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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79화 (79/120)

〈 79화 〉 인사

* * *

텅 빈 도서관은 쓸쓸하다 못해 서늘한 기운까지 돌고 있었다. 도서관 안에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그것 외에도 여러 이유가 존재했다.

가장 큰 이유라면 당연하게도 이사벨라의 존재였다.

그녀의 종족이 종족인 만큼 이사벨라는 기분에 따라 주위 마나의 성질이 달라졌다. 소니아처럼은 아니지만, 그녀가 엘프로서 얻은 작은 힘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흐음………….”

이사벨라는 시선을 어느 한 곳으로 집중했다. 그녀가 보고 있는 곳은 곧 폭발이 일어날 지하감옥이었다.

엘프들은 세계선이 꼬이게 되자 미래를 보는 눈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중에 몇몇 엘프들은 아직 눈의 능력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사벨라 또한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 가까운 미래 정도는 볼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소니아가 나가기 전에 말해 두었으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소니아, 그리고 자스민이 보일 행동이었다.

나중에는 소니아가 들이닥쳐 그녀에 머리를 쪼개겠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내가 재미있으면 됐지.’

다음날에 들이닥칠 고통은 내일의 그녀에게 넘기기로 했다.

그녀가 보는 미래는 정확하지 않았다.

큰 줄기는 볼 수 있었지만 작은 줄기까지 샅샅이 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사벨라는 곧 큰일이 벌어질 지하감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곧 여기서 분기점 중 하나가 결정될 예정이었다.

이사벨라가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이유 대부분은 앞에서 말했다시피 앞으로 일어날 일이 재미있을 게 분명하다는 이유였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이유는 어느 세계선을 보아도 자스민이 죽는 미래는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죽지 않는다는데, 자신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녀가 방금전에 보았던 자스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지하감옥 안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정도 연기라면은 보통 간수가 내려와서 물이라도 뿌렸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지하감옥에 살아 숨 쉬는 간수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숨 쉬던 사람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간수뿐만이 아니었다.

감옥에 갇혀있는 수많은 죄수도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앞으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었다.

지하감옥의 최하층. 현재 여기에 수용된 존재는 검은 존재를 제외하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검은 존재는 처음 왔을 때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잘라.”

한 남자의 말에 그의 옆에 있던 존재가 철창을 자르기 시작했다. 영원히 불변할 것 같던 철창은 금세 파스타 면처럼 끊어졌다.

남자는 검은 존재를 향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이쯤 하면 충분했다. 나와라.”

“...............”

어떤 말에도 꿈쩍도 하지 않던 검은 존재는 그의 말에 바로 일어섰다. 검은 존재는 어떠한 감정도 담기지 않은 기계일 뿐이었다.

최소한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들어라.”

그는 자신의 옆에 있는 존재에게 시켜 검은 존재에게 작은 원판 모양의 무언가를 주었다. 겉보기에는 별로 화려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속 안에 들어있는 것은 매우 귀한 것이었다.

“너는 이곳에서 나오자마자 도망쳐라.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을 곳에 도착한 후에 그것을 내려놓거라.”

검은 존재는 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싱긋 웃음을 지었다.

“일단 입구까지는 같이 나아가자꾸나.”

그의 뒤에는 정체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존재가 따라서고 있었다.

그들은 검은 존재처럼 얼굴을 감싸거나 가리고 있었다. 모두가 검은 존재처럼 붕대로 몸을 감싼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얼굴만은 가리고 있었다.

가장 앞에 나아가는 그를 제외하고 말이다.

지하감옥을 나오자 보이는 것은 노란빛의 태양이었다.

지하감옥에서 나와 보는 태양은 치명적이었다. 그의 눈을 살짝 흐리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 잠깐 사이에 그의 앞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오랜만이군.”

“그런 셈이네. 한 10년 됐나?”

그의 앞에 나타는것은 최강의 존재였던 소니아였다. 회귀 전까지만 해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강이었으나, 지금은 전처럼 최강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에게는 이제 5년이 넘었다만…… 꽤나 오래 살았나 보군.”

“팔자가 팔자인지라.”

소니아는 자기 목을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녀가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감.

아무리 세계가 회귀했다고 해도 이 정도는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 정도의 인물은 이 정도 규모의 단체는 순식간에 없애버릴 수 있었다.

“.....왜 우리를 막는 건가?”

“왜라고 생각하는데.”

“그야, 우리가 벨리타 자스민을 헤쳤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는 정돈되지 않은 짧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벨리타 자스민을, 우리의 여신님을 해칠 이유가 어디 있겠나. 안 그런가?”

그는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뻗었다. 그의 표정을 신을 영접한 듯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또, 또, 지랄한다.”

“뭐, 자네에게는 아직 체감되지 않겠지.”

그는 흥이 식은 듯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런 반응일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였지만, 막상 마주하니 생각보다 흥이 나지 않았다.

“하여튼 다 죽어주셔야겠어.”

“지금의 자네에게 그것이 가능키나 할까.”

허세였다.

소니아라는 인물이 아무리 약해졌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 정도는 무리 없이 이길 수 있었다.

그것은 소니아도 그도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랄.”

콰앙—!

그녀의 말과 동시에 그의 옆에 낙뢰가 떨어졌다. 번개는 그를 향하지 않았다. 그의 옆에 있는 이질적인 존재들을 향해서 내리쳤다.

“.......!”

그들은 어떠한 단말마도 내뱉지 못하고 재로 변해버리고 말했다. 끔찍한 풍경이지만 이 공간에 있는 어떠한 인물도 그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지 않았다.

그들을 만들었던 그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에게는 자신의 옆에 있는 그들 또한 별거 아닌 실험체일 뿐이었다.

“....여전히 자비가 없구먼.”

“너야말로. 그런 모습으로 돌아다니는데 안 쪽팔리냐?”

“허허……”

그와 소니아는 눈을 마주치며 서로 상황을 펼쳤다. 현재 상황을 보면 유리한 지점에 서 있는 것은 소니아 같았다.

소니아는 마음만 먹으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없앨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니아는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교활하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도 들어가는 영감이었다. 겨우 이 정도의 병력을 이끌고 지하감옥을 습격했다고?

그것도 별것도 아닌 검은 존재를 구출해 내기를 위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소니아와 그의 기묘한 대치 상태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 역시 이러는 건 내 체질에 안 맞아.”

먼저 움직이는 것은 소니아쪽이었다. 소니아가 입을 때는 동시에 그의 주위에 있는 모든 존재는 재로 되돌아가 버렸다.

휙—

소니아는 눈 깜짝할 시간에 그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또한 그녀의 힘에 나름대로 잘 알고 있었기에 순순히 당하지는 않았다.

“허.”

“왜? 놀랐나?”

“......이 정도면 예상했지.”

“그거 실망이군.”

소니아가 그의 목을 꿰뚫었지만, 그의 모습은 허상이었다. 지하감옥에 모습을 비칠 때부터 그는 진짜 모습을 내비친 적이 없었겠지.

“그래서, 아직도 아지트에서 꽁꽁 숨어있는 건가?”

소니아는 비웃음을 담아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는 그 비웃음에 반갑다는 듯이 대꾸했지만 말이다.

“요즘은 그러다가는 뼈가 삭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의 모습이 천천히 사라져 갔다. 소니아에게 들켜버린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가끔은 내 존재 이유를 보러 가야 하지 않겠나.”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그녀의 주위에 남아있는 재뿐이었다.

카밀라가 사라진 이후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 머리는 복잡한 생각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 지하감옥에 있는 죄수들 중 단연 중요한 죄수 중 하나는 검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이 폭발음이 일어난 곳이 감옥이었다면, 검은 존재를 탈옥시키게 위한 것이 아닐까.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서둘러 옥탑방의 문을 열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안녕하십니까.”

내 뒤에는 어느새 한 인물이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여신님의 세 번째 심복 칼튼 타이렌 이라고 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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