....제 욕심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매달리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맞잡고 있는 내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으로 그녀가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드센 그녀가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일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지 못했기에 나는 침을 삼키며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어째서?

내 생명이라는 것이 그녀가 이렇게까지 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나. 비굴하게 고개를 숙인 그녀의 모습에 내가 화가 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신념이 있었다.

“하지만 저는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당신을 지킬 겁니다.”

스스로 다짐하듯이 그녀는 그렇게 되뇌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전쟁을 앞둔 병사의 눈빛과도 같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엘리사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째서 목숨을 바치더라도 나를 지키겠다고 말하는 것까.

어째서. 나는 그럴 가치가 없는 인간인데.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취급을 받을 인간이 아니었다.

“어째서…… 나는 그럴만한 인간이 아니야. 마법진 하나도 못 만드는 열등생일 뿐인데”

“아닙니다.”

내 말을 그녀는 단호히 부정했다. 내가 말한 것들이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그녀는 단칼에 내 말을 부정했다.

“그렇게 자신을 비하하지 마세요.”

그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내게 처음 질문을 했을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듯한 표정. 그러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엘리사의 저런 표정은 반칙이었다. 부모에게 투정 부리는 자식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어째서 살리고 싶어 하는 거야.”

“네?”

“왜 내가 죽는 걸 그렇게 막는 거야. 나는 모르겠어.”

웅얼거리듯 뱉은 말이었다. 나에게는 엘리사의 저런 호의가 개연성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와버리고 말았다.

내 말을 들은 엘리사는 어벙벙한 표정이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는데 어이없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내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던가요……?”

“.....뭘?”

그녀의 말에 기억을 헤집어 보았으나, 어째서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무언가 결심을 한 표정이었다.

“제가 당신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이유는”

엘리사는 말을 하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났으나 그녀가 훨씬 빨랐다.

그녀는 보석을 매만지듯이 매우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두 볼을 감쌌다. 그녀의 두 눈이 감겼다.

정말 짧은 찰나의 시간이었다. 서로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고요가 가득한 공간에서 오랜만에 침묵이 무섭다고 생각했다.

은은한 꽃향기가 내 코끝을 간질였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맡았던 엘리사의 냄새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쪽. 소리가 났다. 간질간질한 향기를 머금고 그녀의 입술이 내게 다가왔다.

내가 입술을 다물자 그녀의 입술도 나를 따라온 것 같았다. 내 목에 따뜻한 온기가 퍼졌다.

누군지도 모르겠는 숨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제대로 구별되지 않는 건 아마 세차게 귓가를 울리는 내 심장 소리 때문일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엘리사의 숨소리가 들렸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숨소리, 무슨 의미인지 모를 짧은 신음 사이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쿵. 쿵. 미칠 듯이 움직이는 심장 소리가 내 고막을 때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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