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시험(2)
* * *
가방이 생각보다는 무거웠던 탓에 마차에서 내리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마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겉에서 볼 때는 빽빽한 숲 같았지만, 막상 여기서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나무 사이사이의 틈은 내 생각보다는 훨씬 넓었다.
지금 우리가 위치한 공터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 같았다. 끝 쪽에 나무 밑동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그렇게 생각했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오랜만의 외출이라서 그런지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신기해 보였다.
시험에 대한 긴장감으로 얼굴은 굳어있었지만, 눈만큼은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조별로 정렬해서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을 들었다.
다른 학생들은 지루하다는 듯이 별로 집중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나는 주의 깊게 들었다.
주의사항을 말하는 교수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굉장한 실력의 기사라는 것 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인 소니아와 친근하게 말을 섞었던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내 앞에 선 그녀는 그런 따뜻함 같은 건 없는 냉정한 기사 그 자체였다.
“시험에 앞서 너희들은 웬만한 주의사항 같은 것은 이미 귀가 닳도록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이 숲에 대해서 알려주도록 하지.”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마르셀린은 자신의 뒤에 있는 나무에 손을 올렸다. 마르셀린이 손을 올린 나무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뭘 하려는 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막이 생기게 되었다. 나무의 사이를 채운 알 수 없는 막은 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길을 알 수 없는 이 숲에서 마르셀린의 마법 하나로 여러 갈래의 길이 생겼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만 해도 10갈래는 되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얼마나 길이 나뉠지는 알 수 없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여러 갈래의 길은 마치 미로처럼 보였다. 나는 내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본 마법 중에 스케일이 가장 큰 마법이기도 했지만, 소설에는 이런 마법이 등장하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원작 소설에서는 조별 과제가 아니었으니 이럴 필요가 없기는 했지만…….
조별 과제로 변경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의 마법을 준비한다고?
내가 알 수 없는 의문이 계속해서 늘어만 가는 것 같지만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늘어만 가는 불안감은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머리를 계속해서 돌리는 것 뿐이었다.
“너희들은 각자 저 길로 들어가 시험을 진행할 거다. 방금 마르셀린이 세운 벽은 웬만한 충격이 아니면 끄떡도 하지 않을 거니 이상한 짓은 하지 말도록.”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학생들 중 누군가 손을 들었다. 몇 번 본 적 있는 얼굴이었지만 나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한 적은 없는 인물이었다.
사실 나와 한 번이라도 대화를 한 인물이 더 적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그래, 해 봐라.”
“정확히 평가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자벨리나를 한 마리만 잡아도 통과다. 교수들이 그 과정을 살펴보면서 개인에게 가산점을 넣어줄 뿐이지. 한 마리 이상을 잡는다고 해도 가산점이 더 붙지는 않는다.”
“조원 한 명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말입니까?”
그때, 엘이 손을 들어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엘의 질문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엘은 아마 내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 또한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노골적인 그녀의 비난에도 모른 척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는 시험의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잘 아는군.”
“.......네?”
그녀는 엘을 바라보면서 알을 이었다.
“이번에 너희가 하는 건 굳이 따지자면 시험이 아니다. 기숙사의 화재로 인해 밀린 조별 과제를 못하게 되었지. 이번 시험은 화재 때문에 기르지 못한 너희들의 협동심을 키우기 위해 진행하는 것이다.”
그녀는 앉아있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나무 밑동을 의자 삼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학생들은 어느새 홀린 듯이 그녀의 말을 경청하게 되었다.
“너희가 조원 한 사람을 배제하고 시험을 진행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 조의 조원인 이상 점수는 모두 공유하게 될 것이다. 차이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 가산점뿐이지.”
“........알겠습니다.”
엘이 침울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러면 시작하도록 하지.”
그녀의 말이 있고 나서 학생들은 교수들과 함께 마르셀린이 만든 길 속으로 나아갔다.
내가 속한 조 같은 경우에는 지도 교수께서 아직 오지를 않으셔서 출발하지 못했다.
지금 내 조 같은 경우에는 분위기는 이미 창난지 오래였다. 가뜩이나 어색해 죽겠는데 바로 전에 엘이 한 말 때문에 이 그룹은 서로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끔찍한 조가 되어 버렸다.
나는 차라리 마르셀린이 빨리 오기를 바랐다. 마르셀린이 와서 빨리 이 시험이 끝나기를 바랐다.
마르셀린이 오면 자벨리나를 잡으러 움직이기라도 하겠지. 이 상태로 가만히 있는 것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내가 다니아와 엘의 눈빛으로 말린 오징어가 되기직전에 가까스로 마르셀린이 왔다.
아마 학생들에게 주의사항을 말해주던 기사하고 대화를 나눴던 것 같았다. 마르셀린은 늦었다는 사과도 없이 걷기시작했다.
마르셀린의 뒤를 따라 꽤 오랜 시간 걸었지만, 아직도 그녀의 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동안 오면서 다른 조가 시험을 진행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을 정도였다. 나는 슬슬 멈춰야 하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숨이 막히는 분위기 때문에 입을 열 수도 없었다.
마르셀린은 가로막힌 벽이 있는 곳에 섰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녀를 의문이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의문은 나만이 가진게 아녔는지 엘과 다니아도 마르셀린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근처에 있는 나무에 손을 대더니 새로운 길이 열렸다.
“....이건?”
엘이 마르셀린을 향해 물어보았다.
“다른 곳은 모두 차서 새로 만든 거야.”
마스셀린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하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덤덤한 그녀의 말에 나는 깊게 의심하지 않았다. 일단은 말이다.
내가 지금 의심을 한다고 해도 그녀에게 따질 수 없기도 할뿐더러, 설마 교수가 학생들 위험에 처하게 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셀린은 새로이 만든 길을 향해 5 분 정도 걸은 후에야 걸음을 멈췄다. 가방 계속해서 매고 있다 보니 어깨가 아파져 오고 있었는데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너희끼리 알아서 해봐.”
“개인 평가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마르셀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물론 말로만 그렇게 말하고 어딘가에서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르셀린이 사라지고 일단은 이 공간에는 나와 다니아 그리고 엘만이 남아있었다.
엘은 다니아와 눈빛을 교환하더니 앞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도 그녀들을 따라 걸음을 옮기려고 했지만 엘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뭐해.”
“어……?”
나를 혐오스럽다는 듯이 노려보는 그녀를 보니 내 말은 자연스럽게 작게 말했다.
“자벨리나를 찾아야지…….”
나는 그 말을 하면서도 엘의 눈치를 계속해서 살폈다.
“아니, 너는 여기 있어.”
“......뭐?”
“네가 우리랑 같이 가봤자 할 수 있는 건 없어. 여기에는 널 지켜줄 사람들도 없으니 말이다.”
나는 그녀의 말에 주먹을 쥐며 따졌다.
“그건 아직 모르는 거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어떻게 단 정 지을 수 있어.”
“없어.”
엘은 손 위에 마법진을 만들었다.
“이 아카데미의 모든 학생이 할 수가 있는 이 간단한 것조차도 넌 하질 못하지. 그 공용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를 통해야만 마법을 쓸 수 있는 네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나는 그녀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으나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 나는 남들에 비하면 악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험에 아무런 도움이 될지 않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나름대로 자신 있었다.
하지만 이 자신감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다른 말이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그런 말을 내뱉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강자의 뒤에 비겁하게 숨어있을 거면 끝까지 숨어있어. 역겹게 고개 내밀지 말고.”
엘의 말은 내 비수를 찌르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을 피했다. 그녀의 말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말이 다르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 그게 네가 도움이 되는 길이니까.”
엘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니아와 계속해서 나아갔다. 예전이었으면 다니아가 엘에게 그만하라고 말을 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이제 다니아는 엘이 말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할 때 엘의 말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닐까.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나는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슬슬 다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엘의 말이 너무나 충격이었기 때문인지 나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아래에 내려놓았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자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뭐 하지?
숲이나 둘러볼까.
나는 할 게 없어서 이 주변의 숲을 탐험해 보기로 했다. 물론 다니아와 엘이 간 쪽 말로 지나왔던 곳 말이다.
마르셀린을 따라가느라 놓쳤지만 처음 보는 식물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것들을 찾으러 가기만 해도 시간이 금방 가지 않을까.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거라 위험하지도 않을 것이고.
생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나는 몸을 돌려 지나왔던 길로 되돌아가려 했는데……
“.......어?”
막혀 있었다.
내가 지나왔던 길이.
노란색의 막이 어느새 지나왔던 길을 다시 막아서고 있었다.
마르셀린이 있어야지만 통과 할 수가 있는 건가?
크르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내 뒤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온몸에 돋는 소름을 느끼며 고개를 뒤로 돌려보았다.
자벨리나였다.
심지어 한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