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뱀
* * *
충동적인 성격과 야성적인 움직임. 전투에 있어 마법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 고집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반사신경과 힘까지.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인물보다 개라는 동물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카가가가강!
그 누가 묵직한 대검과 사람의 주먹이 부딪혀 내는 소리라고 생각할까. 시끄러운 소음은 엄청난 속도로 이 공간을 빠르게 채워가고 있었다.
“큭……!”
눈으로도 다 쫓을 수가 없는 엘리사의 공격을 무거운 대검으로 막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크게 대검을 아래에서 위로 크게 휘둘렀다. 거리를 벌리려는 속셈 이었던 것 같지만,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엘리사는 들어 올리는 그의 대검을 손으로 잡았다.
그녀의 손에는 피가 살짝 흘러나오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엘리사의 전투 장면을 보면 그녀가 인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넓은 대검에 천천히 흘러 내려가는 피를 보니 새삼스럽지만, 그녀와 내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꾹 잡고 있던 손잡이를 놓으려고 했다. 다만 엘리사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도착하는 것이 먼저였다.
쾅!
주변의 공기가 그녀 쪽으로 빨려 들어갔었다. 그녀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강타하자 이 주변의 공기가 그녀 쪽에서 터져나갔다.
엘리사의 주먹에 그는 자신이 앉아있던 바위에 처박혔다.
나 또한 근처에 있는 나무쪽으로 날아가 등을 부딪혀 버렸다. 부딪히고 바로 일어나려 했으나, 허리에 엄청난 통증이 일었다.
“....윽!”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나는 일어나는 것 대신 일단은 앉아있기로 했다.
근처에 있던 내가 이럴 정도라면 정통으로 맞은 저 남자는 얼마나 큰 데미지를 받았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커…커헉……!”
그는 피를 토하면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펀치를 정통으로 맞고도 정신을 차렸다는 점에서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하……. 진짜 정면승부는 안되나.”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피로 물든 얼굴을 닦았다.
“야. 거기 도둑년.”
“...네?”
멍하니 그쪽을 보고 있을 때, 그는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나는 그가 나에게 말을 걸 줄 몰랐기에 반응이 늦어졌다.
“거기서 가만히 있지 말고 꺼져. 여기서 여신님 몸 상하게 하지 말고.”
“...........”
나는 그녀의 앞에 서 있는 엘리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에 났었던 상처는 어느새 치료된 건지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평소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나에게는 보였다.
지금 그녀는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그녀는 그 누구라도 물어뜯을 기세였다.
그의 말투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공간에 더 있다가는 엘리사에게 짐이 될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의견에 수긍했다.
나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있는 엘리사에게 말했다.
“엘리사…….”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고 여전히 저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녀의 집념을 알 수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째서인지 그 말을 하는 엘리사는 힘겨워 보였다. 그와의 전투에서 힘을 많이 쓴 것 같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궁금해하기보다는 그녀를 믿기로 했다. 알아서 잘 뚜드려 주겠지. 지금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나는 고통을 참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 있는 나무를 디딤돌 삼으니 그나마 덜 아프게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허리를 부여잡으면서 그와 엘리사를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허리가 얼마나 아픈지 허리를 빳빳이 세우는 게 어려워 걸을 때도 살짝 구부정하게 걸을 정도였다.
내가 둘의 싸움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괜찮았다. 나는 엘리사를 믿기 때문이었다. 엘리사라면 그를 상대로 분명히 이길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봐 온 것도 있었기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얼마 걷지도 않았건만 나는 작은 공터를 발견했다. 아까 그가 앉아있었던 곳만큼 크지는 않았다. 작은 오두막 하나 들어갈 사이즈랄까.
이 공간에 온 것만 해도 내 몸이 아늑해 해지는 것 같았다.
……일단은 좀 앉을까.
내 허리를 아까부터 계속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어딘가 앉지 않으면 한동안 허리를 쓰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공허하기까지 했다.
아늑한 공간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지만, 계속해서 들리는 엘리사와 남자에 의해 발생하는 소리는 여기까지 생생히 들려왔다.
하늘을 보며 마음을 비우려고 해도 불규칙적으로 들리는 소리는 계속 내 몸을 들썩이게 했다.
노엘이 준 포션이나 마실까.
문득 노엘이 주었던 포션이 생각났다. 노엘의 설명대로면 이 안에는 몸의 회복을 돕는 포션이 있다고 들었다.
내가 저번에 먹던 것이 아닌 장기적으로 내 몸에 도움을 주는 효과라고 했었다.
연금술사의 포션을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마셔보겠는가. 나는 가방을 뒤적거리면서 포션을 찾았다.
캉
눈 한번 깜박였을 뿐인데 내 눈앞에는 검은 단검이 내 목을 노리고 있었다. 다행히 엘리사가 주었던 목걸이의 마법이 발동해서 검은 존재의 검을 막아 주었다.
어째서 이곳에 검은 존재가 나타났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나는 서둘러 가방에 있는 포션들을 마셨다. 혹시 모를 일들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 주위에 있는 검은 존재는 하나가 아니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수만 해도 10명이 넘어가는데 내 뒤에는 얼마나 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어쩐지 엘리사가 싸울 때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었다.
저리 꺼지라는 그의 말 자체가 함정이었다. 엘리사와 나를 떨어트려 놓고 나를 따로 무력화 시키려는 속셈 같았다.
여신님 여신님 하면서 몸이 소중한 척을 한 건 다 거짓이었나?
그의 말 자체는 완전히 거짓 같지는 않았다.
아마 나를 완전히 죽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나를 산채로 데려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 과정에 있어 약간의 상처는 무시할만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아까 그가 내게 말한 것이 어디까지 사실이었을까?
한번 의심 속에 빠지게 되니 점점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나로서는 매우 괘씸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 불평을 내뱉을 수도 없었다.
서둘러 가방 안에 있는 마법진을 잡았다. 엘리사가 올 때까지 버텨야 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슬슬…. 제대로 해 봐야겠지.”
자스민이 사라지자 그는 입을 뗐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주위에 있던 칼들이 그의 주위를 원을 그리며 모여들었다. 손에 놓았던 대검은 어느새 그의 손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는 대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났다. 그 광경을 엘리사는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무 흥분했어….’
그녀의 눈앞에 있는 상대는 그녀와 상성이 좋지 않았다. 이곳에 그녀 혼자 왔다면 상관없었겠지만, 지금은 근처에 자스민이 있었다.
그의 외모와 말투, 목소리는 그녀에게 혐오와 분노를 지나치게 불러왔다.
그녀가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
엘리사로써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괴물이 된 모습을 자스민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 이상으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된다. 대꾸도 하지 않고 여기서 확실하게 끊어놓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 뱀 같은 새끼는 언젠가 다시 튀어나와 발목을 물어버릴 게 분명했다.
“야. 주인님이 버리고 갔다고 그렇게 침울해하면 안되지. 밝게 웃어야 다시 주워가지 않겠어?”
그의 말은 모두 계산된 행동이었다. ‘여신님’에 대한 것을 제외하면, 아니 어쩌면 그것까지도 모두 계산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가 내뱉는 말은 오직 그녀를 도발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까와 달리 시작은 그의 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칼은 엘리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녀를 향해 날아가는 칼들은 단순한 검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특별한 개조를 거친 아티팩트였다.
그렇기에 마법사가 아닌 그의 명령에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오른손을 휘둘러 그의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쏘아진 검들을 떨쳐나갔다.
“허.”
“니 좆대로 될 수는 없지.”
수십 개의 칼을 떨쳐 낸 엘리사는 엉망이 된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녀는 엉망이었던 자신의 머리처럼 꼬여있던 머리가 살짝 식혀진 것을 느꼈다. 어차피 정공법으로는 자신을 이길 수 없는 상대다.
그동안 수없이 했었던 것 처럼 정면에서 즈려 밟으면 된다.
다만, 그때와 지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철저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