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69화 (69/120)

〈 69화 〉 그물

* * *

“아가씨………!!”

“...........엘리사? ”

뇌창을 던지고 나서 내가 처음 본 광경은 울먹이는 엘리사였다. 시간상으로 그녀를 본 지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을 텐데, 그녀를 보니 그리움이 가득 차는 것이 느껴졌다.

“윽…….”

습관적으로 오른손을 들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고통에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오른팔 전체를 송곳으로 사정없이 찌르는 느낌이었다.

내 왼팔에는 하얀색의 깁스를 하고 있었고, 오른팔은 붕대로 손가락 하나까지 꼼꼼하게 둘려 있었다.

고개가 잘 올라가지 않아 다리 쪽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오른쪽 다리가 잘 움직이질 않는 것을 보아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가씨…. 조심하셔야 합니다.”

엘리사는 슬픈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참담해 보여 내가 죄책감을 느낄 정도였다.

엘리사는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나는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으나 그녀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엘리사에게 듣게 된 내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왼팔을 뼈가 분질러졌고, 오른팔의 혈관 대부분이 터져나갔다. 특히 오른팔의 경우에는 신경이 손상되어서 꽤 오랫동안 고생할 것이라고 한다.

오른쪽 발 또한 접질려 진채로 달려서 발이 돌아갔었다고 한다. 그나마 왼쪽 다리는 다른 곳에 비하면 정상이라는 사실이 고마웠다.

그 외에도 번개 마법의 반동으로 내 몸 내부가 많이 손상되었다고 했다.

사실 뇌창을 쏠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몸이 다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왼팔에 깁스 하나만 하겠지 생각했었지만, 역시 내가 다루기에는 벅찬 마법이었던 것 같다.

소니아도 내가 정말로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 정말 만약의 경우를 위한 가르침이거나 나를 안심시키게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 괴물을 마법으로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엄청난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 자체에 나는 만족을 했다. 그 대가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불구가 되지 않은 게 어딘가.

만약 내가 불구가 되었으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을 수도 있었다.

엘리사의 말에 따르면 그나마 노엘의 물약을 마셨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노엘의 물약이 무너져 내려가는 내 몸을 그나마 지켜주었다고 한다.

나는 노엘에 대한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노엘의 과도한 걱정이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결국 나를 살렸으니 말이다.

물론 노엘 뿐만이 아니라 소니아와 엘리사도 마찬가지지만.

“아 근데 엘리사.”

“네……. 아가씨.”

“이 사건의 범인. 밝혀졌어?”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였다. 이 사건을 일으킨 배후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내가 죽지 않았던 이유인 만큼 중요한 문제였다.

“범인…… 말씀이십니까.”

엘리사의 눈이 살짝 가라앉았다.

방금 전까지 위험한 마법이 오갔던 곳이었지만, 지금 이 공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함을 뽐내고 있었다.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로 바닥에 쓰러진 자벨리나부터 노릇하게 구워진 괴물까지. 이 한정된 공간에서 얼마나 치열한 싸움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이정표였다.

특히 번개를 직통으로 맞은 괴물 같은 맛있는 고기 요리 같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마르셀린은 주위를 천천히 살펴보며 걸었다. 그녀는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이번 계획을 구성할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수확이 좋을 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그녀의 예상을 뒤엎어 버렸다.

마스셀린은 어느새 자스민이 쓰러져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자스민은 엎어진 채로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가끔 발작하는 것처럼 몸을 떨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생존 반응이 아니라 번개 마법의 반동이었다.

자스민의 마법 수준을 생각하면 이 정도면 양반이었다.

마지막에 그녀가 시전했던 번개의 창. 그것은 아카데미의 학생이 함부로 흉내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번개 마법 중에서도 파괴력에만 치중한 비효율적인 마법이었다. 이런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마르셀린이 아는한 이 대륙에는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소니아.

진정한 의미의 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소니아 정도가 되어야지 쓰는 마법이었다. 아마 이 마법을 자스민에게 알려준 사람도 소니아겠지.

자스민이 마법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노엘의 물약과 소니아의 꼼꼼한 가르침, 그리고 자스민의 오른쪽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 때문이었다.

불안정한 마나의 흐름을 정상화하고 자스민에게 가해지는 반동을 일정부분 억제해 주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자스민은 번개 마법의 반동으로 쓰러져 있었고 말이다.

그녀가 정신을 잃었다고 해도 반동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자스민이 정신을 잃었다고 해도 마법은 그녀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인 왼쪽 팔과 피가 흐르고 있는 오른쪽 팔. 그 외에도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마르셀린에게 자스민의 상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스민을 지나쳐 자스민의 옆에 있는 나무를 쳐다보았다. 나무에 새겨진 마법진은 마르셀린의 마법진이었다.

며칠 전에 직접 새겨 놓았기에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 나무에서 자스민은 마르셀린의 마법진을 사용했다.

마르셀린이 처음 그 광경을 봤을 때 그녀는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이 대륙 역사상 남의 마법진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소니아 마저도 타인의 마법진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벨리타 자스민은 그 법칙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유가 뭐지?’

마르셀린은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보았지만, 입증할 수 있는 가설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이 세계에 중요한 사건과 의문은 모두 벨리타 자스민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저번 세계부터 이번 세계까지.

마법진 같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것 하나하나가 모여 그녀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마르셀린은 그 이유를 밝혀내고 싶었다.

자스민의 의문부터 이 세계의 문제들까지. 마르셀린은 저번과는 달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마르셀린은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방금 전까지 자스민이 차고 있었던 끊어진 목걸이였다.

마법에 있어서는 엄청난 저항력을 지닌 목걸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웬만한 마법사는 자스민의 몸에 흠집도 내지 못했겠지.

하지만 물리적인 충격에는 약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목걸이 자체가 강한 재질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마르셀린은 목걸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자스민 옆에 던져두었다. 자신이 가져봤자 별로 쓸모도 없기도 하고, 남의 소유물을 뺏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궁금한 것은 ‘누가 자스민의 목걸이를 끊었는가.’였다.

놀랍게도 자스민의 목걸이를 끊은 것은 마르셀린이 아니었다.

마르셀린은 자스민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물론 자스민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어 과연 그녀가 벨리타 자스민인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스민이 마법진을 만들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 그런 의심은 하지 않았다. 자스민이 마법진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 어떤 사람도 마나의 흐름을 속일 수는 없으니까.

그동안 수 없이 스스로의 판단에 의문을 가졌었는데, 반박할 증거가 나와버리니 단번에 수긍할 수 있었다. 이 세계의 자스민은 마르셀린이 알던 벨리타 자스민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스민에게 사과하고 싶지는 않았다. 껍데기가 벨리타 자스민인이상 꼴 보기 싫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마르셀린은 자스민을 자신의 계획에 집어넣었다.

자스민은 하나의 미끼로서 역할을 다했고, 지금 어떤 물고기가 잡혔는지 확인할 시간이었다.

대충 훑어봐도 괜찮은 물고기가 잡힌 것 같았지만,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나오지, 그래?”

마르셀린은 허공에 대며 입을 열었다.

고요한 숲속에서 그녀의 말이 퍼져나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되나.’

화르륵!

마르셀린은 불타는 화염구를 만들었다. 그녀는 화염구를 자스민을 향해 겨눴다.

“빨리 안 나오면 너희 여신님 죽여버린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셀린의 앞에 검은 연기에 뒤덮인 존재가 나타났다.

검은 연기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앞에 나타난 존재는 온몸을 검은 붕대로 감고 있었다. 양손에는 검은 단도를 들고 있었다.

마르셀린은 그 존재를 보자마자 화염구를 날렸다.

물론 칼로 손쉽게 튕겨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르셀린은 미소를 지었다. 단순한 대어 정도가 아니었다.

“하, 이 정도면 월척이네.”

마르셀린은 자신의 뒤에 있는 나무에 손을 짚었다.

“솔직히 이번일 뒤처리 하는 게 귀찮을 것 같았는데……….”

그러자 이 주변을 뒤덮었던 벽이 변화했다. 노란색의 투명한 벽은 이제 하늘까지 모두 덮어버렸다.

“모두 네가 한 걸로 하자.”

“.................”

검은 존재는 마르셀린의 말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주변에 있는 검은 연기는 더욱 짙어져 가고 있었다.

마르셀린과 검은 존재는 자스민의 옆에서 각자의 목적을 위해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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