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기준
* * *
“.....어디서 들었어.”
다행히도 소니아는 내 팔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녀를 나를 바라보면서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생각해 보면 카밀라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아직 누구에게도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엘리사가 들으면 죽여버리겠다고 난리를 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는데, 돌아가면 엘리사에게도 말을 해 줘야겠다.
“사실…….”
나는 소니아에게 카밀라와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을 했다. 소니아는 처음에는 헛웃음을 짓더니 나중에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충격인가.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니아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팔을 잡아당겼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소니아가 바닥을 바라보면서 한숨만을 쉬고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후……….”
소니아는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남은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내가 알고 있던 소니아의 모습이었다.
“알고 싶어?”
“.........어.”
그녀의 물음은 간결했지만, 그만큼 큰 의미를 지니었다.
나는 알고 싶었다. 자스민의 저지른 잘못을, 더 나아가 이 세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 말이다.
딱—!
“아직 멀었어.”
돌아온 것은 소니아의 가벼운 딱밤이었다.
물론 가벼운 딱밤이라고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소니아의 기준에서 말한 것이다.
나는 그 딱밤을 맞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을 맺혔다. 억울함에 소니아를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파 소니아……….”
“그렇겠지.”
소니아는 미소를 지으며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 상냥함에 나는 오히려 짜증이 났다.
다정하게 대해줄 거면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왜 이마를 때리고 나서 상냥하게 대해주는 걸까.
그녀가 아까 했던 말로 미루어 보아 그녀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나에게 제대로 알려줄 확률이 더 낮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나에게 무거운 진실을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알면 안 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소니아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했다.
내가 수긍이 안 되는 것은 그녀의 딱밤이었다. 그냥 안된다면 안 된다고 해주지 딱밤이 웬 말이란 말인가.
그녀의 딱밤은 내가 자벨리나에게 치였을 때보다 훨씬 아팠다. 물론 목걸이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멧돼지에 치이는 것보다 딱밤을 맞는 게 더 아프다니. 나에게는 웃지 못할 농담이었다.
나는 이마를 문지르며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왜 때리는 거야……….”
“그냥.”
소니아의 대답은 개판이었다. 그냥이라니. 처음 들었을 때는 울컥했지만 참아내었다.
내가 따져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
“자스민. 중간고사가 끝난 지 얼마나 지났지?”
“어………. 한 달 반?”
소니아의 질문은 갑작스러웠다.
중간고사가 끝난 지 얼마냐 지났느냐니. 별거 없어 보이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따지지 않았다. 소니아에게는 중요한 질문인가 보지.
“아직 너에게 대답해 줄 수는 없어.”
“왜. 내가 어려서?”
“그것도 있지만……….”
소니아는 나를 쓱 바라보더니 내 몸을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놓았다. 인형 뽑기 기계 안에 인형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면서 소니아를 바라보았다. 왜 내 자리를 옮기냐는 작은 항의를 담아서 그녀의 눈을 쏘아보았다.
물론 별 효과는 없었다. 소니아는 씩 웃으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직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말이야.”
“시간?”
“그래. 시간.”
소니아는 그 말을 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후련해 보였다. 완전히 후련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숨 쉴 구멍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나는 그녀의 품 안에 가만히 안겨있었다. 내가 난리를 쳐봤자 소니아가 나를 놔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모르는 게 정상이야.”
소니아는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말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느꼈다.
“그러면 언제 알려줄 거야?”
“궁금해?”
어. 존나.
나는 나를 안고 있는 소니아의 팔을 잡았다. 소니아의 팔은 갑갑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안심되기도 했다.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아.”
“그래. 그래 보이네.”
소니아는 한동안 나를 놔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도 이제는 이 상황에 슬슬 적응해 가는 것 같았기에 굳이 따지지는 않았다.
“준비가 되면.”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된 거야?”
“너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래.”
소니아의 말은 들으면서 나는 몸에 힘을 뺐다.
“그래……….”
뭔가 허무해지는 느낌에 나는 소니아에게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어쩔 수 없었다. 소니아는 내가 아직 알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내가 그 판단에 딴지를 걸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냥 지금은 그녀의 품속에서 가만히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소니아는 자신의 품 안에서 잠이 든 자스민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조용하다 싶었는데, 설마 자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무리 요즈음 힘든 일이 많았다고 해도 이런 시간에 자스민이 잠자리에 드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소니아는 자스민이 자신의 품속에서 잠에 들었다는 것에 알 수 없는 기쁨과 우월감을 느꼈다.
중간고사의 그 사건이 있고 난 이후 자스민은 저번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평소 그녀가 가지던 중압감과 압박감이, 그리고 삶의 태도도 말이다. 저번에 소니아가 자스민의 병문안을 갔을 때 소니아는 그녀의 모습이 시한부 환자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지금까지도 고통 속에 떨고 있을 만할 정도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소니아와 노엘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수면제까지 갖추기까지 했다.
하지만 자스민의 모습은 이상하리만큼 초연했다.
죽음의 향기를 맡았던 사람이 저렇게 초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한번 죽음을 경험하게 되면 한동안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것은 소니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결론이었기에 그녀는 자스민의 상태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자신을 반겨주는 자스민은 아주 작은 상처를 입은 것만 같았다.
소니아는 그런 자스민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스민이 걱정되었다.
자스민이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자스민이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 정도로 어긋나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 같은 건 느끼지도 않고 팔을 움직이지 못해 불편하다면서 툴툴대는 자스민을 소니아는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테오도르의 감옥 안.
소니아는 철창 안에 갇힌 검은 존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존재는 소니아와 눈이 마주치자 알 수 없는 괴성을 내질렀다.
그 괴성에 섞인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검은 존재는 소니아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런 경험까지도 계승되는 건가.’
소니아는 내심 놀랐다. 시간을 생각하면 꽤나 괜찮게 나온 결과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본능적인 요소도 들어있다니.
어차피 이 녀석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전부 얻은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흔적도 없이 없애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곤란했다. 아직 형식적으로나마 이 녀석을 연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국가의 일 처리는 귀찮음 그 자체였다.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굳이 기다랗게 늘려야 할까.
뭐, 자신이 국가의 일 처리에 불만을 가져도 바뀌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것을 알기에 소니아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하던 데로 니 좆대로 하고 살아.’
마르셀린의 말이 허공에 맴돌았다.
“그래. 좆대로 해야지.”
소니아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말했다.
소니아라는 인간은 원래 이렇게 살아왔다.
다른 누군가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을 내세워 살아왔다. 그리고 그 결과에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소니아는 한 번 더 자신의 마음대로 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는 그 기준이 자신이 아닌 자스민이라는 존재였지만. 한번 그렇게 기준을 잡은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주책인가.’
소니아는 품에서 담배 한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치익—
작은 마법진이 담배 앞에 나타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소니아와 자스민이 만난 지는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반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사람을 온전히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소니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판별하려면 최소한 3년은 곁에 두고 판단해야 했다.
하지만 소니아의 마음속에서 자스민은 어느샌가 분류되어 있었다. 그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말이다.
어째서일까. 소니아는 스스로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다음에는 뭘 가져가지.’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이는 어느샌가 한 인물만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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