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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98화 (98/120)

〈 98화 〉 방벽

* * *

익숙한 냄새였다. 바닷가의 소금 내.

테오도르에 처음 왔을 때부터 맡았던 냄새는 내 주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으로 오게 되면서 더욱더 강해진 것 같았다. 아니, 같은 것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내 코가 익숙해 진 것 뿐이었다. 내 코를 찌르는 소금 내에 내 코가 익숙해 진 것 뿐이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내 코는 아직도 짠 냄새가 풍긴다며 나를 찌르고 있었다.

이 정도 했으면 그만할 때도 됐는데 말이다. 이상한 건 내 코뿐만이 아니었다.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이상해 지는 것 같았다.

원래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아냐, 분명 아까까지는 괜찮지 않았었나?

아마 이 섬 근처에 오게 되면서 이렇게 변해버린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변해버렸단 거지. 사실 별로 변하지는 않았다.

엘리사에게 폼이란 폼은 다 잡았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내가 변했다고는 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나라는 사람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마리안의 말대로네…….”

이 섬은 다른 섬들과는 달랐다. 나무가 빽빽이 자랐고, 다른 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어째서 그들이 이 섬에서 마을을 세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정도로 자원이 풍부한 섬일 줄이야.

저 멀리에서 봤을 때에는 그냥 그저 그런 섬일 줄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마리안에게서 설명을 들었음에도 그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보트를 근처에 있는 나무에 묶어두고 원래 마을이 있었던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마리안에 말에 의하면 그곳에 자신들을 내쫓은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섬에 나무가 많다는 것 만큼은 내 행복감을 늘려주는 요인이었다. 마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섬의 규모가 커 봤자 거기서 거기였다. 마을은 금방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내 주변에 있는 수많은 나무였다. 나무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는 수도 없이 맡았던 소금 내와는 달랐다.

소금내와는 달리 내가 맡는 것만으로도 내게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소금 내가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계속 맡고 싶지는 않았을 뿐이었다. 나무를 포함은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풀 내와 상쾌한 냄새는 내 코를 뚫어주는 것 같았다.

내 옆에서 나를 따라오는 엘리사는 아까부터 아무런 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평소같이 무표정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있는데 꾹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표정을 계속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엘리사. 뭐, 말할 게 있어?”

나는 엘리사를 바라보고 물어보았다.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이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정도라면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가졌기에 그녀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가씨.”

엘리사는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예상을 못한 것은 아니었기에 실망은 덜했다. 그녀의 속마음을 알고 싶었지만, 이 이상 그녀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실례일 것 같았기에 그만두었다.

이 정도면 그녀 입에서 그럴듯한 말을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었다. 이 섬에 오기 전에 너무 말을 못 해서 그런 걸까. 여러 상상을 해도 진실은 알 수 없었다.

섬의 규모가 큰 만큼 마을까지 가는데에도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나는 2시간 안에는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이 마을은 들은 것보다 훨씬 꼼꼼하게 숨겨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가씨.”

“왜 엘리사?”

“연기가 보이는 것을 보니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말없이 걸은 지 시간이 적당히 지났다고 생각할 즈음 엘리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말대로 위를 바라보니 회색의 연기가 살짝 보였다. 나무에 가려져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정표는 환영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원래 오래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긴장감도 커져만 갔다. 마을에 도착하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최소한 그 증거뿐이라도 찾을 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추론일 뿐이었다.

전부터 내 몸이 내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섬에서 엄청난 일이 있을 것이라고, 내가 그렇게 궁금했었던 것 중 하나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살아생전 이렇게 내 의지와 몸의 감이 다른 것은 처음이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벨리타 자스민이라는 몸이 나를 강제로 끌고 간다고 생각이 될 정도였다.

마치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감각이랄까…………

물론 정확히 따지자면 내 몸은 아니기는 했다. 이 몸은 ‘벨리타 자스민’의 것이니까. 그렇지만 지금 이 상황은 내게 의문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상관없었다. 이 몸과 같이 나 또한 이 상황에 대한 의문을 품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알 수 없는 감각이 이 사건을 탐구하려 든다면 나도 그에 응할 뿐이었다. 이 섬을 습격한 이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과연 이 일이 우연이 아닌지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엘리사.”

“네. 아가씨.”

“짐작이 가는 사람은 있어?”

엘리사에게 짐작이 가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돌아온 것은 그녀의 침묵뿐이었지만. 고개를 살짝 돌려 바라보면 그녀가 많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무리하게 압박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니까.

“아…….그게…….”

“왜? 잘 모르겠어?”

살짝 웃으면서 엘리사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살짝 놀리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끙끙대며 대답을 미루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심한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아뇨. 의심이 가는 인물이 너무 많아서…….”

그녀의 대답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것 같았다. 누군지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이 가는 인물이 너무 많다니.

분명 타이렌과는 얘기가 됐다는 말을 들었는데 말이다. 나는 의문을 가지고 엘리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내 의문을 알아차리고 바로 이어서 말을 해 주었다.

“타이렌이 약속을 한 것은 아가씨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아가씨를 제외하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뛰어들 인물은 차고 넘치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타이렌이 약속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내 안위였다. 나를 제외한 것은 해당하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자라고 하지 말고 그냥 모든 것에 한동안 손을 떼라고 할 걸 그랬나보다. 여행지 근처에서도 이렇게 소란을 피울 것이라면 말이다. 귀한 방학이 엉망이 되었는데 그 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나저나 엘리사는 타이렌과 같은 조직에 속해 있는 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새삼스러운 생각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뭐, 오히려 몰랐다는 게 더 이상하겠지. 나는 그렇게 이해하며 지나갔다.

“걱정되십니까….?”

걱정이라. 이 감정을 걱정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마 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은 타이렌과 같은 곳에 있는 이들일 것이다. 검은 존재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 내 상태를 스스로 짚어보면 평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심장 소리가 쓸데없이 크게 들린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긴장일까, 걱정일까. 어쩌면 흥분일지도 모른다.

나는 알 수도 없는 심장박동에 몸을 맡기고 앞으로 걷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나는 걸음을 걷는 것이 두렵지 않아 지고 있었다.

“잘 모르겠어. 그냥 심장이 미칠 듯이 뛰고 있을 뿐이야……”

스포츠 만화의 주인공이 할 만한 대사가 아닌가 생각했다. 상대할 수 없는 적에게 향하는 주인공의 마음이랄까. 뭐랄까. 마을까지의 거리가 멀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것 같았다.

마을은 내 생각보다 깨끗하게 남아있었다. 나무로 친 방벽은 중간에 뚫린 구멍을 제외하고는 깨끗했고, 주변의 바닥도 깨끗했다.

사실 방벽에 뚫린 구멍부터 평범하지 않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너무 깨끗했기에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수많은 검은 존재들이 들이닥쳤던 것 치고는 이 주변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이 주변의 식물들은 너무나 평온하게 자라고 있었고 주변의 나무들에도 싸움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보고 바로 대피를 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의문은 해소될 수 있었다. 검은 존재들을 보고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도망을 갔다면……

그런데도 마음 어딘가에는 찜찜함이 남아있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였다.

물론 이 생각은 마을 안에 들어가자 싹 바뀌게 되었다.

이 주변에만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풍경은 마치 다른 나라에 간 것 같았다. 분명 부실한 나무 방벽이 전부임에도 이 안에는 모든 것이 스러져가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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