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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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은 밖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테이블이었는데, 상당히 거대한 책상이었다. 이 주변엔 이 정도로 기다란 나무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났기 때문일까. 아직도 해는 떨어질 줄을 모르는 것 같이 힘이 넘치고 있었다. 숙소의 긴 지붕이 그림자가 되어 주었기에 의자가 뜨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일찍 오셨네요.”
테이블에 앉자 마리안은 짧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마리안은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보다 안정된 것 같아 보였다. 처음 봤을 때보다 유해졌다고 해야 할까.
이곳이 그녀에게 있어 안심되는 장소인 것 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정확히 용건이 뭐야.”
엘리사는 마리안을 쏘아붙였다. 원래라면 그녀가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동안 엘리사가 고생한 것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분노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마리안은 우리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원래 저희가 카나리아 제도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곳이 아닌 다른 섬에 정착했었습니다. 이 섬은 아름답습니다. 허나, 나무가 많지 않아 많은 인원이 지내기에는 부적절했죠. 이미 눈치를 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저희는 한번 도망을 쳐 온 상태입니다.”
추측만 한 것이기는 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카나리아 제도에 꽤나 오랜 시간 살았던 것 같은데, 이 마을은 지금 지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됐고, 누가 한 짓인데.”
엘리사…..
엘리사는 마리안의 사정 같은 것은 궁금한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빨리 이 사건을 해결하고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미 질색을 하는 것 같았다.
“.......진짜. 대화라는 것을 많이 해보지 않으신 게 티가 나네요.”
“뭐? 이 씨ㅂ…… 개년이.”
엘리사는 나름 말을 순화하려고 했다. 그게 그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말을 순화하려고 노력을 한다는 점이 장했기에 나는 그녀에게 따로 언질을 주지 않았다.
탁
숙소 안에 있었던 사람 중 하나가 음식을 담은 그릇을 테이블에 하나둘씩 놓기 시작했다.
나는 멍한 눈빛으로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리안이 아주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말했다.
“오늘 아무것도 안 드셨으니까요. 긴 이야기가 될 텐데 먹으면서 들어주세요.”
식탁에는 생선들과 대파 같은 기다란 채소들이 가득했다. 과연 섬 요리라는 것일까. 내 예상보다 푸짐하게 나왔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엘리사는 배가 고팠는지 그녀의 시선은 앞에 있는 생선에 시선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엘리사도 아무것도 안 먹었을 텐데 배가 고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내가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음식에 손을 데자 엘리사도 곧바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정말 이럴 때마다 엘리사가 강아지 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사를 아는 이들이 말하는 광견이라는 별명은 생각보다 잘 지은 건지도 몰랐다.
물론 나는 엘리사의 ‘광’ 쪽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에게는 엘리사라는 사람은 까칠하기는 해도 미친 것 같지는 않았는데…….
한창 먹고 있을 때, 마리안은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수장이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수많은 검은 존재들이 저희를 습격해 왔고, 저희는 도망가는 데 급급해 그들을 지휘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콜록, 콜록……. 검은 존재요?”
“네. 온몸이 검은색 이었는 데다 몸에서 검은색 연기가 나왔습니다.”
나는 검은 존재라는 설명을 듣자마자 기침이 나왔다. 검은 존재. 내가 모를래라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타이렌이 끌고 다니던 이들. 중간고사 시험에 흑막이라고 지목되는 인물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을 잡으면서 마리안에게 물었다.
“혹시 그 검은 존재들이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나요?”
“네.”
나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싶었다. 설마설마했지만 불안한 감각은 나를 지나치지 않았다. 뭐라 해야 할까. 음산한 연기가 내 목을 조여오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때 이후로 한동안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도 못 한 일로 만나게 될 줄이야…….
엘리사 또한 놀란 것인지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고개를 들고 마리안을 뚫어버릴 기세로 쏘아보는 것이 그녀도 이곳에서 처음 듣는 것 같았다.
설마 검은 존재들과 내가 연관된 것을 아는 걸까?
아니. 그렇다기엔 마리안은 원래 우리를 찾을 계획이 아니었다고 말했었다. 아마 우연이겠지. 그래, 우연이겠지.
“혹시 검은 존재들이 어째서 습격했는지 아시나요?”
나는 주제를 빨리 바꿨다. 검은 존재들에 대한 말을 더 듣다가는 머리가 어지러워 질 것 같았다.
“짐작이 가는 것은 있습니다. 아마 저희의 보물을 노리는 것 같았습니다.”
“보물이요?”
“저희에게는 리샤트의 유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값진 유물들입니다. 그중에서도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는 유물들이 있는데, 아마 그것을 노린 것 같다고 추측할 뿐입니다.”
유물이라……. 엘리사에게 유물은 엄청난 힘을 가진 것들이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유물들을 노린 건가?
나는 엘리사를 팔꿈치로 툭툭 치고 그녀에게 의견을 물었다.
“엘리사.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저는 유물을 노린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엘리사는 정신이 나간 듯이 말에 힘이 없었다. 왜 이러지. 검은 존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은 건가.
“어떤 효과가 있는 유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내 말에 마리안은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뭐… 중요한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검은 존재에 대한 거겠지.
“지랄 말고. 빨리 말하지.”
하지만 엘리사는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유물에 대한 정보는 듣겠다는 집착이 그녀의 눈에서 느껴졌다. 사람의 옷깃을 잡고 늘어지는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엘리사를 개에 비교하는 건 실례가 되겠지. 초반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개 같다 (욕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농장을 조금 더 많이 볼 걸 그랬다.
“엘리사.”
나는 엘리사의 팔을 잡았다. 유물에 관해서 얘기를 들을 기회는 많이 남아 있었다. 굳이 지금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가씨…….”
그녀는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더 이상 마리안에게 쏘아붙이듯이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내 오른쪽 팔을 꼭 잡고 있었다. 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에 그녀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희만으로는 역부족 아닐까요?”
저번에도 검은 존재들은 수없이 많았고, 타이렌은 엘리사와 카밀라가 합공을 할 정도로 막강한 적이었다.
이번에도 검은 존재들 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조종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엘리사 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특히 나는 엘리사에 비하면 아무런 도움도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뇌창을 한번 썻다고 지금까지 오른쪽 어깨를 움직이면 종종 고통이 느껴졌다.
이 정도로 나약한 내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엘리사의 방해만 될 것 같아 그것이 걱정이었다. 여행을 올 때 노엘이 주었던 물약이 몇 개가 있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게 분명했다. 내 몸은 노엘의 물약이 있어도 너무 쉽게 망가지니 말이다.
“역부족……? 그런 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마리안은 엘리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은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요.”
최강이라니. 엘리사가 강한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엘리사의 자신감이나 주변인들의 말들을 들어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최강이라니. 그 칭호 하나에 그동안 알고 있던 엘리사의 이미지에 새로운 색깔이 덧칠해지는 느낌이었다.
“번외로 치는 소니아씨조차 엘리사씨와는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그런 이에게 이번 일은 엘리사씨 정도면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분들 이외에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간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내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다행히도 해결이 되었다. 마리안의 말 대로라면 우리가 너무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오늘은 카나리아 제도의 섬들과 기후에 대해 알려드릴 테니, 알아두시면 편하실 겁니다.”
마리안은 그렇게 말하며 웃어 보였다.
엘리사는 그런 마리안을 보며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그 불만을 내뱉지는 않았다.
나 또한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은 그 검은 존재들을 봐야지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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