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뇌창
* * *
챙!
그녀의 주먹은 검들을 튕겨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상당히 먼 거리를 한 번의 걸음으로 그의 턱 끝까지 다가왔다.
그는 그녀를 향해 길게 대검을 휘둘렀다.
그녀는 그가 휘두른 대검을 여유롭게 피하고 그를 향해 주먹을 꽂았지만
그의 빈 공간에 어느새 검이 그녀의 주먹을 향해 날아가 그녀의 주먹과 충돌했다.
엘리사는 주먹이 막히자마자 바로 반대쪽 주먹을 내질렀다. 번개와 같은 속도로 주먹을 뻗었지만, 그는 어느새 그녀와 거리를 벌렸다.
그녀는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숨을 내뱉었다.
벌써 몇 번째 이 패턴의 반복이었다. 그녀를 도발한 것 치고는 그의 대응은 미지근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공격을 받아치고 도망칠 뿐이지 어떠한 반격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도발한 것 치고는 너무 볼품없는 거 아닌가?”
엘리사의 도발에도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가볍게 흘릴 뿐이었다.
“글쎄. 니 공격이 너무 볼품이 없는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말하는 꼬라지 봐라.”
그녀는 그에게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말을 하는 동시에 내질렀기에 그는 가까스로 반응할 수 있었다.
그는 대검의 넓은 면으로 막아 내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다른 때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맴돌았다.
그녀와 그의 힘 싸움은 역시나 그녀의 승리였다. 대검은 점점 그의 얼굴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진짜 무식한 힘만은 알아줘야겠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에 있던 칼들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전과는 달리 그녀는 다가오는 칼들을 피하지 않았다. 느슨해진 그의 대검을 옆으로 치우고 그의 얼굴을 찌그러트렸다.
퍽!
그는 그녀의 주먹에 맞았음에도 날아가지는 않았다. 뒤로 한참이나 뒤로 밀려났지만, 그녀의 주먹에 쓰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집념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수많은 칼을 피하지 않았던 대가로 몸 곳곳에서 커다란 상처가 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보는 것 만으로도 얼굴을 찡그릴 정도의 상처였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촐싹거리면서 도망가면 그에게 한방 제대로 먹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밀려나고 정신을 차리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다리가 살짝 풀린 듯 대검을 잡고 버티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는 그의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 전에 확실히 끝내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주먹에 힘을 집중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흠칫
그때, 엘리사의 날카로운 감이 경고를 보냈다. 그녀는 몸을 뒤틀어 그에게서 떨어졌다.
콰가가각!
그녀의 감은 정확했다. 조금 전 까지, 그녀가 있었던 자리에 검들이 날라와 땅에 박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동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땅에 박혀있는 무기는 검뿐만이 아니었다. 도끼와 창, 단검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진짜 좆같이 무식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의 목소리는 필터를 거친 것 같이 전기음이 섞인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가 숨을 뱉을 때마다 주위에 있는 무구들이 진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변화에 마음속으로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그녀는 굉장히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지금 이 세계에서 저 변화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 상태로 계속 있게 되면 몸이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게 될 정도로 하이리스크 하이 리턴인 상태였다.
‘.......그런데 어째서?’
바로 그에게 달려가려 했던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그가 수세에 몰렸다고 한들 지금 이 타이밍에 이런 무리한 짓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그녀가 아는 그라면 수세에 몰리면 숲속으로 숨어든 후 게릴라전을 펼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방어 일변도이긴 하지만, 그녀와의 승부에서 도망치고 있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가만히 서서 그녀를 바라볼 뿐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불안함.
한번 자각하고 나자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그의 방어적인 태도, 자스민을 다른 곳에 보낸 것, 실험체들의 행방. 의문이었던 것들을 생각해보니 머리가 좋지 않은 그녀라고 하더라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감이 아니었다면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왜. 갑자기 중요한 게 생각났어?”
그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갔다. 그의 미소에는 비웃음과 승리에 대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가 이런 미소를 지어 보일 때는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을 때였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난 얼마 있지 않으면 쓰러질 텐데…. 왜 그렇게 가만히 있을까.”
“이…. 씨발 새끼가.”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언제나 자신의 멍청함과 아둔함이 죄였다. 이런 뻔한 함정에도 의심도 하지 못 한 체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어떠한 함정에 빠지더라도 헤쳐 나갈 자신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뿐이었다.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스민은 무사하지 못했다. 언제나.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를 비웃었다. 여기까지 온 순간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아가씨!!!”
쾅!
그녀는 자스민이 걸어갔던 곳으로 온 힘을 향해 뛰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그 힘’을 다시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마음이 불안으로 요동칠 때는 ‘그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몸에 검은 기운이 맴돌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녀의 빨간 두 눈 또한 마찬가지여야 할 태지만, 지금 그녀의 두 눈에는 불안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최대한 빨리 가야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스민이 어떤 꼴을 당할지 몰랐다. 이런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의 주변을 맴돌던 검은 기운은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녀의 손과 발은 날카로운 발톱이 되었고, 그녀의 머리는 개의 머리모양으로 변했다.
그런 모습으로 변한 탓인지 그녀의 신체 능력은 전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화되었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바람으로 보일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역시 개새끼 생각하는 건 뻔하다니까.”
그때, 그녀의 위에 그가 나타났다. 그의 주위에는 여러 무구가 맴돌고 있었다.
그는 모두 계산하고 있었다. 이 미묘한 위화감을 내비치면 그녀는 모든 것을 내치고 자스민을 찾으러 떠날 것이란걸.
그녀가 알아서 괴물이 될 것이란 것 까지. 그는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들을 예상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비책을 모두 세워두었다.
“시끄러우니까 죽어있어.”
그는 그녀를 향해 수십 개의 무구를 날렸다. 눈으로 쫓아갈 수도 없는 속도로 날아가는 무구들은 그녀의 몸에 꽂혔다.
원래라면 그녀의 몸에 무기들이 닿는 일을 있을 수 없었다. 허나, 그녀가 괴물로 변모하게 되면서 그녀의 머릿속에는 자스민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가짐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무수한 무구들이 화살처럼 쏟아졌다.
화살이 그녀의 팔을 꿰뚫고, 검이 그녀의 배를 갈라도 그녀의 목적지는 자스민이었다.
어차피
“하악…허억……”
숨 쉬는 것이 힘들었다. 너무 많이 마법을 난사했기 때문일까. 나는 가쁜 숨을 내지르며 검은 존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검은 존재들이 나를 공격한 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다.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닌가?
어쨌든 지금까지 그들은 나를 향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심한 공격을 가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나를 무력화 시키기 위함 같았다.
나는 엘리사가 주었던 목걸이 덕분에 지금까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목걸이는 내 몸에 큰 충격이 올 만한 공격을 막아주었다.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어서 내 몸 곳곳에 잔 상처들이 늘어나기는 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줄 알았는데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니 점점 내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검은 존재들이 올 때마다 쏘아 맞히고는 있지만, 워낙 날렵해서인지 잘 맞지 않았다.
엘리사는 언제 오는거지……
이럴 때마다 엘리사가 보고 싶었다. 내가 아는 엘리사라면 이쯤이면 올 것 같았는데.
혹시 그 남자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실력은 숨기고 있었던 걸까. 별의별 잡생각들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땡깡쓰면서 엘리사 옆에 붙어 있는 건데……
파바바박!
“어…….?”
그때, 내가 걸어왔던 쪽에서 무언가 꽂히는 소리가 나더니 내 앞에 검은 물체가 날라왔다.
쿵!
온몸이 검은 물체로 감싸여 있었다. 검은 물체에는 무구들이 무수히 꽂혀 있었다. 처음 보는 아니,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이 검은 연기는 처음 보는 것이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에, 엘리사…………”
목이 멨다. 아닐 거라는 생각을 아무리 해 봐도 나라는 사람은 너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엘리사. 내가 너를 모를 리가 없었다. 불길한 검은 안개에 싸여있는 그녀를 향해 나는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아아, 환상인가. 순간 이런 되지도 않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 알 수 있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엘리사였다.
어째서?
엘리사가 그 새끼한테 질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녀의 몸에 머리를 묻었다. 가슴이 답답하다. 무언가 꽉 막힌 듯 좀처럼 뚫리지 않았다.
“아직까지 버틸 줄은 몰랐는데.”
그때 우리의 옆에 그가 내려왔다. 무언가 힘든 일이 있었는지 숨을 몰아쉬는 꼴이 보기 싫었다.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 거지. 분명 그때 내가?
“이 목걸이 때문인가?”
그는 내 목걸이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무언가 탐탁지 않아 보였다.
“커…카학…”
그에게 걷어차였다. 그 전에 엘리사가 주었던 목걸이를 빼앗긴 게 먼저였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네. 너 같은 것에 이런 목걸이는 사치지.”
처맞는 것은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엘리사의 선물을 빼앗아 갔다는 사실이었다.
비참하다.
풀밭에 누워 엘리사를 바라보았다.
나를 걷어찼던 그를 바라보았다.
“기절시켜서 데려가. 나는 조금 더 놀고 있을 테니까.”
그는 옆에 있는 검은 존재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 머릿속을 감도는 감정은 슬픔과 불안, 공포가 아닌 분노에 가까웠다.
어쌔서일까.
원래라면 나는 엘리사를 제압한 그에 대한 공포를 느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에 대한 분노가 느껴졌다.
죽고 싶지 않았다.
죽더라도 내 눈앞에 있는 저 남자를
「」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삐걱거리고 몸의 마나가 부족한 것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이 정도는 핸디캡도 되지 못했다.
“......너 뭐야.”
손바닥을 하늘을 보게 만들었다.
손바닥 위에 펼쳐진 마법진을 바라보며 작게 외쳤다.
「뇌창」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