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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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르 밖의 바람은 매섭고 날카로웠다. 잠깐 방심하면 몸이 날아갈 것 같아질 정도였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어째서 이런 높은 성벽이 지어졌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에 대한 대답을 지금 직접 듣는 기분이었다.
시험을 친 곳은 울창한 숲이었기에 이 정도로 강한 바람을 겪지 않았었다.
나는 두 손을 꽉 쥐면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노려보았다.
바람이 강하다고 해도 이미 시전한 마법을 끊을 정도는 아니었다. 바람에게 져 버리기에는 중요한 인물이 내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안함이라는 감정이 내 몸을 뒤덮었다.
일단은 내질렀지만, 과연 그가 이 협박에 응할지는 알 수가 없었다.
타이렌의 뜻대로 가게 된다면 나는 앞으로 편한 삶을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이 판단을 만든 것은 엘리사의 반응과 내 직감이었다.
나를 여신이라고 부르는 미친 집단에 내가 들어간다고 해서 내가 편안해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생을 고통 속에 살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내가 처음 보는 이들보다는 나와 지금까지 함께해왔던 엘리사를 믿는 게 더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 호오……. 엘리사의 마법진이군요.”
그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까보다 한 걸음 더 뒷걸음질을 했을 뿐이었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타인의 마법진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었군요.”
그는 내 마법을 보고 감동을 받은 건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역시 여신님이십니다. 저희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군요.”
타이렌은 뭐에 그리 감동을 먹은 것인지 흐뭇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나를 통해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닌 벨리타 자스민일게 분명했다. 지금 그 앞에 서 있는 인물은 나 인데도 말이다.
그가 손을 턱에 갖다 대면서 만지작거렸다. 나는 혹시나 모를 불안감에 그를 향해 불안감을 내세웠다.
“움직이지, 말아주세요……”
나는 덜덜 떠는 손을 숨기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아직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을 상대로 하는 협박이 제대로 통할 리가 없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죽을 거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나라는 존재의 생명을 거는 것은 나에게는 손쉬운 일이었다.
나라는 존재에게 내 생명을 거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나는 내 목숨을 너무나 쉽게 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런 행동이 치기 어린 행동으로 보였던 것 같았다.
“허어………. 왜 그런 판단을 내리셨습니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지금 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 대답해 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는 엘리사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앞에 서 있는 타이렌은 지금,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나에게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내가 그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면 나는 바로 끌려갈 것 같았다.
“........지금 저에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니까요.”
“...호오. 그렇습니까.”
“어차피 그쪽을 향해 마법을 쏴 봤자 통하지도 않겠죠. 지금 이 상황에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판단은 제 목숨을 인질로 잡아서 시간을 끄는 것뿐이에요.”
“.................”
그는 나를 바라보면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손녀를 뿌듯해하는 노인의 얼굴이랄까.
나는 그를 처음 봤지만, 그는 꽤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평범한 청년 같은 얼굴에서 죽기 직전인 노인의 얼굴까지. 대화를 할 때마다 사람이 바뀌는 것 같다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훌륭하십니다. 시간을 끌어서 엘리사가 오기까지 버틴다라……. 괜찮은 판단이고 괜찮은 행동입니다.”
그는 성큼 나를 향해 앞으로 걸어왔다.
“하지만 여신님, 그런 협박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뒤에서는 검은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꽤나 보기 싫은 미소였다.
아까 짓던 인자한 미소와는 다르게 추악한 욕심이 섞여 있었다. 정말로 마트료시카 같은 인물이었다. 과연 그의 끝은 어디일까.
“용기입니다. 단번에 그 얼음을 목에 꽂아 넣으실 수 있으십니까?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오히려 나를 바라보면서 도발했다.
아마 내가 내 목숨을 건 것이 그에게는 치기 어린 행동으로 보인 것 같았다. 사실 그렇게 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지금도 내 양팔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공포 같은 게 아니었다. 이제 와서 죽음에게 공포를 느낀다니 웃기지도 않았다. 찰나의 긴장일 뿐이었다.
“저를 잘 모르시나 보군요.”
“......제가 말입니까.”
그가 나를 모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와 그는 처음 보는 사이었으니까. 그는 나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이 행동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모르는 사람일 뿐이었다.
“저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을 리가요.”
나는 얼음을 내 목에 살짝 박아 넣었다. 깊이 박은 것이 아니었기에 목에서 살짝 피가 나온 것 뿐이었다.
“여신님……!”
하지만 그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던 같았다. 내가 목에 얼음을 박자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 정말로 그런 행동을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가만 있어요. 당신도 당신 뒤에 있는 것들도.”
그렇게 말하고 나와 그들 사이에는 선명한 긴장감이 생겼다. 그는 이제 내가 말뿐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도 생각이 있었기에 이 상태로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뭔가 탈출구를 찾아야 했다.
그때, 내 왼손에 들려 있었던 종이가 살짝 떨렸다. 아주 작은 진동이었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내 생각보다 빠른 속도였기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왜 저를 데려가려는 거죠?”
나는 시간을 끌 겸 그에게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확신?”
“당신은 저희가 따르던 여신이 맞다는 확신 말입니다.”
“..........저는 당신들을 오늘 처음 봤는데 말이죠.”
“그럴 리가요.”
그는 나를 뚜렷하게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선명한 광기가 들어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은 너무나 선명해서 불쾌했다.
“이미 저희는 몇 번이나 보지 않았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
콰앙!
그 순간, 내 앞에 엘리사가 나타났다.
그녀가 도착하자 엄청난 충격파에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그녀는 앞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그녀의 머리카락은 빛나지 않았다.
“어, 어…. 괜찮아.”
“빨리 왔군. 조금 더 붙잡아 둘 수 있겠다고 생각했건만…….”
그는 아쉬운 듯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어쩔 수 없었나.”
“타이렌. 포기해라. 이미 네놈은 실패했어.”
“실패라. 무엇이 말인가.”
그는 나와 엘리사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여신님을 아직 모셔가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실험체들이 모두 제압당했기 때문에 실패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당연하지. 그 정도로 꼬라박았으면 이미 실패한 것 아닌가?”
엘리사의 말에 그는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
“여신님께서 여기까지 오신 이상 우리의 승리다. 너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지랄하네.”
둘은 그 말을 끝으로 서로를 향해 칼날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엘리사가 이기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엘리사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기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두 손만을 믿으며 살아왔다. 그녀의 두 주먹은 자부심이자 세월의 흔적이었다.
그녀가 오른손을 앞을 향해 휘둘렀다.
쾅!
그녀를 향해 달려오던 실험체들이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이어서 오른쪽에서 실험체들이 칼을 들고 달려왔다.
그녀의 움직임은 간단했다.
간단한 움직임이었지만, 결과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다른 실험체들 또한 순식간에 형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수많은 이들을 쓰러트렸지만 엘리사는 안도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인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칼튼 타이렌.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였다. 다른 이들도 아니고 그라면 아무런 죄악감 없이 죽일 수 있었다.
그 마음은 그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항상 여신님의 곁에 붙어있는 그녀가 꼴사나울 수밖에 없었다.
“실수한 거야.”
“실수는 자네가 한 거겠지.”
짧은 대화를 마치고 둘은 다시 서로를 향해 부딪혔다.
나는 엘리사를 응원하면서 그들의 싸움을 보고 있었다. 그때 내 왼쪽 어깨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우리 아가씨 잠깐 안 본 사이에 또 다쳤네.”
“카밀라……?”
내 옆에는 사라졌었던 카밀라가 있었다. 그것도 왼손에 검은 존재를 잡고 있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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