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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78화 (78/120)

〈 78화 〉 폭팔

* * *

테오도르는 저녁을 맡아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하얀색의 건물들은 햇빛을 반사하면서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소니아는 이사벨라와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했기에 나는 혼자서 옥탑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혼자서 이 정도 거리를 걷는 건 꽤나 오랜만인 것 같았다. 그동안은 소니아나 노엘과 같이 다녔으니 말이다.

그것이 싫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혼자서 걸으니 별별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이라면 내 생각에 딴지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독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이대로 쭉 혼자 있으면…………….

“그래서, 귀쟁이랑 놀다 온 거야?”

“.....어째 요즘 자주 보는 것 같네요.”

그래, 그렇게 가만둘 리가 없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상한 사람이 달라붙었다. 이사벨라랑 이야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는데……

어느새 내 옆에 와있는 카밀라의 등장은 예상외였다.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은 그녀였기에 나는 몇 주 지나야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예상을 뒤엎고 이렇게 일찍 만나게 될 줄이야.

물론 내가 그녀를 보고 싶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봐서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기쁜 것도 아니었다.

“너무 반응이 심심한 거 아니야?”

카밀라는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말과는 다르게 그녀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아니 뭐…… 놀랄 틈도 없이 옆에 나타나 버려서….”

“그런가.”

카밀라는 어깨를 들썩이며 자연스럽게 내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 납치도 하지 않고 같이 걷기만 하다니. 어쩐지 어색했다.

“어쩐 일이에요?”

“우리 아가씨 얼굴이나 보려고.”

“.......뭔가 바쁘게 일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소니아의 말에 따르면 카밀라는 무언가 이 도시에서 계획하는 것이 있다고 했었다.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것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아…. 사실 그게 좀 미뤄져서 말이야.”

“왜요?”

“우리 아가씨를 쫓아온 실험체 때문에?”

그 검은 존재 때문에 미뤄졌다고? 그리고 검은 존재가 나를 따라왔다니. 여전히 나는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 수가 없었다.

“그것들 때문에 무기한으로 미뤄져 버렸지 뭐야. 한동안은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지금은 시간이 남아도는 건가요?”

“으음……. 그렇게 말한다면 슬프지. 지금 나는 우리 아가씨를 호위하고 있는 건데.”

호위라. 옥탑방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덮치려고 했던 사람의 호위라. 뭔가 요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굳이 따지지는 않기로 했다.

복잡하게 꼬인 관계일수록 진지해지는 게 손해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녀가 나를 경호해 준다면 나는 고맙게 받으면 될 뿐이다.

머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가슴도 바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누구한테서요?”

카밀라는 나를 보며 살며시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어째선가 장난기 가득한 꼬마의 웃음 같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야 몰상식한 신도님들에게서 우리 여신님을 지키는 거지.”

여신?

어째서 자스민을 여신이라고 불리는 것일까. 자스민의 성격에 사이비 교주를 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사이비 교주는 생각보다 다재다능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벨리타 자스민에게는 무리일 게 뻔했다.

검은 존재와 그를 부리를 존재가 자스민을 여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저번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들이 나를 여신이라 부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의문은 많았지만, 답은 없었다.

검은 존재와 직접 마주친다면 답을 알게 될까. 나는 아직 그 존재를 만난 적이 없었다. 다른 이들의 말로 간접적으로 들었을 뿐이다.

막상 마주치면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소니아에게 감옥에 검은 존재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해도 만나게 해주지 않은 이유가 아마 그것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나는 소니아에게 검은 존재를 보고 싶다고 했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소니아도 검은 존재가 나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 거겠지.

“제가 무슨 일을 했길래 저를 여신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나는 나름의 억울함을 담아 내뱉었다.

사실상 내가 그들에게 이바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몸의 주인이 자스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상한 존재들과 엮이고 있었다.

“그걸 지금 말하면 재미없잖아.”

“저는 지금 재미없는데요.”

카밀라는 내 뒤로 가더니, 내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그녀의 손길 때문에 가던 걸음은 전보다 확연히 느려졌다.

나는 나를 껴안은 그녀의 팔을 잡고 뒤를 돌아보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빨리 카밀라는 내 오른쪽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 와중에 나와 걸음걸이를 맞춰 준다는 것이 감동이라면 감동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가씨. 재미없는 게 좋은 거야.”

“.......그런가요.”

“그래, 우리 아가씨가 재미있으면 오히려 큰일이 났다는 거지.”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카밀라와의 대화는 이런 식일 때가 많았다. 평범한 대화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되짚어보면 다른 듯이 숨겨져 있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방금 나눈 대화 또한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나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카밀라와 나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맞추게 되었다. 그녀와 한 몸이 된 것 같을 정도로 그녀가 딱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떨어지라고 몸을 움직였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나와 붙어 있었다. 오히려 내가 그런 움직임을 취할 때마다 더욱 밀착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겠지………

애써 나를 토닥이며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나와 카밀라는 옥탑방 근처까지 몸을 겹친 채로 걸음을 옮겼다.

종종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친구 사이의 스킨십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 관점에서는 이상한 광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이상한 걸까.

“저….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지. 우리 아가씨가 궁금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로 말하는 게 아니었다면 훨씬 더 멋있었을 텐데. 작은 아쉬움을 삼키며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이 만든 아공간에 있는 수많은 폭탄은 어디에 쓸려는 건가요?”

소니아가 말해 주었던 카밀라의 아공간 속에 있었던 수많은 폭탄. 그것도 평범한 폭탄이 아닌 마나로 폭발시키는 폭탄이었다.

마나에 반응하는 폭탄은 상당히 비싸다고 들었다. 그녀가 어째서 그렇게 많은 폭탄을 가졌는지 알고 싶었다.

“으음………. 암살 때문에?”

“암살 때문에 그렇게 많은 폭탄을 들고 있는다고요?”

“주위에 있는 것들도 다 죽이면 암살이지.”

암살게임에서나 외칠 말을 외치는 사람이 있다니. 나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카밀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발언이 어이없을 것이라는 건 예상했는지, 뻔뻔한 웃음으로 철판을 깔았다. 그 뻔뻔한 미소가 퍽 잘 어울렸다.

“.....말 할 수 없다고 생각할게요.”

나는 그녀의 대답에 실망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가 알려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걸 알려줄 거였으면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주지 않았을까.

콰앙—!

그때, 어디선가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내 두 고막을 강타하는 큰 소리는 한동안 귀가 먹먹하게 만들 정도였다. 큰 소리였기에 방향을 쉽사리 추측할 수도 없었다.

테오도르에 폭발음이라니. 이곳에서 이런 소리가 들릴 리가 없을 텐데?

고개를 돌려 카밀라를 바라보니 그녀는 굳은 얼굴로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진지한 표정을 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나 또한 그녀의 표정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아가씨.”

“네…….”

“아가씨 집으로 가서 그 새끼 곁에 붙어 있어.”

카밀라의 오른쪽 손에는 어느새 은색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녀의 판단을 따르는 게 좋아 보였다. 나보다는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니 말이다.

“좋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밀라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잠시만 눈 감고 있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몸을 들었다.

움찔하는 몸의 긴장을 풀려고 노력하면서 눈을 감았다.

“이제 눈 떠도 돼.”

눈을 뜨자 내 눈앞에 테오도르의 전경이 보였다. 그동안 많이 봐왔던 풍경, 옥탑방 위에서의 풍경이었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옥탑방 위에 섰다.

“아가씨. 방 안에 들어가 있어.”

“당신은요…?”

“할 일을 해야지.”

카밀라는 그렇게 말하며 양손에 있는 단검을 보여주었다. 급박해 보이는 순간에서도 장난기가 있는 그녀의 행동은 나를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그럼—”

카밀라는 뒤를 돌아 어딘가로 향하려고 했다. 나는 물어볼 것이 있어 그녀를 불러세웠다. 지금 이 상황의 대부분이 의문뿐이었기에, 하나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저, 저기……. 폭발음이 난 곳이 어딘지 아세요?”

카밀라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지하감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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