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어색함
* * *
마차는 별로 멈추는 일도 없이 아본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멀미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끊임없이 덜컹거리는 마차에서 하루를 보내니 속이 계속해서 울렁거렸다.
다행히도 마차가 좋은 거였기 때문일까. 그리 심하지는 않았고, 가끔 멈출 때마다 쉬어주는 것으로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원래 허리가 아플 때에는 엘리사의 무릎에 누웠었는데 그때 그 일 이후에는 어째서인지 그런 부탁을 하기가 조금 꺼려졌다.
나와 엘리사 사이에 어딘가 벽이 있다고 해야 할까.
내가 신기한 것을 발견하고 그녀 쪽을 살펴봤을 때 그녀는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원래라면은 그녀에게 바로 말을 걸었겠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쉽사리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나보다는 너를 신경 쓰는 게 맞잖아. 칼에 찔린 너를 봤을 때 내가 어떤 생각을’
아아.
부끄러운 기억이었다.
그때 조금만 더 참았다면 엘리사와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을 텐데.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눈앞에 처박아주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것 말고도 조금 더 부드럽게, 감정을 토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후회밖에 남지 않는 대화였다.
후회.
희로애락을 포함하고도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이었다.
나라는 인간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기쁨보다는 더 좋은 길이 있었을 텐데 라는 후회가 앞서는 인간이었다.
‘나’라는 인간을 정의하게 된 이후부터 줄곧 나는 후회라는 감정을 달고 살았었다.
최근에는 그나마 나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앞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나라는 인간은 과거에 갇힌 채였다. 지금 일어난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길이 있을 것이라며 자신을 자책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생각의 단점은 아무리 과거를 후회한다고 해도 현재나 미래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과거를 디딤돌로 삼아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기보다 과거의 선택에 머무르며 미래를 나아가기를 거부했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현실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쳐버린 도피자이기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엘리사와의 관계를 나아지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발을 앞으로 뻗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추악한가.
객관적인 자기혐오는 나 자신을 더욱 좀먹게 할 뿐이었다.
며칠이나 되었을까. 마차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제대로 알 수도 없었다. 밝을 때와 어두울 때. 잠을 자고 나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창밖의 색깔을 보며 지금은 낮인지 밤인지 짐작할 뿐이었다.
아본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우리 셋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루시는 물론이고 엘리사까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엿보였으니 말이다.
아본을 들어갈 때는 경비병의 검사를 거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본까지는 5분 정도 남은 거리일 텐데 마차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 정도로 아본의 검사가 빡셌나?
“아마 회의 때문에 검사가 강화된 것 같은데.”
“회의랑는 무슨 상관이야?”
“회귀자중에 아본을 공격하려는 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런 거 아닐까.”
겨우 그것 때문에 이렇게 세세하게 검사를 한다고? 회귀자라면 아본의 검사를 받지 않고 들어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눈빛으로 쳐다봐도 난 해줄 말이 없어. 내 추측일 뿐이라고.”
루시는 내 의문스러운 눈빛에 자신의 추측일 뿐이라며 발을 뺐다. 하긴 루시가 이번 회의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녀의 언니는 회의의 주축인 것에 비하면 그녀는 거의 아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루시는 이번 여행 동안 우리랑 다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건가.
마차에서 수다를 떨고 있자 어느새 우리 차례가 되었다.
아본의 출입을 검사하는 이는 한 명의 경비원이었는데 그녀의 눈은 금방이라도 썩을 것 같이 피곤함에 절여 있었다.
그녀는 마부에게 간단한 질문을 마친 후 마차에 노크하더니 문을 열어젖혔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귀찮음이 팍팍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에……. 잠시만 검사하겠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마차 안에 있는 짐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성의 없어 보이지만 정확한 그녀의 손길은 뭐라 해야 할까……. 일하기 싫어하는 베테랑 공무원을 보는 듯 했다.
“회귀해도 일하기 싫어하는 천성은 안 고쳐지나 봐?”
엘리사가 코웃음을 치며 그녀에게 말했다. 루시는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처럼 엘리사와 그녀의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한 거 아냐? 누가 나 같은 아줌마를 이런 데에 짬 때리겠어. 이건 엄연한 갑질이라니까.”
그녀와 엘리사는 친한 친구처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물론 그녀는 아직까지 엘리사를 쳐다보지 않고 짐을 검사해 나갔다. 그녀의 행동을 보면 짐을 검사하는 것이 매크로처럼 몸에 저장돼 있는 것 같았다.
“그러게. 엘리시아 최후의 방벽이라 불렸던 이가 경비병이 된 건 좀 심각한데.”
“그러니까. 아줌마 말이 딱 그거”
드디어 그녀는 엘리사의 말에 고개를 들어 마차에 있는 우리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엘리사?”
그녀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루시를 쳐다보았다. 루시는 꽤나 뻘쭘한 듯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루시…?”
“안녕하세요……”
루시는 머리를 긁으면서 그녀의 눈이 마주치자 인사를 건넸다.
“......너는.”
한참을 방황하던 그녀의 시선이 드디어 나에게 닿았다. 혼란에 빠진 그녀의 눈빛은 중심을 잃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가벼운 묵례를 건넸다.
엘리사나 루시 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그녀는 어째서인지 어렸을 때 보았던 할머니의 느낌이 났다.
마차에 탄 이들의 반응을 보면 그녀 또한 회귀자겠지. 이제는 이런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른 점이었다면 그녀에게서 다른 이들과는 다른 노인의 할법한 표정을 지었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단순히 그녀의 특성인지, 아니면 그녀의 경험으로 인한 변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네가 벨리타 자스민이구나~?”
“네…….”
그녀는 나를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나에게 씩 웃어 보였다.
“힘내렴.”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마차의 문을 닫고 우리를 통과시켰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에 갑작스러운 사건에 나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했다.
의문을 눈빛을 가지고 루시를 쳐다보니 그녀는 이해된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원래 저런 분이야. 평소에는 아군에게는 물론이고 적에게도 유들유들하신 분이지.”
하긴 아까 보았던 그녀에게서는 어렸을 때 느껴지는 패기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노인을 보는 감각이었다.
물론 노인인 것과 유들유들한 것은 다른 점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분이 어째서 입구 경비를 서는 거야?”
“그러게……. 나도 이럴 줄은 몰랐는데.”
루시 또한 당황스럽다는 듯이 대꾸했다.
하긴 그녀는 이번 회의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없었다. 물론 나보다는 많이 알겠지만, 그렇다고 특출나게 아는 것도 아니었다.
“.............”
엘리사는 우리의 대화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까 그녀에게는 활발하게 말을 걸던 것을 생각하면 엘리사와 그녀는 친한 사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마차를 주차해두고 내린 뒤에 아본의 시내를 향해 걸었다.
아본의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들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낡았지만, 좋게 말하면 고풍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후자에 가까운 감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스민.”
“어? 왜?”
시내를 향해 걷고 있을 때 루시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딘가 긴장한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은 전에 그녀와 둘만 남았을 때도 본적이 있는 모습이었다. 불안함과 공포. 내가 잘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나는 언니에게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래?”
“어…….”
루시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제는 그녀의 모습이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 정도로 무서워할 줄이야.
“그 회의에서는 만날 수 있지?”
“아마……?”
그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 자신도 말하고 나서 알아차렸는지 헛기침하고 다시 말을 뱉었다,
“물론이지!”
“그래……. 몸조심하고.”
루시와는 그 말을 끝으로 헤어지게 되었다. 회의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녀가 어딘가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설마 언니가 동생을 해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나름 후련하게 헤어질 수 있었다.
“...........”
“............”
루시와 깔끔하게 헤어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나와 엘리사 단둘이 남았다는 것이다.
원래라면 먼저 뭐라고 말을 꺼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서먹해진 이유가 나 때문인지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가씨.”
“어?”
엘리사가 나를 불렀다. 체감상으로는 일주일이 넘은 것 같은 정도로 그녀가 나를 부르는 일은 적었었다.
그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었나?
그녀의 표정은 제쳐두고 그녀가 나를 오랜만에 불렀기에 약간의 기대하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그,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엘리사는 어딘가로 가 버리고 말았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그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사의 발걸음은 난폭하고 빨랐다. 누군가 엘리사를 따로 부른 걸까.
나는 한숨을 쉬며 근처 벤치에 앉았다.
갑자기 혼자가 되어 버렸다.
“아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정도로 푸른 하늘이었다.
아본에는 수많은 사람이 돌아다녔다.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니 괜스레 외로워 지는 것 같았다.
“거기 앉아있는 아가씨.”
…..그렇다고 이상한 사람들이 다가오는걸 바란 건 아닌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