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후유증, 그리고 준비 (2)
* * *
칸막이가 벗겨지자 그곳에는 노엘과 소니아, 그리고 처음 보는 인물이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아 아마도 양호실 선생님 같았다.
인자해 보이는 얼굴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몇 년이나 굴렀던 것 같은 인물 같아 보였지만, 선입견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가만히 있었다.
“.....벨리타 자스민 맞지?”
“네…….”
“딱히 별로 불편한 점은 없고?”
“네. 딱히 없는 것 같아요…….”
그녀는 나를 보면서 수첩에 무언가 적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내용을 적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래, 그러면 됐어. 아직은 일어나는 게 힘들 테니까 괜찮아질 때까지 쉬고 있어.”
그녀는 짧은 질문을 내뱉고는 양호실 바깥으로 나갔다.
양호 선생님이 나가자 나는 내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둘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
나는 그녀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무슨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냥 나를 기절하게 했던 인물들이 왜 이렇게 조용하게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왜, 아까처럼 마나로 죽일 듯이 실력을 겨루지 왜? 나 같은 사람에게 와서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 것일까.
나를 무시할 거면 끝까지 무시하던가.
스스로 생각해 보았을 때는 괜찮은 것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내 마음이 괜찮은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내가 그녀들에게 짜증과 실망을 느낄 부분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사람의 심리는 내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고 유약했다.
그녀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싸웠다는 게, 그것도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특히 소니아. 나를 지킬 거니 뭐니 내게 아무리 말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기 싸움에 정신이 팔려 나를 신경을 쓰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내가 그녀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아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렇게 소중하다 어쩐다 말했으면 내가 기절하기 전에는 알아차렸어야지.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린아이의 투정 같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어린아이의 투정이면 어떤가. 실제로 내 마음이 슬펐던 게 사실인데.
눈을 뜨고 내 옆에 있는 둘을 바라보았다.
둘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내가 눈을 맞추려고 해도 그녀들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녀들이 누군가에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순간적으로 내 마음속에 ‘용서해줄까.’ 같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물론 금방 시들어 벌었지만.
“하아……….”
첫 말을 무엇으로 하다가 고민을 한참을 하다 보니 자동으로 한숨이 나왔다.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기 싸움이나 했다는 것의 한심함을 담아서 말이다.
솔직히 칸막이를 치우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짜증을 마구잡이로 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기절하게 된 이유가 그들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게 되니 그런 말들이 나오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나를 한 번씩 구해주었던 인물들이 아닌가.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불만을 내뱉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불만을 말하려고 열었던 입은 자연스럽게 닫혀버렸다.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불만은 작아지는 입 모양을 따라 작아지는 한숨뿐이었다.
“........”
“........”
나로서는 내가 낼 수 있던 최대한의 짜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생각보다 찔렸던 모양이었다. 내가 한숨을 쉬자마자 두 명 모두의 어깨가 움찔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평소 남들의 말을 아무리 들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이들이었다. 그들이 내 말을 듣고 반응을 했다는 것 자체가 기념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소니아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가만히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사무라이처럼 절도 있는 모습은 그동안 내가 보았던 사람 같지가 않을 정도였다.
반면 노엘은 내 눈치를 본다는 것을 빼고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한 번씩 나를 올려다보면서 나와 눈이 마주치고, 가만히 있지는 못해 팔과 다리가 움직인다거나.
평소의 노엘과 크게 다른 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익숙함이 느껴졌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과연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사실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처음이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일단은 인사부터 해야 하나.
불현듯 들은 생각에 나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안녕.”
나는 내 말에 반응해 주기를 바랐으나 아쉽게도 둘 다 내 인사에 대답해 주지는 않았다.
나는 이상한 심술이 났다.
그들이 내 말에 대답하지 않자 기분이 상한 것이다.
벽을 보고 말을 하고 말을 하는 느낌이었기에 더더욱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둘 중에서 노엘을 콕 집에서 말을 걸었다.
“노엘. 내가 왜 기절한 거야?”
“어……. 나랑 소니아 때문에?”
그제야 노엘은 내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그래 진작 대답했어야지.
나는 살짝 불만이 섞인 눈으로 노엘을 노려보았다.
그나저나 내가 기절할 정도로 둘의 기 싸움이 심했다는 걸까. 전에는 눈을 감아도 금방 눈을 뜨겠지, 싶었는데 내 예상이 틀렸었다.
분명 내 마지막 기억에 따르면 해가 맨 위에 떠 있어야 할 텐데 지금 태양은 지평선에 삼켜지기 직전이었다.
금방 일어났다고 생각했지만, 붉게 타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니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기절하고 얼마나 지난 거야?”
“4~5시간 정도…….”
대충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입으로 듣게 되니 더 충격이었다.
마나의 압박이 이 정도였나. 다음에 마나로 압박하는 마법사를 만나면 바로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뼈도 못 추릴 수도 있겠네.
“........둘이 왜 싸운 거야?”
나는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물어보았다.
내 머리에서는 갑자기 둘이 왜 싸우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둘이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보면 하찮은 이유는 아닌 것 같았기에 더더욱 궁금했다.
“둘이 그렇게 싸운 걸 보니 사소한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뭐가 문제길래 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싸운 거야?”
내 물음에 노엘과 소니아는 서로의 눈을 한번 훑더니 다시 내 시선을 내 얼굴 밑으로 내렸다.
나는 그녀들이 이유는 말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녀들은 내 물음에 대한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진짜 안 알려줄 거야?”
나는 한참 동안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상황에 진전은 없었다.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사실 어쩔 수 없지, 라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화나 났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면 나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걸까.
그래. 너무나 중요하고 철저히 지켜야 할 비밀인가 보지.
“친구야……. 괜찮아?”
노엘은 평소와 달리 기죽은 목소리로 내게 물어보았다. 몇 번이나 내 눈을 마주치는 것을 보아 진심으로 괜찮은지 걱정이 되는 것 같기는 했다.
소니아또한 가만히 있는 듯 했지만,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예전부터 누군가의 시선에는 민감했기에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누군가의 시선은 내게 화살과도 같았기에 나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오른쪽 팔을 들어보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은 꽤나 많은 힘을 요구했다. 팔이 자꾸만 밑으로 내려가려는 느낌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몸을 자꾸만 끌어내리고 있는 것 같달까.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특별하게 몸에 이상이 있지는 않았다. 몸이 무거운 거야 피곤하면 언제든지 그럴 수 있으니까.
“.......괜찮은 거 같은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들어 올렸던 오른팔을 내렸다. 큰 문제는 없다고 해도 몸이 무거운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너희 뭐 할 말은 없어?”
나는 그녀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큰 것은 아니었다. 간단한 사과.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멋없게 사과를 강제로 받아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들이 먼저 나에게 사과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말까지 한 이상 반강제나 다름없었지만 말이다.
“....미안해.”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소니아였다.
내가 일어났을 때부터 가만히 아무 말도 안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 줄이야.
“나도…….”
노엘도 소니아를 한번 보더니 나를 향해 사과의 말을 말했다.
나는 그녀들을 한번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다음부터는 내 앞에서 둘이 안 싸웠으면 좋겠어.”
“아까 왜 싸웠는지는 묻지 않을게. 중요한 건 이제부터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일으켰다.
“알겠지…?”
나는 이 둘에게 많이 화가 나지는 않았다.
워낙 기상천외한 일을 많이 겪어서 그런가 이 정도면 선녀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싫었던 건 둘이 싸우고 그로 인해 나까지 화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둘이 싸웠던 이유 같은 것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다행히 노엘과 소니아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그거면 된 거지.
나를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한번 넘어가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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