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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83화 (83/120)

〈 83화 〉 부분적인

* * *

“여신님………….”

타이렌은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다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그에 눈동자에서는 한 톨의 적의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질투와 선망, 존경뿐이었다.

나라는, 자스민이라는 존재가 그들에게 무엇이기에, 이리도 맹목적인 걸까.

나는 그들의 행동 방식에 두려움과 미안함을 느꼈다. 광신도같이 나를 따르고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미안함을………….

왜지?

어째서 나는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걸까.

내가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그들과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내 앞에 있는 인물이 피를 흘리고 있어서?

그럴 리가 없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어지러워.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언가 내 머릿속을 휘젓는 느낌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이 감각은 굉장히 어지럽고 불쾌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존재가 내 머릿속을 주무르고 다닌다니. 짜증과 불안감이 급습하는 생각이었다.

“훌륭하십니다. 당신의 위협적인 적들을 곁에 두시기로 하셨군요. 저로써는 완전히 찬성할 수 없지만, 제까짓 것이 어찌 여신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기쁜 표정을 하는 그를 바라볼 수 없었다. 나를, 이 몸을 저런 따뜻한 표정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아까 얼음을 목에 박을 걸 그랬나. 방금 몇 번의 대화로 힘이 쭉 빠진 것 같았다. 계속 이런 눈빛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서둘러 얼음을 목에 박을 것이다.

“그러니 저도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신이 그러셨던 것처럼.”

타이렌이 말을 끝마치자마자 그의 몸 곳곳에서 보라색의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크으으으윽……!”

그는 고통스러운지 몸을 숙였는데, 그의 등에는 마법진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옷에 마법진이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마법진이 새겨진 곳은 다름 아닌 그의 피부 위였다.

사람의 몸에 마법진을 새기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물음이었기에 내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사실 생각해 보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인간은 사물이 아닌 생명체였기 때문이다. 생명체에게 마법진을 새긴다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의 몸에는 보라색 빛의 불규칙한 선들이 등에 있는 마법진에서부터 뻗어 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기계의 회로를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타이렌의 눈동자는 어느새 보라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그의 눈 주위에도 선들이 있었는데, 아까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여신님의 곁에 있는 불신자들을 제거하겠습니다.”

차갑고 날카로운 말이었다.

목이 쉰 듯이 갈라진 목소리는 그에게 생기를 빼앗은 것 같았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것 같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는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그 모습에서 나는 어째서인지 익숙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장면일 텐데, 어째서일까. 수 없이 겪은 것처럼 익숙한 가슴은 당황스러웠다.

“...........그냥 이대로 돌아가면 안 되나요?”

나는 안타까운 얼굴로 그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이대로 부딪히게 되면 그의 최후는 뻔했다. 아무리 그에게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들 소니아와 카밀라를 이길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아가씨는 너무 사려가 깊어서 문제네.”

어느새 카밀라는 내 옆에서 내 어깨를 짚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딱히 나를 질책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희미한 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 말이야, 저 새끼는 죽어도 되거든.”

그녀는 단검으로 내 앞에 있는 타이렌을 가리키며 말했다.

악당이어서 죽어도 된다는 뜻일까? 물론 악당이라면 내가 막을 명분은 없지만…………………

“아, 내가 말을 잘못했네.”

심각해져 가는 얼굴을 보고 카밀라는 말을 정정했다.

“사실 저 새끼는 몸이 여러 개거든.”

“..........네?”

몸이 여러 개라고? 나는 순간 그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몸이 여러 개라니. 그럴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는 카밀라의 얼굴은 너무나 즐거워 보였다. 지금까지의 연구로 그녀가 이런 표정을 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몸이 여러 개라뇨?”

“말 그대로야. 저 새끼의 몸은 하나가 아니야. 그저 수많은 샘플중의 하나일 뿐이지.”

카밀라는 재밌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에게는 마냥 웃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내 머릿속은 이미 과도한 정보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지금 저 녀석이 위태로워 보이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고.”

그녀는 내 목에 팔을 감싸 안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녀의 말만을 듣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몸이니까 상관하지 않는 거야. 이미 버린 몸이니까.”

“카밀라…………!!!”

“거봐, 다 들키니까 존나 화내잖아.”

그는 카밀라를 향해 위압감을 뿌리면서 다가왔다. 하지만 카밀라는 그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소로운 듯이 내 목에 얼굴을 묻었다.

…….전부터 생각한 건데 내 목에 내가 알 수 없는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내 몸에 향수를 뿌리지도 않는데 별의별 인물들이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처음에는 묻은 사람의 취향인가 싶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내 목덜미에 무언가 설치된 것이 아닐까. 예를 들면 엘리사가 나 몰래 내 목덜미에 향수를 뿌렸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행동이 내게는 도저히 이해되질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인물이 내게 다가올 리가 없지 않은가.

“그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년을 죽였어야 했다.”

“그래, 열심히 하지 그랬어.”

내가 눈을 뜨고 많은 싸움을 봐 왔다. 그랬기에 나는 직감이라 할까, 약한 직감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들은 이 대화를 끝으로 서로 죽일 듯이 싸울 것이다.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쿵—!

순식간에 일어난 충돌에 내 눈앞에 많은 먼지가 흩날리며 시야를 막아섰다. 황색의 뿌연 시야 속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타이렌이 시전하는 마법이었다.

흙먼지 속에서 여러 색상으로 빛나는 색은 그가 여러 마법을 시전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기껏 숨겼던 진실이 탄로가 나니까 두려운가 봐?”

카밀라는 한결같았다. 그녀는 단검을 휘두르며 가소롭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인자한 노인인 척은 너에게는 안 어울리기는 했지.”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눈빛으로 카밀라와 나를 번갈아서 바라볼 뿐이었다.

타이렌이 이상하게 바뀌고 나서 그에게는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그는 마법진을 사용하지 않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아무런 시전 동작도 없이 그의 손에서는 마법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배워 왔었던 개념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가 완전히 마법진에게서 자유로워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등에 박혀있던 마법진이 계속해서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정말로 마법진에서 벗어났다기에는 몸동작도 어색했다. 마법을 한번 사용하면 얼마 동안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재장전하는 총기같이 말이다.

물론 그가 마법진이라는 법칙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것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의 손에서 마법진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내 딴에는 굉장히 신기한 현상이었다.

그 소니아 조차도 마법진을 사용했기에 더더욱. 그녀가 아직 하지 않은 것을 다른 이가 했다니.

하지만 막상 그 광경을 본 엘리사와 카밀라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들은 익숙하다는 것처럼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 나갔다.

………..내가 뒤처진 걸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지금 이 상황에 놀라워 하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엘리사와 카밀라는 회귀자이기 때문에 이미 질리도록 본 것일 수도 있었다.

……아마 그런 거겠지.

타이렌의 마법은 강력하고 빨랐다. 내 기준에서는 말이다. 나에게는 대부분의 마법이 엄청난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했다.

하지만 엘리사와 카밀라는 그의 마법에 아무런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공세는 빨라져만 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자신 넘치던 그의 목소리도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는 것이 뻔히 보일 정도였다.

이윽고 타이렌은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말았다. 엘리사와 카밀라에게는 이 정도는 너무나 쉬워 보였다.

그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는 표정 같았다. 엘리사와 카밀라 모두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엘리사는 타이렌이 스러지는 그 순간까지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평소에 데인적인 많았던것 같았다.

“.......상관없다. 이미 씨앗은 뿌려졌다. 네놈들을 그 변화를 결코 멈추지 못 하리라.”

타이렌은 그 말을 끝으로 한 줌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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