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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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가기 위한 준비물은 별것이 없었다.
작은 손가방에 필기구와 노트 하나면 충분했다.
원래라면 이것 말고도 이것저것 더 있어야 했지만, 근 한 달만의 아카데미다 보니 다른 것들은 배제했다.
한 달 넘게 지났으면 다른 것은 필요 없겠지.
소니아도 몸만 와도 된다고 했었고.
물론 그 말을 그대로 들은 것은 아니었다. 항상 아카데미에 맨손으로 다니는 그녀와 다르게 나는 필기구 정도는 가지고 다녔다.
나는 복학생이 아니니까.
생각해보면 군대 2년 다니다가 학교를 다시 다니면 학교를 열심히 다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내 기억에 있는 복학생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신입생들에게 찝쩍거리는 것 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하긴. 군대에 있었던 2년 동안의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나처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겠지. 흔치는 않겠지만.
“소니아..?”
아카데미로 가던 도중 소니아를 만났다. 그녀는 과일 향 담배를 피는 중이었는데 그 향이 상당히 향긋했다.
저번에 노엘의 실험실에서 맞았던 것하고는 다른 것 같아 보였다.
“어쩐 일이야?”
나는 소니아에게 물었다.
그녀가 등교 시간에 혼자 시간을 축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아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지 않았을까.
“......너 기다리는 거였어.”
그녀는 담배를 벽에 비벼서 끄고 근처에 있던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녀가 던진 담배가 쓰레기통에 정확히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분명 처음 소니아가 담배를 피는 것을 보았을 때는 바닥에 꽁초를 던졌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근처에 있는 쓰레기통을 향해 던지게 되었다.
나는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소니아의 변화가 나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마음속에 행복감이 차올랐다.
“......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이런 질문은 해봤자 그녀가 곤란해질 뿐이란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냥.”
소니아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형편없었다.
그냥이라니. 쑥스러운 듯이 내 눈을 피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웃어 보였다.
내가 걱정되어서 나왔다는데 내가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가자.”
나는 소니아에게 말을 하면서 아카데미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아직 아카데미로 가는 도중일 뿐이지만 어째서인지 오늘 하루를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은 괜찮은 거 맞지.”
소니아는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녀가 조심스러웠던 만큼 활발하게 대답해 주었다.
“물론이지!”
나는 왼쪽 팔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대답했다. 이 정도로 힘차게 움직이는데 몸에 무리가 가지 않았다.
나는 노엘의 포션과 엘리사의 병간호에 감사할 뿐이었다. 그 둘의 활약이 없었으면 나는 아직도 침대에 누워 있겠지.
“그렇다면 다행이네.”
소니아는 짧게 말하고 고개를 틀었다. 나는 그녀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눈에 모두 담아 두었다.
어째서인지 오늘 아침은 긍정적이게 된 것 같았다. 얼마 있지 않으면 사그라들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소니아와 둘만 있으니 말이다.
내 예상대로였다.
긍정적인 나 자신은 얼마 가지 않았다.
아카데미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눈빛에 나는 고개를 떨구게 되었다.
엘이 나에게 독설을 퍼부을 때도 나에게 이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소니아가 다른 수업을 받으러 떠나자 나는 다시 고개가 숙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용히 수업을 들었다. 수업 중간중간에도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니 왜 갑자기 나한테 이런 시선이 집중되는 거지?
설마 ‘혼자서 꿀 빤 희대의 씨발련’이런 칭호라도 붙었나? 나로서는 알고 싶은 것이 한가득하였지만 섣불리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한 달 동안 편히 쉬었는데도 가산점을 받는 좆같은 년이라고 소문이 났을지도 몰랐다.
나는 어질어질한 미래를 상상하지 않기 위해 칠판에 눈을 고정했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모두의 눈빛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칼 엘의 눈빛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내 머리가 꿰뚫리는 느낌이 있을 정도였다. 나는 엘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한 번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무서운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정확히 무엇에 분노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힘들기는 충분했다.
폭풍 같았던 수업 시간이 끝났다. 수업 시간이 끝나자 다른 학생들은 더욱더 나를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눈빛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강의실을 나섰다. 이 속에서 일 분이라도 있다가는 질식한 것 같았다.
나는 소니아가 있다는 다른 강의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벨리타 자스민.”
그때 내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칼 엘과 다니아 서 있었다.
나는 순간 놀라 딸꾹질할 뻔했다. 갑자기 내게 그 둘이 무슨 볼일이 있단 말인가.
나는 그들의 몸을 바라보며(차마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서 있었다.
나와 엘과 다니아. 그 둘은 가만히 서 있다가 행동을 시작했다.
“미안했다.”
“...미안해.”
“..........네?”
나는 처음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 둘이 내게 사과라니.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 되물음에 엘은 입을 열어 설명했다.
“너에게 떠도는 선입견만 품고 내가 너무 섣불리 판단했던 것 같다. 그동안 너에게 했던 모든 모욕을 사과하마.”
엘 뿐만이 아니라 다니아도 내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나는 입을 열 수도 없었다.
“ㅇ, 어……….”
나는 할 말도 찾지 못하고 바닥만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뭐라고 답해줘야 할까? 어림없다고 화를 내야 할까. 아니면 괜찮다고 웃는 얼굴로 용서해 줘야 할까.
“아……. 괜찮아요.”
내가 택한 방법은 도주였다.
대충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을 한 후 대답을 듣지도 않고 뒤로 돌아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아직 나는 그들의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내 뒤에서 뭐라 뭐라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내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충분히 많았다.
나는 심심해서 아카데미에 나온 거지 모두의 관심을 끌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나는 모두의 관심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사실 평생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기분이기도 했다.
내 시선에 있는 모두가, 내 시선에 있지도 않은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본다는 감각은 꽤나 불쾌했다.
나는 그런 기분을 다시는 느끼지 않기를 바라며 걸음을 옮겼다.
시간은 금방 지나 나는 소니아와 작은 정원에 앉아 있었다.
아카데미의 큰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은 정원이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 정도로 많은 줄 몰랐는데 이제는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만큼 정원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걔가 사과했다고?”
“어…… 깜짝 놀라서 제대로 된 대답도 못 했어.”
나는 소니아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
소니아는 내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웠는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엘이 사과를 했단 말이지…….”
“....놀라운 거야?”
“칼 가문이 그렇지만, 그 녀석은 특히 자존심이 높았지. 걔의 기준에 한 번 떨어지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야. 그런 녀석이 너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를 했다는 건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지.”
소니아는 엘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한 달만의 수업이었지만 그렇게 어려운 것은 없었다. 아카데미 측의 조치 때문에 과제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됐기에 온전히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 조금이나마 공부해 왔던 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소니아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지.
카밀라에게 들었던 검은 존재와 그들을 만들었다던 자스민의 이야기 말이다. 사실 웬만하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는 않으려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그들에게 부담만 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검은 존재든 뭐든 이 세계는 자스민이 살아남기는 어려운 세계였다. 언제 비명횡사할지 모르는데 죽기 전에 하나라도 알고 가는 게 낮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를 물어보았다고 소니아가 나에게 거리를 둘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기를 원했다.
나는 소니아의 어깨에 기댔다.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 나는 내가 해야 할 질문들을 정리했다.
“뭐 물어볼 거 있어?”
그녀는 내가 말을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먼저 말을 꺼내 주었다.
“......소니아.”
“어.”
“검은 존재는 내가 만든 거야?”
나는 정원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내 물음으로 정원의 풍경은 바뀌지 않았지만, 소니아의 몸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맞아?”
나는 소니아의 팔을 잡았다. 그녀가 도망가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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