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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111화 (111/120)

〈 111화 〉 불안감

* * *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그들에게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풀어놓았다.

“벨리타 자스민에 대체 어떤 일을 벌인 거야?”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대체 원작의 자스민은 어떤 짓을 저지른 것일까. 나를 벌레 보듯이 혐오하고 증오할 정도로 자스민에 그들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을까.

원래는 다른 질문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의 대화로 너무 우울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이것도 우울하다면 우울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

“.........”

내가 질문하자마자 그 둘은 동영상의 정지버튼을 누른 것 처럼 멈췄다. 내가 오른쪽 손을 살짝 올리자 그 둘은 몸을 움찔거렸다.

이 정도로 격한 반응일 줄은 몰랐는데….

“알려줄 수 없는 부분이야….?”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 물음에 소니아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서로 얼굴은 마주 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슬쩍 시선을 피했다.

스윽—

고개를 돌려 노엘을 쳐다보니 그녀는 미묘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매만졌다. 웃는 표정이 하나도 바뀌지 않아서 왠지 공포영화에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친구야. 이 문제는 살짝 복잡한 면이 있어. 그래서 우리에게 먼저 듣는 것 보다 나중에 다양한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 거야.”

“....그래?”

뭔가 시간을 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대답이었지만…… 그녀의 말대로라면 나중에 엘리사나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게 더 났겠지.

조금은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이제 조금 더 가벼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소감이 어때.”

“.....소감?”

“그래, 소감. 이제는 우리에 대한 것도 모두 알았을 거 아니야.”

노엘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글쎄…….”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 나는 별로 와닿지는 않아. 나에게는 그냥 남 일일 뿐이니까.”

그녀들이 회귀를 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지만, 추측이야 옛날 옛적에 했었고, 아까 말했던 대로 내가 겪어보지 못했기에 그리 와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까 복도를 걸을 때 나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알았어.

자스민이라는 사람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런데 아직은 조금 힘드네.”

내 입은 한번 열리니 폭포처럼 계속해서 말이 흘러나왔다.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소니아와 노엘 때문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니까. 평소와는 달리 쓸데없이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새끼들이 야렸어.”

소니아는 아까 복도에서 한 이야기를 듣더니 나에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내 손을 잡고 물어보아서 나는 대답을 골랐다.

너무 싫었던 기억이라 조금 전에 일임에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을 못 한다고 하면 복도로 나가 직접 물어보고 다닐 것 같아 나는 쉽게 말을 내뱉지 못했다.

“에휴…”

노엘은 소니아의 머리를 손으로 푹 숙이게 했다. 소니아를 바라보는 노엘의 눈빛에는 한심함이 섞여 있었다.

“이….!”

소니아는 처음에는 힘으로 다시 고개를 들었지만, 노엘은 더 강한 힘으로 고개를 꺾을 듯이 아래로 내려버렸다.

“친구야, 얘 말은 신경 쓰지 마.”

“어….”

소니아가 만약 나를 노려보았던 그들을 협박한다면 겉으로는 그녀의 말을 들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반감은 더욱 높아질 게 뻔했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힘으로 누를 수 없었다. 사건의 당사자 또한 없어져 버렸으니 해결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냥 이 상태 그대로 현상 유지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둘은 아본에 언제 온 거야?”

“일주일 전에.”

일주일 전이라 생각보다 오래전에 왔었네. 나보다 이틀 정도 앞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네.”

“우리도 이렇게 빨리 올 생각은 없었어. 될 수 있는 대로 늦장 부리고 가려고 했는데, 어떤 한 사람이 걱정된다고 하도 닦달을—”

“—닥쳐.”

“아하하…….”

소니아는 노엘의 등짝을 몇 번이고 후려쳤다. 소리가 상당히 크게 들렸는데 노엘은 간지럽다는 듯이 웃고만 있었다.

소니아가 힘을 조절한 걸까 노엘이 아픈걸 참는 걸까, 아니면 노엘에게는 간지러운 수준인 걸까.

“자스민.”

“어?”

노엘이 반응이 없자 소니아는 치던 팔을 거뒀다.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등짝을 친 손이 더 아픈 것 같았다.

소니아는 미세한 미소를 머금고 내게 물어보았다. 그녀의 미세한 미소에는 장난기에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마리안이 노엘에 관한 말은 안 했어?”

소니아의 입에서 마리안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노엘의 얼굴이 무표정으로 변했다. 항상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만 보아서인지 노엘의 무표정을 보자마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과장하자면 불쾌한 골짜기에 있는 로봇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소니아는 노엘의 그런 얼굴이 마음에 들었는지 평소에 보기 드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만.”

나는 마리안과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해 보았다. 마리안은 주로 카나리아 제도의 풍경에 관해 이야기 하는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해변이 아름답고 산은 안정감을 줘서 좋다, 이만한 곳이 없다, 주로 이런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노엘의 안부를 묻기는 했어.”

워낙 가볍게 지나가서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노엘의 안부를 묻기는 했었다.

“그래?”

내 대답에 소니아는 오히려 놀랍다는 듯이 대꾸했다. 확실히 내 대답이 놀라운 건지 노엘또한 몸을 움찔거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응. 그냥 잘 지내고 있다니까 별말 안 하고 넘어가더라고.”

“허어.”

“왜? 둘 사이가 안 좋아?”

“친구야.”

노엘이 다시 웃는 얼굴로 소니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얼굴에 스산함을 달고 있었다.

“뭐.”

이후로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이 미묘한 침묵에 나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먼저 물러서는 사람은 소니아였다.

“그래. 알았다.”

그녀는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노엘은 소니아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 이후에는 서로의 역린을 건드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싸우는 게 너무 불편했기에 나로서는 좋을 따름이었다.

나는 슬금슬금 침대에 안쪽으로 나아갔다. 분명 마차에서 한참을 잤을 텐데도 침대에 앉아있느니 잠이 몰려왔다.

“잠깐 눈 좀 붙여.”

“으….응…….”

소니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이렇게 판까지 깔려버리니 내 눈꺼풀은 내려앉았다.

“뭔 생각해.”

노엘은 소니아에게 물었다. 소니아는 잠이 든 자스민을 보다가 자리에서 막 일어선 참이었다.

“개새끼들 족칠 방법.”

소니아는 손을 꽉 쥐며 문을 노려보았다.

“자스민 말은 못 들었나 봐?”

노골적인 비웃음. 소니아는 노엘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래서 지금 가만히 있잖아.”

“참… 우리 친구도 중증이다.”

한심하다는 듯이 내뱉는 노엘의 말에 소니아는 노엘을 노려보았다. 노엘은 오히려 뭐가 이상하냐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내 말이 틀려?”

소니아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소니아는 근처에 있는 의자에 신경질적으로 앉았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

소니아는 탁자에 팔을 괴고 자스민을 바라보았다.

“뭘?”

“자스민 말이야.”

노엘은 침대에 누워있는 자스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을 느끼는건지 자스민의 눈가는 살짝 더 풀어졌다.

“글쎄.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

“평범? 머리에 칼 꽂혔냐?”

자스민에게 평범이라니. 소니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스민이야말로 평범과는 가장 동떨어진 사람일 수도 생각했기에 더더욱.

“아니, 뭐. 환경이 거지 같은 거에 비하면 나름 평범하게 자란 거 아닐까. 남 배려할 줄 알고, 욕심도 없고 이 정도면 평범한 거지.”

“글쎄…….”

소니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스민이라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기에는 무언가 빠져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확정지을 수는 없었다.

그저 아직은 불안감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별로 오래 잔 것 같지는 않았다. 해는 아직 지평선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노엘은 내 옆에 앉아서 내 이마를 만지고 있었다.

“배고프지 않아?”

내 이마를 매만지던 노엘은 식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직 한 끼도 못 먹었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어나서 먹으러 가자.”

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너무 미안한데…….

“깨우지 그랬어.”

“별로 배고프지도 않았어.”

소니아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앉아있던 근처의 탁자에는 들어올 때 그녀가 읽던 책이 있었다.

“아……. 근데.”

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방문을 쳐다보았다. 다시 그곳을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건 걱정하지 마.”

소니아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의지는 되었지만, 불안함도 있는 게 사실이었다. 뭐…. 아까 말했으니까 겁박하지는 않겠지.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루시의 얼굴이 떠올랐다. 루시도 여기에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같이 먹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소니아 루시 알지?”

“...........몰라.”

아닌 것 같은데.

누가 봐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별로 안 좋아 하나? 순간 나는 그녀의 술주정이 생각났다.

생각해보니 소니아하고는 최악일 것 같기는 하네.

“가다가 만나면 같이 먹자고 하게.”

“그래. 우연히 만나면.”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비는 것 같았기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어? 자스민!”

“....애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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