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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65화 (65/120)

〈 65화 〉 시험(1)

* * *

테오도르를 떠나는 마차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보통이라면 이런 마차 안은 떠들썩했겠지만, 아쉽게도 이 마차 안에서는 아무도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

마차 안에는 적지 않은 인원이 있었다. 상당히 큰 마차였기에 20명 이상 탈 수 있었다.

엘은 내 앞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고 다니아는 엘의 옆에 딱 붙어있었다. 다니아또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엘과 달리 눈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다행히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 타지는 않았다. 모두 앉아서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의 인원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종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동안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나를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까지 나와 거리를 두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 같았어도 나 같은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전까지는 유령 취급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노엘이 엘을 뭉개버린 이후 상황이 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사건 이후 그나마 나에게 눈길이라도 주었던 이들은 이제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를 쳐다보다가 노엘과 소니아에게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이유 같았다.

하지만 이따금 나를 두려움의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은 느껴졌다. 다음은 자신이 엘처럼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몰랐다.

나는 그들의 얘기조차 들을 수도 없었으니 내 추측일 뿐이었지만.

그 사건 이후에도 몇 번씩 진행된 조별 회의는 우유 없이 먹는 고구마와 같았다.

다른 팀들은 화기애애하면서 회의하고 있었다. 내가 속한 팀은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칼 엘은 나를 없는 사람 취급을 하면서 내가 하는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가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나를 더없이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눈빛을 마주치면 나 또한 눈을 돌렸다. 그녀의 불타는 증오를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한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니아는 나를 두려워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 뒤에 있는 그들을. 어쩌다 나와 눈이 마주치거나 몸이 닿으면 그녀는 두려워하면서 내 눈을 피했다.

그녀의 눈빛은 엘의 눈빛과는 달리 내게 상처를 안겨주었다. 엘의 눈빛과는 달리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를 남기는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에게서 상처를 받는 쪽이었지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 존재가 누군가를 상처입힌다는 것이 너무나 생소했다. 또 두려웠다.

이런 눈빛은 단순히 다니아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 장소에 있었던 이들 대부분이 나와 내 친구들을 두려움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그런 식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그런다고 그들의 시선이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속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함에 창밖을 쳐다보았다. 내 마음을 모르는 것 같은 쨍한 햇살은 내 마음을 더 곪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시선을 책상 바닥으로 향했다. 이 답답함은 꽤나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을 모양이었다.

내가 그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멀쩡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무치듯 슬퍼한 것은 아니었다.

이 정도의 무시와 두려움의 시선은 견딜 수 있었다.

끄떡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는 두려움의 시선은 다행히도 꽤나 이른 시간 안에 적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답은 뻔뻔해지는 것 이었다. 그들의 시선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니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뻔뻔해지는 척’이었기에 나 자신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괜찮았다.

엘의 타오르는 증오의 눈빛은 오히려 견디기 쉬웠다. 그동안 수 없이 겪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보았던 눈빛이기에 나는 무뎌질 수 있었다.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노엘과 소니아는 내가 넘어가 준 뒤로 조금은 조심하면서 행동하는 것 같았다.

소니아는 그 뒤로 노엘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최소한 내 눈앞에서는 말이다.

노엘같은 경우는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평소와 그리 다른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에 나와 더 붙어있으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다른 학생들에게서 나를 지켜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와 이렇게 붙어있으려고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이런 행동을 나는 굳이 막지 않았다.

큰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그들의 두려움 가득한 시선과 노골적인 무시에 나라는 사람이 언제 무너질지 몰랐다.

그럴 때마다 내 옆에 있어 주는 노엘과 소니아는 무너지려는 나를 지탱하는 역할을 했다.

그럴 때 내 옆에 노엘이 있어 주려고 하지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카데미의 수업과 조별 회의 덕에 지쳐갔지만, 그들이 있어 나는 다음날에도 아카데미로 나올 수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카데미에서 내가 이런 취급을 당하게 된 건 그들의 탓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런 결과를 노리고 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한 짓은 나비의 날갯짓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태풍으로 발전할 계기였고, 나는 그 계기일 뿐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잘 처신했다면 이런 결과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근거도 없는 생각이었지만, 혼자서 하는 망상의 특성상 나는 어느새 확답을 내리고 있었다. 내 잘못이라고.

고개를 털었다. 물론 후회는 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아카데미에서는 우리가 잡을 마물인 자벨리나의 서식지와 약점과 같은 정보에 대해 가르쳤다.

자벨리나는 힘이 센 농부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마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같은 학생들이 방심하면 한 방 먹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자벨리나의 습성과 좋아하는 음식과 같은 사소한 것까지 알게 되었다.

다른 학생들은 그런 수업을 지루해했지만, 나로서는 즐거울 따름이었다. 원래부터 이 세계의 생태계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혹여나 무슨 사고가 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동안은 한꺼번에 같았던 거였고, 이번에는 3인 1조이기는 했지만 조별로 지도교사가 붙었다.

조별로 정해진 구역으로 가서 2마리의 자벨리나를 사냥하고 지도교사에게 그 결과를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시험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속한 조는 회의를 하지 않았다.

내가 있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노엘한테는 힘도 못써보고 당했다고는 해도 엄연한 칼 가문이었다.

자벨리나 같은 마물은 엘 혼자서 20마리도 넘게 썰어버릴 수 있었다. 애초에 그녀의 뒤만 따라다니면 이 시험을 실패할 리는 없었다.

평가 기준에 각각의 개인 평가도 들어간다고는 했으나 비중이 크지는 않았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꿀을 빨 수 있지만 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대로 이 시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마법을 실전에서 사용해보고 싶었다. 공용마법진을 사용해야 하는 반쪽짜리 마법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마법을 실전에서 사용해보고 스스로 개선점을 찾아 나서고 싶었다. 실전을 많이 겪어 보면 나도 내 마법진을 만들 수도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나는 그 불만을 표현해내지 못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입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내가 나서서 말을 한다고 해도 엘이 끄떡이나 할까?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내 말을 못 들은 척을 하겠지.

뻔한 일이었기에 나는 굳이 도박하지는 않았다.

지도교사도 내게는 불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속한 조의 지도교사는 마스셀린이었다. 나는 처음 그 소식을 들을 때 책상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마르셀린이라니!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동안 보였던 태도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만으로도 버티기 힘든데 마르셀린까지 온다니. 나는 쥐구멍에 숨어 울고 싶었다.

마르셀린은 조별 회의를 하는 동안 나를 불만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에 나는 몸에 구멍이 난 것 같다는 착각을 받을 정도였다.

엘리사는 내가 치는 시험이 꽤나 불안한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나를 강가에 내놓은 갓난아이를 보는 것처럼 쳐다보는 것을 보아하니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선물해 주었던 반지와 목걸이를 그녀에게 보여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 준다는 사실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마워서 절을 해도 모자랄 정도였다.

마차 밖의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갓 나올 때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던 테오도르가 엄지손톱 만할 때까지 주변의 풍경은 한 계절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테오도르 주변의 농지들에서 여러 가축을 키우는 목초지가. 목초지에서 여러 마물이 뛰는 초원이. 초원에서 빽빽하게 들어선 숲까지.

고개만 숙이면서 목적지까지 졸기에는 너무 아까운 순간들이었다.

숲에 있는 나무의 종류가 여러 번 바뀔 때 즈음, 마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마차들은 숲속에 있는 한적한 공터에 주차했다.

“도착이다.”

교수의 말에 나는 어깨를 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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