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변화
* * *
“그런데 아가씨. 어쩌다 그렇게 다친 거야?”
카밀라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사실 그녀가 내가 다치게 된 경위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나에게 온 이유는 병문안 이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 아니죠?”
“내가 어떻게 알겠어. 우리 아가씨가 다친 채로 있어서 너무 놀랐는걸.”
거짓말이었다.
아까는 병문안을 왔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놀랐다고 해 봤자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 또한 그녀가 의도한 것이겠지.
카밀라는 아까부터 능청을 떨면서 자신의 진의를 감추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의도를 감추려고 하는 상황은 익숙했기에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카밀라. 검은 존재는 뭐예요?”
“..........”
그렇기에 나는 검은 존재에 대해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이 도시의 어둠에서 활동하는 그녀라면 검은 존재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디까지나 도박 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위험성은 없어 보였기 때문에 맘 놓고 질러보았다.
“아가씨.”
엘리사보다 차갑고 낮은 음정.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말에 들어있는 감정은 그리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괜찮겠어?”
그녀의 얼굴은 평소보다 씁쓸해 보였다. 그녀의 그런 표정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곳에 오고 나서 나 자신은 구제 불능이었다. 그전이라면 충분히 무시할만할 것들도 이제는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오기인 것을 알고 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내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이 정도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네. 괜찮아요.”
나는 살며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검은 존재에 대한 정체를 알게 된다는 것에 관한 기대감과 카밀라가 씁쓸한 얼굴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
“그래.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카밀라는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녀의 말을 듣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테오도르 쪽에서 검은 존재라고 불리는 것들은 실험체야.”
“실험체요……?”
나는 암살자 비슷한 것들인 줄 알았는데 실험체라니. 내 예상에서는 살짝 벗어난 진실이었다.
“그래. 실험체. 벨리타 자스민이 만든 실험체 말이야.”
“.......네?”
자스민이 만든 실험체라니? 내가 이 세계에 눈을 뜨고 나서 무언가 실험을 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이 세계에 눈을 뜨기 전에 만든 존재라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했다. 만약 자스민이 그런 짓을 했다면 엘리사가 가만히 두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올바른 추측은 전생의 자스민이 했었던 잔재라고 받아드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생의 내가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저번 생의 자스민이 했던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야겠지.
“자스민이요……?”
“그래. 벨리타 자스민씨께서 원석을 깎아 만들었던 귀중한 실험체였지. 물론 지금 잡힌 것은 보석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시간대를 생각해 보면 그쪽도 최선을 다했던 것이겠지.”
머리에 들어오는 정보가 너무나도 많았다.
검은 존재에 관한 것부터 검은 존재를 보냈다는 단체까지. 이 정도로 규모가 큰 이야기를 해 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에 내 머리는 터져만 갔다.
“....저는 그런 일은 한 적이 없는데요.”
나는 일단 시치미를 뗐다. 내가 그런 짓을 할 적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기에 뻔뻔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래. 아가씨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았겠지.”
카밀라는 어디선가 책을 꺼냈다. 꽤나 두꺼운 책이었는데 살인 흉기로써도 그럴듯했다.
그녀는 그 책을 내 품에 안겨주었다.
“아가씨. 선물이야. 잘 읽어봐.”
그녀는 나에게 책을 안겨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녀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으면서 입을 열었다.
“.....가려고요?”
“그래야지. 나도 우리 아가씨를 더 보고 싶지만, 곧 있으면 순찰을 나갔던 개가 돌아올 시간이어서 말이지.”
카밀라는 내 이마에 키스를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가 있었던 자리만을 바라보았다. 내 몸 위에 안겨있는 두꺼운 책과 이마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만이 그녀가 왔다 갔음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
몇 분 전만 해도 잠자리에 들려고 했으나 지금은 잠에서 완전히 깨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녀가 내게 주었던 책을 옆에 두고 달빛이 내리쬐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달빛이 선명해 보였다.
카밀라가 내 마음속을 휘젓고 간 후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깁스했었던 왼팔은 깁스를 풀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깁스한 후 왼팔을 처음 움직였을 때의 해방감은 내 예상을 웃돌 정도로 행복했다.
이제야 사람다워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했으니 말은 다 했다고 할 수 있었다.
오른쪽 팔은 아직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지만, 아예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천천히 라면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붕대로 칭칭 감아서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붕대가 감겨있는 것은 꽤나 답답했지만, 움직일 수 있는 게 어딘가 싶어 굳이 따지지는 않았다.
엘리사는 카밀라가 들어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웬만하면 엘리사에게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내게 책을 남기고 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엘리사는 내게 죄송하다면서 한참을 사과하더니 옥탑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그런 노력이 의미 없을 것을 예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한다고 해서 멈출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결국 엘리사는 집 안을 한바탕 뒤집어 논 후에야 내 옆에 앉았다. 카밀라가 들어왔었던 경로를 찾지 못해 불안한 것이 눈에 보였지만, 애써 침착하려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내가 엘리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해준 뒤에야 엘리사는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다.
양 손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된 후에야 카밀라가 주고 갔었던 책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엘리사는 처음 그 책을 보았을 때 태워버리려고 했지만, 내가 필사적으로 막은 탓에 그것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은 별것이 없었다. 이 대륙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괴담들에 관한 책이었다.
처음에는 정말로 이것뿐인 건가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그 카밀라가 내게 주었던 책이었다. 어딘가 다른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그 후로도 딱히 발견한 것은 없지만 생각날 때마다 계속해서 보았다. 그럴듯한 결과는 없었지만 말이다.
“엘리사.”
“네. 아가씨.”
“이제 아카데미에 나가도 되지 않아?”
집 안에서 지낸 지도 벌써 2달이 다 되어갔다. 이곳에서 시한부 환자처럼 가만히 있는 것도 질리다 못해 썩어가는 것 같았기에 변화가 필요했다.
“아직 다 낫지 않으셨습니다.”
“어차피 오른팔은 앞으로 반년은 고생할 거라며. 반년 동안 가만히 있을 바에야 뭐라고 하는 게 낫지.”
오른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긴 했으나, 완전히 낫게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오른팔의 신경과 대부분 핏줄이 터지는 바람에 완치는 멀었다고 할 수 있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하지.”
나는 엘리사의 물음에 바로 대답했다.
아카데미에서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지는 않을 게 뻔했지만, 가만히 누워있는 것 보다는 났겠다 싶었다.
“아가씨.”
“어. 왜?”
“그 책은 언제까지 읽으실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엘리사는 내가 카밀라가 준 책을 몇 번이나 보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사실상 ‘그만 좀 읽고 다른 것을 해라’라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심심해서 읽게 되더라고. 내가 이 책을 대신해서 할 게 없어서 말이지.”
“.............”
엘리사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아마 내가 흥미를 느낄만한 다른 걸 생각하는 거겠지. 엘리사를 볼 때마다 왜 다들 그녀를 개에 비유하는지 알 것 같았다.
요즘들어 크게 느끼는 거지만 엘리사는 대형견같은 부분이 있었다.
하는 행동이나 말이 빈틈없고 차가워 보였던 초반의 이미지와 달리 리트리버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말이다. 나쁜 의미였으면 내가 엘리사와 같이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엘리사의 이런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 앞에서만큼은 경계를 푸는 것 같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 엘리사의 말 또한 카밀라에 대한 질투였다. 내가 카밀라가 준 책을 너무 많이 읽고 있어서 엘리사는 심통이 난 것이다.
“그래. 이제 책은 그만 읽어야지.”
나는 책을 덮고 엘리사를 바라보았다. 아까와 다르게 밝아진 엘리사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조만간 엘리사와 나의 사이는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