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반동
* * *
사실 나는 마르셀린이 나를 죽이려고 짠 무대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혼자 남자 길이 없어진 벽과 때맞춰 나타난 괴물. 사실 그 상황에서 범인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추측은, 마르셀린이 몇 달 전부터 나를 죽이기 위해 준비했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마르셀린이 했다고 확신하지는 않았으나,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생각해 보니 점점 확실해져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엘리사로부터 듣게 된 답은 내 예상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검은 붕대로 온몸을 감은 사람이 범인이라니.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때 검은 무언가가 있었나 생각해 보아도 그런 것은 없었다는 결론만 되돌아왔다.
엘리사의 말에 따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존재가 나를 죽이기 위해 그 괴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르셀린은 그 존재를 죽이기 위해 벽 안에 그 녀석을 가뒀는데, 그곳에 혼자 남아있는 내가 휘말린 것이라고 한다.
마르셀린은 검은 존재와의 사투 끝에 검은 존재를 생포했다고 한다. 검은 존재는 현재 테오도르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고 한다.
……….이걸 누가 믿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 말을 그대로 믿을 정도로 순진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에게 설명을 해주던 엘리사도 어이가 없었는지, 나중에 가서는 완전 똥 씹은 표정으로 설명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소한 검은 존재가 있었다는 것은 다들 인정하는 것 같았다. 마르셀린의 진짜 속내가 뭐였든 간에 나를 노리던 검은 존재를 생포했다는 것 만큼은 진실이었다.
나는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보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 그것 말고는 딱히 할 것도 없기도 했다.
양팔이 봉인 당하니 침대에 누워있는 하루하루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항상 똑같은 천창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것은 꽤나 고역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몸 전체가 망가졌다는 말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첫번째로 기침이 늘었다. 처음에는 코가 간지러워 그러는 건가 싶었지만, 갈수록 심해지기 시작했다.
심할때는 한 호흡을 뱉을 때마다 기침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아직도 간간히 기침이 나왔다.
두번째로 두통을 동반한 몸살이 지속되었다.
심할때는 가만히 있는 것도 괴로웠지만, 다행히도 몸살은 버틸만했다. 전에도 몸살을 달고 살기도 했고, 침대에만 누워있기에 크게 체감되지도 않았다.
이제는 뇌를 빼고 가만히 누워있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나름 괜찮았다. 어디까지나 나름이지만.
엘리사의 헌신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엘리사는 내가 양팔을 움직이지 못했기에 음식을 모두 내게 먹여 주었다.
그 외에도 내가 심심한 것 같으면 내게 말을 걸어주어서 내 심심함을 달려주려고 노력했다. 아직 움직이면 안 된다는 이유로 바깥에 나가는 것은 안된다고 못 박았지만, 그녀의 노력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엘리사.”
“네. 아가씨.”
“콜록, 콜록. ……..아카데미는 안가도 괜찮은 거야?”
문득 아카데미에 대한 것이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이 침대 위에서 꽤나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았는데, 아카데미에 악영향을 줄까 걱정이었다.
물론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라 진도가 많이 나가지는 않았겠지만, 아카데미의 특성상 한 번이라도 수업을 늦치면 따라잡는 것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다행히 엘리사의 말은 내 걱정을 어느 정도 날려주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가씨의 성적에 악영향이 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출결점수는 의외로 전체 성적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니까. 최소한 이 몸을 이끌고 수업에 참여할 일은 없었다.
“그런데……. 수업 진도는 어떡하지…..?”
하지만 출석 점수가 깎이지 않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수업 진도라는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었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앞으로 아카데미를 다 나을 때까지 쉰다면 내 수업진도가 얼마나 밀릴지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카데미가 나 하나의 사정을 이해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엘리사의 말이 더더욱 놀라웠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가씨께서 다 나으실 때까지 출석과 쪽지시험, 과제까지 모두 만점으로 처리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되는 거야?”
아카데미의 조치는 파격적이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나는 멍하니 엘리사의 얼굴 보면서 되물었다. 내 표정이 얼빵해 보였는지 엘리사의 얼굴에는 미소가 보였다.
“아가씨께서 다친 것은 교수들의 관리부실이라고 하더군요. 아가씨의 치료비 또한 아카데미에서 전액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고맙네……”
나는 그렇게 되뇌이며 베개에 머리를 올렸다. 아카데미의 대처는 훌륭했다. 나는 한층 편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울수 있게 되었다.
“편해 보이네.”
“......불편하거든.”
소니아와 노엘이 찾아왔다. 사실 나는 그들이 금방 올 줄 알았는데 내 생각보다는 늦게 온 것 같았다. 그들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손에 뭔가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살짝 고개를 틀어 보니 소니아는 과자와 작은 과일들을 들고왔다. 노엘은……..
“그거 뭐야….”
“포션.”
포션을 두손 가득 들고왔다. 그 외에도 처음 보는 풀떼기들을 들고왔는데 딱 봐도 써 보이는 것들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저 풀떼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강한 향기는 내게는 견디기 힘들었다.
“.......몸은 괜찮아?”
소니아는 내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어보았다. 그녀의 경우에는 자신이 알려준 번개 마법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것 같았다.
엘리사보다 더하게 눈에서 죄책감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일 정도니 말이다. 그녀의 손을 잡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 양팔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실 장난삼아 아파죽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소니아의 표정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살짝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아.”
“..........”
소니아는 깁스한 왼팔을 쓰다듬었다. 나는 소니아가 이렇게 침울해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가 다치는 것에 너무 마음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 슬퍼해 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소니아가 아니면 진작에 죽었을 몸이었다.
나는 노엘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고 노엘은 단번에 알아들었다. 노엘은 소니아의 옆에 앉아서 내게 말을 걸었다.
“친구야, 밥 먹었어?”
“콜록. 아직.”
“잘됐네.”
노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져온 바구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바구니에서 꺼낸 것은 포션이었다. 불안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막상 마주치니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포션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번개 마법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준 일등공신이기에 싫을 수가 없었다.
단지 저번에 너무나 많이 마셨기 때문일까, 포션 병만 보아도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안마시면 안돼?”
“안그러면 너 이번 학기 동안 계속 그러고 있어야 할걸.”
노엘은 그렇게 대답하며 내게 포션을 내밀었다.
포션이 싫기는 했지만 이대로 몇 달을 더 있어야 하는 것이 절망스러웠다. 나는 이대로 반병신 생활을 할 바에야 죽는 게 훨씬 나을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나는 포션을 마시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두 팔을 쓸 수 없었기에 소니아가 나를 일으켜 주었다.
“생각보다 양이 많으니까 흘려도 돼. 천천히 마셔.”
꿀꺽, 꿀꺽, 꿀꺽.
노엘의 배려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게 마실 수 있었지만, 가끔씩 기침이 나서 전부 마시지는 못했다. 게다가 입 밖으로 흘러나가기까지 했다.
갑자기 많은 양의 액체가 몸속으로 들어오니 몸이 놀란 것 같았다. 나 자신이 이렇게 기침을 많이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내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였다.
엘리사가 나에게 물을 줄 때 많이 주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나는 엘리사의 대한 고마움을 느끼면서 최대한 포션을 마셨다.
노엘은 흘린 부분을 닦아주면서 괜찮다고 해 주었다. 그녀도 역시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지 표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콜록, 콜록. 고마워…….”
나는 눈물 덕분에 뿌연 눈으로 노엘을 쳐다보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몸 안쪽이 많이 망가졌으니까 조심해.”
노엘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외에도 노엘과 소니아는 내 오른쪽 팔에 붕대를 풀고 약초를 발라주기도 했다.
약초답게 팔에 닿을 때 엄청나게 따가웠지만, 그만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버텼다. 원래 몸에 좋은 게 맛도 쓴 게 아니겠는가. 물론 맛을 본 건 아니지만.
노엘의 말에 따르면 오른팔은 꽤나 오랜 시간 아플 것이라고 한다. 씁쓸했지만 왼팔은 금방 나을 수 있다는 말에 웃을 수 있었다.
그녀의 포션은 확실하게 효과가 있었다. 아까전과 비교해서 몸이 훨씬 괜찮아진 게 느껴졌다.
“소니아 눈에 눈물 좀 닦아줄래?”
팔에 붕대까지 감고 나니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낯선 고통이어서일까. 내 생각보다 눈물이 쉽게 나오는 것 같았다.
“......어?”
“이제 너희 얼굴도 잘 안 보일 지경이야.”
소니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손으로 내 눈가에 눈물을 닦아주었다. 스스로 눈물을 닦는 것도 힘든 내 처지에 또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분위기가 너무 축 처지는 것 같아 나는 옆에 보이는 과일로 주제를 옮겼다.
“.........이제 과일이나 먹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