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바다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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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렌치노의 바람에는 그리운 바닷내음이 섞여 있었다. 신선한 바람 속에 담겨있는 소금 내는 아직 해변을 보지 않았음에도 파도를 본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외가가 해변가에 있어서일까 나는 바닷냄새가 나는 바람을 맞을 때마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명절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갈 때마다 맡았던 냄새여서 그런가, 나는 이 냄새가 너무나도 정겹게 느껴졌다.
나는 포렌치노에 도착하고서도 이 냄새에 집중하느라 오랫동안 내릴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아가씨…….”
“아… 맞다.”
쑥스러움을 느끼면서 마차에서 내리자 보이는 것은 새하얀 도시였다.
건물이나 계단, 바닥까지 모두 하얀색이었다. 내 위에서 내리쬐는 햇볕이 반사될 정도로 새하얀 색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지붕만큼은 대부분 파란색으로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모조리 하얀색으로 되어있었다면 질릴 만도 했지만, 지붕이 파란색으로 되어있고, 중간중간 다른 색들을 섞었기 때문에 질리지 않고 깔끔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그리스의 산토리니 같은 곳이었다. 하얀색의 건물들과 파란색의 지붕이라는 점에서 사실 빼다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완전히 닮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건물의 크기가 달랐다. 작은 건물밖에 없던 산토리니와 달리 포렌치노는 내 키의 5배가 넘어가는 큰 건물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마차에서 내려 처음 도착한 곳은 포렌치노의 광장이었다.
중앙에 있는 커다란 분수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큰 광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미스테리 서클 한 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이 나는 사방의 모든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중앙에 있는 분수는 내가 살면서 보았던 그 어떤 분수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하얀색과 푸른색, 투명한 유리가 모여 고급스러우면서 깔끔한 작품이 탄생했다.
특히 중앙에 있는 커다란 삼지창의 존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위대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여기가 포렌치노의 중앙 광장이야.”
어느새 내 옆에 서 있는 루시가 말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지.”
그녀는 이곳에 오자 꽤나 신이 난 듯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했다.
루시는 광장 가장자리에 있는 가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에서 파는 오징어구이는 이 도시 만에 별미라고 할 수 있지.”
그녀는 침을 삼키며 내 팔을 꼭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무조건 거기에 가고 싶다는 무언의 시위 같았다.
나는 살짝 고민하기는 했지만, 이토록 그녀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었기에 나도 호기심이 생겨 버렸다.
솔직히 오징어가 구워봤자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내 팔을 꽉 잡을 정도라니.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녀의 발걸음에 맞췄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푸근한 모양새의 아저씨가 우리를 맞아주셨다. 내가 뭘 시켜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루시는 입을 열어 주문을 넣고 있었다.
“여기 오징어구이 네 개요.”
“네 개? 괜찮겠어? 아가씨 세 명이 함께 먹기에는 양이 많을 텐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혼자서 3인분도 거뜬히 먹거든요.”
루시는 자신의 배를 두드리며 싱긋 웃어 보였다.
“보이는 것 보다 대식가셨구먼.”
아저씨는 루시가 마음에 드셨는지 금방 우리에게 오징어구이를 안겨 주었다.
사실 오징어구이가 맛이 없는 건 많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루시가 너무 기대치를 올려놨기 때문인지 나는 단순히 괜찮은 것 보다 더 뛰어난 맛을 원했다.
“어……?”
“어때 맛있지?”
그냥 오징어 구이였다. 그 조리과정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단순히 오징어를 구웠을 뿐 다른 어떠한 것도 첨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맛은 단순하지 않았다. 한 입을 물 때마다 오징어의 쫄깃함과 뿜어져 나오는 감칠맛은 내 입 속을 가득 차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씹을 때마다 따뜻해지는 입 안은 계속해서 내 입가에 오징어가 계속해서 들어가게 했다.
이미 하나는 다 먹어 치우고 두 개째를 먹고 있는 루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행복한 표정으로 오징어구이를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맛있지?”
“네…….”
내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녀는 내게로 다가오면서 설명해 주었다.
“이곳에서 잡히는 오징어는 다른 오징어들에 비해 월등하게 맛이 좋아. 이 대륙 어디서도 보이지 않고, 이곳에서만 잡히는 것이어서 더욱더 귀하지.”
“이 정도로 엄청난데 어째서 저는 이곳에 이런 오징어가 잡히는지 몰랐죠?”
이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이 정도로 맛있는 오징어가 잡히는 줄 알았으면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이래 봬도 나는 귀족 영애였다. 웬만한 고급 식재료들은 내 입을 통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 내가 한 번도 듣지도 못한 식자재가 있을 줄이야.
“뭐…… 그야. 이런 오징어가 잡히는지도 최근에서야 알게 된 거고. 그리고 이 오징어는 수출 금지 물품이라서.”
“수출 금지요?”
“어. 수출 금지. 단순히 엘리시아 밖에 나가는 걸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도시 밖에 나가는 걸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지. 그리고 존댓말 하지 말랬지.”
“어째서요 아니, 어째서?”
이 도시에서 나가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고? 그럴 필요까지 있나? 이 도시 밖으로 유출할 수 없다니. 분명 같은 나라일 텐데. 이상했다. 무언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루시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으음……. 귀해서 아닐까. 이 오징어는 수도에 국왕의 생신일 때만 나온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귀하거든. 사실 잘 몰라. 나는 까라니까 까는 거지.”
결론은 자신도 잘 모르겠다였다.
“그런가…….”
딱히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 스스로도 이것이 이 도시에서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째서 수출 금지인지는 모르고 있는 듯 했으니까.
나는 남은 오징어를 모두 입에 집어넣고 꼬치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엘리사 너는 알아?”
나는 혹시나 해서 내 옆에 있는 엘리사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예상하던 결과였기에 나는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새 그녀가 오징어를 다 먹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엘리사에게 준 것은 다른 것들보다 컸는데 그새 다 먹을 줄이야. 그녀의 손에 꼬치는 어느샌가 없어진 상태이었다.
맛있긴 했지.
“일단 숙소로 갈까?”
“벌써?”
“일단 숙소를 잡아놓는 게 좋을 거야. 이 도시에 숙소도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거든.”
아직 다른 곳을 구경해보고는 싶었지만, 일단은 루시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일단 가이드인 그녀의 의견을 따르는 게 났겠지.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은 작은 성이었다. 성 또한 하얗게 되어있었지만, 다른 곳과는 달리 오래되었다는 것이 티가 났다.
건물 겉 부분의 하얀 부분은 그동안 많이 때가 탔는지 회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건물 지붕에 있는 파란색 지붕 또한 다른 곳과는 다르게 진한 남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전반적으로 몇백 년 전의 건축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건물이었다.
“루시.”
“어, 왜. 물어볼 거 있어?”
“여기가 숙소야?”
“처음 보면 그런 의문이 들 수 있겠네.”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나에게 설명했다.
“원래 여기는 귀족의 개인 성이었어. 이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크게 성을 지을 정도로 자신의 권력에 대한 자부심이 큰 사람이었지.”
루시는 이미 무너져내린 한쪽 벽을 바라보았다.
“이런 건축물이 지어지면서 귀족과 이 지역의 주민과는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었어. 귀족은 권력을 무기로 주민들을 통제하려 들었거든. 그렇게 서로 악감정만을 쌓아가고 있을 때, 어느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과 귀족은 완전히 틀어지게 됐어.”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기 목을 그었다.
“시민들은 귀족의 성으로 쳐들어갔고, 귀족은 이 성의 최상층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해. 지금 지나갔던 자리가 귀족이 죽었던 자리일걸.”
나는 흠칫해서 뒤를 바라보았다. 바닥에는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듯이 불규칙한 바닥만이 내 시선에 들어올 뿐이었다.
“물론 옛날이야기지만.”
그녀는 겁에 빠져있던 나를 놀리는 듯이 말했다.
“이 성은 오랫동안 버려진 채로 있었는데 최근에 여관으로 개조하기로 했어. 아직 외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내부는 거의 완성되었거든.”
그녀의 놀리는듯한 시선에 나는 고개를 살짝 피할 수밖에 없었다. 졸았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숙소는 각자 한곳씩 쓰자. 어차피 정식으로 개장하기 전이라 객실을 남아도니까.”
체크인을 할 때 루시는 무심하게 나와 엘리사에게 말했다. 나는 딱히 상관없었지만, 내 옆에 있는 엘리사는 다른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아니, 아가씨는 나랑 같은 방으로 하지.”
엘리사는 내게 붙어서 이런 말을 해왔다. 나는 어째서 엘리사가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마 엘리사는 불안한 것 같았다. 아무리 허가를 받았다고는 해도 나는 적국의 입 안에 온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 네가?”
루시는 무언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엘리사를 쳐다보았다. 엘리사는 짜증이 난다는 듯이 루시의 눈을 마주쳤다.
“허. 진짜 변하긴 했나 보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괜찮아?”
“아…. 나는 괜찮아. 원래도 엘리사랑 같이 자서…….”
“???????????”
어째서인지 한동안 루시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따라다녔지만, 내가 물어보아도 그 이유를 내게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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