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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97화 (97/120)

〈 97화 〉 섬

* * *

테오도르는 한번 폭풍이 몰아쳤지만, 상처를 딛고 잘 일어서고 있었다. 중립국이라는 위치 때문일까. 테오도르는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직 테오도르의 많은 이들은 이 사건을 불안한 장도라며 불안에 떠는 이가 많이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의 습격은 시민들에게 두려울 수 밖에 없었다. 정체를 아는 인물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이들의 귀환식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진실을 알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걱정하고 앞으로의 일을 두려워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다.

“아…. 씨발.”

소니아는 무심하게 욕을 내뱉었다. 그녀는 지금 노엘의 실험실에서 여러 가지를 실험하고 있었다.

그녀의 집에서 해도 상관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실험은 주위가 더러워질 가능성이 있었기에 소니아는 노엘의 실험실을 빌리기로 했다. 노엘은 이런 사실은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노엘은 소니아의 말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소파에 누워서 여러 가지 과자를 맛보는 것이 그녀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녀는 그동안 소니아의 욕은 수없이 들어왔었다. 그렇기에 지금 같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말들은 무시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엘의 방학은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그녀가 방학이라고 신이 날 나이는 지났지만, 그녀의 하루 루틴은 학교를 다닐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평소에도 귀찮은 수업은 나가지 않았던 노엘이었기에 학기 중과 방학의 차이가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달라진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자스민의 존재였다. 자스민은 방학을 맞이하자마자 여행을 간다며 엘리시아로 떠나 버리고 말았다.

노엘은 처음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어찌 보면 노엘의 인생에 가장 큰 변수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기에 자스민의 빈자리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소니아씨. 저녁은 뭐 드실 건가요.”

“굶어.”

소니아의 날카로운 대답에 노엘은 그녀와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을 포기했다.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노엘은 다시 과자를 씹어먹으면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최근 그녀에게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고 있었다.

‘그쪽의 깽판으로 분위기는 최악이고…. 조만간 회의가 열리겠네.’

회귀 자들은 처음 앞으로 일어날 재앙에 대비하고자 회의를 열고 있었다. 대부분의 회귀 자가 모이는 자리었기에 이 대륙의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라고 봐도 괜찮은 정도였다.

‘특히 이번에는…….’

이번 회의 주제들은 뻔하디뻔한 주제였다. 그중의 하나는 다름 아닌 벨리타 자스민에 대한 것이었다.

벨리타 자스민의 처분은 보류한다고 한들 그녀를 둘러싼 불신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최근 사건까지 겹치며 많은 이들이 자스민에 대한 처분을 요구하고 있었다.

한 번의 회의로 자스민의 대한 처분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수많은 회귀자들에게 있어 자스민에 부정적인 인식이 조금씩 심어지리라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까지 현재의 자스민은 다른 사람이기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설득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스민을 노리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많은 일들이 그녀를 피곤하게 만들 것은 분명했다.

정확히는 그녀뿐만이 아니라 자스민의 처분을 보류로 결정한 이들도 포함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는 노엘의 바로 옆에서 알 수 없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때, 노엘의 실험실 창문으로 편지가 날아들어 왔다. 편지는 날카로운 표창처럼 노엘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윽….”

과자를 집고 있었기에 노엘은 그대로 편지를 얼굴에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고통스럽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더러웠다.

“친구야.”

“.........”

“회의 날짜 잡혔다.”

노엘의 말에 소니아는 하던 실험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천천히 일어나는 그녀의 뒷모습만으로도 그녀의 귀찮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떡잎이 고개를 들듯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소니아는 몸을 돌려 노엘을 바라보았다.

노엘은 편지를 이곳저곳 살피다가 소니아에게 편지를 던졌다. 힘을 써서 던져서 그랬을까, 이미 편지는 이곳저곳 꾸겨져 있었다.

소니아는 편지를 읽자마자 구기고 불에 태워버렸다. 소니아에게는 특히 회의라는 것이 불편하고 귀찮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를 구한 용사와 같은 취급이니 말이다.

그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참고로 우리는 필참이란다.”

노엘은 머리를 긁으면서 말했다. 노엘에게도 별로 유쾌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동안은 이를 악물고 가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안될 모양이었다.

“하아……”

소니아의 깊은 한숨은 무겁고 어두웠다. 항상 뱉어오던 한숨이었지만, 오늘따라 그녀의 한숨은 땅을 파고들어 갈듯이 무겁게 땅을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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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이 우리에게 부탁한 것은 이 소동을 일으킨 주동자를 잡아 달라는 것이었다. 마리안을 비롯한 이곳의 사람들은 이 사건 범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일단은 원래 그들이 살았던 마을로 가보기로 했다.

어젯밤에 그녀에게서 카나리아 제도의 지형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고 해도, 한 번에 그들이 살았던 마을로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지도를 봤다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마리안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와 같이 가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지켜야 될 것이 있기에 어쩔 수 없다고 했었나.

어젯밤에 그녀에게 몇 번이나 물어보았지만, 마리안이 지키는 유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의 물음에는 나름 상냥하게 대답해 주었다. 허나, 유물에 관해서는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녀의 대답하는 표정은 답답해 보였다. 그 답답함이 계속 질문을 하는 우리 때문인지, 알려줄 수가 없는 자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 또한 대답을 하고 싶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았기에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엘리사는 살짝 다른 생각을 가진 것 같았지만….

“마리안씨. 저희에게 부탁하신 것은 계획된 일이 아닌, 우연이죠….?”

“네. 우연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여행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제가 계획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죠…… 죄송합니다.”

나는 엘리사에게 우리를 부른 게 계획된 것이 아닌지 물어보았다. 그녀의 대답은 뻔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대답이었다.

사실 그럴 리가 없었다. 하필이면 우리가 여행을 와서 해안에서 놀고 있을 때 사건이 터질 리가 없지 않은가. 그저 기가 막힌 우연이라고밖에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검은 존재가 계속 내 눈에 밟혔다. 검은 존재가 내 앞에 나타났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불안했다. 녹이 잔뜩 슬고 낡은 사슬에 몸이 묶인 느낌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와 엘리사는 저 멀리 있는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우리의 목표인 섬이었다.

루시는 지금까지 잠에 빠져있었다. 아까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문을 열자마자 퍼지는 술 냄새 때문에 얼마 있지도 못하고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엘리사는 내 옆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할 말이 있는지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팔을 툭 치고 나서야 그녀는 입을 뗄 수 있었다.

“아가씨.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아가씨는 여기에 계시는 것이 안전할지도 모릅니다. 아가씨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엘리사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불안감을 품도 있었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그 눈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녀가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거겠지. 아무리 봐도 내가 이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도 마법진을 만들지 못하고 마법 자체의 숙련도도 떨어졌다. 그나마 먹힐만한 것이라고는 뇌창 하나뿐이었다. 그마저도 사용하고 나면 몸이 망가져 버리지만.

이 일에서는 빠지는 것이 맞았다. 상식적으로 그랬다.

“괜찮아. 엘리사.”

“아가씨……….”

“나는 이 일이 우연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내 마음을 휩쓰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어.”

검은 존재, 타이렌 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이 불쾌한 감각이 싫었다.

그렇기에 나는 확실하게 알고 싶었다.

저 검은 존재가 무엇인지, 벨리타 자스민은 어떤 단체를 만들었는지, 도대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까지 말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저 섬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목숨에는 미련이 없었다.

진실을 알게 되면 좋은 거고, 알아내다 죽어도 본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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