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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68화 (68/120)

〈 68화 〉 시험(4)

* * *

“쿨럭, 으…………….”

자스민은 입에서 피를 토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그녀는 아무런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준비했던 방패가 어처구니없이 부서져 버렸다.

자스민은 숨을 쉬어보려고 했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일 초라도 빨리 숨을 쉬어야 했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은 터무니없이 많은 핏덩이였다.

유약한 몸이었던 그녀는 이런 충격에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욱……!”

겨우겨우 고개를 숙여 목에 막혀있던 핏물을 모두 토해내었다.

자스민은 기침하면서 조금 전 상황을 되짚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매고 있었던 목걸이가 사라졌어.’

고개를 숙일 때 목에서 허전한 느낌이 나는 것을 보아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언제 사라진 거지?’

열심히 생각해 보아도 썩 괜찮은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자스민이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 뿐이었다.

거칠게 움직인다고 끊어질 목걸이였으면 진작에 쓰레기통에 들어갔을 물건이었다. 누군가 목걸이만 끊어냈다는 게 더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었다.

그녀는 자기 목걸이를 끊은 대상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후보를 둘로 좁힐 수는 있었다.

‘마르셀린이거나 내가 모르는 인물.’

지금까지의 행적으로는 전자일 확률이 높았다. 자스민이 도망가지 못하게 만든 사람은 마르셀린이 확실했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맘에 안 들어도 내 목걸이까지 끊어서 나를 죽이려고 한다니.

‘머리 아파.’

그녀는 자신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런 추측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스민은 근처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대면서 주위를 살펴보려고 했다. 그녀의 한쪽 눈은 흘러내리는 피 덕분에 제대로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왼쪽 눈 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몸 여러 군데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녀의 왼쪽 팔은 움직이지를 않았다. 조금만 힘을 주려고 해도 엄청난 고통으로 되돌아올 뿐이었다.

오른쪽 발목도 말썽이었다.

다친 다른 곳과는 다르게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걷거나 뛸 때 꽤나 지장이 있을 것 같았다. 살펴보면 다친 곳이 더 나올 것 같았지만, 지금은 일단 이 정도였다.

차 같은 것에 치인 것 치고 이 정도의 부상이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부들거리는 오른쪽 눈으로 자신을 이렇게 만든 원흉을 바라보았다.

자벨리나보다 몇 배다 큰 덩치,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든 순간속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여기에 있을 존재가 아니야.’

자스민이 읽었던 원작 소설에도 비슷한 녀석이 나왔었던 것 같지만, 똑같지는 않았다.

소설에서는 자벨리나의 3배 정도의 크기라고 했지만, 자스민의 앞에 있는 존재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분명 그때 누군가 자벨리나를 개조해서 괴물로 만들었다고 했었는데, 자스민은 이번에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자스민의 눈앞에 있는 녀석은 아직 자스민을 찾고 있었다. 육중한 덩치와 스피드에 비해 시력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저 녀석이 그녀를 찾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냥 죽을까.’

그녀는 현재 숨을 쉬는 것 조차 힘든 상태였다.

이대로 가만히 눈을 감는다면 그녀가 원하는 죽음은 손쉽게 찾아올 게 분명했다. 하지만 자꾸만 움찔거리는 오른쪽 발은 머리가 내리는 결정에 불만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찜찜함.

‘짜증 나.’

그것에서 출발해 이제는 불만과 짜증을 일으켰다.

도대체 나를 노리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나를 죽이기 위해서 짠 무대에서 보란 듯이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가 둥글게 매듭진 밧줄 앞에 있었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녀의 의지일 테니까.

하지만 이 상황은 타인의 의지가 개입하고 있었다. 그것도 몇 명인지 알 수 없는.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었다. 누군가의 판 위에 올려진 것 같은 상황.

‘내가 이곳에서 죽는 것이 나를 이곳에 가둔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면 죽지 말아야겠지.’

소녀는 오른손을 꽉 쥐었다.

‘내 머리에 방아쇠를 당길지언정 남의 뜻대로 이용당하기는 싫으니까.’

자스민은 심호흡하면서 여러 상황을 상상하면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타파하고 그녀의 앞에 있는 괴물을 죽일 계획을 말이다.

그녀의 이런 사고방식은 선천적인 것은 아니었다.

죽음과 가까워져 있음에도 차분하고 냉정한 정신,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구를 부상을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시하는 인내심.

그녀의 이런 특성은 그녀가 한번 죽음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번의 죽음과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에 이르게 위한 시도들. 전생에 있었던 일과 벨리타 가문에서 수도 없이 시도했던 일들이 그녀를 정신력만큼은 범인에서 한 단계 더 끌어올리게 되었다.

자스민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미 한번 죽음에 닿았던 자이기 때문에 두려워하기는 커녕 기쁨으로 삼을 수 있는 인간이었다.

지금은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그녀 자신의 신조와 같은 것이었다.

고통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자살 시도에 그녀는 고통이라는 것에 인내심을 가지는 법을 깨달았다. 자스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고통과 아픔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인내심이 강할 뿐이었다. 외부와 내부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고통에 그녀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평생 참아오기만 했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다행이고 그녀가 어깨에 맨 가방은 그대로 그녀의 옆에 있었다. 가방 속 포션들도 깨진 것 하나 없이 대부분 들어있었다.

가방 밖으로 빠져나간 몇몇 개의 포션들은 깨져있었지만, 이 정도면 운이 나쁘다고 투덜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이 정도만 남아있어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포션, 아니 폭탄(노엘은 포션이라 불리기를 원했다.)은 한 개밖에 남지 않았고 나머지는 마법이 담겨있거나 몸을 치유시켜주는 것들인가.’

자스민은 우선 가방 속에서 포션 하나를 꺼냈다.

노엘의 말에 따르면 아마 몸을 일시적으로 개선해 주는 물약이었다. 각성제와 비슷한 물건이라는것 같았다.

원래 이런 각성제는 효과가 강력한 만큼 큰 부작용이 따라왔다. 하지만 노엘은 부작용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그녀가 가릴 쳐지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마신 물약은 향신료가 가미된 물맛이었다. 생각보다 싱거운 맛에 금세 전부 삼킬 수 있었다.

물약을 전부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스민의 몸에 활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저 녀석에 치이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외에도 자스민은 여러 물약을 마시고 발랐다. 그녀의 앞에 있는 괴물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녀는 조심스럽지만, 빠르게 자기 몸 상태를 나아지게 했다.

‘퇴로는………. 역시 없네.’

그녀가 최우선으로 본 것은 빠져나갈 구멍이었다. 저런 괴물과는 싸우지 않는 것이 가장 이로운 일이라는 것을 자스민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등을 대고 있는 나무부터 펼쳐져 있는 노란색의 막은 그 가능성을 막아버렸다.

남은 하나의 폭탄을 저 벽을 향해서 던져보고 싶었지만, 폭탄으로 부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시도할 수가 없었다.

아카데미의 교수인 마르셀린이 만든 벽 아닌가.

자스민은 하나 남은 귀중한 무기를 확실하지도 않는 곳에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쪽 손에는 자벨리나를 터트렸던 폭탄이 들려있었다.

가방을 메진 않았다. 이미 포션은 넘칠 만큼 사용했기에 이 이상 사용하는 건 시간낭비였다.

여러 포션들을 떡칠한 결과, 달리는 것 만큼은 평소와 다름없는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 자스민을 찾던 괴물이 그녀의 모습을 인식했다.

괴물은 앞발로 땅을 긁으면서 힘을 모았다. 자스민은 지금 당장 뛰어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좋지 않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괴물이 돌진한다.

자스민은 괴물이 빨라지기를 기다렸다.

괴물이 방향을 쉽게 틀지 못할 정도로 속도가 붙자 그녀는 괴물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오른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손 줘봐.”

“손?”

“어 내 손바닥 위에 올려봐.”

노엘이 내게 포션을 무더기로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니아는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녀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궁금해하면서 순순히 손을 올렸다.

소니아와 내 손은 겹친 상태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 손 위에 자그마한 마법진을 만들었다.

“너 아직 4원소하고 얼음 이외에는 다룰 줄 모르지.”

“어? 어…… 그마저도 얼음을 제외하면 잘 다루지도 못해.”

아카데미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마법은 4원소에 기반한 원소 마법이다. 내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얼음 마법도 물 원소의 변형이기에 4원소로 쳐서 같이 배웠었다.

그 외에도 자연에는 여러 가지 원소들이 존재했지만, 많은 숙련도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럼 이번에 배워.”

소니아의 마법진에서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규모가 작기는 했지만, 그것은 분명한 번개였다.

“번개….?”

번개 마법은 내가 말했던 원소 마법 가운데 가장 위험한 축에 속했다. 위력은 엄청나게 강력했으나 심각한 단점이 있었다.

번개 마법을 시전하면 시전자는 일정량의 충격을 받았다. 위력이 강할수록 반동도 더욱 강해졌기에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번개 마법을 잘 활용하지 않았다.

“너 정도의 경지에서는 위력에 한해서 번개 마법을 능가하는 마법은 없어. 익혀 놔서 아쉬울 것은 없지.”

“그런 일을 꼭 손바닥을 겹치고 해야 하나요 선생님?”

“닥쳐.”

노엘의 헛소리가 있긴 했지만, 소니아는 나에게 번개 마법에 관한 여러 가지 개념들을 쉽게 알려주었다.

번개 마법도 원소 마법이었기에 배우는 것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시전할때마다 몸에 정전기가 흐르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오묘했다.

“이 이상으로 번개를 크게 만들면 몸에 무리가 갈 거야.”

소니아는 마법진에서 기다란 창 모양의 번개를 만들었다. 3미터가 넘어갈 정도의 기다란 창이었다. 새하얀 빛의 창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이 창에 얼마나 많은 번개가 압축되어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 포션보고 오바하지 말라고 한사람 맞아?”

노엘은 어이없다는 듯이 소니아를 바라보았다. 노엘이 보기에도 소니아가 사용한 마법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니가 얘한테 줬던 포션만큼 알려주는 거야.”

“지랄한다. 그냥 걱정되서 잠을 못 잔다고 하지 그래?”

“.......”

소니아는 노엘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살면서 이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면 저 새끼의 포션을 꼭 먹고 사용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뛰었다.

“허억, 허억, 헤엑…….”

숨이 벅찰 정도로 뛰다 보니 나는 어느 한 나무 앞에 도착해 있었다.

다른 나무 들과 똑같아 보였지만 한가지 다른 게 있었다.

이 나무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마르셀린의 마법진 말이다.

소니아가 알려준 마법을 벌써 사용하게 된다니…….

노엘도 소니아도 내가 시험에서 이런 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엘리사와 노엘, 소니아까지 그들이 내게 주었던 것들이 지금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저 괴물을 죽인다면 셋에게 뭐라도 선물해 줘야겠다.

땅이 진동하고 있었다. 괴물이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폭탄으로 죽었으면 했지만, 역시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었다.

나무에 손을 대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동안 살면서 보았던 번개의 이미지를 마나에 덮어씌웠다. 소니아가 내게 보여 주었던 그 창 만큼은 못되더라도 따라간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파지직—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을수록 나에게 돌아오는 반동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나무를 잡고 있는 오른쪽 팔을 보니 핏줄들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미칠 듯이 아프고 고통스럽다.

내 팔과 몸이 전기에 익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입술은 터져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포션으로 괜찮아졌던 다른 곳들의 상처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엘이 주었던 포션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미래가 내 앞에 그려졌다. 아마 지금쯤 정신을 잃었겠지.

나는 괴물이 나에게 닿기 전에 더더욱 빠르게 마나를 불어넣었다. 지금은 내 고통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거의 모든 마나를 불어넣어 완성한 창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소니아가 보여 주었던 모습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내가 시전했던 그 어떤 마법들보다 아름다웠다.

이제는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인중이 따뜻한 것을 보니 코피가 흐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먼지가 될 것만 같은 정신을 잡고 앞을 바라보았다.

괴물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폭탄의 효과가 없지는 않았는지 괴물의 피부는 대부분 타버렸고 코는 엄청난 열에 살짝 녹은 것 같이 보였다.

괴물이 나와 근접했을 때 나는 나무에 모든 마나를 때려 넣었다.

뇌창은 그와 동시에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콰지직—!

뇌창은 불타 없어진 괴물의 살갗에 적중했다.

괴물은 번개로 된 쇠꼬챙이에 몸을 관통당했다. 괴물의 몸 안쪽에서 들리는 스파크 소리는 뇌창의 역할을 제대로 알려주고 있었다.

괴물은 내가 쏜 뇌창에 밀려 뒤쪽으로 몇 바퀴나 굴렀다.

나를 괴롭혔던 이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은 퍽 괜찮은 기분이었다.

나는 뒤구르기를 하는 괴물을 바라보며 앞으로 쓰러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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